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로쟈 > 인문학 임파서블 시대의 인문학

어제 시립도서관에 갔다가 정간물실에서 잠시 문학잡지들을 훑어보았다. 걔 중에는 <21세기문학>(2007년 봄호)도 껴 있었는데, 한동안 잊고 있었던 일이 생각나서 인문학 위기에 관한 기획좌담을 읽어보았다(실은 그 좌담자의 한 사람이었다). 사회자의 표현을 빌면, '인문학 임파서블 시대'의 인문학은 무엇으로 사는가에 대해서 다른 두 분 선생님들과 자유분방하게 의견을 나눈 자리였다. 생각난 김에 내가 거들었던 대목들만 추려서 창고에 넣어둔다.    

■ 최근 인문학 서적의 출판 동향

제가 출판동향 분석가는 아니지만 나름대로는 ‘기존의 인문학에 대한 도전’을 네 가지 정도로 정리하고 있습니다. 먼저, 인문학 서적의 새로운 수용자를 찾으려는 움직임, 소위 ‘쉬운 인문학’의 유행입니다. 얼 쇼리스의 <희망의 인문학>처럼 인문학과 직접적인 상관이 없어 보이는 일반인들, 더 나아가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인문학의 희망을 나누려는 움직임도 있죠. 그런데 쉬운 인문학이 급증하는 현상은 논술시장과 연관된 것이기도 하죠.

 

 

그리고 두 번째는 ‘제 3의 문화’인데, 일련의 자연과학자들이 자신들의 문제의식에 공감하는 인문학자들도 포함시켜서 일종의 인문학과 자연학 사이의 구분, 곧 ‘두 문화’를 극복하고자 하는 운동입니다. 대표적으로는 존 브록만 같은 편집자와 리처드 도킨스, 재레드 다이아몬드 같은 저명한 과학자들을 들 수 있는데, 이들은 자신들을 ‘새로운 인문학자(New Humanists)’라고 부르더군요. 국내에서도 최재천․도정일 교수의 <대담> 같은 책은 이러한 맥락에서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디지털 미디어와 인문학의 접속입니다. 소위 ‘디지털 인문학’이라고 불리는 분야인데, 인문학 분야 가운데서는 가장 ‘돈 되는’ 축이 아닌가 싶습니다. 끝으로 정신분석학의 도전, 혹은 대중화를 들 수 있을 거 같습니다. 문학비평뿐 아니라 영화비평 쪽에서 라캉과 지젝 같은 이론가들의 작업이 활용되고 있지요. 아카데미즘 내부에서는 아직 비주류이지만 대중문화 비평이나 대중적인 채널 속에서는 이런 정신분석학 계열의 책들이 많이 유통되고 있고 앞으로 더욱 활성화될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 인문학 위기 담론


사실 인문학의 위기라는 것이 제도적인 문제이고 학문 후속 세대와 관련된 문제이지요. 인문학과 내부에서도 서로 이해관계가 상당히 다르고요. 어문계열만 하더라도 영문과 중문과 독문과 불문과 등등 각각의 분위기가 다르죠. 요즘 학생들에게 인기 좋은 영문과나 중문과는 전혀 위기의식이나 문제의식을 못 느낄 수도 있습니다. 제도적으로 볼 때는 인문학 전공자들의 생계와 관련된 문제도 얽혀있죠. 같은 전공자라 하더라도 정규직이냐, 비정규직이냐, 또 같은 비정규직이라 하더라도 학진(학술진흥재단)에서 제도적인 지원을 받고 있느냐 안 받고 있느냐에 따라서 서로 입장이 다르지요. 언론에서는 크게 뭉뚱그려서 인문학의 위기를 말하지만 각자 자기의 소속이나 지위에 따라서 ‘위기의식’의 스펙트럼은 굉장히 다양합니다.


멘토로서의 인문학


저는 포커스를 다른 점에도 맞추고 싶은데요. <천개의 공감> 같은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현상은 독서치료, 문학 치료, 영화치료, 음악치료 이런 것들이 유행하는 현상과 관련이 있는 듯해요. 최근에는 문학이 어떻게 살아남을까를 이러한 문학 치료라는 관점에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죠. 소설을 읽으면 정서적 불안이 해소되고 시를 읽으면 우울증이 해소되고 이런 식입니다. 이것은 인문학을 굉장히 ‘실제적인 요구’에 맞추는 행위이기도 해요. 인문학에 대한 대중과 출판계의 요구도 아마 이런 실용적인 측면이 강하겠죠.

 

 

 

 

 ■ 정서산업과 인문학

이게 한국적 문화코드예요. 신경증이라는 게 자본주의 사회에서 보편적인 것 아닌가요. 프로이트 말대로라면 현대인은 모두 노이로제 환자이기도 하구요. 한국사회에서는 정신과에 가는 데 여러 가지 심리적∙문화적 장벽이 있기 때문에 이런 책들을 통해서 적절히 제어하는 거죠. ‘인문학의 생존’이라는 측면에서 이런 부분이 다뤄져야 할 것 같아요. 제 생각에는 인문학의 운명이 최근의 산부인과와 비슷한 것 같습니다. 최근에 출산율 저하되면서 산부인과 광고가 전부 피부관리, 비만관리, 보톡스 이런 거예요. 비슷한 처지이다 보니 인문학도 보톡스 인문학, 체형관리 인문학, 피부관리 인문학 이런 식으로 실제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인문학이 되어가는 게 아닐까, 또 요즘은 그런 걸 요구받고 있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 인문학의 생존술?


그렇죠. 한데 체형관리, 피부관리가 산부인과 본래 목적은 아니듯이 인문학을 쉽고 재미있게, ‘슬림’하게만 만드는 것이 과연 인문학의 본업에 맞는 일일까 의문은 갖게 됩니다. 제가 아는 전통적인 인문학은, ‘이렇게 살면 행복하다’를 가르쳐주는 것이라기보다는 ‘이렇게 살아도 되는가’를 스스로 반문해보도록 하는 것이거든요. 인문학 자체가 원래 인간을 불편하게 만드는 것 아닌가요? 나의 안락을 불편하게 느끼도록 만들고, 타인의 고통에 대한 감수성을 일깨우는 것. 그런데 요즘 유행하고 있는, 또 한편에서 요구받고 있는 인문학은 사람들을 편안하게 해주고 위무해주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요. 이게 인문학의 살길로 포장되고 있고. 새로운 인문학이라는 타이틀을 걸고 있지만, 이거야말로 반(反)인문학이 아닌가란 생각도 듭니다.


■ 배고픈 인문학


예전에 인문학은 배부른 학문으로 유한계급의 학문이었죠(*혹자는 '왕후장상의 학문'이라고 했다). 이제는 전형적으로 배고픈 학문이 되었어요.(웃음) 요즘 학문 후속 세대들은 수료 이후에 학위까지 받고 10년, 길게는 20년까지 ‘비정규직 노동자’로 버텨야 하거든요. 이것이 인문학이 사회적으로 천대받는 가장 실제적인 이유지요. 제가 간혹 동창들을 만나는 자리에 가보면 이야기의 결론은 다 부동산이더군요. 그런 부동산-테크가 없는 저로선 뭐 할 얘기도 없고 끼워주지도 않아요. 인문학자들이 저마다 고상한 고민들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들이 한가하거나 한심하게 보이는 거죠. 이제 이런 인문학의 형편이 들통 나는 바람에 더 이상 사회적 존경도 유지할 수 없는 그런 처지죠. 비관적인 이야기이긴 하지만 위기 타개는 그런 정직한 현실 인식에서 출발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 라이프 스토리

 

중학교 때부터 서점 순례가 취미였어요. 집에 가기 전에 동네 서점 다 둘러보고 들어오는 게 버릇이었는데, 늘 새 책이 별로 없어 본 책 또 보면서 반복적인 서점 순례를 했었죠. 그런 서점 순례 습관이 계속 이어지다가 디지털 미디어 시대가 되다보니 서점 순례를 인터넷 공간에서도 하게 된 거죠. 그런데 그건 단순히 인터넷 탓만은 아니구요. 모든 생산이 위기에서 비롯되잖아요. 제 경우도 비슷합니다. 대학에서 박사과정 수료하고 결혼했는데(제가 원래 현실감각이 좀 없어서요), 상당히 암담하더군요. 담벼락에다 과외광고 붙이고 다니고 학원강의도 뛰고 그랬죠. 저대로는 위기국면이었는데 그렇다고 별수가 있었던 건 아니고 할 줄 아는 게 책읽기밖에 없어서 그거 가지고 버티다 보니까 어느 순간 다른 구멍으로 빠져나오게 되더군요.


■ 인문학 위기가 아니었다면?


논문만 써도 행복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도 논문 쓰는 것 좋아합니다.(웃음) 러시아 문학 같은 경우 국내 연구진들이 뭐든지 연구만 하면 ‘최초’일 경우가 많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에 대한 최초의 단행본 연구서가 작년에 나왔을 정도니까요. 러시아 문학이 번역은 꽤 되었지만 제대로 된 연구서는 여전히 빈약하죠. 연구인력도 부족하고요. 한데, 제도적인 뒷받침도 별로 없는 상태에서 이런저런 관심도 돌보랴 생계도 유지하랴 정신없죠.(웃음)


■ 글쓰기와 인문학


프랑스 같은 경우 유명한 정치인 같으면 나름대로 역사서든 소설이건 내야지 자기자 제대로 된 정치인 지식인이 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예요. 우리 사회도 그렇게 되면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을까요. 자기를 과시하기 위해서든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서든 철학서 역사서를 쓰는 것이 정치가의 임무가 된다면 말이다. 사회적인 동의도 필요하고, 붐도 있어야 하지만, 그저 자동적으로는 안 되죠. 왜 인문학이 필요한가에 대한 적극적인 설득과 글쓰기의 강제도 필요한 것 같아요.

 


■ 인문학과 소통의 어려움


분과 학문 체계를 어차피 넘어서기로 했다면 더 과감한 시도가 필요한 것 같아요. 문화 콘텐츠 학과도 생기고 문화 콘텐츠 진흥원도 생길 정도로, ‘문화 콘텐츠’라는 말이 굉장히 광범위하게 유포되었죠. 그런데 실제로 ‘본토’에서는 안 쓰는 말이라네요. ‘문화산업’이라고 더 많이 쓰고요. 그런데 이게 한국적인 용어로 ‘문화 콘텐츠’란 말이 상용화된 거죠. 그러면서 디지털 스토리텔링, 이런 게 붐을 이루고 있고요. 더불어 학제간 연구의 필요성들을 많이 이야기하는데, 제 생각엔 학제간 연구 자체가 기이한 알리바이입니다. 기존의 학과 구분이 비효율적이고 비생산적이라면 경계를 부숴야 하는 것 아닐까요? 잘은 모르지만, 동경대 같은 경우 표상문화학부 이런 식의 편제가 있더군요. 나름대로 파격적이죠. 좀 더 파격적으로 학제간 연구를 재구성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끝으로 덧붙이자면, 오늘 좌담의 주제가 계속 인문학의 ‘대중적 소통’에 맞춰지고 있는 듯한 감이 있지만, 한편으로는 인문학 자체가 ‘소통 불가능성’ 내지는 ‘소통의 어려움’ 자체를 탐구하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 같습니다. 쉽게 소통되지 않는 부분이야말로 인문학의 독특한 관심 아닐까요?..

 

07. 05.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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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달 2022-05-09 0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전출처 : Ritournelle > * 20대 젊은 보수주의자들의 현황 1

* 프레시안(2007. 5. 2) / 영한나라당이 아닌 영삼성?

   
  '영한나라당'이 아니라 '영삼성'? 
  [20대 보수화? 그 이면①]"학점 4.5로도 부족해" 

올해 초 몇몇 언론에서 소위 '20대 보수화' 경향을 다뤘다. 과거 '한나라당 반대' 입장이 다수를 차지하던 20대에서 '한나라당을 지지한다'는 응답이 50% 가까이 되는 현상을 보인 것이 계기였다. 이들 기사를 보면 20대 '보수'가 윗 세대의 '보수'와 같은지 다른지, 그래서 궁극적으로 이들이 올 연말 치러지는 대선에서 실제로 한나라당을 지지할 것인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20대 보수에 대한 언론의 관심은 지난 2002년 대선에 대한 기억 때문인지도 모른다. 2002 한일 월드컵의 여세를 이어받은 '20대 열풍'은 인터넷에서, 광장에서 정치적 지형의 변화를 이루는 데 일조했었다.
 
