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랑
천운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4년 8월
평점 :
품절


요즘 영화판에서 '웰 메이드' 영화라는 단어가 쓰인다. 잘은 만들었으나 내용은 별로인 영화. 천운영의 소설을 읽으면서 난데없이 그런 단어가 떠올랐다. 문장도 훌륭하고, 구성과 줄거리도 나름대로 괜찮으나 내용면에서는 아쉬운 소설.

이 소설집을 모두 읽고 곰곰이 생각해봤다. 아무리 생각을 거듭해도 이 소설집에는 아쉬운 면이 많았다. 그것은 죽음에 대한 작가의 생각 때문이었다. 책 뒤에서 김동식은 이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죽음에 대해 "생명의 근원에 다가가기 위한 처절한 몸짓"이라고 해놓았다. 과연 그럴까, 하고 또다시 생각해봤지만 그 논의에 동의할 수가 없었다.

천운영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비주류들(패배자, 가난한 자, 상처가 많은 사람 등등)이다.  그리고 자세한 이유는 모르겠으나 가족들에게 버림받은 사람들이다. 그런데 그들은 소설 말미에서 자살을 하거나, 살인을 하거나, 죽음을 묵인한다. 왜 그래야만 할까? 왜 그녀는 소설 속에서 그렇게 죽음을 많이 묘사할까? 어떤 면에서 보면 지극히 잔인하기까지 하다. 그리고 대부분 그들은 상처받은 사람들이다. 그들이 죽어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을지도 모르나 대부분 그들은 죽거나 혹은 다른 사람을 죽이고 만다.

내가 그녀의 소설을 이해하지 못했을지도 모르지만, 이렇게 많은 죽음이 있어야 할 필요가 있을까? 그들이 죽으면서까지 이루려 한 것은 과연 무엇일까? 왜 작가는 그들을 죽이면서 자신의 소설을 완성하려고 하는 것일까? 그런 궁금증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또 한 가지 아쉬운 점은 행동에 대한 당위성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몇 몇 주인공들은 이유 없이 가족들에게 버림 받는다. 다른 자녀들은 부모의 밑에서 잘 자라나, 주인공은 다른 곳에 맡겨지고, 결국에는 버림을 받는다. 왜 그런지에 대한 설명은 없고,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지 못한 주인공의 상처가 소설의 큰 줄기를 이룬다. 그리고 난데없이 살인을 저지르는 식이다.

너무 쉽게 죽음이 난무하는 것 같아 조금은 안타까웠던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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