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머리와의 사랑 1
대머리를 위하여 그녀는 머리털을 뽑는다
대머리를 위하여 그녀는 음모를 잡아뜯는다
대머리를 위하여 그녀는 겨드랑이털을 깎는다
검은 털이 수북하다 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다
그녀는 추억 속의 벗겨진 머리가죽 말라붙은
가죽 위에 털들을 꼼꼼히 심는다 대머리가
만족할 만한 가발을 가지고 대머리에게 간다
枰?머리털보다 더 진짜 같은 가발을
대머리에게 준다 이걸 만드느라 일찍 오지
못했어요 대머리는 가발을 던져버린다
기다리느라 비를 너무 많이 맞았어 머리가
불어서 이제 그 가발은 나에게 맞지 않아
대머리의 육체 가득 출렁이는 빗소리가 들린다
그녀가 공들여 만든 대머리를 위한 가발이
찢겨진 우산처럼 빗속에 버려져 있다.
성미정
1967년 강원도 정선에서 태어나 강원대 사학과를 졸업했다. 1995년 <현대시학>으로 등단했고 97년 시집 <대머리와의 사랑> <사랑은 야채 같은 것>을 냈다.
"‘대머리와의 사랑’을 별난 시집으로 만드는 것은 거기 묶인 작품들이 독자의 감성이 아니라, 주로 지성에 호소한다는 점이다. 동아시아 한자문화권에서 ‘미학’이나 ‘심미적’이라고 번역된 유럽어 단어가 본디 ‘감각학’‘감각적’이라는 뜻이었던 데서도 드러나듯, 예술은 주로 인간의 감성을 겨냥하는 행위로 이해된다.
그런데 ‘대머리와의 사랑’은 지성에 호소한다. 이 시집은 좌뇌를 간질이는 지적 언술들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그 지성에 대한 호소는, 오래지 않아, 우뇌까지 집적거리며 우울한 감성의 침전물을 만든다. 지성은 감성과 분리되지 않는다. 그 둘은 꽈배기처럼, DNA 사슬처럼, 전위적 춘화도 속의 두 육체처럼 꼬여 있다." -고종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