  이처럼 정치적 관심에 일차적 초점이 맞춰진 '20대 보수화' 담론은 정작 20대가 보수화됐다면 왜 보수화됐는지, 보수화됐다는 이들의 생각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이들의 변화가 한국사회에 어떤 메시지를 주고 있는 것인지는 포괄하지 못했다.
 
  <프레시안>은 이런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전경련과 대기업의 지원을 받는 동아리인 '영리더스클럽'(Young Leaders' Club·YLC), '인재제일' 등의 활동을 하는 대학생들을 만나봤다. '대학'이란 공간에 대기업이 직접 만들고 후원하는 동아리가 보편화됐다는 사실 자체가 대학생들이 직면하고 있는 현실의 변화를 반영한 것이다. 동아리 활동을 통해 이들이 얻고자 하는 것도 사회생활에 대한 간접 경험, 취업에 직ㆍ간접적 도움이 될 수 있는 지식과 인맥 등 좀 더 '현실적인 요구'로 변했다. 물론 이들 대학생이 서울 소재 대학이라는 점에서 섣불리 일반화하기는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이전 세대와 달라진 의미의 '대학 생활'을 자발적이면서 적극적으로 영위하고 있는 이들을 통해 달라진 20대들의 한 단면을 엿볼 수 있었다. 이 같은 판단에 기반해 YLC, 인재제일 등 동아리 활동을 하는 이들을 취재한 내용을 바탕으로 가상의 대학생의 일상을 그려봤다. <편집자>
 
  '삐그덕.'
 
  4월 마지막주 어느날 한 대학 단과대 과방. 05학번 Y 군이 문을 열고 들어섰다. 중간고사 마지막 시험이 방금 끝났다. 그렇지만 Y 군의 발걸음은 여전히 무겁다. 5월에 있을 영리더스클럽(Young Leaders' Club·YLC) 학술제 예선이 마음에 걸리기 때문.
 
  '대학과 기업을 잇는 징검다리'로서의 동아리 활동
 
  다음주까지 제출해야 할 전공 과목 리포트도 있지만 Y군에게는 학술제가 더 신경쓰이는게 사실이다. 리포트는 매주 내지만, 전국단위 YLC 학술제 우승은 1년에 한 번뿐이다. 또 YLC 학술제 우승은 취업할 때 이력서 경력란에 한줄 더 쓸 게 생기는 일이다. 이날 저녁, 같은 학교 YLC 회원들 몇명과 학술제에 대한 얘기도 할 겸 모이기로 했다.
  

YLC(www.ylclub.net)


   
▲ ⓒYLC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이 매년 주최하던 대학생 캠프인 YLC(Young Leaders' Camp)가 모체가 돼, 지난 2002년 창설된 전국 규모의 대학생 연합 동아리.
 
  시장경제 원리를 익히기 위한 강연, 포럼, 학술제 등이 주요 활동이다. 회원들은 한 학기동안 필수포럼, 열린강연회 등 프로그램에 참가한 뒤 '준회원'으로 승격되며 정회원이 되기 위해선 경제, 경영, 근현대사 과목을 듣는 'ALP(Advanced Learning Program)'를 수료해야 한다.
 
  전경련을 매개로 기업인뿐만 아니라 교수, 정관계 인사들과 네트워크가 형성돼 있다. 최근 창립 6주년을 맞아 발간한 활동자료집에 미래에셋 강창희 소장, 미래문화포럼 복거일 대표, 홍익대 김종석 교수, 이화여대 주철환 교수 등이 축사를 써주기도 했다.
 
  필기시험, 면접 등을 통해 매 학기 200여 명의 신입회원을 선발하며, 전국적으로 600여 명 정도의 회원이 활동한다. 수도권 3개 지부(안암, 신촌, 관악)와 전국권 4개 지부(경남, 경북, 전라, 충청)가 있다.
 
  전경련은 1년에 2번 열리는 총회를 비롯해 열린강연회, 필수포럼, 운동회, 학술제, 취업박람회 등 활동과 관련된 경비를 전액 지원하며, 열린강연회 초청 강사 섭외에도 도움을 준다. 활동 성적이 우수한 회원에게는 해외 산업 시찰 기회도 준다.

  "누나, 어쩐 일로 이 시간에 여기 계세요?"
 
  두 학번 선배인 C 양이 과방에 앉아 있었다. 기업 인턴십 등 각종 활동으로 늘 바쁘게 사는 그는 Y군에게 '롤 모델'이나 다름없는 존재다. C 양은 YLC 활동을 마친 선배이기도 했다.
 
  "저녁에 L 기업 이사님 인터뷰가 있는데, 그 전에 그 분 책 좀 훑어보고 있어."
 
  C 양은 이날도 변함없이 '열공(열심히 공부하다) 모드'였다. 최근 삼성이 운영하는 대학생 웹진 '인재제일'에서 기자로 활동하면서 한껏 바빠진 모습이었다. Y 군 역시 다음 학기에는 C 양을 통해 알게된 '영삼성 열정운영진'에 지원해볼 생각이다.


   인재제일(www.injaejeil.co.kr)

  
▲ ⓒ프레시안 

  삼성인력개발원이 운영하는 대학(원)생 격월 웹진. '대학과 기업을 잇는 징검다리'라는 주제 아래 1989년 종이잡지로 창간됐으며 1998년부터 웹진으로 운영돼 오고 있다. 삼성 취업정보, 기업문화, 과학기술 소개, 대학 과학동아리 탐방 기사 등으로 구성돼 있다.
 
  약 15명의 대학생들로 구성된 '학생기자단'이 제일기획 등 삼성 소속 회사와 함께 기획회의를 하고 취재활동을 한다. 한 학기당 60만 원의 장학금과 함께 원고료가 지급된다.
 
  이밖에도 기업이 운영하는 대학생 웹진으로는 LG '미래의 얼굴'(http://future.lg.co.kr), 현대 '영 모비스'(http://young.mobis.co.kr) 등이 있다. 모두 대학생들이 기자로 활동하며 소정의 장학금과 원고료를 지급한다.


  
 영삼성(www.youngsamsung.com)


   
▲ ⓒ프레시안 

  2005년부터 삼성이 운영하는 20대 포털사이트. 삼성 채용정보를 비롯해 외국어, 아르바이트, 생활·문화 정보 등 취업과 연관된 각종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영삼성 기획 및 운영은 매학기 10여 명으로 구성된 '열정운영진'이 맡으며 사이트 모니터링, 취재 및 기고 등 활동을 한다. 운영진들은 소정의 활동비(학기당 120만 원) 및 해외 배낭여행비를 지급받으며 삼성그룹이 주최하는 활동에 참여하면 지원을 받는다.
 
  현대자동차 역시 지난 2003년 개설한 대학생 커뮤니티 사이트 '영현대'(http://www.young-hyundai.com)를 운영하고 있다. 이곳 또한 현대자동차 홍보단, 리포터, 탐방대원 등의 각자 역할을 맡은 '열정운영진'이 주축이 돼 활동하고 있다.

  하긴 Y 군이 YLC에 가입하게 된 것도 C 양 덕분이었다. 그는 3학년이 되는 Y 군에게 "너도 이제 '스펙'(학점과 영어점수 등)에 도움이 되는 대외 활동을 해야 하지 않겠냐"고 자극을 줬다. "열정만 있으면 된다"는 YLC모집 포스터를 보고 마음 놓고 있던 Y 군에게 "신입회원 경쟁률이 10대 1이 넘는다"며 긴장의 끈을 늦춰선 안 된다고 조언한 것도 C 양이었다. 신입생 모집시험 문제 수준이 만만치 않다는 것. C 양의 말대로 모집시험에서는 '원이 엔보다 평가절상된 것에 대한 해결방안을 써보라'는, 평소 상식으로는 쓰기 힘든 문제가 출제됐다.
 
  '복학생 마인드(제대 뒤 학업에 열중하는 대학생들을 두고 이르는 말)'로 준비한 덕택에 Y군은 필기시험 며칠 후 합격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학술제로 고민하고 있던 차에 마침 작년 학술제에서 우승했던 C양을 과방에서 만난 Y군은 투정 아닌 투정을 부렸다.
 
  "누나, 누나 땐 도대체 어떻게 준비했어요?"
 
  "불평등한 미국과 평등한 아프리카? 선택은 당연한 것 아닌가"
 
  "학술제 준비? 벼락치기 한다고 뭐가 되겠니. 이것저것 상식 준비를 충실하게 해놓으면 될 거야. 기초적인 경제학 원리라든지, 한미 FTA라든지…."
 
  "FTA! 안그래도 YLC 강연에 오시는 분들마다 강조하던데, 당연히 알아둬야겠죠?"
 
  Y 군은 자신감 있는 표정을 지었다. 그간 YLC에서 GE 코리아 이채욱 회장, 제프리 존스 전 미상공회의소장 등의 강연을 차곡차곡 들어오지 않았던가. 지난 3월에는 한미FTA체결지원단에서 일하고 있는 국제변호사가 강연을 하기도 했다. 오는 6월엔 진대제 전 정보통신부 장관 강연도 있을 거라고 들었다.
 
  "미국이 초강대국이 된 것은 과감하게 농업을 버렸기 때문이죠. 농업인구가 50~60%일 때 미국 토지 대부분은 농장과 초목이었지만 농업인구가 대거 제조업으로 이동하면서 지금은 농업인구가 3%정도라고 들었어요. 그들이 미국인들에게 충분한 양의 농산물을 제공하는 걸 봐도 제조업 중심의 정책이 성공적이었단 걸 알 수 있죠."
 
  "어느 교수님이 묻더라. 불평등한 미국이 좋은지, 아니면 평등한 아프리카가 좋은지. 난 당연히 불평등한 미국을 선택할거야. 전반적으로 수준이 높고 잘 살 수 있는 가능성이 높으니까. 개방화가 대세인데 우리에게 다가온 개방의 기회를 그냥 날려보내는 건 아깝잖아."
 
  "사회적 약자? '노블레스 오블리제'로 끌어안으면 된다"
 
  "그거 완전히 '파시스트'같은 발상이잖아."
 
  생뚱맞게 대화에 끼어드는 B 군의 말에 C 양과 Y 군이 동시에 돌아봤다. 지난 학기 B 군과 같이 독서 토론를 했던 C 양은 B 군이 뭘 말하려는지 알 듯 했다. 지난해 여름 제대한 B 군은 복학한 뒤 취업 준비에 힘쓰는 다른 동기들과는 달리 집회에 참가하고 토론 모임에도 열심이었다. 그런 B 군을 두고 학과 내에서는 '독특한 선배'라고 불렀다.
 
  "지금 네 말은 어른들의 이분법과 똑같아. 시장경제 찬성하면 다 '보수'니? 전경련에서 지원받는 YLC를 '보수 단체'라고 하지만 우린 그 안에서 우리 능력을 키우기 위해 자체적으로 외국어 스터디 모임, 봉사활동 모임을 열어. 자기 개발을 위해 노력하고, 능력있는 사람이 노력한 만큼 대가를 받을 수 있는 사회가 바람직하지 않아? 진보와 보수로 나누는 것 자체가 의미가 있을까?"
 
  "그런 신자유주의적인 생각으로 사회가 좋아질 수 있을까? 그럼 일할 능력이 없는 중증장애인들처럼 사회적 약자들은 어떡하고? 생존에 위기를 느끼는 이들이 많아지면 사회는 더 불안해지는 거 아냐?"
 
  "글쎄. 한국 사회의 위기는 오히려 사회적 재분배를 너무 강조해서 온 것이 아닐까? 정치인들이 복지를 중시하고 세금을 많이 걷겠다고 하니까 국민들이 씀씀이를 줄이고 그만큼 생산이 줄어드는 악순환이 발생하는 것이다. 우리가 복지에 관심 없는 건 아니라고. 최소한의 사회적 안전망이나 '노블레스 오블리제' 정신은 필요하지. 그렇지만 무조건 세금을 많이 낸다고 살기 좋은 사회가 되는 건 아니잖아."
 
