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이동 266번지의 '양극화 대물림'

<현장> 98세대 3백여명 주민들, 심각한 의료양극화 겪어

<사례1> 희귀병으로 인한 가정 경제 파탄

포이동 266번지에서 태어난 형준이는 심작판막증에 간 문정맥 혈관기형이라는 희귀병을 앓고 있는 4살짜리 아이다. 형준이는 2004년 ‘1종 의료보호’ 대상자가 됐지만 정기적인 지혈주사, 혈관 투시조영, MRI 등에 들어가는 비용은 전혀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

과일장사로 한달에 60만원을 버는 형준이 아버지는 이미 아들의 수술비용으로 신용불량자가 된지 오래이고 형준이는 민간차원의 지원 없이는 치료를 받을 수 없는 상황이다.

<사례2> 가난과 질병으로 인한 3대에 걸친 의료비부담의 대물림

김모 할머니는 포이동 판자촌에서 20년동안 손자, 손녀와 살아가고 있다. 결혼한 아들과 며느리가 도망쳐 버린 이후 할머니는 홀로 손자와 손녀를 키워오다 현재 거동이 어려울 정도로 건강이 악화된 상태.

손자(23)는 중학교때부터 아르바이트를 전전했고 중학교 시절 유망한 양궁선수였던 손녀(21)도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한 채 힘든 병수발을 계속하고 있다. 할머니는 기초생활수급권자이지만 남매가 성인이 됨에 따라 언제 배제될 지 모르는 불안한 현실을 살아가고 있다.

강남의 판자촌, 타워팰리스 아래 위치해 우리 사회의 빈부격차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포이동 266번지의 빈곤은 '현재진행형'이다. 79년 강제이주 이후 어렵게 살아온 주민들의 삶은 이어지는 빈곤의 대물림으로 인해 심각한 사회양극화의 중심에 서 있었다. 빈곤은 소득의 격차뿐만 아니라 주민들의 건강권을 파괴했고 현재에 이르러 이 지역의 의료양극화는 가계를 파탄시키고 그들의 건강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

포이동 주민들을 통해 본 서울시의 의료양극화

사람연대와 건강세상네트워크, 시민건강증진연구소, 행동하는 의시화, 희망사회당 서울시당 등 5개 단체는 9일 오후 3시 서울시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함춘회관 3층 대강당에서 ‘포이동 266번지를 중심으로 본 서울의 양극화’를 주제로 보고대회를 가졌다.

보고대회에서 공개된 포이동 266번지 주민들에 대한 의료실태보고서는 우리 사회에서 양극화가 어떻게 사람들의 삶을 불투명하게 하는지 극명하게 보여줬다. 의료보고실태보고서는 지난 2006년 4월부터 5월까지 두 달에 걸쳐 현장 무료진료 봉사와 동시에 진행된 설문조사를 토대로 작성됐다.

포이동과 서울시, 강남구 주민을 비교분석한 보고서에 따르면 외래 및 입원 이용률이 타지역에 비해 월등히 높은 반면 건강검진, 암검진을 비롯한 건강검진 수검율은 현저히 낮았다.

포이동 주민의 가구단위 외래 이용율은 최근 2주 기간을 기준으로 36.4%에 달했다. 이는 강남구 19.3%, 서울시 18.9%에 두 배에 달하는 수치.

반면 지난 2년간 신체검사 또는 건강검진 수검율은 남녀 모두 강남구(남 63.2%, 여 53.1%), 서울시(남 53.1%, 여 43.3%)에 비해 현저히 낮은 비율(남 31.6%, 여 30.4%)을 기록했다.

보고서를 발표한 김창보 건강세상네트워크 사무국장은 “건강진단 수검율이 낮으면서 외래 이용율이 월등히 높다는 것은 포이동 주민들이 예방을 목적으로 의료이용을 하지 못하고 각종 질병을 앓으며 질병치료를 받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즉, 포이동 주민들은 불안정한 주거상황과 그로 인한 저소득으로 인해 질병이나 손상이 잦고 그때그때 일회적으로 의료를 이용한다는 것이다.

