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로쟈 > 한국전 망탈리테

학술저널 담비에서 고대 대학원신문에 게재된 기사 하나는 옮겨온다. 어제가 현충일이었지만 호국보훈의 달을 맞이하여 57년전 발발한 한국전쟁의 의미를 한번쯤 되새겨보게 하는 기사이다. '전쟁과 함께 만들어진 '한국인이 사는 법''이란 기획기사의 한 꼭지인 듯하다. 실상 여전히 '분단체제'하에서 우리가 살고 있다는 걸 고려하면 '한국전은 57년째 계속되고 있다'란 문제의식 자체가 파격적이거나 새로운 건 아니다. 다만 '한국전 망탈리테'에서 한국인 코드라 할 '사바사바'의 기원을 찾고 있다는 점이 흥미를 끈다(기사는 '가설' 수준에서 머문 듯한 감이 있지만). 한국전쟁에 관한 연구가 앞으로 지향해야 할 한 가지 방향을 제시하는 듯해서 스크랩해놓는다.

▲ 부산 인근에서 벌거벗은 채 줄맞춰 이동 중인 인민군 포로들의 모습

고대 대학원신문 6월호(07. 06. 06) 한국전은 57년째 계속되고 있다

“한국전은 계속되고 있다.” 예비군 훈련 정신교육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말이다. 그렇다. 한국전은 분명 57년째 계속되고 있다. 한국전이 종전으로 매듭 지워지지 못하고 휴전이라는 상태로 진행되어 오지 않았던가. 본 기자가 예비군 훈련장이 아닌 이곳에서 귀중한 지면을 빌려 ‘한국전은 계속되고 있다’는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안보 장사’를 하는 이들처럼 휴전상태라는 사실을 새삼 일깨워 ‘안보의식을 고취하자’는 따위의 이야기를 섣불리 하고자 함은 아니다. 한국전이 만들어낸 우리의 망탈리테가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기에 하는 말이다.

많은 이들이 IMF 위기 이후 한국사회의 변동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한국전쟁이 만들어 놓은 이른바 ‘한국전 망탈리테’는 여전히 한국사회에 온존하고 있다. 단기간에 극심한 경제, 사회적 공황을 불러일으킨 IMF위기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특정 정책이나 제도는 내, 외부의 변화압력에, 시간차를 가질지언정 비교적 쉽게 변하기 마련인 반면, 우리의 일상생활을 주조하는 망탈리테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학살에 학살을 거듭한 인류사에 유래가 없을 정도의 참혹한 전쟁인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일반인들의 삶에 완전히 체화된 ‘한국전 망탈리테’는 여전히 우리에게 삶의 방식내지 지혜로 뿌리깊이 체화되어 있다.      

비록, 국가의 자율성은 크지만 능력은 미약한 ‘약탈국가’였을 망정, 한국의 국가는 한국전을 거치면서 만들어졌다. ‘국가는 전쟁을 만들고, 전쟁은 국가를 만든다’는 찰스 틸리의 주장은 한국의 ‘국가 만들기’에 잘 부합된다. 또한 전상인 교수의 지적처럼 한국전은 시민사회에 대한 국가권력의 절대적 우위문화, 달리 말해, ‘국민의 국가’가 아니라 ‘국가의 국민’을 만들어 냈다. 한국전쟁 과정에서 나타난 폭압적이고 무책임한 국가권력은 전쟁이 휴전된 이후 사라지지 않고 다소 부드러운, 완화된 형태로 계속해서 우리의 삶에 구조화된 형태로 온존하고 있는 것이다.

휴전 이후 계속해서 권위주의 정권들을 거치면서 전쟁의 방식과 논리, 더 나아가 군사주의는 한국사회에 깊숙이 뿌리내렸다. ‘군대를 다녀와 봐야 사람된다’는 말은 이런 맥락에서 타당한 말이다. 사회가 군대논리로 돌아가니, 싫던 좋은 이런 논리가 몸에 완전히 체화된 사람들이 약육강식 세계에서 생존할 수 있는 것은 당연하기 때문이다.  

산발적으로 진행되어 오던 국지전이, 북한의 남침으로 본격적인 전면전으로 커지자 이승만 정권은 국민을 속이고 도망쳤다. 그뿐 아니라 9·28수복 이후에는 남쪽으로 미처 피난가지 못한 이들의 상당수를 ‘부역자’라 명명한 후 무차별적으로 처벌했다. 전쟁을 겪으며 좌익이 뭔지, 우익이 뭔지도 모르던 숱한 양민들은 전선의 이동에 따라서 남, 북, 미군에 의해 무차별적 학살을 당했다. 또한 엄청난 수의 힘없고 돈 없는 사람들이 어이없이 목숨을 잃었던 국민방위군 사건이 말해주는 바는 자명했다.



사람들은 전쟁을 거치면서 국가나 제도에 관한 강한 불신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국민에게 거짓말을 하고 도망치며 다리를 끊어버린 정부, 돈 없고 빽 없는 사람들을 징집해가서 굶어죽이는 정부, 아무것도 모르는 이들을 빨갱이로 몰아서 죽이는 정부나 제도에 대해서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했을까? 전쟁 통에 당장 나를 살려주고 먹여주는 것은 공적기구나 제도나 아니라 바로 나의 가족들 밖에 없었다. 그리고 어떻게는 지배계급과 줄을 만들어 놓은 사람들만이 출세하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이른바 ‘사바사바’의 위력을 모두가 실감하게 되었다.

한국전쟁은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공적 영역에 대한 만성적인 저신뢰를 낳았으며, 공적 영역 자체에 대한 사람들의 참여 내지 비판을 금기시하게 했다. 그러나 물론 공적 영역에 대한 소극적인 태도가 삶 자체에 대한 소극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정반대다. 강준만 교수의 주장처럼 한맺힌 세월에 대한 강한 보상심리의 작용으로 ‘공적 소극성, 사적 적극성’현상이 나타났으며, 사적 적극성은 중앙과 정상을 향한 맹렬한 돌진의 양상을 띠게 되었다.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살아남는 것이 최우선일 수밖에 없었던 한국전쟁 당시의 삶의 전략은 이른바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상태를 낳으며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국가의 공적인 체제나 제도를 믿으면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는 ‘삶의 지혜’를 한국전을 거치면서, 군사독재를 거치면서 우리 모두가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사적인 연줄망이나 빽에 의존하는 사회에 사는 사람들은 항상 남들의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고 만성적 피로 속에서 산다. 줄을 만들고 관리하기 위해서는 적재적소에 아첨 및 ‘사바사바’를 해야 한다. 그리고 시원하게 술도 마셔줘야 하고 남들의 경조사도 깔끔하게 챙겨줘야 한다. 한국인들 상당수가 취미하나 없고, 놀 줄도 모르고 가정에 와서는 잠과 휴식만을 갈구한다는 것은 공적신뢰가 전무한 ‘약육강식 사회’가 보여주는 하나의 자화상이다.

물론 한국전이 이 모든 것을 만들어냈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인류사에 그 유래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잔인한 전쟁은 분명 우리 한국인들이 이른바 ‘삶의 양식’내지는 ‘망탈리테’라고 할 만한 것들의 상당부분 기초를 제공했다. 이는 전쟁을 겪지 않은 세대가 전체 인구의 상당비율을 차지하는 요즘에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들 모두가 공유하고 있는 이른바 ‘한국전 망탈리테’는 우리가 ‘개발국가’하에서 전래 없는 경제성장을 이룩할 수 있게 만든 가장 중요한 원동력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그것은 저신뢰사회와 극단적인 쏠림현상을 낳아서 우리의 삶을 극도로 피곤하게 항상 긴장하게 만들었다. 세상의 많은 일이 그렇듯, 한국전 망탈리테는 우리에게 희열과 아픔을 동시에 가져다 준 것이다.(김경필 기자)

07. 06.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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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Ritournelle > * 이광수를 다시보다

“연옥에서 사후인생을 보내는 근대성에 반하는 근대론자”
이광수 다시보기: 민족과 문학사

 

신동준 코넬대 교수 master@dambee.net

 

최근 99회째 만남을 마치고 대망의 1백회 모임을 앞두고 있는 부산대 인문학담론 모임이 인문학의 논쟁적 담론의 수혈지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담당하고  있다. 지난번 석굴암 재해석 논문 이후 이번 99회째에는 이광수에 대한 다시 읽기를 통해 문화론적 민족주의 해석의 한 모델을 선보였다.
아래의 글은 신동준 코넬대 교수가 지난 5월 17일 모임에서 발표한 글이다. 신 교수는 한국에 연구년으로 나와 이광수에 관한 단행본 준비를 하면서 그 책의 기본 골격과 메시지를 요약해 발표했다. 아래에 그 전문을 소개한다./편집자주

지난 25년간 미국 역사학계에서 일어난 핵심 논쟁 중 하나는 잘 아시다시피 문화학(cultural studies; 혹은 포스트모던이즘)과 역사, 양자의 관계에 대한 논쟁이었다. 80년대 문화학이 등장하면서 기존 역사학계는 위기를 맞았다. 당시 이 둘의 논쟁은 주로 보수 대 진보 였다. 진보쪽은 역사학계의 핵심개념들을 공격했고 보수쪽은 포스트모던니즘의 피상성과 비합리성을 비난했다. 이제는 첫 위기가 끝난 것 같아 보인다. 최근에 한 학자는 이런 논쟁이 이제 지루하다고까지 했다.