  "도대체 언제까지 아둥바둥 살아야 하나"
 
  B 군과의 논쟁은 결국 접점을 찾지 못한 채 끝났다. 과방을 나와 YLC 회원들과의 약속 장소로 향하는 Y 군의 시야에는 교정을 가로질러 시끌벅적 어딘가로 향하는 친구들의 모습이 들어왔다. 중간고사가 끝난 기념으로 '쫑파티'라도 하는 모양이었다.
 
  '저 애들도 넋 놓고 있다간 곧 후회할 텐데.'
 
  잠시 '쫑파티' 대열에 합류하고 싶은 유혹을 느꼈던 Y 군은 혼자 세차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나 다시금 생각이 복잡해진다. 얼마 전 모두가 부러워하는 유명 대기업에 취업한 한 선배의 푸념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회사에 가보니 서울대 출신인 나도 괴리감을 느끼더라. 우리 사무실에서 국내 대학 출신은 나 밖에 없더라고. 여기 말고도 대기업들 요즘 해외파 많이 뽑지. 우스개 소리로 '한국에서 대학 나온 사람들은 다 어디 갔을까'라고 말하기도 하거든. 취업 성공했다는 여기 사람들도 걱정이 없는 게 아니더라고. 빠르면 30대 후반, 늦어도 40대에는 다시 무엇을 해야 할까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아.'
 
  '그 잘난 선배가, 취업한 다음에도 힘들어하다니…. 대체 '스펙'은 어느 정도로 좋아야 하고 언제까지 이렇게 아둥바둥 살아야 하는 거야?' 교문을 나서는 Y 군의 발걸음은 따뜻하게 내리쬐는 봄날 햇살과 상관없이 계속 무거워진다.

 


   "도태되는 게 두렵다"
 
  "학내 활동만으로는 내가 도태되는 것 같단 느낌이 들었다. 확실히 요즘 대학생들의 활동이 '탈학교화' 추세인 건 사실이다."
 
  인재제일 기자로 활동한 A(23) 양은 동아리 활동을 시작한 이유에 대해 경쟁에서 뒤쳐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꼽았다. "학점 4.5를 맞아도 뭔가 부족한 면이 있다"고 생각하는 지금의 대학생들에게는 자신의 이력서를 다채롭게 채워줄 무엇인가가 필요했다. A 양은 "삼성이라는 메리트가 컸고, 이력서도 염두에 뒀다"고 말했다.
 
  그는 "졸업한 뒤 바로 일하고 싶은데 교양과 전공과목 들어서는 그럴 수 없다"면서 "그래서 기업체 활동에 관심 많이 갔다"고 덧붙였다.
 
  생명과학을 전공하면서 "취업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경영학을 부전공으로 택한 YLC 회원인 D(25) 군은 "동아리에서 자유시장경제에 대해 주로 배우는데 이공계에서는 배울 수 없는 내용"이라면서 "합리적 사상들을 접할 수 있어서 좋다"고 밝혔다.
 
  또 다른 YLC 회원인 E(23) 양은 "(전공) 공부에 도움이 될 것 같고 인맥도 쌓을 수 있어서 선택하게 됐다"고 말했다.
 
  취미, 개인적 관심사 등을 이유로 동아리를 선택하던 선배 세대들과는 확연히 다른 '동기'들이다.
 
  이들은 이같은 연합 동아리 외에도 경력을 쌓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었다. A 양은 워싱턴 견학 준비도 하고, 언론고시팀에서 공부도 하고, 학교의 리더십 프로그램에도 참여하고 있고, E 양도 '경영 컨설팅' 동아리 활동을 하고 있었다.
 
  "미래를 고민하는 학생 입장에선 사회가 뻔히 보여"
 
  YLC 전 회원이면서 한나라당 정책 제안 활동을 하기도 했던 F(23) 양은 "미래를 고민하는 학생 입장에서는 사회가 뻔히 보인다"고 말했다. 자신이 아무리 열심히 활동을 해도 '출발선'부터 다른 이들을 따라 잡을 수 없는 '현실'이 뻔히 눈에 보인다는 것이다. 그는 "조기유학 등 갔다온 사람들 보면 별로 아둥바둥 사는 것 같지 않는데 왜 한국 학생들은 그렇게 열심히 살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A 양도 "사법시험 붙은 이들 중 20% 이상이 외국어고와 강남8학군 출신이라고 들었다"고 맞장구를 쳤다. 학력 제한이 없다는 이유로 가장 확실한 신분 상승의 통로로 여겨졌던 각종 고시의 합격생도 이제 대한민국 인구의 1%가 조금 넘는 강남 출신들이 차지하고 있다는 지적. '개천에서 용 난다'는 것은 이제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 됐다.
 
  그래서 이들이 바람직한 사회에 대해 "능력있는 사람이 노력한만큼 대가를 받을 수 있는 사회"라고 대답하는 것은 이들이 맞닥뜨리고 있는 현실의 변화를 감안하면 이해할 수 있는 측면도 있다. 대다수의 대학생들이 살아남기 위해선 아둥바둥해야 하는 '경쟁적 현실'에 '바람막이' 하나 없이 내팽겨쳐진 상태다. '대학'이란 간판이 어느 정도 이상의 직장으로 가는 디딤돌 역할을 하던 시대는 이미 끝난 지 오래다.
 
  양극화 현상이 기업들간에도 뚜렷이 나타나 임금, 직원 복지, 고용 안정성 등의 측면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차이는 점점 벌어지고 있다. 또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차이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차이 이상이다. 따라서 공무원이나 공기업이나 대기업 정규직이 되기 위해선 남들보다 하루라도 빨리 '취업 준비 모드'로 일상 생활을 전환해야 한다. 소위 대학 본연의 '진리 탐구'나 추구하고 있다간 '비정규직'이라는 나락으로 떨어지기 십상이다.
 
  더군다나 이같은 '취업시장'에서 경쟁이 반드시 공정한 것도 아니다. 한국사회에서 '인맥'과 '빽'으로 안되는 게 드물다는 것, 또 강남 출신 등은 상류층은 이미 동원할 수 있는 많은 자원을 갖고 있어 경쟁에서 선두를 차지할 수밖에 없는 계급의 대물림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이들이 말하는 "능력에 따른 공정한 대가"의 의미는 이런 현실 속에서 해석돼야 한다.
 
  이들도 '현실의 변화'를 꿈꾼다
 
  하지만 이들이 '한줄 세우기'가 익숙한 현재의 한국사회의 질서를 긍정하고 있는 것만은 아니었다.
 
  A 양은 "지금 한국사회는 일을 선택할 때 재미와 자부심보다 안정성, 수입, 명예를 고려한다. 외국의 어떤 놀이터 수리공의 사례를 봤는데 자신의 직업에 대한 자부심이 참 대단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명함을 내밀 때도 삼성과 중소기업의 느낌 자체가 다르다. 이런 인식의 재배열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D군은 "인종, 종교, 국가를 떠나 원하는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사회"라고 말했고, 또 다른 YLC회원은 G(24) 군은 "누구든지 희망을 가질 수 있고 희망을 좇아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줄 수 있는 사회"를 원했다.
 
  이들은 부와 명예라는 단 하나의 잣대를 강요하는 현실을 넘어서서, 인종ㆍ성별ㆍ종교 등 차이를 '차별'이 아니라 그야말로 차이로 인정하는 사회, 가정 형편 등 현실을 떠나 누구든지 미래에 대한 꿈을 품을 수 있는 사회 등을 내다보며 현 사회체제와 인식의 변화를 갈망하고 있었다. 자신들이 처한 현실에 무섭게 적응해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이들이 '보수화'됐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이들 역시 과거의 여느 세대와 마찬가지로 사회 변화를 꿈꾸고 있었다. 이들이 꿈꾸는 변화가 얼마나 현실화될 수 있느냐는 것은 비단 이들만의 몫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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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Ritournelle > * 20대 젊은 보수주의자들의 현황 2

* 한겨레(2007. 5. 3)  / "구조조정은 해야죠…나는 빼고!"
  [20대 보수화?그 이면②]노동ㆍ노동자를 보는 모순된 시선

"요즘 애들한테는 희망이 없어요. 파시스트나 안 되면 다행이야."
  
  종종 진보단체들의 정책자문 역할을 하는 한 대학 교수가 스치듯이 한 얘기다. 대학생이 변했다는 얘기는 이제 '식상한' 말이 된 지 오래다. '어른들'은 "20대들이 변했다"고 한탄한다. 하지만 20대들은 자신들을 바라보는 그 '못마땅한' 눈빛이 당황스럽다고 한다.
  
  오히려 자신들을 8% 가까이 되는 청년실업률 속으로 내 몬 어른들이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느냐고 되물었다. 이런 점까지 포함해 요즘의 20대가 과거의 20대와 다른 것만은 사실이다. 주요대학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정당지지도 조사에서 매번 1위는 한나라당이다. '보수적'이라는 40-50대와 비슷한 성향을 보인다. 강의실 대신 거리에 섰던 시간이 더 많은 '선배들'과 확실히 다르다.
  
  "민주화요? 이미 어느 정도 이룬 것 아닌가요? 지금 우리사회가 신경써야 할 것은 경제죠."
  
  그러나 경제를 바라보는 시각도 과거와 다르다. 복지보다는 경쟁을, 분배보다는 성장을 중시한다.
  

▲ 20대가 변했다고 한다. 확실히 지금의 20대는 그 이전의 선배들과 다르다. 민주화보다는 경제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복지보다는 경쟁이 살 길이라고 믿는다. ⓒ프레시안

  "'구조조정 반대' 논리가 더 빈약해요"
  
  아직 학생인 대학생들과 막 졸업해 취업준비를 하고 있는 이들, 그리고 갓 사회생활을 시작한 20대들이 노동과 노동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취재하면서 발견한 것은 그들의 생각 속에 자리 잡은 '모순들'이었다.
  
  "내 안정은 중요하지만 구조조정은 필요하다", "노동운동은 싫지만 노조에 가입하겠다", "자유주의는 좋은 것이지만 내 권리는 보장받아야 한다." 이들은 각기 다른 맥락의 얘기를 뒤섞어 쏟아냈다.
  
▲ 20대의 생각은 아직 정리되지 않은 혼돈기 같았다. 인터뷰 과정에서 앞의 대답과 상반되는 맥락의 답을 내놓기도 했다. ⓒ프레시안

  앞으로 직업을 구할 때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안정'이라고 하는 대학 4학년 김희정 양(가명)은 광범위하게 벌어지고 있는 기업 구조조정을 어떻게 보느냐는 질문에는 "경쟁력을 위해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고 답했다. 하지만 구조조정은 노동자의 고용을 불안하게 만든다.
  
  김 양에게 "본인이 구조조정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은 안 해봤냐"고 묻자 그는 "내가 경쟁력을 키워 (구조조정) 대상에 안 끼면 된다"고 답했다.
  
  "과연 지금처럼 치열한 경쟁시대에 '구조조정은 안 된다'는 논리가 먹힐까요? 경쟁이 세계적 추세인걸요. 오히려 저는 반대하는 쪽의 논리가 더 빈약하다고 생각해요. 각자 경쟁력을 갖춰 그 속에서 살아남도록 노력해야 하는 거죠."
  
  이처럼 대부분의 대학생들은 시장경제의 경쟁 논리를 '거부할 수 없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박준식 한림대 교수가 한국노총의 용역을 받아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는 대학생 응답자의 70.1%가 자본주의를 긍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실 사회주의 체제가 무너진 지 20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마당에 이들 젊은이들 입장에서 자본주의가 아닌 다른 체제는 상상하기조차 힘들다. 이들에게 자본주의는 저항의 대상이 아니라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할 대상이다. (☞ 관련기사 보기 : 대학생 70.1%, 자본주의 긍정적으로 평가)
  
  하지만 자본주의 질서에 따라 밀려나야 할 대상이 자기 자신이 되면 사정은 조금 달라진다. 그래서 이들이 선택한 적응 방법은 자신이 '구조조정의 대상자'에 포함될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 애초부터 안정적인 직업을 선호한다는 것. 지난 2월 서울의 한 대학을 졸업하고 학원강사를 하고 있는 김동운 씨는 "친구들 가운데 소위 '스펙'(학점과 영어점수 등)이 되는 아이들은 모두 공기업으로 간다"고 말했다.
  
  "아니면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거나 '고시 공부'에 매달리지요. 대기업은 오히려 그 다음입니다."
  