포이동 주민 3명 중 2명 “의료비 부담 때문에 병 키운다”

포이동 주민들은 지난 2년간의 위암, 자궁암, 혈압검사 등 일반인들이 가장 많이 검사받는 항목에서도 10%이상 떨어지는 수치를 기록했다.

이같은 의료이용실태는 건강보장의 미흡이 원인으로 실제 포이동주민들의 건강보험 미가입율은 10.5%로 서울시(0.7%), 강남구(0.6%)에 10배에 달하는 높은 수치를 보였다.

김 국장은 “포이동 주민들은 기초의료수급자가 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 제약 때문에 되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며 “10.5%라는 미가입율 수치는 굉장히 심각한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이밖에도 신체의 손상으로 주요활동을 전혀 못하거나 다소 제한이 있는 주민들은 20.8%, 이로 인해 1년간 하루 이상 입원한 경험자는 27.3%에 달했다. 또 의료비 부담으로 의료이용을 못했거나 병을 키운 경험이 있는지 묻는 질문에도 각각 67.4%, 72.7%로 주민들 3명 중 2명이 저소득으로 인한 의료차별을 경험했다.

그만큼 우리 사회가 겪는 소득수준에 따른 양극화가 교육, 의료, 주거 전반에 심각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방증인 셈이다.

김 국장은 “포이동 주민들의 사례는 우리 사회의 건강보장이 저소득층의 안전망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정확히 보여주고 있다”며 “차상위계층에 대한 지원학대, 의료급여 수급자 확대를 통해 의료보장제도의 사각지대를 해소해야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김국장은 “건강권이 보장되지 못하면 치료비 부담으로 인한 빈곤과 불건강의 대물림이 이어질 수밖에 없다”며 “저소득층 자녀의 불평등 해소를 위한 공공정책 수립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금민 사회비판아카데미 이사장은 “빈곤은 사회적 산물이며 빈곤이 존재하는 사회에는 이를 생산하고 확대하는 기구가 작동하고 있다”며 “국가가 탈빈곤을 위한 포괄적인 사회경제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할 때만 근본적인 해결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포이동의 70, 80년대 주민수난사 해결을 위해 활발하게 활동해오고 있는 사람연대는 대책위원회를 구성, 향후 주민등록 회복을 강남구에 요청하고 수용되지 않을 경우 정식 소송을 진행할 예정이다.

시민단체 “포이동 주민들에게 자행된 국가의 인권유린 진상규명 운동 벌일 것”

현재까지 강남구는 포이동 주민들에게 강제퇴거방침을 내리고 이들의 주민등록 전환을 10년 넘게 거부하고 있다. 이에 따라 주민들은 자녀교육 등의 기초생활에서 상당한 불편을 겪고 있다.

이밖에도 지금은 정부 측 자료가 남아있지 않은 70년대 말 자활근로대의 진상규명 조사를 위해 국가인권위원회 진정,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접수 등을 통해 ‘국가에 의한 강제이주와 인권유린’에 대한 진상규명을 촉구할 예정이다.

포이동 주민들은 지난 1979년 박정희 정권의 빈민 강제이주 프로그램이었던 ‘자활근로대’에 포함돼 포이동 266번지로 강제이주 당해 지금까지 살아오고 있지만 강남구청은 이들에게 강제퇴거 명령을 내리고 불법점유에 따른 수십억원의 토지변상금을 부과한 상황이다.

시민단체들은 국가권력에 의한 포이동 주민들의 강제이주가 증명될 경우 명예회복과 함께 현재 강남구청 주민들에게 부과한 ‘불법점유에 따른 수십억원의 토지변상금’ 문제도 해결될 것으로 보고 있다.

/ 최병성 기자 (1895cbs@views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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