한편으로는 문화사 붐이 일어났다. 그리고 10년전부터 문화사는 미국 한국사학계에도 도입되기 시작했고, 지금은 문화연구가 한국학내에서 지배적 동향이 되어가고 있을 정도다. 또 한편으로는 문화이론을 많이 활용한 역사책은 생각보다 그렇게 많지 않다. 문화연구 (문학이론)는 역사학한테는 타자라는 느낌이 많이 든다. 역사학은 역사학방법론으로서 이같은 이론을 수용하기 싫거나 아니면 수용하지 못 하는 것 같다. 시대적 과제는 아직도 타자를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를 모색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오늘 발제는 첫째, 내가 이해하는 문화연구, 그리고 (그것의) 무엇이 유용한지에 대한 것이다. 둘째는 문화연구의 한계를 살펴보기 위한 일환으로, 문화이론에 대한 비판내용을 정리하는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원래 문화이론은 보수 역사학한테 비판을 받았는데, 최근에 진보쪽에서 심지어 초기 문화연구를 주창하던 학자들이 문화이론을 비판하고 있는 현상이다. 그리고 세번째 부분은 내 책에 대한 구상을 설명하고자 한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지난 25년간 학계내 흐름중 가장 두드러진 은것 문화학의 등장이었다. 문학학은 원래 1960~70년대 등장했는데 당시 미국내 사회과학계를 주도하고 있던 것은 근대화이론이었다. 유럽중심주의와 여타 metanarratives에 대한 비판의 한 방법으로서, 비판적 학자들은 근대화이론이 귀기울이지 않고 폄하했던, 특히 이데올로기나 의식같은 분야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근대화이론은 사회를 이해하는데 있어 구조적 요인을 중요하게 여기기때문에 이 시기 지성사는 당연히 하향추세였다.

문화학은 1980년대 이데올로기나 의식을 연구하는 작업에 새로운 추동력을 제공하였고, 역사학계내에서는 그 영향이 ‘새로운 문화학’의 등장으로 표출되었다. 문화학이 학계에 기여한 공헌 중의 하나가 이데올로기 연구를 조약한 경제결정론에서 해방시킨 것이다. 학자간 편차는 다양하지만 많은 학자들이 이데올로기를 경제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생산의 한 형태라고 이해하는 알뛰세의 개념을 수용했다. 탈근대주의, 탈구조주의, 탈식민주의 역시 부분적으로는 이같은 이데올로기 인식의 소산( 그리고 하나의 비판)으로 볼 수 있다.

지성사 기존의 저자-텍스트-청중(독자)의 이해방식을 뛰어넘기 위 한 한 방법으로, 문화학을 통는 담론분석이라는 형식을 도입했다. 무엇보다 담론분석은 텍스트의 개념을 확장시켰다. 텍스트라는 용어는 단순히 인쇄된 것 만을 의미하는게 아니라 시각자료, 심지어 사회적 혹은 개인적 삶, 기호 체계로 구성된 모든것을 의미했다. 아주 단순화시키면 종래의 지성사는 주요 사상가의 사상을 설명하고, 그들이 그 시대에 끼친 영향을 평가하는 것이었다. 이와 대조적으로 담론 분석은 종래 지성사의 ‘초월적 주체(transcendental subject)’의 개념을 비판하면서 텍스트를 저자의 사상의 표현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기호학이 발전시킨 방법을 사용해서, 담론분석은 intertextual한 접근방식을 취하고 일련의 텍스트내에서 의미가 작동하는 방식을 밝히는데 주안점을 둔다. 담론 분석의 또다른 초점은 기구(institution)와 담론간의 상호관계를 검토하는 것이다. 이는 권력과 지식의 관계를 연구한 푸코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문화학은 사상의 내용보다는 텍스트와 지식이 권력과 관계맺는 방식, 가령 어떤 담론이 어떤 권력을 생산하는지를 검토한다.

주지하듯이, 문화학의 등장은 민족주의에 관한 학문적 관심을 일으켰다. 물론 기념비적인 저서는 1983년에 초판된 Benedict Anderson’s Imagined Communities, 같은해 Eric Hobsbawm and Terence Ranger의 The Invention of Tradition이 있다.

문화학은 민족이 먼 과거의 ‘ethnic’ 공동체의 원시적 형태라기 보다 근대적 산물임을 강조한다. 그 경향중 하나는 공식적 의례(ritual)와 기구에 초점을 두어 국가가 엘리트 중심의 헤게모니를 유지하기 위해서 어떻게 민족을 이용하고, 소수자와 서발턴 그룹을 배제하는지를 밝혀내는 것이었다. 다른 한편으로, 문학이론의 영향을 받아 문학과 대중 문화가 ‘민족’을 서술하는 형태를 검토하고 ,어떻게 대중 소비가 기존 권력구성에 동의하는지를 밝히는데 관심을 두고 있다. 일반적으로, 이같은 연구들의 공통 지점은 계급 혹은 경제수탈이라는 분명한 형태의 지배보다 다른 형태의 지배방식을 밝히는 것이다. 푸코나 들뢰즈 이론의 영향하에 문화학 학자들은 ‘미시정치’ 영역내에서 ‘모세혈관처럼 작동’하는 권력에 초점을 두어왔다. 국가 혹은 경제와 관련된 법적인 형태로서의 권력보다는 일상생활 수준에서의 권력의 작동을 검토한 것이다. 최근 연구는 이같은 이론을 민족주의에 적용하여 민족 정체성을 창출하는 재연적(representational), narrative 전략을 밝히는 개념과 분석도구를 만들어냈다.

문화학에 대한 비판

하지만 최근들어 문화학도 비판을 받고 있는데, 이 비판적 흐름에는 초기 문화학을 주도했던 역사학자들까지도 참가하고 있다. 우선, 문화학에 대한 비판은 문화학의 극단적인 형태가 ‘사회적인 것에 대한 망각’(obliteration of the social) 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새로운 문화사(new cultural history)는 사회사가 유지했던 계급과 사회구조에 대한 고민 혹은 관심이 거의 없다. 문화학의 도입이 기존의 국가-시민사회 패러다임에 대한 비판, 동시대 사회운동을 이해하는데 있어 이 패러다임의 갖는 문제점들을 지적하는데 유용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문화사는 국가-시민사회 패러다임에 대한 체계적인 대안을 제시하지 하지 못했고, ‘사회적인 것’을 재개념화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둘째로, ‘문화가 사회적인 것을 전반적으로 대체’하였기 때문에 핵심 용어가 문화 담론에서 소멸하고 있다. 가령, 자본주의는 점차적으로 근대성이라는 모호한 용어로 대체되어 왔다. 이 전환이 보여주는 뚜렷한 징후는 정치-경제학에 대한 관심의 감소이다. 탈구조주의의 과잉속에서 자본주의는 이데올로기적인 모습을 띤 하나의 생산 양식으로 축소되어 또 하나의 metanarrative가 되었다.

