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 잃은 ‘저소득 젊은층’ 증가…일본 미래 심각”
양극화 해법을 묻다 ① 야마다 마사히로 도쿄가쿠게이대학 교수
 
 
한겨레 김도형 기자
 
 
» 야마다 마사히로 도쿄가쿠게이대학 교수
 

세계 각국이 계층간 빈부 격차가 극심해지는 양극화 확대로 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경쟁지상주의적 신자유주의의 확산에 따른 공통적 현상이다. 일본·중국·미국·유럽의 전문가들과 연쇄 인터뷰를 통해 양극화 해법을 모색해본다.

 

“전 세계의 경제구조가 바뀌어 점점 풍요로운 사회가 되어가는 것에 근본 원인이 있다고 생각한다. 세계적으로 사회가 풍요로워지면서 정보통신산업이 발달하고 글로벌화와 서비스화가 진행되면 높은 수입으로 승부를 겨루는 사람과 수입이 낮아도 좋은 사람으로 나눠진다.”

일본 격차문제 전문가 야마다 마사히로 도쿄가쿠게이대학 교수(교육학·가족사회학 전공)는 양극화의 배경을 묻는 질문에 ‘풍요로워진 사회’라는 말을 꺼냈다.

“공업으로 물건을 만들어 소비해가던 데서 물건에 뭔가를 부가하거나, 서비스·정보로 즐거워하는 시대로 변했다. 보통 물건의 가격은 글로벌화의 영향으로 점점 내려갈 수밖에 없다. 단순히 물건을 만들거나 파는 사람의 인건비는 점점 내려간다. 역으로 새로운 물건이나 시스템을 만드는 사람 등 전문적 능력을 갖춘 사람은 생산성이 높아져 수입은 늘어난다.”

그는 일본의 격차(양극화) 문제에서 가장 우려할 대목은 장래에 대한 희망을 잃어버린 저소득 젊은이들이 늘어나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현재는 이들이 부모와 함께 살고 있어 문제가 표면화되지 않지만, 부모 세대가 사라지는 15~20년 뒤쯤이면 심각한 사회문제로 부상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부모에 기생하는 일본청년들 당장은 ‘빈곤’ 못 느껴도 20년뒤엔 심각한 문제될 것”

-일본의 격차 문제에 대해 ‘희망 격차’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다. 일본만의 특징인가?

=한국도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즉, 일본의 저소득 젊은이는 대개 부모 슬하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반항하거나 폭동을 일으키지 않는다. 나는 그들을 ‘패러사이트 싱글’(부모에 기생하는 독신)이라고 부른다. 이들은 비교적 넉넉한 부모와 함께 살고 있기 때문에 수입이 낮아도 생활이 가능하다. 따라서 지금 당장은 생활의 격차가 심각한 상황에 이르지 않고 단지 장래가 불안한 젊은이가 늘어나고 있다. 이들은 아무리 노력해도 위에 올라가지 못하고, 일을 해도 희망이 없는 그런 사람들이다. 미국이나 영국이라면 아무리 능력이 없어도 생활을 위해서는 열심히 일하지 않을 수 없다. 그에 비해 일본에선 열심히 일하지 않아도 부모 밑에서 생활할 수 있기 때문에 니트 (직업도 없고, 교육훈련도 받지 않는 젊은이) 같은 사람이 나오게 된다. 그런 점이 일본 격차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의 저소득 젊은이는 얌전하다. 계속해서 저소득에 머물러 있지만 생활면에서 곤란하지 않다. 그렇지만 20년 뒤쯤 그들의 부모가 죽게 되면 부모의 연금이 없어져 격차 문제는 더욱 심각하게 드러나게 될 것이다. 그 사이에 어떻게 하든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안된다.

-저소득 젊은이들이 부모에게 얹혀사는 게, 일본의 격차 문제가 정치문제화하지 않는 이유와 관계 있다는 얘기인가?

=그렇다. 연 수입이 100만~150만엔에 불과한 젊은이가 수백만명은 있을 것이다. 그 정도 수입으로는 생활하기가 불가능하므로 폭동이 일어나거나 범죄가 늘어날 것이다. 하지만 일본에선 부모가 그 부족분을 보충해주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 얼마전 끝난 도쿄 도지사 선거에서 격차 문제가 선거의 초점이 되지 않은 것도 같은 이유다. 지금 빈곤을 느끼지 않으니까, 생활이 곤란하지 않으니까 잠잠한 것이다. 장래를 생각하면 깜깜하니까 지금을 즐기자는 젊은이들이 늘고 있다. 나는 그것이 희망 격차라고 말하고 있다.

7월 참의원 선거에서도 이 문제는 초점이 되지 않을 것으로 본다. 일본은 문제 해결을 일단 뒤로 미루는 사회다. 가정도 그렇고 사회적으로 그렇다. 그 대신 결혼을 안 하거나 못하는 젊은이가 늘어나거나 결혼해도 아이를 낳지 않아 생기는 저출산 문제가 더 크게 부각되는 게 일본의 현실이다.

-희망 격차를 줄이기 위한 대책은?

