내가 지금까지 읽은 존 르 카레의 소설들은 차가움 속에서 어떤 아련한 슬픔이 담겨 있었다. 차가움은 르 카레가 늘 인물들과 그들의 상황에 거리를 두고 서술하는 데서 오는 듯하고 그러나 결국 파국으로 끝나는 마지막에 이르면 뭔가를 지키려고 했던 인물들의 죽음 혹은 실패에 깊이 동정할 수밖에 없다.   

 

 

 

 

 

 

 

  

 

[영원한 친구]는 9.11 이후 르 카레의 작품 중 하나다. 1931년생이니까 르 카레는 이제 여든이 넘은 노인이다. 그럼에도 2010년도에 [Our Kind of Traitor]를 출간했으니 꾸준한 그의 창작 열정은 놀랍고 어쨌든 존경스럽다. 전쟁과 냉전의 전성기 때를 통과해온 스파이소설의 대부가 지금은 어떤 작품을 쓸 수 있을까 싶겠지만 [영원한 친구]를 보면 그가 다루고 싶은 세상과 사람들에 대한 관심은 여전하다는 걸 느낄 수 있다. 전후 세대로서 20대를 동서냉전의 시대에 열혈청년으로 보내고 양진영에 포섭되어 이중스파이로 살아가던 그들에게 무심한 듯 찾아온 베를린장벽의 무너짐과 소련의 붕괴는 서툴지만 서둘러 도망쳐야 할 현실로 남은 채 새로운 시대로 넘어간다.  

간신히 찾았던 사랑과 가정의 행복마저 지키지 못했고 사업이 망하면서 빚을 진 채 관광안내원을 하던 먼디에게 어느 날 갑자기 옛 동지이자 친구 사샤가 나타난다. "내리막 길에 있는 냉전 건달 두 명"이라고 자신들을 정의한 사샤. 은퇴한 스파이인 먼디는 사샤가 예전의 '위대한 이중첩자'였던 모습은 사라지고 "그 대신 남의 말을 잘 믿고 감동 잘하는 공상가" 였던 대학시절의 사샤로 돌아왔음을 감지한다. 사샤가 다시 먼디를 찾아와 자신이 다시 몸담은 조직과 신념에 동참하기를 원할 때 왜 먼디는 뿌리치지 못한 것일까. 먼디에게 여전히 남아있는 그 무슨 이상과 신념이 있었을까. 그보다 그들은 'Absolute Friends'로서 결국 끝을 함께 할 수밖에 없다고 작가는 믿는 듯하다. 이 소설은 과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먼디와 사샤, 먼디를 통한 사샤를 죽 보여주면서 그들이 뚫고 나온 시대들을 거쳐간다. 인물들과 인물들 간의 심리가 다른 작품들보다 좀더 구체적이어서(아님 다른 작품들을 내가 미처 잘 보지 못해서일수도 있고) 마지막에 이르러 두 사람의 비극은 그동안 내가 읽었던 르 카레의 어떤 작품보다도 감성적으로 빠져들 수 있었다. 르 카레가 그 전보다 연민을 더 많이 품었기 때문일까.  

[죽은 자에게 걸려온 전화], [추운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도 다시 한 번 읽고 싶고, 또, 카를라 3부작 중 [팅커, 테일러...] 외 아직 번역되지 않은 [The Honourable Schoolboy]와 [Smiley's People]은 정말 읽고 싶다. 또 '소설쓰기 두려울 때 읽으면 좋다'는 [A Perfect Spy]도 관심 도서다.   

 

 

 

 

 

 

  

 

 

아직 르 카레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나름의 판단이 서지 않은 관계로 관련 자료도 보고 싶은데, 늘 생각은 그저 한 때의 생각으로만 남았던 나의 사정을 생각해보면 뭐 이 또한 지나가는 관심일 뿐이지 싶다.   

[Conversation with John le Carre]는 1965년부터 1999년까지 다뤄진 카레와의 인터뷰를 편집한 책이라는데 카레 자신의 얘기들을 많이 담고 있는 모양이다. 그가 좋아하는 문학얘기들, 작가들, 자신의 소설에 나온 인물들에 대한 얘기, 직업과 문학관 등 카레에 대해 좀더 알 수 있는 책일 듯하다.   

 

 

 

 

 

 

  

 

또 한 권, 1998년에 나온 저작인 모양인데 정치학과 인류학을 가르치는 교수의 르 카레 연구서도 궁금하다.  [The Spy Novels of John le Carre : Balancing Ethics and Politics]. 르 카레의 소설을 윤리와 정치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딜레마들에 주목하여 분석한 학술서적이다. 리뷰어들 중에는 '다소 현학적'이라고 지적한 사람도 있지만 대체적으로 재미있고 쉽게 읽을 수 있다고 하니 관심이 더 간다. 무엇보다도 2000년 이전의 르 카레 작품들에 나오는 주요 인물들을 정연하게 정리해주는 부록이 있는 모양이다. 탐나도다. 서문과 1장 정도는 인터넷에서 구할 수 있길래 프린터해서 보는 중이다. 좀 보고 책을 구입하든지 할 생각이다. 어떻게 될지 잘 모르겠다. 쩝. 6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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