민족주의 연구와 관련해서, 민족이 구성되었다는 문화학의 지적은 옳지만 ,그것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충분치 못하다는게 또 하나의 비판이다. 민족은 구성물 이상이다. 민족은 국가와 자본의 형태(예를 들어 정치경제), 양자에 의해 성립됨에도 불구하고, 문화학에서는 이 두가지 요소가 생략되어 왔다. 아마도 이 부분에 대한 가장 적절한 증거는 민족에 대한 비판과 세계화가 탈민족주의 시대를 열었다는 주장에도 불구하고 민족주의 역사학의 지속한다는 것이다. 다시 한번 민족의 개념을 살펴보고 수정할 필요가 있다.

문화 연구는 후기 자본주의 단계에 이른 미국 이데올로기의 학문적 반영이라는 비판도 있다. 풀어 말하자면, 문화연구때문에 학자들이 70년대 이후 일어난 세계 자본주의의 근본적 변화들을 놓치게 되는 (misrecognize) 되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것이다. 미국자본주의의 근본원리였던 포디즘(Fordism)은 70년대부터 하비(David Harvey)가 말했던 소위 유연한 축적(flexible accumulation)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flexible accumulation란 노동, 금융, 상품, 생산의 이동성이 강해지는 것을 의미한다.

문화연구는 정치적으로 진보적 비판이라고 하지만 그 비판은 사라지고 있던 자본주의의 한 형태인 Fordism에 대한 것이지, 그 이후 새로이 등장하는 자본주의의 형태에 대한 비판이 아니였다. 시대착오라는 것이다. Flexible accumulation 체제하에서 기존 사회관계가 불안정하게 되면서, 학자들이 사회구조에 대한 회의를 갖게 됐다. 금융과 생산의 비중이 역전되어 국가가 자본주의에 대한 통제력이 약해지니 자본주의는 그 중심이 없는 것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후기 자본주의 사회에 소비의 비중이 커지면서 언어, 기호, 표상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어있다. 즉, 문화연구는 flexible accumulation 시스템 밑에서 일어나고 또 겪는 경험들을 학문 차원에서 표현할 따름이라는 것이다. 문화연구의 인종관도 비슷한 비판을 받았다. 문화연구는 서구중심주의를 부정하지만 그 부정은 어디까지나 서구의 전통안에서만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또다른 서구중심주의 (또 다른 전통)를 창출한 것입니다.

이광수와 민족

앞으로 내가 쓸 책의 목표는 이광수의 텍스트와 행적을 통해 3.1운동 이후 핵심 담론으로서 민족의 등장을 밝히는 데 있다. 이광수는 가장 유명한 친일파이기 때문에 그를 통해 한국의 민족주의를 보는 것이 이상할지도 모른다. 이광수 이름에 붙어다니는 ‘반역자’, ‘친일파’라는 꼬리표는 검열의 형태로서 작용해 왔다. 연구할 가치가 없는 인물로 만들어 버림으로써, 친일행적에 집중된 관심은 이광수의 텍스트가 생성할 수 있는 지식의 형태까지 억압되어 왔다.

최근 이광수에 관한 연구는 이광수 텍스트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 식민지 시기 역사를 재해석하는데 유용함을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의 목표는 이광수와 한국의 민족 정체성간의 복잡다단한 관계를 이용해서 한국 민족주의의 본질을 조명하려고 한다. 이광수는 민족내에서 중심부와 주변부 양쪽에 자리잡고 있다. 이같은 모순된 위치는 민족 내부나 외부에서의 비판을 용이하게 한다.

이광수는 보기드문 연옥에서 사후인생을 보내고 있다. 그는 수수께끼가 되었다. 왜 그는 민족을 배신하고 일본에 협력하였을까? 그는 얻은 것이 거의 없었고 오히려 잃은 것이 많았기 때문에 납득이 가지 않는다. 이광수가 갖는 패러독스중의 하나는, 그 수수께끼가 답을 요구하면서도 설명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이 패러독스는 이광수에 대한 연구에서도 반영된다. 한편으로 어떤 학자들은 친일의 근원을 밝히기 위해서 이광수가 어떤 시기에도 진정한 민족주의가 아니었다는 듯이 이광수의 초기 행적을 검토하고 있다.

또 한편으로 다른 일각에서는 친일 문제를 제쳐두고 문학과 지성사적인 측면만을 부각시킨다. 최근까지, 김윤식의 ‘이 광수와 그의 시대’를 제외하고는 정면으로 이 문제를 풀려는 시도는 없었다. 이광수에 대한 많은 연구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이광수에 대한 이해는 여전히 부족하다. 요약하면, 이광수는 한국 근대성의 유령과 같은 존재다.

위에서 말했듯이, 이 책의 주요 목표는 3.1운동 이후 담론의 주요 용어로서 ‘민족’의 등장을 검토하려는 것이다. ‘민족’의 계보를 만드는 데에는 몇가지 방법이 있지만, 여기서는 이광수의 텍스트와 행적을 통해 살펴보려고 한다. 이광수는 1910년대 등장한 몇 안되는 지식인 중의 하나였고 20년대에 왕성한 활동을 하였다.

따라서 그의 텍스트는 1919년 이전과 이후의 담론 변화를 추적하는데 적절하다고 본다. 또 한편으로, 이광수는 국내 민족주의 운동의 중요 인물이었기때문에 그의 행적은 당시의 사회-경제적 발전과 맞물려 있었다. 이광수는 그가 민족주의담론의 형성과 민족주의 엘리트의 형성의 교차점에 있었다는 점에 그의 역사적 중요성이 있다. 달리 말하면, 이광수는 텍스트와 사회적 과정을 연결을 보여주는 접점이다.

이광수의 텍스트와 행적을 같이 보는 것은 다른 종류의 역사서술을 가능하게 한다. 직선적인 지성사는 이광수 사상이 민족주의 운동에 끼친 영향에 주안점을 둘 것이다. 다른 한편 전기적인 접근은 이광수의 일생과 텍스트가 서로를 반영한다는 듯이 두 가지를 결합시키는 경향이 있다. 여기서는 담론과 사회적 발전, 둘 중 하나를 다른 하나에 종속시키지 않은채, 일정 형태의 담론과 사회발전과의 관계를 이광수를 통해 보는 것이다.

각 장은 민족의 특정 측면을 보기 위해서 텍스트이건 기관이건 이광수와 관련된 각기 다른 ‘실마리’를 볼 것이다. 이 광수가 분명히 이 책의 초점이긴 하지만, 이광수는 어떤 장에서는 중심부를 차지하고 있고, 다른 곳에서는 배경으로 물러나 있다. 목표는 어느 한 요소에 치우지지 않는 ‘결합적인’(conjunctural) 역사를 만들어내는데 있다. 이 책은 ‘민족’을 구성하는 요소들이 3.1운동을 통해 어떻게 결합하였고, 당시 핵심 담론으로 등장하였는지를 규명하고자 한다.

여기서는 사회사와 문화사의 방법을 조합해서 이 책의 목표에 접근하고자 한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이광수의 텍스트를 통해 민족 담론을 분석하고, 이와 동시에 이광수의 행적을 통해 당시 민족주의 지식인의 사회사를 결합하려고 한다. 사회사의 방법론은 문화사의 민족주의 접근법이 갖고 있는 약점을 보완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첫째, 이 책은 ‘민족’에 있어 사회사적인 접근법을 취한다. 이 책에서는 민족이 단지 구성물이거나, 일종의 신화 혹은 상징이 아니다. 민족은 행동과 사회내 상호작용을 규정하는 사회적 관례(social practice)의 하나이다.

사실, 이 광수는 민족이 재연(representation)과 사회적 관례(social practice), 양자의 표현임을 예리하게 이해하고 있었기때문에 이광수의 텍스트를 통해 이 둘 사이의 긴장관계를 검토하는게 가능하다. 둘째, 식민지 한국은 국가-시민사회 패러다임의 유용성을 시험하는데 좋은 예가 될 것이다. 여기서는 ‘시민사회’라는 개념이 1919년 이전의 한국사회의 발전을 설명하는데에는 유용하지만, 그 이후의 변화를 설명하는데에는 새로운 사회적 개념이 필요하다고 주장할 것이다.

민족의 등장으로 미시정치적 수준에서 작용하는 지배의 형태가 도입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표면상이지만 그래도 가능해 보이는’ 시민사회의 자율성을 잠식하려는 의도에서 일상으로 목표를 전환한 것이었다.

셋째로, 이 책은 민족담론이 어떻게 인쇄자본주의라는 기구를 통해 생산되었는지를 검토한다. 앤더슨(Benedict Anderson)이 지적하였듯이, 민족과 가장 직접적으로 연관된 것은 자본주의 형태이다. '상상된 공동체'(Imagined Communities)에서 앤더슨은 인쇄 자본주의의 문화적 측면, 시공간 인식상의 효과에 주목했다.