=제대로 노력하면 평가받는 일을 얻을 수 있는 사회 체제를 만들지 않으면 안된다. 현재는 제대로 된 일자리의 숫자 자체가 모자란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비정규직 등 생산성이 낮은 일에 종사하는 기간을 줄이고, 비정규직도 직장에서 승진할 수 있는 길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 그런 다음 생산성이 높은 일자리를 얻으려는 직업교육의 기회를 보장하고, 정규직 등 고생산성의 일자리를 늘려야 한다. 또한 (주요 국가 가운데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낮은) 최저임금을 올려 노동시간을 규제하는 노동정책을 통해 사회 전체의 효율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노동규제는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방해해 비효율적이라고 강조하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비정규직 노동자가 정규직 일자리를 얻는 기회를 늘리는, 즉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촉진하기 위한 노동규제도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희망을 잃어버린 젊은이들에게 경제적 성공과는 별도로 가치있는 일에 대한 매력을 느끼게 해줄 필요도 있다. 그 수단으로는 환경보전이나 고령자 개호(수발), 육아지원 등 새로운 형태의 공공사업을 실시해 정규직의 길에서 벗어난 사람들, 특히 젊은 사람들을 흡수하는 방안이 있다.

“제대로 된 일자리 늘리고 공공사업에 젊은층 흡수해야…최저임금 등 노동규제 필요”

-아베 신조 정권은 큰 성공을 거둔 영국 정부의 정책을 본뜨고 있지만, 예산투입에 소극적이어서 구두선이라는 비판도 있다.

=아베 정권이 무엇을 하려는 것은 알겠지만 예산 규모가 작기 때문에 근본적 해결은 안된다. 소득세나 상속세를 예전 수준으로 올릴 필요도 있다.

-세금을 올리는 문제에 대해서는 거부감이 있을텐데.

=부자들을 상대로 세금을 올리자는 얘기이므로 일반인들의 저항은 없을 것이다. 일각에서 정부의 세금낭비를 이유로 반대하고 있지만, 격차대책은 세금을 낭비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다른 문제다.

-격차대책을 위해 기업의 부담을 늘려서는 안된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는데.

=비정규직을 모두 정규직으로 전환한다면, 대기업은 여력이 있을지 모르지만 중소기업들은 쓰러진다. 국민 전체의 부담을 늘리려는 방향이라면 모를까. 기업의 부담을 늘리는 것보다는 세금을 늘리는 편이 낫다. 중소기업은 정말 힘들다.

-영국 국방부가 얼마전 앞으로 30년 뒤면 양극화가 격화돼 중류층이 없어지면서 ‘마르크시즘’이 부활한다는 보고서를 내놓았다.

=유럽에서 비정규직에 머물 수밖에 없는 저소득층 젊은이가 늘어난다면 마르크시즘이 부활하느냐, 아니면 이들이 종교에 빠지느냐 가운데 하나가 될 것이다. 즉, 잃어버릴 게 전혀 없고, 지금의 생활이 계속해도 좋은 게 아무 것도 없는 사람들은 혁명을 요구하거나 종교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어떡하든 이런 흐름에 브레이크를 걸 필요가 있다. 제도를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으면 안된다.

도쿄/글·사진 김도형 특파원 aip209@hani.co.kr

 


 

 

야마다 마사히로는
일본사회 특유의 ‘희망격차’ 주목

지난해 일본 사회에서 널리 쓰인 10대 용어 가운데 하나로 ‘격차사회’라는 단어가 선정됐다.

이 말을 퍼뜨린 주인공은 도쿄가쿠게이 대학 교육학부의 야마다 마사히로(50) 교수다. 2005년 발간한 <희망격차사회>라는 저서를 통해, ‘희망격차’라는 독특한 개념으로 오늘의 일본 사회를 포착해 그 배경을 추적하고 처방전을 제시했다. 그는 표면적인 경제 격차만을 보지 않고, 일본의 독특한 사회·가족적인 구조가 잉태한 장래의 격차 위험성에 주목하고 있다.

야마다 교수는 격차 세계화의 요인이 경제의 글로벌화를 낳은 신자유주의라고 비판하면서도, 무조건적인 비판은 ‘뉴러다이트운동’(신 기계파괴운동)이라는 양비론적 견해를 갖고 있다. 그런 점에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 강조와 소득·상속세의 과감한 증세를 해법으로 내놓은 또다른 전문가 다치바나키 도시아키(도시샤대학 경제학과 교수)에 비해 약간 오른쪽에 위치해 있다.

야마다 교수는 2006년 9월 자신의 처방전을 좀더 구체화한 <신평등사회-희망격차를 넘어서>를 펴냈다. 1981년 도쿄대학을 졸업한 뒤 같은 대학원 사회학연구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도쿄/김도형 특파원

 

 

 

빈곤률 10년새 2배
비정규직 늘어난 탓

한때 ‘1억 총중류’라는 말이 구가될 만큼 세계적인 평등사회였던 일본은 이제 ‘격차사회’말이 널리 쓰이는 양극화의 나라로 변모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발표를 보면, 일본의 빈곤율은 1996년 8%에서 2005년 15.3%로 급증해 주요국 가운데 세 번째로 높게 나타났다. 1990년대 초반 거품경제 붕괴 이후 비정규직이 전체 노동자의 1/3 가까이로 크게 늘어난 게 가장 큰 요인이다.

현재 일본은 전후 최장의 경기확대 국면을 맞고 있으나, 그 과실이 골고루 미치지는 못한다. 기업들이 부담 상승을 이유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에 소극적이기 때문이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5년 재임기간 신자유주의 구조개혁을 단행해 지금과 같은 경제회복의 발판을 마련했지만, 감세 등 경제 활동하기 좋은 환경 만들기에 치중한 나머지 양극화 확대라는 부정적 유산도 남겼다.

제1야당인 민주당은 오는 7월 참의원 선거에서 격차문제를 최대 선거쟁점으로 삼을 태세다. 그러나 지난 4월 지방선거에서 유권자의 관심을 끌지 못한 바 있어, 쟁점화가 가능할지 불투명하다는 견해도 나온다.

도쿄/김도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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