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체 게바라 사망 30주년 추모 앨범
'가장 완전한 인간'을 추억하다
"오늘에는 이 모든 것들이 덜 극적으로 보이네. 우리가 더욱 성숙했기 때문일 테지만, 그러나 또한 역사는 반복하기 때문이겠지. 나는 쿠바 땅에 국한된 쿠바 혁명에서 내 몫을 다했다는 느낌이네. 이제 나는 자네와 동지들과, 그리고 이제는 나의 것이기도 한 자네의 인민들과 작별하려 하네. 나는 내가 점하고 있는 당의 직책과 장관직과 사령관의 직위, 그리고 쿠바 시민의 모든 권리를 포기하네. (…) 이제 우리가 작별할 시간이 온 거야."
'체 게바라 사망 30주년 추모 앨범(CANTAR AL CHE)'에는 체 게바라가 쿠바를 떠나면서 카스트로에게 쓴 편지를 카스트로가 낭독하는 음원이 수록되어 있다. 1965년 10월 3일 하바나. 카스트로는 운집해 있는 군중들 앞에서 체 게바라의 편지를 낭독한다.
그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렸고, 군중들은 숨죽여 그 편지의 내용을 경청한다. 짧지만, 그 속에는 체 게바라의 인간 됨됨이가 절절하게 스며 있다. "내가 가질 수 있는 가장 순수한 희망을, 내가 사랑했던 사람들의 가장 소중한 부분을…내 정신의 한쪽을 쿠바에 남겨두겠네." 혁명을 완수했지만, 또 다른 혁명을 위해서 승리와 영광 등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는 체 게바라. 감히 누가 그 내면 속에 있었을 정신적 갈등과 혁명 의지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을까.
사르트르는 그런 체 게바라를 두고 "우리 시대의 가장 완전한 인간"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 말은 그의 이론과 사상이 행동으로 일치되어 드러났고, 그것이 당대의 역사 속에 완전히 반영되었음을 의미한다. 1928년 아르헨티나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나 의학을 공부해 의사가 되었지만, 사람을 치료하기보다는 세계를 치료해야 한다는 신념으로 혁명의 길에 들어섰고, 1967년 볼리비아에서 사살되기까지 그의 생애는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이 음반은 쿠바의 뛰어난 음악인들이 모여 체 게바라가 사망한 지 30주년 되는 해인 지난 1997년에 녹음한 것이다. 이 음반에 수록된 노래들은 노골적으로, 때로는 은유적으로 체 게바라를 그리워하고, 찬양한다. 그러나 스페인어로 되어 있는 가사를 의식하지 않고 들으면 이 노래들이 과연 그런 내용을 담고 있는지 의심이 들 정도로 여타의 쿠바 음악처럼 활달하고, 재즈적인 정열과 낭만적인 서정미가 물씬 풍기는 곡들이다.
쿠바의 '누에바 칸시온' 발생에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며 '민중 시인'이라고 불린 카를로스 푸에블라는 '게바라여 영원하라' '노래를 멈춰요' '사실이 아니에요' 등 4곡에 참여하며 체 게바라를 추억하고 있다. 혁명 후 새롭게 만들어지는 인간적 삶에 대한 믿음을 많이 노래했던 그답게 이 곡들에서도 체 게바라를 매개로 그런 감정들을 쿠바 특유의 낭만적인 음악으로 토해 놓는다. 또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의 오마라 포르투난도와 함께 전성기를 보냈던 엘레나 부르케의 '게릴라가 부르는 노래'는 과거와 현재를 대비시키며 미래 세대가 해야 할 일을 노래하고 있다. 이밖에 그룹 알마 마테르의 '체 게바라', 리벨데 5중주단의 '체 게바라를 존경하라' 등이 수록되어 있다.
몇 년 전 세계 전역에 체 게바라 열풍이 거세게 몰아쳤던 적이 있다. 그러나 이는 역사적 배경이 도외시 된 채 단지 체 게바라의 겉만을 과장하여 포장한 것이었다.
사람들은 그가 마치 유명한 팝 스타라도 되는 것처럼 각종 상품에 그의 얼굴 사진을 도배시켰고, 그를 잘 모르는 젊은이들은 그를 패션 모델로 착각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런 상황에서 이 음반은 여러 모로 체 게바라가 지닌 역사성과 진정성을 되찾아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