민족은 자본과 지식 생산의 관계망에 위치하면서 지식 생산에 중심 역할을 담당하였다. 식민지 맥락에 있어서, 인쇄 자본주의는 피식민지인들이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몇안되는 기구중의 하나였기때문에 더 중요하다. 식민국가는 감시와 생체권력(biopower)의 조직(apparatuses)을 실질적으로 독점하였기 때문에, 식민통치기 동안 인쇄 자본주의는 사회운동의 중심으로 기능했을 뿐 아니라 피식민 자본가에게는 가장 성공적인 사업 아이템 중 하나였다. 이 맥락에서 식민지 부르주아의 형성과 담론생산에 있어 인쇄 자본주의의 역할을 검토할 것이다.

이같은 접근은 자본주의 발달과정 속에서 ‘민족’의 등장을 재정립하는데 기여하리라 본다. 1990년대 당시 남한 역사학계의 젊은 세대들은 계급적인 맥락에서 식민지기 사회-지식인 운동을 살피는 중요한 연구물을 내놓았다. 민족의 등장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계급분석은 분명히 중요하지만, 여기서는 상품의 역할에 초점을 둘 것이다. 다시 말해 민족과 사회적 삶의 상품화의 관계이다. 민족으로의 전환은 ,한편으로는 도시의 거리 생활, 사회주의 운동등으로 보여지는 근대성의 과도함에 대한 비판으로 작용했다. 다른 한편, 민족 등장의 전제 중의 하나는 상품의 생산과 전국적 시장의 형성이었다. 레이몬드 윌리엄즈(Raymond William)의 표현을 빌려 표현하면, 이광수는 여러 면에서 ‘근대성에 반대하는 근대론자’ (modernist against modernity)의 고전적 예였다.

이 책은 두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전반부는 1919년 이전이고, 후반부는 3.1운동 이후 약 10년정도의 이야기이다. 각 부분의 앞부분은 사회사, 뒷부분은 담론과 ‘민족’의 문학적 나레이션 분석으로 구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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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기획:슬라보예 지젝과 가라타니 고진의 가상대담
“문제는 정치경제학이다!”
2006년 09월 12일 (화) 23:35:33 복도훈 문학평론가 editor@kyosu.net

   
  지젝  
 
코기토(Cogito)……: 정신분석과 맑스주의


슬라보예 지젝: 안녕하십니까. 93년이었던가요, 제가 가라타니 고진 씨가 관여하던 ‘비평공간’에 초대되어 선생의 후배인 아사다 아키라 씨와 대담을 나눈 지가. 그 잡지에 ‘이데올로기의 숭고한 대상’(1989)을 연재번역한 때로부터 참으로 많은 시간이 지났군요. 상이한 조건 속에서도 비슷한 작업을 하는 지식인들을 만나는 일은 제겐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특히 맑스주의적 정치경제학비판에 대한 선생의 끈질긴 열정은 감동적입니다.


   
  고진  
 
가라타니 고진: 벌써 그렇게 됐나요. 최근에 선생께서 제 책인 ‘트랜스크리틱: 칸트와 맑스’(2003; 영문판)에 대해 쓰신 서평 ‘시차視差적 관점The Parallax View’(2004)은 잘 읽어보았습니다. 저 역시 선생님의 역작인 ‘까다로운 주체’(2005; 일역판)에 대해 짧게나마 서평을 썼습니다. 거기서 해체론을 포함하는 탈근대주의 이론에 맞서 데카르트의 코기토를 옹호하는 선생의 제스처는 제게 깊은 인상을 주었습니다. 일찍이 저도 포스트모더니즘이 유행하던 일본에서 ‘탐구’1·2(1986; 89)와 같은 이론적 저작을 통해 데카르트적 코기토를 옹호한 바 있지요. 그래서 선생의 책을 읽고 깜짝 놀랐습니다. 선생 말마따나 상이한 공간에서 작업을 하는 데도 ‘섬뜩하게’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으니 말입니다. 말 그대로 시차(時差, 視差)죠(웃음). 그 전에 독자들을 위해 간단히 자기 경력을 이야기하면 어떨까요?


지젝: 좋습니다. 저는 49년에 지금은 해체된 유고슬라비아의 연방 국가였던 슬로베니아에서 태어났습니다. 공산국가였기 때문에 저는 맑스주의와 친숙한 환경에서 태어났지만 맑스주의, 특히 프랑크푸르트학파가 당과 체제의 공식이론이었고 저는 거기에 반감을 가지고 있었기에 별도로 프랑스의 (탈)구조주의에 적극 관심을 가졌습니다. 제가 친구들과 함께 데리다의 ‘그라마톨로지’(1967)를 대학 1학년 때 번역했는데, 68년의 일이었으니 아마 세계 최초의 번역이 될 겁니다(웃음). 이후에 저는 라캉정신분석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졌습니다. 80년대 초반, 저와 친구인 믈라덴 돌라르와 함께 이론정신분석학회를 창립하고 라캉의 사위이자 수제자인 자크-알랭 밀레를 초청했습니다. 그때 밀레가 저와 돌라르에게 유학을 권해서 함께 파리 8대학에 갔습니다. 저는 88년에 ‘가장 숭고한 히스테리증자: 헤겔이 지나간다’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이듬해 영어로 ‘이데올로기의 숭고한 대상’을 펴냈습니다. 동구사회주의가 무너질 즈음이고 자유주의 만세의 합창이 울려 퍼지던 분위기였죠. 그 무렵 유고슬라비아도 해체되었고 저는 슬로베니아 대통령후보로 출마했다가 다행히 떨어졌지요(웃음). 그로부터 약 20여 년 동안 저는 주로 영어권에서 활동하여 30권 가량의 책을 펴냈는데, 최근에 당신 책에 대한 서평을 토대로 ‘시차적 관점’을 냈죠. 저는 슬로베니아 라캉학파의 좌장으로 알려져 있는데, 사실 그런 학파는 존재하지 않습니다(웃음). 그냥 저와 돌라르가 이론정신분석학회를 창립해 각각 회장, 부회장을 맡은 격이지요. 그렇지만 돌라르를 비롯한 제 동료들인 알렌카 주판치치, 레나타 살레츨, 미란 보조비치 등은 매우 독창적인 저작을 펴내고 있지요. 저는 현재 라캉정신분석과 헤겔철학, 맑스주의적 정치경제학비판을 결합하여 전지구적 자본주의에 맞설 보편성이라는 문제에 대해 고심하고 있습니다.


고진: 저는 41년생입니다. 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하는 한편 당시의 좌익운동이었던 전공투에 몸담았습니다. 그러나 당시의 좌익운동이 테러리즘으로 귀결되고 난 후 저는 문학비평을 하는 동시에 ‘맑스, 그 가능성의 중심’(1974)과 같은 저작을 썼습니다. 맑스주의를 죽은 개 취급할 그 당시에 맑스에 관한 책을 써서 욕 좀 먹었지요(웃음). 한편으로 저는 ‘일본근대문학의 기원’(1980)과 같은 문학비평적 저작을 통해 근대문학이 제국주의적 국민국가의 이데올로기와 공모하고 그것을 은폐한 흔적을 쫓으면서 일종의 해체론적 비평을 감행했습니다. 물론 그것은 푸코의 구성주의나 데리다의 해체주의와 연관성이 있지만, 이른바 그것들의 속류판인 포스트모더니즘과는 다릅니다. 나쓰메 소세키라는 일본근대 초창기의 대작가에서 저는 문학의 다른 가능성을 엿보았지요. ‘트랜스크리틱’을 쓴 최근까지 제 관심사는 자본=국민=국가라는 보로메오 매듭을 해체하는 신연합운동(New Association Movement)의 구체적인 형태를 구성하는 데에 있습니다. 실패로 끝났지만 지역통화(LETS)에 기반을 둔 NAM운동을 했던 것도 그런 연유였지요. 돌이켜보면, ‘맑스, 그 가능성의 중심’의 자본주의 비판, ‘일본근대문학의 기원’에서의 국민국가비판이 ‘트랜스크리틱’에서 종합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트랜스크리틱’까지 저는 맑스주의 정치경제학비판과 문학비평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느라 부심했지요. 최근에 ‘근대문학의 종언’(2005)을 통해 저는 문학을 떠난다는 요지의 발언을 했습니다. 문학의 사회적 역할이 그 소임을 다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아무튼 저는 혼자서 1인 2역을 담당하느라고 거의 분열될 지경이었지요. 라캉학파 정신분석가에게 정신분석치료를 받다가 그만두었을 정도니까요(웃음). 아시다시피 일본은 라캉학파 시장(市場)입니다.