  "노동조합? 내 방패막이가 되어 줘!"
  
  노동조합과 노동운동에 대한 시선도 비슷한 경향을 보인다.
  
  ㄱ기업에서 1년 계약의 기간제 노동자로 일하고 있는 이모 씨(26)는 "잦은 노동조합의 '투쟁'이 우리 기업들의 세계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한 요인"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기업에 대한 정부의 간섭에 대해서도 그는 "지나친 규제가 우리 기업의 경쟁력을 가로 막는 중요한 요소"라고 말했다. 말하자면 그는 기업 활동의 최대한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는 관점의 소유자였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미래에 대한 불안을 호소하면서는 "우리 회사의 정규직 노조는 비정규직들의 문제에 관심이 없다"고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각종 사회적 현안에 노동조합이 나서는 것을 '삐딱'하게 보면서도, 자신의 '방패막이'로서의 노조는 긍정하고 있는 셈이었다.
  
  그의 관점은, 앞의 한국노총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절반 이상이 노조에 참여할 의사가 있다고 밝히면서도 현재의 노동운동이 투쟁위주의 운동노선으로 인해 외면 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응답자가 70% 가까이 됐던 것과 같은 맥락이었다.
  
  이런 20대의 변화는 향후 노동운동에도 큰 변화를 몰고 올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한 노동운동가는 "지금의 20대가 조합원들의 다수가 되는 10년 후면 노동운동의 모습은 지금과는 완전히 달라질 것"이라며 "조합원들의 실리주의 경향은 점점 강화되고 자신들과 직접 관련이 없는 사회적 이슈에 대한 참여는 줄어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아무리 취업난이어도 일한 만큼 정당하게 대우 받고 싶다"
  
▲ 노동, 일에 대한 생각도 달라졌다.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학원과 학점에 매달리지만 궁극적인 목적은 일정한 수준의 삶의 질을 보장받을 수 있는 곳에 취직하는 것이다. ⓒ프레시안

  노동, 즉 일에 대한 생각도 달라졌다. 20대에게 치열한 경쟁에서 승리해 안정을 확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삶의 질 또한 중요하다. 누구보다 인정받고 싶어 하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삶을 벼랑 끝까지 내몰고 싶은 생각은 없다. 노동은 자아실현의 이유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적절한 수준의 삶의 질을 보장받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지난 2월 서울의 한 대학을 졸업해 H대기업에 입사한 문재희 씨(24, 가명)는 "이력서를 낼 회사를 선택한 기준은 복지후생이었다"고 말했다. 적절한 휴가와 지나치게 '빡빡하지' 않은 근로환경이 우선 순위가 됐다는 것이다.
  
  대학생들 역시 대부분 "일한만큼 정당하게 대우받을 수 있는 회사에 들어가겠다"고 말했다. 삶의 질에 대한 욕구가 강한 것이다. 취업정보사이트인 인크루트가 260개의 중소·대기업을 상대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지난해 신입사원의 평균 퇴사비율은 28.8%였다. 그렇게 어렵다는 취업난을 뚫고 들어간 회사에서 1년 이내에 회사를 그만두는 신입사원이 10명 중 3명 꼴인 것이다.
  
  입사 2개월 만에 회사를 그만두고 나온 김모 씨(28)는 지금 다른 기업에의 취직을 준비하고 있다. 이유는 간단했다.
  
  "적응하기가 힘들었다. 일은 너무 많고 월급은 그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었다."
  
  인크루트의 또 다른 설문조사에 따르면 중소기업 사무직과 대기업 생산직 가운데 무엇을 선택할 것이냐는 질문에 전체 응답자 5042명 가운데 3179명(63%)이 대기업 생산직을 골랐다.
  
  과거 같으면 사무직을 더 선호했겠지만 지금은 기름때가 묻더라도 더 높은 임금과 복지혜택을 누릴 수 있고 상대적으로 고용이 안정된 대기업이라는 사실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우리가 보수? No!"…"노무현 정권, '진보'아닌 것들로 '진보' 채워 놓아"
  
▲ 누가 이들의 머리속을 뒤죽박죽으로 만들었을까? 노무현 정권의 등장 이후 혼란스러워진 진보와 보수의 개념도 한 가지 원인이라는 지적이 있다. ⓒ프레시안

  20대의 이같은 '실리주의적 경향'에 대해 전문가들은 "정서적으로 가장 예민한 청소년기에 외환위기라는 큰 태풍을 만났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외환위기 때 부모가 명예퇴직 당하고 하루 아침에 가계가 무너져 내리는 것을 직간접적으로 보고 들은 현재의 20대가 이전 세대에 비해 경제적인 마인드가 유독 발달한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라는 분석이다.
  
  더욱이 대학의 공동체가 무너져 내리면서 20대가 주로 접하게 되는 '생각'은 사회 주류의 것들뿐이다. 부모의 영향력도 과거보다 막대해졌다. 80년대의 20대는 상당수가 그들의 부모보다 나은 학벌에 더 '똑똑한' 자식이었지만 지금의 20대는 부모와 비슷하거나 그보다 못한 경우도 종종 있다.
  
  취업포털 커리어가 20대 구직자 17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68.7%가 구직활동 시 부모의 관여도가 크다고 답했다. 심지어는 부모가 채용 문의를 하거나 면접시험에 동행했다는 응답도 각각 9.5%, 3.4%였다. 부모 세대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실제 한 대학에서 만난 김희정 양은 "취업 문제를 부모님과 가장 많이 상의한다"고 말했다.
  
  우리사회에서 또 '진보'와 '보수', '좌파'와 '우파'라는 개념이 혼재ㆍ왜곡돼 사용되는 것도 20대를 혼란스럽게 하는 것 중 하나다. 한 대학생은 "한미FTA 같은 개방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보수적인 것 아니냐"고 되묻기도 했다.
  
  3년간 C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한 시간강사는 "20대는 아직 가치관이 완전히 정립되지 않은 시기로 주변의 영향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다"며 "특히 노무현 정권은 진보가 아닌 것들을 '진보'라는 개념 속에 담아둠으로써 학생들의 생각에 혼란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사회 통념상 '보수'에 속하는 것들을 노무현 정권이 '진보'라고 주장함으로써 '진보'의 개념을 엉망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개방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더 보수적"이라는 20대의 주장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쇄국론자'로 몰아붙이며 "개방만이 살 길"이라고 강변하는 노무현 대통령의 논리를 그대로 닮아 있었다. 이 시간강사는 "온갖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밀어붙이면서도 스스로 진보를 자처하며 '좌파신자유주의'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 낸 노 대통령은 젊은이들의 의식 변화에 큰 책임이 있다"고 강조했다.
  
  그런 점에서, 20대의 이율배반적인 사고들, 그리고 그것들을 스스로 자연스럽게 수용하는 의식구조는 요즘 20대들의 '생각 없음'의 산물이라기보다는 그들을 둘러싼 우리 사회의 모순이 반영된 결과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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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한국을 바꾼 지식인

경향신문의 기획기사  '민주화 20년, 지식인의 죽음' 을 그만 옮겨올 생각이었지만 내일자 조간에 실리는 내용은 그런 생각을 접어두게 한다. 무엇보다도 설문조사에 근거한 데이터이기에 '한국을 바꾼 지식인'이란 타이틀만큼이나 흥미를 끌고 한국사회에 영향을 준 저술들의 목록도 일별해 볼 만하다. 지난 20년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는군...

경향신문(07. 04. 30) [민주화 20년, 지식인의 죽음] 1-3. 한국을 바꾼 지식인

지식인들 사이에 1987년 민주화 이후 한국사회에 가장 많은 영향을 준 것으로 평가된 지식인은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리영희 전 한양대 교수, 최장집 고려대 교수 세 사람이다.

경향신문이 최근 ‘민주화 20년, 지식인의 죽음’ 특집을 위해 각계 지식인 7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복수응답) 조사 결과, 24명이 한국 사회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지식인으로 백교수를 뽑았다. 이어 21명이 리전교수, 17명이 최교수, 10명이 강준만 전북대 교수를 꼽았다. 여기에 ‘대중적 글쓰기’로 한국사회의 부조리와 지식인들의 허위의식을 깨는 도전적 작업을 해온 강준만 전북대 교수가 90년대 이후 등장한 지식인으로는 유일하게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리영희(한양대 전 교수·77)는 지난해 9월 “지적 활동을 중단한다”고 밝혔지만 여전히 ‘사상의 은사’로 기억되고 있음이 확인됐다. “시대의 흐름을 이끈 70~80년대 학번들의 이념적·사상적 출발점”(강맑실 사계절 출판사 대표)이나 “한국사회에 보기 드문 보편주의, 국제주의자로 ‘지적 거인과 같은 존재’”(조효제 성공회대 교수)라는 평가를 받았다. 왜 아직도 리영희인가. 홍세화(한겨레 기획위원)는 “87년 민주화의 분수령 이후 한국사회는 새 변화를 추동할 세력을 창출하지 못했다”며 “이것이 리영희 선생의 주 활동기가 87년 이전인데도 가장 큰 영향을 준 지식인으로 꼽게 된 배경”이라고 말했다.



리영희는 1929년 평북 운산에서 지방 말단직 공무원의 아들로 태어났다. 14살 때 혼자 서울의 공업학교로 유학했고, 굶주림에 시달렸다. “해방된 사회에서 동창생이 없다는 것은 나의 삶에 있어서 만사에 불편하였다”고 되뇌곤 했던 그는 평생 누구와 무리지어 세를 만들어본 적이 없다. 강준만(전북대 교수)은 리영희 서재에 걸려 있는 백범의 휘호로 리영희의 꼿꼿함을 설명한다.

“踏雪夜中去 / 不須胡亂行 / 今日我行跡 / 遂作後人程 (눈길을 걸을 때 / 흐트러지게 걷지 말라 / 내가 걷는 발자국이 / 뒤에 오는 이의 길잡이가 될 것이니)”

중국전문가로서의 리영희는 외신부 기자생활을 하며 단련됐다. 합동통신·조선일보에서 해·복직을 거듭하면서도 굵직한 특종들을 남겼다. 특히 그는 베트남전쟁으로 상징되는 미국 대외정책의 추악함과 중국 사회주의의 인본주의적 모습을 서구 지식인들의 입을 빌려 소개하는 방식으로 반공주의에 맞섰다. 리영희는 기자직과 교수직에 있는 동안 다섯 차례 구속되고 모두 1012일 동안 수감생활을 했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 자신의 몫을 주장하지 않았다.



무지막지한 독재의 시대에 그의 글들은 “아무리 작게 잡아도 몽롱한 의식에 끼얹는 찬물 한 바가지”(강준만)였다. 한국 지식인 사회에서 그가 갖는 힘은 사회적 발언의 중단을 선언할 만큼 스스로 자신의 육체적, 지적 한계를 인정할 때까지 그가 의미있는 비판을 받지 못했다는 사실에서 찾을 수 있다. 윤평중(한신대 교수)이 “비체계적인 인본적 사회주의가 한국사회를 ‘시장맹(盲)’ ‘북한맹(盲)’으로 만들었다”고 리영희를 본격 비판한 것은 불과 4개월 전인 지난해 12월 계간 ‘비평’을 통해서 였다. 그러나 윤평중은 이번 경향신문 설문에서 영향을 미친 지식인으로 리영희를 꼽았다. 그는 말했다.

“리영희 선생은 민주화운동 시기의 젊은 세대 전체에 큰 영향력을 행사함으로써 시대적 패러다임을 형성했고 그 여파는 87년 체제 이후에도 지속됨으로써 현대사의 한 축을 형성했다. 보수진영이나 우파에서는 그 특유의 이론적 빈곤이나 도덕적 결함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그에 대응할 만한 인물이 전혀 부재하다.”

리영희는 민주화 이후 자신의 책들이 더 이상 읽히지 않는 세상이 오길 바란다고 여러 차례 밝혔다. 그럼에도 한국사회는 계속 그를 필요로 하고 있다. 왜일까. 그 대답은 백낙청, 최장집 등 후배지식인들의 왕성한 지적, 실천적 활동이 요구되는 현 정치적, 사회적 상황이 말해준다.



