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황해>를 봤다. 물론 후반부의 엄청난 자동차 추격 액션씬도 인상적이었지만 가장 인상적인 장면들은 구남(하정우)이 배를 채우는 장면들이었다. 무언가를 먹는 장면, 먹는다고 말하기조차 사치스럽게 느껴지는 입으로 뭔가를 밀어채워넣는 장면들. 한국영화에서 이렇게까지 절박하고 처절하게 먹는 장면을 표현하는 영화를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감독은 이 영화가 자신을 따라다닌 한 이미지에서 시작했다고 밝혔다. <추격자> 프리프러덕션 과정에서 분식집에 떡복이 먹으러갔다가 만난 "추레한 작업복 차림의 10살 가량 되는 아랍계 아이가 덮밥을 먹고 있는 모습". "맛은 안중에도 없고 오직 내 몸을 움직이려면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마음만 있는 것 같았어요. 무서웠어요." 

예전에 헐리우드 영화들에서 미국으로 목숨을 걸고 이주해오는 여러 나라의 불법 이민자들의 삶을 그린 영화를 볼 수 있었는데 <황해>는 내가 살고 있는 한국으로 오늘도 어디선가 온갖 인간의 조건을 유보하고 건너오는 타인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불행히도 오늘 한국은 그들에게 단 한 자리도 내줄 길 없는 송곳들만 꽂혀 있는 척박한 곳이다. 코리안드림이라는 판타지조차 허용되지 않는 땅. 판타지조차 가능하지 않는 그야말로 황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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