……에르고(Ergo)……: 이데올로기와 자본주의 비판


지젝: 저 역시 밀레로부터 정신분석임상훈련을 받다가 그만두었지요. 지금 생각하면 둘이서 교활한 분석가 대 음험한 히스테리증자로 지적 곡예를 벌였다는 느낌이지요. 그나저나 그때부터 저는 라캉정신분석의 임상치료에 대해 거리를 두기 시작했습니다. 밀레와도 사이가 소원해 졌죠. 물론 라캉에 대한 그의 정교화작업은 여전히 찬탄을 불러일으키지만요. 저는 정신분석의 사회적·문화적 활용을 더 중요시 합니다. 저는 선생이 문학에 대해 비평작업을 수행한 것에 상응해서 대중문화에 대한 일종의 ‘증상적 독해’를 해왔지요. 그러나 저는 ‘삐딱하게 보기’(1991)나 ‘당신의 징후를 즐겨라!’(1992) 등을 통해 할리우드 영화와 고급이론을 접목시키고 거기서 사람들이 대중문화를 ‘즐기는’ 방식을 관찰했습니다. 거기서 저는 온갖 정치적·사회적 이데올로기적 꿈, 말실수, 소망충족, 특히 죽음충동과 향유(jouissance)의 뒤틀린 형태를 발견했죠. ‘이데올로기의 숭고한 대상’에서 저는 포스트이데올로기 시대의 인간은 이데올로기로부터 거리를 둔 냉소적(풍자적) 형태로 이데올로기에 붙들려있다는 공식을 내놓았습니다. 단순히 이데올로기에 대한 거리를 둔, 맑스로부터 알튀세에 이르는 비판적 독해로는 만족할 수 없었죠. 왜냐하면 사람들은 이데올로기에서 바로 자신들이 ‘즐길만한’ 뭔가를 발견하기 때문이죠. 그렇기 때문에 그것이 그릇된 것인 줄 알면서도 (거리를 두면서도) 그것을 행하는 (그것에 참여하는) 이상한 역설이 생겨납니다. 예컨대 90년대 이후의 인종주의, 특히 제 조국이 속해있던 발칸반도에서 벌어진 인종적 증오와 폭력의 향유는 사실 그에 대해 경악한 서구의 냉소주의와 구조적으로 상동관계입니다. 돌라르는 발칸반도는 서구유럽의 무의식이라고 했죠. 저는 라캉, 특히 후기라캉의 정신분석을 이데올로기비판의 강력한 형태로 재가공했습니다. 실재(The Real)와 향유, 증환(sinthome) 등과 같은 개념이 제게 중요하죠.


고진: 저는 선생과는 조금 다르게 맑스, 특히 ‘자본론’을 제 비판적 사유의 준거점으로 삼고 출발했습니다. 제가 하부구조만 선생이 상부구조만 문제시했다는 건 오해가 되겠죠. 저와 선생 모두 상품형식에 대한 맑스의 비판에서 출발한다는 점에서 그것은 정치경제라는 매트릭스를 문제 삼고 있죠. 저도 ‘일본정신분석’이라는 글에서 정신증적 폐제(foreclosure)라는 라캉의 개념을 통해 안으로는 포스트모던적이지만 밖으로는 자폐적인 일본의 담론공간을 분석한 바 있습니다. 뭐, 일본의 어떤 포스트모던 역사학자들은 일본의 남경대학살(1938)은 구성된 담론에 불과하다는 식으로 말하니까요(웃음). 지나가면서 언급했지만 ‘트랜스크리틱’에서 자본=국민(nation)=국가(state)라는 삼항조는 실재=상상계=상징계라는 라캉적 보로메오 매듭과 연결됩니다. 이건 단순한 유비는 아닙니다. 저는 오랫동안 ‘자본론’을 읽으면서 생산과정과 유통과정의 숨 막힐 듯한 영구적 순환이 자본주의경제를 지탱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과정과 유통과정의 기묘한 틈새, 예컨대 공황(위기)을 통해 자본주의가 더욱 가속화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지젝: 상처는 상처를 낸 창만이 치유한다!


고진: 그렇죠. 예컨대 물건은 팔리지 않으면, 다시 말해 유통과정에 참여하지 않으면 상품이 아닙니다. 거기에는 특유의 ‘목숨을 건 비약’이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공황 때에 생산된 물건을 바다에 내다 버리는 것이지요. 그건 상품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저는 유통과정, 즉 화폐(M)-상품(C)-화폐(M) 사이에 틈새, 생산자인 노동자들이 동시에 소비자가 되는 지점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까지의 맑스주의 정치경제학은 생산과정에 초점을 맞췄기 때문에 파업, 스트라이크와 같은 폭력적 형태로 자본주의에 저항해왔지만, 거기엔 한계가 있습니다. 오히려 유통과정에 주목하면 문제가 풀리죠. 생산자는 곧 소비자이기도 합니다. 맑스가 2천년 동안 지속해온 수수께끼라고 말했던 잉여가치는 노동자가 물건을 생산해서 상품이 될 때 넘겨지는 차액이지만, 이것은 또한 노동자=소비자가 상품을 구매할 때도 발생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지역통화나 NAM을 통해 잉여가치가 0(zero)인 교환형태를 구상했던 것입니다. ‘당신의 노동력 상품을 팔지 마라’는 안토니오 네그리의 이론과 함께 ‘자본가의 상품을 사지 마라’는 간디의 노력은 소중합니다. 지금까지 자본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 듯하지만, 그것은 오늘날 비판만으로는 사라지지 않는 국민=국가를 재조명하는 측면도 있습니다. 국민에 대해 소비자연합을, 국가에 대해 소비자 연합단체나 기구를 상상해보면 됩니다. 그것은 국민=국가 ‘사이에 존재하는’(in between) 새로운 코뮌의 기반이 될 것입니다.


……숨(Sum): 레닌주의와 신연합운동


지젝: 칸트 식으로 말하면 국민=국가=자본은 초월적 가상과 같은 것이라서 계몽주의적 비판만으로는 절대 사라지지 않습니다. 오늘날 유행하는 다문화주의적 탈식민주의와 국민국가비판에 대해 제가 마뜩해하지 않는 이유도 거기에 있죠. 선생도 이에 대해 언급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칸트철학에서 초월적 가상은 보통 신·세계·영혼 같은 것인데, 이것은 이성 자체에서 연유하는 형이상학적 가상이라는 점에서 문제적입니다. 비판의 탄환으로 쏘아 죽였다싶더라도 흡혈귀처럼 살아남죠. 억압된 것의 회귀입니다. 그러고 보면 선생이나 저나 오늘날에 벌어지는 ‘칸트로의 회귀’에 일조하고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의견차가 있을 듯 합니다. 저는 독일관념론에서 헤겔을 가장 중요한 철학자로 생각하는데, 선생은 좀 다른 듯 합니다. 선생의 헤겔 비판은 포스트구조주의자들의 전형적인 헤겔 비판, 즉 절대지에 가보지도 않고 의식과 절대지의 순환을 처음부터 닫힌 체계로 파악하는 듯…


고진: 이제 서로의 차이를 확인하는 일만 남은 건가요(웃음). 선생의 책을 읽다보면 참조하는 철학자의 계열이 다르다는 걸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선생은 데카르트-칸트-셸링-헤겔과 함께 기독교철학자인 말브랑슈-파스칼-키르케고르를 중요시하지요. 현대철학자 중에서는 플라톤주의자인 알랭 바디우가 선생의 이론적 동지이고요. 저는 데카르트-스피노자-칸트-니체와 함께 데리다-푸코-들뢰즈의 사유노선에 아무래도 가까운 듯 합니다. 참, ‘신체 없는 기관: 들뢰즈와 결과들’(2004)을 읽어보니 선생은 모두가 사랑하는 스피노자를 홀로 싫어하고 계시더군요. 상징계를 고려하지 않은 상상계의 철학자라고(웃음).