백낙청(서울대 명예교수·69)이 한국 사회에 영향을 준 지식인 1위로 꼽힌 것은 40년 창비 역사와 함께 해온 그의 실천적 글쓰기 덕분이다. 차병직(법무법인 한결 변호사)은 “한반도 특유의 정치 상황에 대해 민족 문제를 고려하면서 지속적으로 분석해 왔으며 현재와 미래의 대안을 가장 적극적으로 모색한 지식인”이라고 했고, 박명림(연세대 교수)은 “언제나 시대정신에 맞는 화두를 잘 던지며, 그것을 대중들에게 맛깔나는 문체로 풀어내는 데 탁월하다”고 말했다.



백낙청은 55년 경기고 졸업과 동시에 미국으로 가 브라운대, 하버드대에서 영문학 공부를 하고 돌아왔다. 인제대 백병원을 세운 백인제·백붕제가 각각 그의 백부·친부이고, 현 인제대 이사장인 백낙환이 형이다. 스스로 ‘변칙적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고 말한 바 있는 백낙청은 28세 때인 66년 계간 ‘창작과 비평’을 창간하며 한국 사회의 분단현실을 실천적으로 극복하는 데 투신했다. 창비는 정간, 폐간, 판금 처분을 반복하면서도 “지난 40년간 비판적 연구자-문인-저술가 그룹을 한데 묶은 ‘비판지성 클러스터’를 형성하고 유지해오며”(조효제) 백낙청의 실천적 지성 활동을 든든하게 뒷받침했다. 백낙청의 담론 주도력 뒤에는 “유일하게 시장에서 성공한 비판적 지식인 미디어인 창비”(류준필 성균관대 연구교수)가 있었던 것이다.

분단된 한반도의 통일에 문학이 기여해야 한다는 ‘민족문학론’을 펴온 백낙청은 ‘민족문학작가회의’가 최근 그 이름에서 ‘민족’을 떼느냐 마느냐 문제로 논란을 벌일 때 민족의 삭제에 찬성했다. 그러나 그의 사상적 뿌리는 여전히 민족과 통일을 떠나서 생각할 수 없다. 그가 최근 이명원(문학평론가)과의 오마이뉴스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http://www.ohmynews.com/articleview/article_view.asp?at_code=402825).


“상당수의 진보적 학자들이 어떤 면에서는 보수 논객이나 학자보다 분단문제를 외면하는 경향이 더 강한 것 같습니다. …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상당수 학자들은 마치 이 사회가 분단과는 기본적으로 특별한 관계가 없고, 분단이라는 것이 하나의 부수적인 사실로 있는 것처럼 전제를 깔고, 분단 안된 사회의 척도로 진보 보수를 따지는 경향이 많아요. 최장집 교수도 그런 예의 하나이고, 손호철 교수도 그런 경향이 강하고, 그런 분들이 많아요.”



일관되게 한 가지 주제에 대해 학문적, 실천적 역량을 쏟았다는 점에서 최장집(고려대 교수·63)은 백낙청에 비견된다. 최장집은 강릉의 유복한 집안 출신으로 고려대 재학 시절 한·일회담 반대 투쟁을 주도한 4·19 세대다. 그는 고려대 정외과 대학원에서 석사를 마친 후 박정희 대통령의 공보비서실 행정관으로 1년여 일하기도 했으며 잡지 ‘세대’에서 기자생활을 거친 뒤 미국 유학을 떠났다.

87년 민주화 이후 한국사회에 만개했던 각종 변혁이론들이 91년 소련 붕괴로 몇 년 못가 시들해졌을 때 최장집은 ‘구원투수’ 역할을 했다. 미국 시카고대에서 1983년 40세 늦깎이 박사를 받고 돌아온 최장집은 한국산업사회연구회 회장으로 활동하며 80년대 초 대학을 다녔던 이른바 ‘제3세대 학자군’을 이끌며 그람시류의 네오마르크시즘을 비롯한 비판이론을 소개했다. 김호기(연세대 교수)는 “서구의 눈을 빌려오되 한국 현대사를 이끌어왔던 흐름을 꿰뚫어보고 현실 가능한 대안을 모색하는 것이 최교수 정치학의 근간”이라고 말했다.

최장집은 외형적 자유화가 아닌 실질적 민주화를 중시해야 한다는 생각을 ‘한국 민주주의 이론’(1993) 때부터 피력했다. 김대중 정부 시절 대통령자문정책기획위원장으로 일하다 조선일보의 사상검증에 휘말려 1년 만에 학교로 돌아온 뒤로 그의 공부는 더욱 깊어졌다. “나는 민주화 이후 한국 사회가 질적으로 나빠졌다고 본다”는 도발적인 문장으로 시작하는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2002)는 이 책 제목이 하나의 관용어로 정착되는 계기가 됐다. 그는 학문적 천착보다는 사회적 활동으로 유명해진 학자도 아니고, 순수한 학문의 세계에 갇혀 있는 교수도 아닌, 이 둘을 아우르는 이론적 실천가라는 점에서 독특한 지위를 획득하고 있다. (손제민·김종목·장관순기자)

◇ 리영희

1929년 12월 평북 운산 출신. ‘삭주 대관국민학교 개교 이래 몇 천재 중 하나’였다. 42년 경성공립공업학교에 진학하며 서울생활을 시작했다. ‘학비면제, 숙식·제복 국가부담’에 이끌려 한국해양대를 다녔다. 외신부 기자생활을 거쳐 72년부터 한양대 신방과 교수를 지냈다. 2000년 뇌출혈로 쓰러진 후 최근 저작 활동을 접었다.

◇ 백낙청
1938년 1월 대구 출신. 남들보다 2년 일찍 학교에 다녔다. 경기고 졸업 후 미국으로 가 브라운대에서 영문학 학사, 하버드대에서 영문학 석사를 받고 귀국했다. 66년 ‘창작과비평’을 창간한 뒤 72년 미국작가 DH 로렌스 연구로 뒤늦게 박사학위를 받았다. 창작과비평 편집위원을 맡고 있다.

◇ 최장집

1943년 5월 강릉에서 태어나 고려대 정외과를 졸업했다. 같은 과 대학원에서 석사를 한 후 청와대 공보비서실과 잡지사 ‘세대’에 잠시 몸 담았으며 이후 미국 시카고대에 유학했다. DJ 시절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장을 맡았다가 조선일보의 사상검증 때문에 물러났다.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경향신문(07. 04. 30) [민주화 20년, 지식인의 죽음] 90년대 강준만 등장

전통적 지식인이랄 수 있는 세 지식인의 틈새에서 90년대에 등장한 전북대 교수 강준만(51)의 약진은 변화된 지식인 지형의 일면을 보여준다. 10명의 응답자가 그를 한국 사회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지식인으로 꼽았으며 그가 글을 쓰는 잡지 ‘인물과 사상’은 6명이 영향력 있는 저술로 꼽았다.



강준만은 ‘지역주의 비판’ ‘서울대 망국론’ ‘조선일보 제몫 찾아주기’ 등의 민감 이슈를 도발적인 문체로 제기한 ‘게릴라 지식인’이었다. 모든 ‘금기와 성역에 도전한다’는 기치를 내걸고 시작한 ‘인물과 사상’은 강준만 1인이 글을 쓰고 출판하는 독특한 체제도 관심을 끌었지만, 거침없이 실명을 거론하는 전방위적 비판으로 이른바 ‘강준만식 글쓰기’의 유행을 불러일으켰다.

박상훈(후마니타스 주간)은 “다작의 교양도서 작가로서의 현재 모습을 어떻게 평가할지는 차치하고라도 민주화 이후 기성체제의 위선과 허위의식을 날카로운 시각과 직설적 논쟁화법으로 비판해 ‘강준만식 글쓰기’ 양식을 만들었다”고 평가했다. 그는 “강교수가 남긴 사회문화적 영향은 매우 컸다”고 강조했다.

강준만은 “진의가 왜곡되기 쉽다”며 기자들의 전화 인터뷰에 응하지 않고 팩스 또는 e메일로만 외부와 소통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의 사회적 개입은 책 쓰고 신문에 기고하는 것으로만 한정된다. 강준만은 언젠가 “‘여자 나오는 술집’에 가지 않겠다”고 선언하기도 하는 등 타인에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만큼 스스로의 행동에 조심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러나 강준만의 칼날 화법은 어느 순간 많이 순화된 것이 사실이다. 1인 출판으로서의 인물과 사상은 지난 2005년 막을 내리고 지금은 다수 필자가 참여하는 잡지로 성격이 바뀌었다. 전상인(서울대 교수)은 “강준만으로 대표되는 게릴라 지식인들은 몇 년 못가서 초기의 기개와 전의를 크게 상실했는데 이는 기존 제도권 지식인 사회의 무응답과 외면에 외로움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보수 지식인으로는 송복(연세대 명예교수) 안병직(서울대 명예교수) 박세일(서울대 교수) 김대중(조선일보 고문) 복거일(소설가) 이문열(소설가) 등이 이름을 올렸다. 자연과학자로는 임지순(서울대 교수)과 황우석(전 서울대 교수)이 거명됐으며 김대중(전 대통령), 기업인 황창규(삼성전자 사장)를 선택한 이도 있었다. 영향을 준 지식인을 국내·외 구분 없이 물었기 때문에 해외 지식인은 상대적으로 적었다. 카를 마르크스, 미셸 푸코, 질 들뢰즈, 새뮤얼 헌팅턴, 에드워드 사이드 등이 꼽혔다.(손제민기자)

경향신문(07. 04. 30) [민주화 20년, 지식인의 죽음] 한국의 지성 ‘금서’가 키웠다

◇ 국내서적

지식인들이 뽑은 1987년 이후 한국 사회에 가장 큰 영향을 준 국·내외 저술은 권위주의 정권 하에서 이른바 ‘금서목록’에 올랐던 책들이 주류였다. ‘해방전후사의 인식’(23명)과 ‘자본론’(18명), ‘전환시대의 논리’(15명)는 대표적인 금서였으며 ‘태백산맥’(10명)은 불과 2년 전까지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검찰에 계류돼 있었다. 79년 10·26 사태를 열흘 앞두고 한길사에서 출간됐던 ‘해방전후사의 인식’(해전사)은 70~80년대 대학생들에게 한국현대사에 관한 새로운 시각을 선물해준 교과서였다.

송건호·오익환·백기완·진덕규 등이 참여해 ▲해방의 민족사적 의미 ▲분단의 배경과 과정 ▲친일파 문제를 다뤘다. 대다수 응답자들이 “대학시절 지하 이념서클의 의식화 교재로서 한국 현대사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했다”는 이유를 들었다. 현 시점에서 보면 이 책 내용은 상식적이다. 그러나 발간 당시는 상식이 불온하던 시절이었다.

김언호(한길사 사장)는 “애초 송건호 선생과 책을 기획할 때는 ‘한 5000권 나가려나’ 예상했던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책은 지금까지 40여만권이 나간 초특급 베스트셀러가 됐다.

“그 책에 실린 생각들은 기본적으로 자유민주주의였어요. 진덕규, 임종국 같은 필자들도 대부분 이데올로기와 관계 없는 분들이었죠. 그런 책인데도 엄청난 반응을 불러일으킨 것은 1차적으로 독자들이, 즉 시대가 요구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땐 정말 대단했어요. 10·26이 터져 책이 판금될 때까지 열흘 만에 4000권이 나갔으니…. 판금됐다고 그 책을 안 읽었겠어요. 판금시키면 오히려 복사본이 더 많이 나돌던 때였죠.”



해전사가 한국현대사를 보는 새로운 눈을 제공해 줬다면, 리영희의 ‘전환시대의 논리’(1974)는 세계를 보는 새로운 눈을 깨우쳐 준 책이다. 이 책은 베트남 전쟁으로 드러난 미국 대외정책의 추악한 본질을 폭로하고, 중국사회주의의 인간적인 모습을 그렸다. 냉전 이데올로기 교육을 받았던 대학생 김동춘(성공회대 교수)으로 하여금 “하늘이 무너지는 충격”을 줬으며 김세균(서울대 교수)이 “밤 새워 읽었고, 그 후에도 읽고 또 읽었던” 그 책이다.

이 책은 리영희(한양대 전 교수)의 ‘우상과 이성’(2명)과 함께 “사회과학도로서 다르게 생각할 수 있다는 점을 깨우쳐 준 고마운 책”(신광영 중앙대 교수)으로 기억되고 있다. 신광영은 “이 저술로 인해 비판적이고 창의적인 사고력이 가능함을 처음으로 보여주었다”고 말했다.

