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ke of Shadows
필 콜터 (Phil Coulter) 연주 / 소니뮤직(SonyMusic) / 2001년 11월
평점 :
품절


필 콜터의 ‘그림자 호수’(Lake of Shadows)에는 외형상 매우 다양한 스타일의 음악이 담겨 있다. 여기에는 그의 영롱한 피아노 독주를 비롯해 노래와 연주, 합창곡이 지루하지 않게 배열됐다. 특히 시너드 오코너, 오이페 니 페라이 등 여성 가수들의 참여가 돋보이는데, 이들의 잔잔하고 아름다운 목소리는 콜터의 피아노 연주와 더불어 이 음반의 백미라 할 만하다.

필 콜터의 음악은 여타의 다른 뉴에이지 연주가의 음반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일반적으로 뉴에이지 음악은 지극히 사적인 감정과 자연의 풍경 묘사를 중요시한다. 하지만 필 콜터는 그동안 개인사와 사적인 감정, 역사의식을 결합해 다른 연주가들과 차별된 뉴에이지를 만들어왔다. ‘그림자 호수’도 그의 이전 음반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고향인 아일랜드의 역사와 풍경을 담고 있다.

그렇지만 내용을 떼어놓고 콜터의 음악을 듣는다면 다른 뉴에이지 음악과 비슷한 구석이 많기도 하다. 서정적이고 신비한 선율, 활기차고 세심한 연주는 유키 구라모토나 앙드레 가뇽, 케빈 컨의 음악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다양하게 듣는 재미를 선사한다는 점에서 콜터의 음악은 이들의 연주보다 오히려 뛰어나다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아일랜드 역사상 가장 중요한 사건들이 스윌리 호수 주변에서 일어났으며, 또한 이 곳은 나의 인생 중 가장 행복했던 시기와 비극적인 시기의 무대가 된 곳이기도 하다. 스윌리 호수는 아일랜드 섬의 가장 북쪽 끝에 위치해 있으며, 북대서양을 향해 열려 있다. 때로는 고요하며, 때로는 위협적이거나 거친 이 호수는 그래서 언제나 예측 불가능하다.”

필 콜터가 음반 내지에 밝힌 이 말은 ‘그림자 호수’의 전체 내용을 함축하고 있다. 이 말은 다시 두 가지 내용으로 요약할 수 있다. 곧 ‘역사적 비극’과 ‘개인적인 행복과 불행’이 그것인데, 콜터는 아일랜드의 색채를 강하게 드러내며 이 두 가지 주제를 일관되게 표현하고 있다.

보컬로 참여한 오이페 니 페라이의 신비스런 목소리가 특히 인상적인 첫곡 ‘그림자 호수’는 전체 음반의 프롤로그에 해당하는 곡으로, 스윌리 호수를 칭하는 ‘그림자 호수’에 대한 감정을 잔잔하게 묘사한다. ‘그림자 호수’는 그에게 불행을 안긴 무서운 곳이기도 하지만, 그리운 고향이며, 편안한 안식처이기도 한 곳이다. 행복과 불행, 비극이 공존하는 장소인 이 곳을 통해 그는 본격적으로 음악적인 가지를 치기 시작한다. ‘이니쇼엔이여 안녕’에서 그는 자신이 존경했던 아일랜드 출신의 작곡가 션 오리아다와 랜디 뉴만을 추모한 뒤, ‘귀족들의 탈출’에서 조국 아일랜드의 역사를 이야기한다. 16세기 영국의 학대에 밀려 고국을 탈출할 수밖에 없었던 암흑시대를 그는 단조풍의 피아노에 키보드, 현악기 반주로 사람들의 슬픈 감정을 감각적으로 그린다.

그리고 언뜻 듣기만 해도 비극적인 느낌이 드는 ‘프랑스 시절’. 감상적이고 낭만적인 피아노 독주가 길게 이어지고, 어느덧 부드러운 바이올린이 피아노를 뒤따른다. 굉장히 매력적으로 전개되는 곡이지만, 콜터는 이 곡을 18세기 ‘아일랜드 봉기’ 때 프랑스에게 도움을 청해야만 했던 민족의 슬픔을 표현한 작품이라고 설명한다. 희망이 잔뜩 묻어 있는 ‘라 오셔 만세’도 마찬가지로 그 당시 프랑스의 배 라 오셔가 들어오는 광경을 박진감 넘치게 묘사한 곡이다.

이밖에 아일랜드 출신의 가수 시너드 오코너의 감각적인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스윌리 해변’(여동생의 죽음을 애도한 곡)과 고향을 위해 만든 ‘섬으로 돌아가며’,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담은 ‘고향에 데려다 주오’ ‘바다의 별’ 등 뛰어난 완성도를 갖춘 곡들을 들을 수 있다.

필 콜터는 1942년 북아일랜드 데리에서 태어났고,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 프로듀서로 활동하며 지금껏 수십 장의 음반을 선보인 바 있다. 1999년에는 그래미상에 노미네이트되기도 했으며, 팝과 클래식, 크로스오버를 넘나들며 광범위한 활동을 하고 있다. 그의 가장 큰 특색은 역시 아일랜드의 색채가 강하게 풍긴다는 점일 것이다. 그는 아일랜드의 민요나 선율을 차용해 많은 음악을 발표했고, 아일랜드 출신의 가수나 작곡가, 연주가를 발굴, 후원해 오기도 했다. 또한 그는 1990년대 후반 아일랜드 출신의 플루트 연주자 제임스 골웨이와 듀엣 음반 ‘겨울항해’ ‘전설’ 등을 발표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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