지젝: 들뢰즈의 표현을 비틀어 저는 그것을 스피노자 뒤에서 하는 헤겔의 비역질이라고 했죠(웃음). 사실 헤겔의 절대지는 의식의 완성된 형태가 아니라 그것이 끊임없이 실패하는 구조적 불가능성이라고 보고 싶습니다. 저는 그것을 실재라고 부릅니다. 사드 소설에는 자신의 성기를 자신의 항문에 삽입하는 기괴한 장면이 나오는데, 그런 점에서 의식을 절대지 뒤에 삽입시켜 닫힌 원환 고리를 완성하는 도착증적 꿈을 꾸는 자들은 바로 헤겔에 대한 비판자들인 거죠.


고진: 글쎄요. 정신분석적인 사후(事後)의 시점에서 헤겔을 전유한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공평을 기하자면, 헤겔의 ‘법철학’과 같은 저서는 중요합니다. 헤겔은 다양한 욕망의 형태를 긍정하는 시민사회(자유)를 인정하면서 그것이 초래할 수 있는 불평등을 제어할 수 있는 국가(평등)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이 둘의 불일치는 국민(형제애)이라는 상상력으로 보완되지요. 이것은 나중에 맑스가 각각 ‘루이보나파르트 브뤼메르 18일’(1852)과 ‘자본론’(1867)에서 행했던 근대국민국가비판과 정치경제학비판으로 이어집니다. 공교롭게도 맑스는 헤겔에 대한 긍정적 언급으로 두 책을 시작하고 있죠. 헤겔에겐 확실히 이러한 잠재력이 있습니다. 그래도 저는 ‘타인을 수단뿐만 아니라 목적으로도 대하라’라고 말하는 칸트에서 코뮤니즘의 시작을 보고 싶습니다. 그는 계몽에 내재하는 ‘적대’(antagonism)에 대해 누구보다도 민감했습니다. 칸트는 계몽이 먼 미래에는 완성될 것이라고 보았지만, 스탈린주의자처럼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라는 식으로 말하지 않았죠. 우리는 아직 태어나지 않은 후손을 상상하고 투쟁해도 좋습니다. 환경문제나 석유전쟁, 기아, 치명적 전염병 등이 일어나는 오늘날의 자본주의체제에서 칸트의 정언명법은 훌륭한 21세기 윤리입니다.


지젝: 그렇군요.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전지구적 자본주의 쪽으로 옮겨가고 있는데요. 오늘날 지구촌 곳곳에서 일어나는 자본에 대한 대항운동에 대해 의견을 나누면서 짧은 대담을 끝낼까 합니다. 네그리·하트의 ‘다중multitude’(2005)에 대해 말해보죠.


고진: 점점 더 가혹해지고 있는 후기자본주의체제에서 다중은 분명 긍정할 만한 요소가 있는 대항운동의 우세한 작인이지만, 뭐랄까, 지나치게 낭만적(문학적)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체제가 허용하는 한에서의 일시적 축제라고나 할까요. 다중은 맑스·엥겔스의 ‘공산당 선언’(1848)에서 말한 프롤레타리아트의 21세기 판본이라고 보아도 무방합니다. 요점은 ‘만국의 노동자여, 일하지 말자’입니다. 하지만 아까 말한 것처럼 이것 역시 생산력의 측면에서 자본에 대한 대항운동을 구상하는 전통적 발상입니다. 그리고 거기에는 국가개념에 대한 성찰이 없습니다. 신자유주의적 제국주의에 대항한다면 알 카에다도 다중이 아닙니까. 다중은 애매모호합니다.


지젝: 다중은 이렇게 말하죠. ‘나는 동성애자이고 전업주부이며, 비정규직 노동자이고 팔레스타인인이다…’ 이것은 은유, 시(詩)라면 문제가 없지만, 분명 정치는 아닙니다. 연대는 필요합니다만, 저는 다른 관점에서 다중이 성, 인종 등의 범주를 들여오면서 계급문제를 흘려버리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그들도 계급을 다루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성, 인종과 같은 종(鍾)으로 격하됩니다. 계급은 종이되 종이면서 유(類)입니다. 유일무이한 적대죠. 역시 문제는 정치경제학입니다(웃음)! 다중이론가들은 스피노자의 정동(affect)개념을 근간으로 삼지만, 이 정동이야말로 파시즘의 구성요소이기도 하죠. 그들은 ‘권력 없는 권력’을 원한다 말하지만, 이건 손안대고 코풀자는 거 아닙니까. 만일 그들이 권력을 잡는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오히려 당파적 레닌주의나 바디우식의 마오이즘이 역으로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고진: 다중에 대한 선생의 비판에는 동의합니다만, 레닌주의, 마오이즘의 정치적 폭력과 테러리즘은?
지젝: 저는 세계를 비난하되 자신은 거기에 빠져있는 좌파적 ‘아름다운 영혼’의 자기기만을 선택하느니보다 보수주의자처럼 손에 피를 묻히더라도 단두대를 선택하는 행위(act)가 낫다 생각하는 편입니다.


고진: 쉽지 않은 문제군요. 선생 식대로라면 자코뱅적 테러와 알 카에다의 테러를 어떻게 식별하죠? 저는 오히려 자본의 적대를 인식하는 새로운 소비자운동이야말로 대안이 아닐까 싶은데. 그렇지만 저나 선생이나 자본에 내재한 적대로부터 코뮨적 유토피아를 구상한다는 점에서는 동지입니다.(웃음)


지젝: 네(웃음). 아마도 그러한 노력이야말로 유토피아적인 순간에서 영원을 창출하는 행위일 겁니다. 자, 이것으로 짧은 대담을 아쉽게 정리해야할 것 같군요. 감사합니다.

복도훈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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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싱어 교수 인터뷰(2001년 5월)


   윤리는 인간을 다른 동물과 구분 짓는 중요한 잣대이다. 그러나 최근 주로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인간의 삶을 둘러싼 조건이 급격히 변화하면서 무엇이 윤리적으로 옳은지에 대한 판단이 흔들리고 있다. 인류의 새로운 윤리적 기준을 세우려고 하는 미국 프린스턴대 피터 싱어 교수를 침례신학대 배국원 교수가 만나 그가 주장하는 '실천윤리학'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편집자)


―당신은 실천윤리학이라는 분야를 새롭게 정립한 학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윤리는 당연히 실천을 전제로 한다는 관점에서 본다면 실천윤리학이라는 말의 의미가 모호해집니다. 실천윤리학이란 과연 무엇이며 왜 필요합니까?


"실천윤리학(practical ethics)은 전통윤리학의 한계로 인해 요청됩니다. 현대 사회는 급격하게 변하고 있고 낙태·안락사·환경오염·독점자본 등 문제들이 새롭게 등장해서 윤리적 결단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존의 윤리학은 이런 문제들에 적절하게 대응할 능력을 갖고 있지 못합니다. 그것은 윤리학자들이 구체적인 윤리적 대안을 제시하기보다 윤리 그 자체의 의미를 질문하는 방법론적 탐구에 더욱 치중하여 왔기 때문입니다. 실천윤리학은 이름 그대로 현대인의 윤리적 실천을 목표로 하는 학문으로서 이론적 탐구에 그치는 윤리가 아니라 실행 가능한 구체적 윤리를 제시하려고 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포스트모던 시대의 특징은 다양성과 상대성이라고 말합니다. 상대주의가 지나쳐 허무주의까지 거론되는 우리 시대에 어떻게 윤리가 가능합니까?


"윤리의 전통적 기초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판단에는 동의합니다. 종교적 권위 혹은 계몽주의의 이성적 권위에 의거한 도덕률은 현대인들에게 더 이상 의미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현대인에게 도덕(morality)은 무의미할지라도 윤리(ethics)는 필요합니다. 인간은 반드시 행동을 위한 결단을 내려야 하고 이는 윤리적 선택과 기준을 요구합니다. 윤리적 선택이 가져올 결과를 기준으로 삼자는 나의 결과주의(consequentialism)는 물론 공리주의로부터 영향 받은 것입니다."