조정래(소설가)의 ‘태백산맥’에 대해 이광일(성공회대 교수)은 “지식인 사회를 넘어 한국 사회 전반에 큰 영향을 준 책은 태백산맥 정도일 것”이라고 말했다. 박기봉(비봉출판사 대표)은 “1950년대 이후 우리나라 사람들의 마음 속에 잠재되어 있던 냉전의 족쇄를 깨는 데 일조했다”고 평했다. 조효제(성공회대 교수)는 “소련에는 소비에트 체제에 대항한 우파-전통주의적 휴머니스트 반체제 작가로서 보편성을 획득한 솔제니친이 있다면, 한국에는 권위주의 체제에 대항한 좌파-민족주의적 휴머니스트 반체제 작가로서의 보편성을 획득한 조정래가 있다”고 말했다. 반면 복거일(소설가·미래문화포럼 대표)은 “부정적인 의미에서 태백산맥이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최장집(고려대 교수)의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2002)는 2000년대에 나온 책으로는 가장 많은 표를 받았다. 임지현(한양대 교수)의 ‘민족주의는 반역이다’(3명), 임지현·권혁범·박노자·임은실 등이 함께 쓴 ‘우리 안의 파시즘’(2명)은 민족주의에 대한 최초의 본격적인 문제 제기였다는 점에서 한국 사회에 큰 영향을 준 것으로 나타났다.

◇ 해외서적

한국 사회에 영향을 준 해외 저술로 가장 많은 지식인들이 꼽은 ‘자본론’(18명)은 1980년대 후반 과학적인 변혁이론에 대한 관심을 고조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국내에서 첫 한글 번역본이 나온 87~89년 이전에도 일본어 번역본 등의 형태로 은밀하게 유통됐지만 본격적으로 학생들 손에 쥐어진 것은 87년과 89년 강신준(동아대 교수)과 김수행(서울대 교수)이 잇달아 번역본을 내면서부터이다. 고병권(수유+너머 대표)은 “87년 이후 첫 10년간이 지식사회가 마르크스주의를 찾아가는 과정이었다면, 그 후 10년간은 마르크스주의에 회의하거나 그것을 전환시키려 시도했던 과정이 아니었나 한다”고 말했다.

87년 민주화 직후 서울대 교수 김수행을 통해 자본론 1~3권을 번역해낸 박기봉(비봉출판사 대표)은 “자본론은 지금도 해마다 1000여권씩 나가는 스테디셀러”라며 “다만 책의 결론에만 줄 치는 운동권식 독법보다는 그런 결론이 도출되는 논리를 따라가는 자본론 읽기가 더 필요한 때”라고 말했다.

81년 미국에서 출간된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전쟁의 기원’(16명)은 번역도 되기 전에 널리 읽히며 냉전체제에 대한 성찰의 계기를 제공했다. 현대사에 관심 있는 연구자들 중 이 책을 읽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을 정도다. 하종문(한신대 교수)은 “우리를 옥죄어 온 냉전체제를 뒤집어보게 해 준 의미를 높이 살만하다”고 했다. 김원(서강대 연구교수)은 “냉전적 시각, 빈약한 사회과학적 방법론에 입각해 한국현대사 해석을 하던 한국학계에 ‘지적인 충격’을 줬다”고 말했다.



앤서니 기든스의 ‘제3의 길’(8명)은 98년 서울대 교수인 한상진·박찬욱에 의해 번역돼 한국 사회에 ‘실용주의’와 ‘중도론’뿐만 아니라 ‘사회적 민주주의’의 이론적 근거로 활용됐다. 조효제(성공회대 교수)는 “‘이데올로기의 종언’이 얘기되며 대안적 진보이념을 갈구하던 시점에 소개돼 큰 영향을 미쳤다. 진보진영은 공개적으로는 기든스를 비판하면서, 자기 방에서는 몰래 정독했다”고 회고했다. 그는 “이 책이 소개된 90년대 후반을 거쳐 최근 와서 대안적 진보이념으로 사회국가, 사회투자 국가, 사회서비스 국가, 사회연대 국가 등이 거론되고 있는데 이는 거의 모두 기든스식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며 “일종의 ‘거명되지 않는 영향력, ‘스텔스기와 같은 (보이지 않는)’ 영향력을 주었다”고 평가했다.



조효제는 “푸코의 포스트모더니즘 계열의 저술은 권력과 담론에 관한 인식 전환의 계기를 줬다”면서 “한국에 소개된 시점이 한국적 문제의식의 지형에 맞지 않았음에도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역설적”이라고 지적했다. 눈길을 끄는 것은 ‘로마인 이야기’ ‘해리포터’ ‘반지의 제왕’ 등 대중 서적들이다. 김만흠(한국정치아카데미 원장)은 “대중사회 수준에서는 일본과 미국의 소설, 성공학 번역서들이 미치는 영향이 컸다”고 말했다. 전영평(대구대 교수)은 “지식인 집단보다는 대중에 대한 영향력이라는 측면으로 파악한다면 해리포터가 가장 큰 영향을 준 책일 것”이라고 말했다.(손제민·김종목·장관순기자)

07. 04.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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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바람구두 > 경향신문-지식 찍어내는 사회, 지성은 숨쉬는가

[민주화 20년, 지식인의 죽음] 지식 찍어내는 사회, 지성은 숨쉬는가
입력: 2007년 04월 22일 17:50:26
 
서울대 경제학부 김수행 교수는 1989년 3월부터 서울대에서 강의를 시작했다. 마르크스 강의였다. 학생들이 구름같이 몰려들었다. 300명 규모의 강의실은 매번 만원이었다. 비좁은 계단을 파고들어 앉아 기어코 강의를 들었다.

91년에 이 강의를 수강했던 신모씨(36)는 “중간·기말 고사 때 1000여명이 모여 시험을 치르느라 건물 한 동을 다 빌릴 정도였다”고 회상했다.
지난달 30일 김수행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가 ‘현대마르크스 경제학’강의를 하고 있는 서울대 멀티미디어강의동(83동) 506호 강의실. 210명이 들어올 수 있는 대형강의실이지만, 빈 자리가 많아 썰렁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손제민기자


그로부터 18년이 흐른 지난달 30일 오후 1시 서울대 멀티미디어강의동(83동) 506호. 김교수는 여전히 마르크스를 가르치고 있었다. “케인스는 상당히 훌륭한 경제학자예요. 자기가 살던 시대 문제에 관심을 가졌기 때문이죠.” ‘현대마르크스 경제학’ 과목. 이날 수업은 케인스의 유효 수요 이론과 장기 정체설에 관한 것이다. 210명 규모의 강의실에 40여명의 학생만 앉아 있다.

조교 정상준씨(32)는 “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수업에는 안 들어와도 시험 때 들어와서 밖에서 토론하고 ‘학습’한 가락으로 일필휘지 답을 적고 나가던 ‘고수’들이 있었다. 지금은 강의를 열심히 듣지만 판에 박힌 답안만 제출한다”고 말했다.

김교수는 “요즘 학생들을 보면 다들 취업에 너무 매달려. 신입생 때부터 그래. 이해는 돼. 대한상공회의소 이런 데서는 성적표에 마르크스 경제학 표시가 돼 있으면 ‘이런 수업을 왜 들었느냐’고 물어본다지”라고 했다. 올해 정년을 맞는 김교수는 요즘 후임 문제를 걱정하고 있다. “경제학부 교수가 34명인데 미국 박사가 31명이야. 비주류 경제학은 나 하나뿐이야. 올해 내가 정년퇴직하면 비주류 경제학이 없어질지 몰라. 요즘 새로 들어온 경제학과 교수들 대부분이 신자유주의적 사고에 사로잡혀 있어. 마르크스 경제학을 둘 필요가 있느냐는 생각을 가진 젊은 교수들이 많아.”

이 문제는 비주류 경제학자를 뽑을 것인가라는 단순한 임용 문제가 아니라 한국 지식 사회에 비판적 지식인의 재생산 구조가 존재하는가의 문제이다. 학부 시절 김교수의 ‘마르크스’ 수업에 열광했던 인문학자 고병권씨는 ‘지식인의 비극적 죽음’을 예감했다고 한다. 그는 “예전에는 김교수 같은 분들의 글이 잡지에 실리면 논쟁에 불이 붙고, 대자보도 붙이고 했는데 지금은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모른다”고 했다.

이제는 대학을 ‘지성의 전당’이라고 말하는 이도 드문 세상이 됐다. 실용과 부가가치 창출은 대학의 최고 목표가 되었다. 일부 대학의 국문학과는 ‘시나리오 학과’로 명칭을 바꿨다. 대학가 인문과학서점은 하나 둘 줄더니 요즘 대부분 문을 닫았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에 걸쳐 전개된 ‘지식기반사회’ ‘지식기반경제’는 우리 사회가 지식을 비판이성의 관점이 아닌, 산업으로 수용하도록 주입시켰다. 교육의 목표는 ‘올바른 시민’의 육성이 아닌, ‘시장반응형 인간’ 양성으로 변했다. 기업은 대학의 진정한 주인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교육부와 전경련이 함께 경제교과서를 만들어 노동을 모욕하고 재벌을 찬양하는 세상이 됐다.

포털사이트 네이버는 ‘지식인’이란 명사를 동사로 만들었다. 지식인에게 묻는다는 것은 ‘지식iN’ 네트워크와 검색툴을 이용한다는 말이다. 이렇게 지식은 붕어빵처럼 대량생산되는 복제품이 된 것이다. 한때 시대 정신을 선도했던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저술활동은 쓴 사람과 평가하는 사람들만 읽는, 틀에 얽매인 지루한 논문들로 대체되고 있다. 학자는 ‘논문 작성 노동자’로 변모하고 있다. 이것이 지식인의 죽음이 어른거리고 있는 한국사회의 풍경이다.

〈김종목·손제민기자〉

[민주화 20년, 지식인의 죽음] 87년 이후 지식인상의 변화
입력: 2007년 04월 24일 17:29:28
 
오랫동안 한국 사회의 주류적인 지식인상은 저항적 지식인이었다. 사르트르가 역설한 “지식인은 우리 시대의 모든 갈등에 참여하지 않을 수 없다. 지식인은 억압당하는 자의 편에 설 수밖에 없다”는 명제는 40대 이상의 사람들에게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한완상의 ‘민중과 지식인’은 80년대 대학 신입생의 필독도서였고, 그들을 새로운 현실로 인도하는 안내서였다. 스스로를 지식인으로 자각하는 것이 사회와 현실로 나아가는 초대장이었던 셈이다.
1971년 전태일 추모기도회에서 대중을 상대로 구국강연을 펼치고 있는 함석헌 선생.

-탈근대화, 천대받는 ‘진실’-

문익환 목사는 생전에 강연회에서 종종 지식인과 민중의 관계를 칼날과 칼등의 관계로 비유하곤 했는데, 민주화 투쟁과정에서 지식인들은 비유 그대로 ‘민중의 칼날’이었다. 당시의 현실에서 지식인은 근대적 합리성과 서구식 민주주의에 대해 가장 많이 교육받은 존재였다는 점에서 ‘민주주의’의 담지자로 기능했다. 민주주의, 자유, 인권과 같은 추상적 개념은 이들에 의해 만질 수 있고 도달할 수 있는 현실적 실재로 감지됐다. 민중의 계몽가이자 선구자로서 지식인은 사회의 각 영역에 큰 자취를 남겼다. 시대의 선생으로 불린 함석헌과 리영희의 저작들, 장준하의 선구적 활동, 백낙청과 김현이 주도한 비평의식의 고도화, 박현채의 민족경제론, 탈춤과 같은 민중 문화의 재발견 등은 그러한 현상의 몇몇 예에 불과하다. 70, 80년대에 걸쳐 지식인은 민주화 투쟁뿐 아니라 한국 사회의 지적 수준을 끌어올린 교사였으며, 특정한 의미에서 ‘민족’과 ‘문화’의 창안자이기도 했다.

