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무대를 뒤흔든 영혼의 탱고

라틴아메리카 하면 떠오르는 예술가들이 여럿 있다. 현대사회에서 진리라는 이름으로 수용되거나 이성적으로 포장된 모든 것이 결국은 인간이 만들어낸 또 다른 허구임을 깨닫게 해준 보르헤스, 남미의 역사를 '마술적 사실주의'라는 문학형식으로 환상과 현실 사이를 넘나든 마르케스, 소설, 희곡, 평론, 수필 등으로 중남미 지식인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모색해온 바르가스 요사. 그리고 자신만의 독특한 음악세계를 구축한 빌라 로보스와 카를로스 조빔. 이들의 공통점은 삶과 죽음, 사실과 환상이 뒤범벅된 남미의 서정을 그들만의 독특한 음악과 언어로 재창조했다는 점이다.
이들은 모두 라틴아메리카뿐만 아니라 세계를 대표하는 일급의 예술인들이다. 그렇다면 아스토르 피아졸라는 어떤가? 최근 발매된 벨라 무지카의 10종의 피아졸라의 음반에서도 알 수 있듯이 슬프면서도 드라마틱하며, 감각적이면서도 종교적인 면을 보이는 탱고에 평생동안 영혼을 불태운 인물, 또한 앞에서 언급한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남미 특유의 예술혼으로 세계 무대를 뒤흔든 음악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아디오스 노니노'(Adios Nonino),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4계' 등의 걸작을 발표하면서 탱고에 독창적인 화음개념을 이끌었다. 현대음악가 존 아담스는 이런 피아졸라의 음악을 두고 "어떻게 탱고와 같은 작은 형식에 이토록 깊고 넓은 표현을 담아낼 수 있단 말인가"라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피아졸라는 모든 음악가들이 그렇듯이 천재적인 유년기를 보냈다. 13세의 나이로 명가수 카를로스 가르텔의 반주를 맡았고,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있는 여러 카바레에서 반도네온을 켜며 작곡을 하기 시작했다. 우연히 아르투르 루빈스타인을 만났고, 그 뒤 그는 '일초마다 백만개의 음표를 쏟아내는' 열정으로 수많은 클래식 곡들을 작곡하게 된다. 이러한 작업으로 피아졸라는 유럽의 음악계에서 새로운 별로 떠오르지만, 그의 진정한 음악성은 한 프랑스 여인에 의해 180도 변하게 된다. 바로 그 여인은 피아졸라의 진정한 스승 나디아 불랑제. 나디아 불랑제는 수십곡에 달하는 피아졸라의 악보를 보고 불과 몇 분만에 "이 부분은 스트라빈스키 같고, 이 부분은 바르톡, 또 여기는 라벨 같은데, 피아졸라는 없군" 하고 간단히 평했다고 한다.
그러고는 마치 FBI처럼 피아졸라에게 온갖 질문을 한 끝에 피아졸라 자신이 창피하게 여겼던 반도네온을 연주했던 기억, 탱고에 대한 기억을 이끌어내고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바로 거기에 피아졸라가 있군."
이 시리즈의 특징은 피아졸라의 위대한 정신이 10장의 음반 속에 다양한 곡들로 망라되어 있다는 점이다. 피아졸라 자신이 직접 반도네온을 연주하는 피아졸라 앙상블을 주축으로 실내악곡, 콘서트 실황, 영화음악 등을 담고 있다. '사계' '기억' 등의 피아졸라의 모음곡들,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마리아', '아디오스 노니노'를 비롯 '새벽의 토카타' '고독의 세월' '리베르 탱고' 등 발표할 때마다 음악계에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켰던 곡들이 음반 하나하나에 오롯이 담겨있다. 또 명가수 아메리타 발타르와 호세 앙헬 트렐레스가 부르는 노래는 탱고의 참다운 맛을 더해준다. 이밖에 피아졸라의 이탈리아 데뷔 음반 '로마 1972'와 밀라노 콘서트 실황을 담은 '밀라노 1984' 또한 활기차면서도 서글픈 탱고의 맛을 맘껏 만끽하고도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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