―결과주의를 잘 보여주는 예가 동물 살상에 대한 당신의 반대라고 보여집니다. 사람이 육식을 하는 것이 왜 비윤리적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제가 쓴 '동물해방'의 중요한 논지는 인격체인 동물에 대해 인간이 지극히 비인격적인 살상행위를 자행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로지 더 많고 더 좋은 고기를 얻기 위하여 온갖 비윤리적인 방법으로 사육하고 살육하고 있지 않습니까? 또 가축을 기르기 위해 산림을 목장으로 개조하면서 환경을 훼손하게 되고, 또 목장의 가축들은 전 세계 메탄가스의 20%를 배출하여 더욱 환경을 오염시키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인간이 동물과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당신은 동물도 인간과 같은 '인격체(person)'라고 강조합니다. 전통적으로 사람이라고 해석되어 왔던 이 단어(person)를 어떻게 새롭게 정의할 수 있습니까?


"사물들은 세 가지 범주로 구분될 수 있습니다. 무감각한 것, 감각은 있으나 자의식을 갖지 못한 것, 감각과 자의식을 가진 것, 세 종류입니다. 이 중에서 마지막 범주에 해당하는 생명체는 모두 인격체(person)라고 나는 정의합니다. 나는 비록 동물학자는 아닙니다만 물고기 등은 두 번째 유형에, 다른 많은 동물들은 세 번째 유형에 속한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은 자신의 행동이 다른 모든 인격체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를 고려해야 할 윤리적 의무를 가지고 있습니다. 20 세기에 들어와서 남성우월주의와 인종차별주의는 종식을 고했습니다.  이제 남은 과제는 인간우월주의입니다."


―방금 말씀하신 인격체의 정의는 획기적입니다. 그러나 더욱 놀라운 것은 똑같은 정의를 적용해서 당신이 낙태를 찬성하고 불구로 태어난 유아의 살해를 지지한다는 사실입니다. 획기적인 정의가 오히려 엽기적으로 적용되고 있지 않은가 하는 두려움이 있습니다.


"뱃속의 태아는 감각을 느끼지만 자의식을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두 번째 유형에 해당하는 비인격체입니다. 뇌가 없게 태어난 무뇌아 등 특정한 불구아들도 역시 정당한 의미의 인격체가 아닙니다. 그러나 일반인들이 오해하듯 내가 무조건적인 낙태와 불구아 살해를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그런 가능성을 위한 윤리적 근거가 있다고 말할 뿐입니다."


―서두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실천윤리학은 우리 시대를 위한 윤리적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 요청됩니다. 그러나 지금 세계에는 복제인간의 가능성에 대한 논란이 가열되고 있는데 정작 실천윤리학자들은 아직 이 문제에 대한 분명한 대답을 주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테크놀로지가 너무 빠르게 발달하여 대응하기 숨이 가쁠 지경입니다. 원칙론적 의미에서 인간 복제는 윤리적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3대 독자로 태어난 자식이 죽을 수밖에 없는 경우 등 여러 가지 정황에서 복제 결정은 정당화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우려하는 것은 복제의 테크놀로지가 일부 특권 부유층에 의해 왜곡되거나 남용될 가능성입니다. 우생학적 방법으로 신귀족주의적 사회계층이 형성되는 등의 부적절한 결과에 대한 대비가 필요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현재 실천윤리학이 당면한 가장 시급한 과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다국적 기업의 횡포 등 기업 윤리를 바로잡는 일도 심각합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문제는 역시 올바른 환경 윤리의 정립입니다. 지금 지구는 날이 갈수록 오염되어 가고 인간을 포함한 모든 종의 생존이 위협받고 있습니다. 따라서 더 이상 인간만을 위한 윤리가 아니라 모든 생명체를 위한 공생의 윤리가 절실히 요청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자 나라가 가난한 나라에 대한 경제적 특권을 포기하고 나아가 인간이 다른 종에 대한 지배적 특권을 포기할 때 참다운 공생의 윤리가 수립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배국원·침례신학대교수

chosun.com 2001.05.08


■싱어 누구인가


실천윤리학의 새 지평 개척


   실천윤리학의 세계적인 거장인 피터 싱어(Peter Singer)는 현대 사회의 복잡한 윤리적 문제들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과 분명한 입장 표명으로 유명하다.

   1946년 호주의 유태인 이민 가정에서 태어난 싱어는 멜버른 대학을 거쳐 영국 옥스퍼드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77년부터 호주 모나쉬 대학에서 가르치다가 1999년 미국 프린스턴 대학의 생명윤리 교수로 자리를 옮겨 활동하고 있다. 현재까지 모두 27권의 저서를 집필 또는 편집한 싱어는 '실천윤리학'이라는 분야를 새롭게 정립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활발한 기고와 강연 활동을 통해서 윤리적 견해를 거침없이 피력해 온 싱어는 현재 활동하고 있는 철학자들 가운데 일반인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사람 가운데 하나이다. 싱어가 29세 되던 1975년에 출판했던 '동물해방'은 40만권이 넘게 팔렸으며 9개 언어로 번역되었다. 동물 살해을 반대하는 철학적 논증과 더불어 채식주의자를 위한 요리법까지 소개하고 있는 이 책을 통해 딱딱한 철학 서적에 식상해 있던 독자들은 삶에 있어서 철학의 위치를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를 가질 수 있었다.

   그러나 싱어의 명성만큼이나 그에 대한 비판도 세계적이다. 철학자들은 그가 너무 피상적이라고 비판하고 일부 청중들은 낙태와 안락사를 지지하는 싱어를 인종 청소를 주장했던 히틀러에 빗대어 야유한다. 프린스턴 대학으로 옮길 때 또 한 차례 반대 여론에 직면했던 싱어는 그를 좋아하든 싫어하든 현재 가장 주목받는 철학자 가운데 한 사람임에 틀림없다.


편집 by Han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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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잃은 ‘저소득 젊은층’ 증가…일본 미래 심각”
양극화 해법을 묻다 ① 야마다 마사히로 도쿄가쿠게이대학 교수
 
 
한겨레 김도형 기자
 
 
» 야마다 마사히로 도쿄가쿠게이대학 교수
 

세계 각국이 계층간 빈부 격차가 극심해지는 양극화 확대로 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경쟁지상주의적 신자유주의의 확산에 따른 공통적 현상이다. 일본·중국·미국·유럽의 전문가들과 연쇄 인터뷰를 통해 양극화 해법을 모색해본다.

 

“전 세계의 경제구조가 바뀌어 점점 풍요로운 사회가 되어가는 것에 근본 원인이 있다고 생각한다. 세계적으로 사회가 풍요로워지면서 정보통신산업이 발달하고 글로벌화와 서비스화가 진행되면 높은 수입으로 승부를 겨루는 사람과 수입이 낮아도 좋은 사람으로 나눠진다.”

일본 격차문제 전문가 야마다 마사히로 도쿄가쿠게이대학 교수(교육학·가족사회학 전공)는 양극화의 배경을 묻는 질문에 ‘풍요로워진 사회’라는 말을 꺼냈다.

“공업으로 물건을 만들어 소비해가던 데서 물건에 뭔가를 부가하거나, 서비스·정보로 즐거워하는 시대로 변했다. 보통 물건의 가격은 글로벌화의 영향으로 점점 내려갈 수밖에 없다. 단순히 물건을 만들거나 파는 사람의 인건비는 점점 내려간다. 역으로 새로운 물건이나 시스템을 만드는 사람 등 전문적 능력을 갖춘 사람은 생산성이 높아져 수입은 늘어난다.”

그는 일본의 격차(양극화) 문제에서 가장 우려할 대목은 장래에 대한 희망을 잃어버린 저소득 젊은이들이 늘어나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현재는 이들이 부모와 함께 살고 있어 문제가 표면화되지 않지만, 부모 세대가 사라지는 15~20년 뒤쯤이면 심각한 사회문제로 부상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부모에 기생하는 일본청년들 당장은 ‘빈곤’ 못 느껴도 20년뒤엔 심각한 문제될 것”

-일본의 격차 문제에 대해 ‘희망 격차’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다. 일본만의 특징인가?