광복군 장교 출신으로 박정희 군사정권에 저항하다 75년 의문의 죽음을 당한 장준하 선생.
하지만 이제 이런 일들은 추억 속의 에피소드가 되었다. 굳이 푸코나 리오타르 같은 프랑스 사상가들의 이름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오늘날 지식인의 사회적 위상이 현저하게 추락했다는 사실을 부인하기 어렵다. 이러한 현상의 원인은 다양하게 설명돼야 하지만, 포스트모더니즘이나 현실 사회주의의 붕괴, 그리고 신자유주의의 도래와 같은 세계사적 전환이 바탕을 이루며 거기에 한국 사회의 역사적 변천이 조응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 밑바닥에 탈근대적 현실이 있다. 근대 극복을 목표로 출발한 탈근대주의는 근대가 창출한 각종 제도, 가치, 개념, 역사의 허위성을 폭로하는 데 일조했다. 우리가 지금까지 당연시했던 많은 것들이 사실은 근대에 이르러 ‘만들어진 전통’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현실과 진실의 관계가 흔들렸다. 과거에는 현실을 깊게 파고들면 진실에 도달할 수 있다는 믿음이 존재했다. 하지만 오늘날처럼 ‘진실’이라는 단어가 천대받은 적이 있었던가? 총체성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따라서 현실을 총체적으로 재현·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 탈근대주의가 가르친 진실이다.

리오타르는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보편적이고 추상적인 가치를 여전히 설파하는 지식인이란 무지이거나 권력의지의 산물일 뿐이라고. ‘지식인의 종언’은 무엇보다 지식인 자신에 의해 천명됐다.

여기에 사회주의의 붕괴로 대표되는 이념의 붕괴는 한국 지식인상의 변화에서 기억할만한 사건이다. 박노해나 조정환, 이진경처럼 이 무렵 새로 등장한 지식인들은 마르크스주의로 무장한 채 선배 세대인 4·19세대, 유신세대와 자신들을 날카롭게 구분했다. 하지만 민주화가 시작되고 현실 사회주의가 몰락하면서 이러한 구분법의 의미도 모호해졌다. 이념의 붕괴는 역설적으로 사상의 해방을 몰고 왔다. 분수처럼 사상이 흩어졌으니, 사람들은 저마다 급진좌파에서 뉴라이트로, 헤겔에서 들뢰즈로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섰다. 오늘날 한국 지식인 사회는 사상의 백가쟁명 시대를 새롭게 관통하고 있다. 그런 만큼 사상의 대변인으로서, 혹은 안내자로서 지식인의 사회적 입지는 현저하게 약화됐다.

아마도 지식인을 날것의 현실로 끌어내린 직접적인 계기는 외환위기일 것이다. 자살이 속출하고 노숙자로 넘쳐나는 거리가 매일 매스컴에 보도되면서, 모든 것이 물질적 가치를 중심으로 재편됐다. 이를 상징하는 것이 ‘신지식인’이다. 현재까지 3316명이 선정된 것으로 알려진 신지식인은 외환위기 속에서 경제적 가치창출이라는 일반적 목표에 국민을 동원하려는 상징조작이었다. 신지식인은 한편으로는 기존 지식인의 권위에 기대면서도 수량화, 물질화, 공유화라는 측면을 강조함으로써 지식인의 ‘유용성’에 강력한 의문부호를 새겨놓았다.

-IMF뒤 평등에서 양극화로-

외환위기의 극복이 신자유주의의 적극적인 수용으로 귀결되면서 이러한 경향은 강화되었다. 신지식인은 이제 하나의 해프닝이 되고 말았지만, ‘인문학의 위기’는 필연이었다. 자본의 거칠 것 없는 자유와 제국으로의 수렴을 특징으로 하는 신자유주의는 담론의 중추를 민주주의로부터 돈으로, 평등과 인권으로부터 양극화와 개방으로 옮겨놓았다. 황우석이 찬양되던 시절, 각종 뉴스는 앞으로 벌어들일 로열티를 계산하느라 바빴다. 그곳에 돈으로 환산될 수 없는 지식인, 아니 환산되어서는 안 되는 지식인이 설 자리는 없다. 또한 황우석 사태는 지식인의 보루였던 도덕성에 치명적인 타격을 가함으로써 마지막 옷고름을 풀어헤쳤다. 연이어 고위공직자나 총장 등의 표절사건이 불거지면서 ‘지식인의 종언’은 엉뚱한 방식으로 현실화됐다. 이것을 ‘관행’이라 하던데, 그렇다면 그러한 관행으로 지탱돼 온 과거 지식인의 존재방식을 누가 존경할 수 있겠는가?

오늘날 한국의 지식인은 혼돈의 와중에 서 있다. 그의 자산인 ‘지식’은 인터넷이 대신하며, 그의 도구인 ‘글쓰기’는 댓글보다 읽히지 않는다. 그의 언어인 보편성은 의심의 대상이며 그가 가리키는 방향은 신뢰성을 썩 잃었다. 시대의 양심이란 칭호는 역사책에나 둥지를 틀었다. 지식정보화사회에서 지식의 가치는 무한대로 상승했지만 지식인의 가치는 역사상 유례없이 추락했다. 교양과 지적 유희를 제공하고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는 지식의 효용성은 거듭 강조되지만, 이를 종합하고 비판할 지식인의 필요성을 적극 긍정하는 목소리는 턱없이 부족하다.

사실 민주화라는 지상과제와 총체성을 강조하는 거대담론의 존재는 사상과 이론의 성찰을 억압해왔다. 이로부터 해방된 지식인들은 낡은 갑옷을 벗어던지고 근본을 파고들었다. 근대성, 젠더, 민족주의, 기억, 일상권력 등이 비판목록에 오르면서 전선(戰線)은 갈라졌고 심화됐다. 문제는 ‘부분’에 대한 비판이 ‘전체’로서 존재하는 권력과 어떠한 관계를 설정하는가이다. 오늘날 사회 곳곳에서 발견되는 지식인의 기능화 양상은 지식인 자신이 부분성에 매달려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최근에 지식인과 관계된 논의가 여전히 하나로 존재하는 ‘국가’로 수렴되는 양상을 보이는 것은 이 때문이 아닐까? 황우석 사태가 애국주의의 광풍을 등에 업고 등장·확산됐던 상황, 현재 진보진영이나 보수진영 모두 ‘선진(화)’ 담론을 둘러싸고 경쟁적으로 국가정책 마련에 부심하는 경향, ‘인문학의 위기’론이 국가의 지원 요구로 귀결되는 풍경, 학술진흥재단이라는 국가기관이 학문의 기반을 좌우하는 현실 등은 지식인의 국가종속성 내지는 국가지향성을 강하게 예시한다.

이런 상황은 지식인과 국가의 관계를 다시금 되새기게 한다. 권력의 민주성 문제만이 초점일 수 없다. 많은 논의들이 국가로 수렴될 때 그로 인해 가려지는 부분들이 상당하며 그런 부분들이 오히려 지식인의 질문과 대답을 기다리는 곳일 수 있다. 따라서 질문은 지식인들이 ‘민주화 이후’의 국가에 대해 얼마나 지혜롭게 대응하고 있는가로 바뀌어야 할 것이다. 권력은 민주화되었을지언정 지식인의 국가론이 지혜로워졌다는 증거는 많지 않다. 국가와 지식인의 관계 설정은 현재진행형의 문제다.

그간 일어난 지식인상의 변화 중 ‘독립적 지식인’의 확산은 주목할 만한 현상이다. 강준만, 박노자, 고미숙, 이정우 등으로 대표되는 이들은 탈근대적 사유에 기반을 두면서 탈권위주의, 다원화 그리고 ‘대중’과의 직접소통을 지향한다. 여러 방면에서 과거 지식인의 존재방식과 다른 차원을 선보이는 이들의 활동은 향후 지식인상의 갱신이라는 측면에서 하나의 시금석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들과 다른 궤도에 속하지만 공병호나 이덕일처럼 직접 대중을 상대로 한 자유저술가의 확산도 현 단계 지식인상의 또 다른 변모 양상을 보여준다.

-새로 떠오르는 ‘대중지성’-

최근에 ‘대중지성’ 개념이 본격적으로 제기된 것도 지식인의 몰락과 대중의 등장이라는 현상과 연관이 깊다. ‘연구공간 수유+너머’와 자율주의에 기반한 ‘다중네트워크’가 주도적으로 제창하고 있는 이 개념은 지식인의 위계적, 엘리트적 사유로부터 벗어나 대중을 근원에 두는 새로운 지식 창출·향유 방식을 겨냥한다. ‘대중지성’은 계몽주의적 지식인의 역할이 한계에 봉착하고, 인터넷의 발달에 따라 대중이 지식의 소비자이자 창조자로 부상하면서 전통적인 의미의 지식(인)과 변별되는 개념으로 떠오르고 있다.

한국 사회의 물질적, 구조적 변화를 빠트리고 지식인상의 변화를 말할 수 없다. 서울대 입학생 중 상류층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아가는 현실을 덮어둔 채, 소득격차가 학력격차로 이어지고 학력격차가 신분고착으로 이어지는 구조를 말하지 않고, 여전히 미국박사가 최고고 학연과 인맥이 우선시되는 문제를 괄호치고 지식인상을 논한다는 것은 난센스가 아닌가. 하지만 그러하기에 더더욱 ‘지식인’은 되새겨져야 할 화두이다. 과거에도 지식인은 학력과 신분으로서 규정되지 않았다. 지식인이란 본시 실천적 개념이다. 달리 말하면 그것은 ‘존재’가 아니라 ‘행위’이다. 허위에 저항하고, 현실을 인간화하며, 가야할 길을 묻는 한 그는 언제나 지식인인 것이다.

〈박헌호/ 성균관대 대동문화연구원 연구교수〉

[민주화 20년, 지식인의 죽음] ‘이념분포’ 지식인 명단
강내희(중앙대 교수) 강만길(고려대 명예교수) 강정구(동국대 교수) 강준만(전북대 교수) 고미숙(수유+너머 연구원) 고병권(수유+너머 연구원) 공병호(공병호경영연구소장) 김동길(연세대 명예교수) 김동춘(성공회대 교수) 김명인(인하대 교수) 김상봉(전남대 교수) 김상조(한성대 교수) 김세균(서울대 교수) 김수행(서울대 교수) 김영민(한일장신대 교수) 김우창(고려대 명예교수) 김원(서강대 연구교수) 김은실(이화여대 교수) 김일영(성균관대 교수) 김정배(전 고려대 총장) 김종철(녹색평론 대표) 김지하(시인) 김태동(성균관대 교수) 김호기(연세대 교수) 나성린(한양대 교수) 나임윤경(연세대 교수) 민경국(강원대 교수) 박노자(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 박세일(서울대 교수) 박지향(서울대 교수) 박태균(서울대 교수) 박효종(서울대 교수) 백기완(통일문제연구소장) 백낙청(서울대 명예교수) 백영서(연세대 교수) 복거일(소설가) 서경석(목사) 서길수(서경대 교수) 서중석(성균관대 교수) 손호철(서강대 교수) 송두율(독일 뮌스터대 교수) 송호근(서울대 교수) 신광영(중앙대 교수) 신영복(성공회대 석좌교수) 신용하(이화여대 석좌교수) 신율(명지대 교수) 신지호(자유주의연대 대표) 심광현(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안병욱(가톨릭대 교수) 안병직(서울대 명예교수) 염재호(고려대 교수) 오세철(연세대 명예교수) 우석훈(성공회대 연구교수) 유석춘(연세대교수) 윤평중(한신대 교수) 윤해동(성균관대 교수) 이근식(서울시립대 교수) 이문열(소설가) 이병천(강원대 교수) 이석연(변호사) 이어령(이화여대 명예석좌교수) 이영훈(서울대 교수) 이인호(명지대 석좌교수) 이정우(경북대 교수) 이진경(서울산업대 교수) 이필렬(에너지전환 대표) 이효재(이화여대 명예교수) 임지현(한양대 교수) 임헌영(문학평론가) 임혁백(고려대 교수) 임현진(서울대 교수) 장상환(경상대 교수) 장하성(고려대 교수) 장하준(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 장회익(녹색대 석좌교수) 전상인(서울대 교수) 정성진(경상대 교수) 제성호(중앙대 교수) 조갑제(전 월간조선 대표) 조국(서울대 교수) 조순(서울대 명예교수) 조순경(이화여대 교수) 조정래(소설가) 조정환(문학평론가) 조한혜정(연세대 교수) 조효제(성공회대 교수) 조희연(성공회대 교수) 좌승희(경기개발연구원장) 진중권(중앙대 겸임교수) 최갑수(서울대 교수) 최광식(고려대 교수) 최원식(인하대 교수) 최장집(고려대 교수) 하영선(서울대 교수) 하용출(서울대 교수) 한상진(서울대 교수) 한홍구(성공회대 교수) 홍성태(상지대 교수) 홍세화(한겨레신문 기획위원) 홍윤기(동국대 교수) 홍진표(자유주의연대 사무총장) 황대권(생태공동체운동센터 대표) 황석영(소설가) 황장엽(북한민주화위원회 위원장)

* 설마 여기에 이름이 오른 사람들만 지식인은 아닐 테지만... 어쨌든... 오프 신문에는 지식인들의 계보도가 이념적으로 구분되어 그려져 있다. 그게 재미있는데...