=한국도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즉, 일본의 저소득 젊은이는 대개 부모 슬하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반항하거나 폭동을 일으키지 않는다. 나는 그들을 ‘패러사이트 싱글’(부모에 기생하는 독신)이라고 부른다. 이들은 비교적 넉넉한 부모와 함께 살고 있기 때문에 수입이 낮아도 생활이 가능하다. 따라서 지금 당장은 생활의 격차가 심각한 상황에 이르지 않고 단지 장래가 불안한 젊은이가 늘어나고 있다. 이들은 아무리 노력해도 위에 올라가지 못하고, 일을 해도 희망이 없는 그런 사람들이다. 미국이나 영국이라면 아무리 능력이 없어도 생활을 위해서는 열심히 일하지 않을 수 없다. 그에 비해 일본에선 열심히 일하지 않아도 부모 밑에서 생활할 수 있기 때문에 니트 (직업도 없고, 교육훈련도 받지 않는 젊은이) 같은 사람이 나오게 된다. 그런 점이 일본 격차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의 저소득 젊은이는 얌전하다. 계속해서 저소득에 머물러 있지만 생활면에서 곤란하지 않다. 그렇지만 20년 뒤쯤 그들의 부모가 죽게 되면 부모의 연금이 없어져 격차 문제는 더욱 심각하게 드러나게 될 것이다. 그 사이에 어떻게 하든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안된다.

-저소득 젊은이들이 부모에게 얹혀사는 게, 일본의 격차 문제가 정치문제화하지 않는 이유와 관계 있다는 얘기인가?

=그렇다. 연 수입이 100만~150만엔에 불과한 젊은이가 수백만명은 있을 것이다. 그 정도 수입으로는 생활하기가 불가능하므로 폭동이 일어나거나 범죄가 늘어날 것이다. 하지만 일본에선 부모가 그 부족분을 보충해주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 얼마전 끝난 도쿄 도지사 선거에서 격차 문제가 선거의 초점이 되지 않은 것도 같은 이유다. 지금 빈곤을 느끼지 않으니까, 생활이 곤란하지 않으니까 잠잠한 것이다. 장래를 생각하면 깜깜하니까 지금을 즐기자는 젊은이들이 늘고 있다. 나는 그것이 희망 격차라고 말하고 있다.

7월 참의원 선거에서도 이 문제는 초점이 되지 않을 것으로 본다. 일본은 문제 해결을 일단 뒤로 미루는 사회다. 가정도 그렇고 사회적으로 그렇다. 그 대신 결혼을 안 하거나 못하는 젊은이가 늘어나거나 결혼해도 아이를 낳지 않아 생기는 저출산 문제가 더 크게 부각되는 게 일본의 현실이다.

-희망 격차를 줄이기 위한 대책은?

=제대로 노력하면 평가받는 일을 얻을 수 있는 사회 체제를 만들지 않으면 안된다. 현재는 제대로 된 일자리의 숫자 자체가 모자란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비정규직 등 생산성이 낮은 일에 종사하는 기간을 줄이고, 비정규직도 직장에서 승진할 수 있는 길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 그런 다음 생산성이 높은 일자리를 얻으려는 직업교육의 기회를 보장하고, 정규직 등 고생산성의 일자리를 늘려야 한다. 또한 (주요 국가 가운데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낮은) 최저임금을 올려 노동시간을 규제하는 노동정책을 통해 사회 전체의 효율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노동규제는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방해해 비효율적이라고 강조하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비정규직 노동자가 정규직 일자리를 얻는 기회를 늘리는, 즉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촉진하기 위한 노동규제도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희망을 잃어버린 젊은이들에게 경제적 성공과는 별도로 가치있는 일에 대한 매력을 느끼게 해줄 필요도 있다. 그 수단으로는 환경보전이나 고령자 개호(수발), 육아지원 등 새로운 형태의 공공사업을 실시해 정규직의 길에서 벗어난 사람들, 특히 젊은 사람들을 흡수하는 방안이 있다.

“제대로 된 일자리 늘리고 공공사업에 젊은층 흡수해야…최저임금 등 노동규제 필요”

-아베 신조 정권은 큰 성공을 거둔 영국 정부의 정책을 본뜨고 있지만, 예산투입에 소극적이어서 구두선이라는 비판도 있다.

=아베 정권이 무엇을 하려는 것은 알겠지만 예산 규모가 작기 때문에 근본적 해결은 안된다. 소득세나 상속세를 예전 수준으로 올릴 필요도 있다.

-세금을 올리는 문제에 대해서는 거부감이 있을텐데.

=부자들을 상대로 세금을 올리자는 얘기이므로 일반인들의 저항은 없을 것이다. 일각에서 정부의 세금낭비를 이유로 반대하고 있지만, 격차대책은 세금을 낭비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다른 문제다.

-격차대책을 위해 기업의 부담을 늘려서는 안된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는데.

=비정규직을 모두 정규직으로 전환한다면, 대기업은 여력이 있을지 모르지만 중소기업들은 쓰러진다. 국민 전체의 부담을 늘리려는 방향이라면 모를까. 기업의 부담을 늘리는 것보다는 세금을 늘리는 편이 낫다. 중소기업은 정말 힘들다.

-영국 국방부가 얼마전 앞으로 30년 뒤면 양극화가 격화돼 중류층이 없어지면서 ‘마르크시즘’이 부활한다는 보고서를 내놓았다.

=유럽에서 비정규직에 머물 수밖에 없는 저소득층 젊은이가 늘어난다면 마르크시즘이 부활하느냐, 아니면 이들이 종교에 빠지느냐 가운데 하나가 될 것이다. 즉, 잃어버릴 게 전혀 없고, 지금의 생활이 계속해도 좋은 게 아무 것도 없는 사람들은 혁명을 요구하거나 종교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어떡하든 이런 흐름에 브레이크를 걸 필요가 있다. 제도를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으면 안된다.

도쿄/글·사진 김도형 특파원 aip209@hani.co.kr

 


 

 

야마다 마사히로는
일본사회 특유의 ‘희망격차’ 주목

지난해 일본 사회에서 널리 쓰인 10대 용어 가운데 하나로 ‘격차사회’라는 단어가 선정됐다.

이 말을 퍼뜨린 주인공은 도쿄가쿠게이 대학 교육학부의 야마다 마사히로(50) 교수다. 2005년 발간한 <희망격차사회>라는 저서를 통해, ‘희망격차’라는 독특한 개념으로 오늘의 일본 사회를 포착해 그 배경을 추적하고 처방전을 제시했다. 그는 표면적인 경제 격차만을 보지 않고, 일본의 독특한 사회·가족적인 구조가 잉태한 장래의 격차 위험성에 주목하고 있다.

야마다 교수는 격차 세계화의 요인이 경제의 글로벌화를 낳은 신자유주의라고 비판하면서도, 무조건적인 비판은 ‘뉴러다이트운동’(신 기계파괴운동)이라는 양비론적 견해를 갖고 있다. 그런 점에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 강조와 소득·상속세의 과감한 증세를 해법으로 내놓은 또다른 전문가 다치바나키 도시아키(도시샤대학 경제학과 교수)에 비해 약간 오른쪽에 위치해 있다.

야마다 교수는 2006년 9월 자신의 처방전을 좀더 구체화한 <신평등사회-희망격차를 넘어서>를 펴냈다. 1981년 도쿄대학을 졸업한 뒤 같은 대학원 사회학연구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도쿄/김도형 특파원

 

 

 

빈곤률 10년새 2배
비정규직 늘어난 탓

한때 ‘1억 총중류’라는 말이 구가될 만큼 세계적인 평등사회였던 일본은 이제 ‘격차사회’말이 널리 쓰이는 양극화의 나라로 변모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발표를 보면, 일본의 빈곤율은 1996년 8%에서 2005년 15.3%로 급증해 주요국 가운데 세 번째로 높게 나타났다. 1990년대 초반 거품경제 붕괴 이후 비정규직이 전체 노동자의 1/3 가까이로 크게 늘어난 게 가장 큰 요인이다.

현재 일본은 전후 최장의 경기확대 국면을 맞고 있으나, 그 과실이 골고루 미치지는 못한다. 기업들이 부담 상승을 이유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에 소극적이기 때문이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5년 재임기간 신자유주의 구조개혁을 단행해 지금과 같은 경제회복의 발판을 마련했지만, 감세 등 경제 활동하기 좋은 환경 만들기에 치중한 나머지 양극화 확대라는 부정적 유산도 남겼다.

제1야당인 민주당은 오는 7월 참의원 선거에서 격차문제를 최대 선거쟁점으로 삼을 태세다. 그러나 지난 4월 지방선거에서 유권자의 관심을 끌지 못한 바 있어, 쟁점화가 가능할지 불투명하다는 견해도 나온다.

도쿄/김도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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