[민주화 20년, 지식인의 죽음] 1-2. 지금, 그들은 어디에 서 있나
지식인 사회가 분명한 ‘민주 대 반민주’ 전선으로 양분된 적이 있었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 지식인 사회는 ‘사상해방’이라고 할 만큼 다양하게 분화됐다. 반공주의자는 냉전적 사회인식이 힘을 잃어가면서 세가 줄었다. 특히 2000년 6·15공동선언 등 남북한 화해무드가 지식사회 내에 큰 영향을 끼쳤다. 우파 지식인들도 반공주의를 배격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민족주의자의 경우 위세는 여전하지만, 인권·시민사회· 탈민족주의자의 부상도 두드러지고 있다. 너도 나도 자유주의를 자처할 만큼 자유주의자가 증가하고 있다. 노동, 성, 환경 등 다양한 주제가 등장하면서 지식인의 분포도는 더욱 복잡해지고 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급격히 부상한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는 ‘동아시아론’ 등 대안 담론의 도전을 받고 있다. 좌파 지식인들의 우파 전향 및 ‘중도선언’이라는 새 경향도 나타났다. 80년대 중반 ‘식민지 반봉건사회론’을 포기한 좌파 경제학자 안병직(뉴라이트재단 이사장·서울대 명예교수)을 비롯해 90년대 소련 등 현실 사회주의의 붕괴 이후 김영환(시대정신 편집위원), 신지호(자유주의연대 대표) 등 ‘주체사상파 운동권’들이 전향했다. 최근 홍윤기(동국대 교수), 황석영(소설가) 등은 ‘급진적인 좌파나 경직된 우파가 아닌 통합적 대안으로서의 중도’를 천명했다.

2006년 유신체제를 재평가한 역사교과서 편찬을 추진하다 4·19유족회원에게 멱살을 잡힌 서울대 이영훈 교수.

2003년 입국했다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기소됐던 재독 학자 송두율 교수.
경향신문은 최근 이들의 사상 궤적을 토대로 ‘2007년 한국사회 지식인 지도’를 작성했다. 정치·경제·사회 이념의 좌우 성향(가로축), 민족주의 성향 여부(세로축)로 한 2차원 공간에 주요 지식인을 배열했다. 두 축의 교차점에서 멀수록 이념적 특성을 뚜렷이 보여준다. 강정구(동국대 교수)와 강만길(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장·고려대 명예교수)은 좌파 성향에 차이가 있지만 민족주의적 특성이 강하다. 강정구는 좌파 민족주의자, 홍세화(한겨레신문 기획위원)는 좌파 탈민족주의자, 복거일(문화미래포럼 대표·소설가)은 우파 탈민족주의자를 각각 대표한다.

김호기(연세대 교수)는 “우리의 지식인 이념 분포 양상은 서구 사회와 다르다. 서구적 틀로는 좌파가 탈민족주의, 우파가 민족주의 중심으로 분포하지만 우리는 좌파민족주의 지식인들이 많다”며 “이는 김구 등 우파 민족주의 그룹이 몰락하고 나서 수십년간 반공체제가 공고해진 탓”이라고 말했다.

#민족주의자

좌우 이념 성향에 따라 북한체제의 포용 및 통일 방식의 개방성에서 차이가 드러난다. 좌파 민족주의자는 ‘분단 국가의 일부’로서 남한이 가진 정체성의 한계를 강조한다.

70년대 ‘분단시대의 역사인식’ 등을 써 통일지향의 필요성과 민족문제에 대한 자각을 일깨운 강만길, 남북한 모두의 내부 모순을 해소하기 위한 통일(분단체제론)을 주장한 백낙청(‘창작과 비평’ 편집인·서울대 명예교수) 등이 진보적 민족주의자다. 급진적 좌파 민족주의 지식인들은 ‘북한도 우리의 일부’란 시각에서 반외세 자주 통일을 지향한다. ‘민중에 의한 통일’을 주장하는 백기완(통일문제연구소장), 강정구, 송두율(독일 뮌스터대 교수)이 있다. 우파 쪽의 대표적 인사로 신용하(독도학회장·이화여대 석좌교수), 서길수(고구려연구회 이사장·서경대 교수) 등이 있다. 남한 체제 우위의 통일을 추구하거나, 통일보다는 대외 영토·역사 문제에 천착한다. 중도적 민족주의자로는 ‘전통 문화·정신’을 강조하는 김지하(시인·한국예술종합학교 석좌교수)를 들 수 있다. 북한을 타도 대상으로 보는 통일지향 세력으로서 극우 민족주의 성향을 보이는 인사로는 97년 월남한 ‘주체사상의 대부’ 황장엽(북한민주화위원회 위원장)을 들 수 있다.

#좌파·진보주의자

자본주의 체제의 근본적 결함을 비판한다. 마르크스주의, 진보적 시민사회론, 근대비판주의 등으로 분화해 있다.

마르크스주의 지식인들은 사회 구성과 발전의 주체로서 노동자 계급을 강조한다. 특히 불평등 문제를 주시한다. 민주노동당 진보정치연구소 위원으로 활동 중인 장상환(경상대 교수)은 현실 참여를 통한 사회 개선을 추구한다. 오세철(연세대 명예교수)은 좌파 학자들 위주로 ‘부르주아 체제에 포섭되지 않는 대안학교’인 진보적 사회과학대학원의 설립을 추진중이다. 손호철(서강대 교수)은 계급·민중적 시각의 사회평론에 적극적이다.

포스트 마르크스주의 지식인 그룹으로는 문화주의, 트로츠키주의, 자율주의자가 있다. 문화주의 지식인들은 마르크스주의의 ‘경제결정론’을 비판하는 한편 자본주의 체제 내 문화가 계급 및 불평등 구조를 재생산한다고 본다. 강내희(중앙대 교수)가 대표적이다. 그는 시민단체 ‘문화연대’를 통해 음악 저작권 강화 반대, 18세 선거권 낮추기 운동, 외국인 노동자 문화축제 등을 펼치고 있다. 트로츠키주의자 정성진(경상대 교수)은 국가 단위의 자본주의 극복이 아닌 세계 수준의 혁명을 추구한다. ‘노동계급의 국제연대’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이같은 노선에는 국제사회주의 단체 ‘다함께’가 있다. 자율주의자 조정환(갈무리출판 대표)은 스탈린식의 일당(전위당) 독재를 거부하고 노동자 자율에 의한 혁명과 발전을 추구한다.

진보적 시민사회론자들은 마르크스주의와 달리 사회변화의 주체를 ‘억압 당하는 노동계급’이 아닌 ‘시민’으로 본다. “민중이 자신의 다양한 이익을 체제에 반영할 수 있어야 한다”는 최장집(고려대 교수)의 민주주의 담론이 이와 연계된다.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소장 김상조(한성대 교수), 참여연대 운영위원 조국(서울대 교수) 등이 이 범주에 들어간다.

근대비판주의 지식인의 스펙트럼은 넓다. 페미니즘, 생태주의, 탈근대론 등 체제 비판 이론이 다양하게 분포해 있다. 국가주의, 개발론, 민족주의 등 근대적·권위주의적 담론을 거부한다. 페미니즘은 가부장적 사회체제가 가지는 폭압적 구조를 반대한다. 여성운동의 대가 이효재(이화여대 명예교수)로 시작된 페미니즘은 ‘여성의 신체’(조한혜정 연세대 교수)에서 ‘여성노동자’(조순경 이화여대 교수)까지 논의의 폭을 넓혔다.

생태주의는 ‘대안적’ 삶·사회를 꿈꾸는 급진적 개발반대론이다. ‘지속가능한 발전’(환경주의)을 넘어 ‘인간의 탐욕’이란 문제 의식에 기초해 “생태 문제를 최우선시하고 생태가치를 생활의 전반에 구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김종철(녹색평론 대표), 장회익(녹색대학 석좌교수)이 있다. 탈근대론자들은 ‘민족주의 비판’(임지현 한양대 교수), ‘냉전적 국가론 비판’(진중권 중앙대 겸임교수), ‘소수자 소외 비판’(이진경 서울산업대 교수) 등을 통해 가부장적 획일주의, 순혈주의를 비판한다.

#우파·보수주의자

기본적으로 사회주의 반대, 자본주의 지향을 유지한다. 반공주의, 반공주의에 비해 상대적으로 유연한 뉴라이트, 시장자유주의 등이 분포하지만 각각 명백히 구분되지 않은 채 혼재된 양상이다.

반공주의 지식인들은 ‘정통 보수’를 자칭하며 ‘대한민국의 법통’을 강조한다.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 정부로서 대한민국은 ‘반국가단체’인 북한에 대항해야 한다는 논리를 토대로 한·미동맹과 보안법을 최우선시한다. 조갑제(전 월간조선 대표)가 이 그룹의 대표적 지식인이다. ‘산업화 세력’에 대한 ‘민주화 세력’의 폄훼 시도를 적극 방어하는 이들은 “뉴라이트는 위장 전향한 빨갱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뉴라이트는 신지호 및 홍진표, 최홍재(각각 자유주의연대 사무총장, 조직위원장) 등 ‘전향 386’들이 주도하는 ‘신우파’ 그룹이다. 자유주의, 북한인권 중시, 대외개방 및 시장주도 경제, 기간산업 민영화 등을 주장한다. 최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찬성에서 드러나듯 “자폐적 민족주의를 극복하고 애국적 세계주의를 지향”한다. 대외 개방을 중시하는 탈민족주의자들이다.

“전통적 반공주의자들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약화됐고 사회 담론도 생산하지 못하고 있다”는 신지호의 지적처럼 뉴라이트 그룹은 최근 보수진영의 사회 이슈를 선점하고 있다. “자유시장경제의 창달을 통한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를 추구하는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 박세일(서울대 교수), “자본주의의 참담한 모순만 다룬, 잘못된 역사쓰기는 바로 세워져야 한다”는 교과서포럼 공동대표 박효종(서울대 교수)이 같은 노선이다.

시장자유주의는 영어공용화론을 주장하는 복거일, 자유시장 경제 지상론을 펴는 민경국(강원대 교수), 좌승희(경기개발연구원장) 등이 있다. 경제·통상 이슈에 집중하며, 정부의 시장개입은 최소한이어야 한다는 ‘작은 정부론’을 주창한다.

#자유주의자

국내 자유주의 개념은 포괄적이며 모호하다. 사회복지를 내세우는 사회적 자유주의(social liberalism)와 시장자유주의(libertarianism) 모두 자유주의로 해석된다.

최장집과 신지호 등 좌우파 지식인들이 모두 자유주의자를 자처한다. 상대적으로 이념 성향이 강하지 않은 지식인 그룹을 자유주의로 분류된다. 좌파와 우파를 넘나드는 총체적 시각으로 현상을 비판한다. 사회주의나 군부 독재 하에서의 ‘동원체제’ 등 억압적 권위를 거부한다. 윤평중(한신대 교수)은 자유주의자를 “열려 있으면서도 혼자 있을 수 있는 사람, 연대하면서도 패거리 만들지 않는 사람”이라며 “사회의 여러 이념들 간의 괴리를 메울 수 있는 지식인”이라고 정의했다. 최근 ‘중도’를 선언한 홍윤기(동국대 교수)가 자유주의자 가운데 상대적 좌파, 유럽적 우파로 통하는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출신의 이근식(서울시립대 교수)이 상대적 우파로 분류된다.

〈장관순·손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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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향신문이 요새 기획기사를 잘 하고 있네요. 재미있게 지켜보고 있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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