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키스 테오도라키스와 마노스 하지다키스를 아는가. '기차는 8시에 떠나네'와 '일요일엔 참으세요'를 통해 이 두 작곡가는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바 있다. 하지만 이 두 작곡가가 그리스 현대음악에서 어떤 위치를 차하고 있는지는 많은 사람들이 깊이 관심을 두지 않는다. 세계 문화의 원형을 만든 근원지 그리스는 오랫동안 나라 이름을 잃고 오스만투르크의 지배를 받는 식민지 국가로 전락했다. 19세기에 이르러 근대국가로서 독립을 하기는 했으나, 그리스의 현대사는 내전을 겪는 등 그리 순탄치 못했다. 2차 세계대전 때에는 나치에 점령되었고, 전쟁이 끝난 뒤에는 군부 쿠데타로 또 한번 온 국토가 피로 얼룩졌다. 이 암울한 현대사에서 그리스 민중들에게 테오도라키스와 하지다키스의 존재는 각별했다. 그들은 군사정권에 저항하며 민중의 삶을 적극적으로 자신의 음악에 끌어들인 실천적인 예술인의 전형이었다.
또 이 두 사람은 클래식, 민중가요, 영화음악 등 많은 형태의 음악을 끊임없이 만들어오며 후예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친 그리스 현대음악의 대부이기도 했다. 때문에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두 곡만으로 이들의 정신 세계를 온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무리인 셈이다('기차는…'은 애절한 사랑노래로 알려져 있는데, 사실은 제국주의와 억압에 항거했던 친구의 죽음을 슬퍼하며 만든 것이다. 또 '일요인엔…'으로 하지다키스는 1960년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영화음악 상을 받았다).
그리스 레이블 'FM 레코드'에서 소개한 하지다키스의 'Through branches of the stars'와 테오도라키스의 'Litany'를 살펴보면 두 사람의 잘 알려지지 않은 음악세계를 엿볼 수 있다. 테오도라키스의 음반은 현지에서 '가장 그리스적인 연주가'로 알려진 클라리넷 연주자 바실리스 살레아스의 연주를 담고 있는데, 환상적인 편곡과 음감이 인상적이다. 특히 '흐르는 눈물' '아름다운 도시'는 강한 전율이 마음에 전해질 정도로 리듬이 애절하고 아름답다.
비교적 소곡으로 구성된 테오도라키스의 음반에 비해 하지다키스의 음반은 '이름없는 이야기'와 '삭제' 등 두 곡의 모음곡으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1959년 연극을 위한 음악으로 만든 작품 '이름없는 이야기' 전곡이 음반으로 출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작품은 모두 아홉 곡의 노래와 한 곡의 연주곡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곡이 모두 굉장히 매력적인 선율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나나 무스쿠리 같은 가수들이 몇 개의 곡만을 발췌해 부르기도 했다. 이중 '부드러운 나의 어머니'가 여러 가수들에게 가장 널리 불려졌고, 많이 알려진 노래이다. 이 음반에서는 타나시스 모라이티스가 부르고 있는데, 그는 최대한 감정을 배제하며 곡과 거리를 둔다. 그러나 기타, 첼로, 오보에, 플루트로 구성된 앙상블 자체가 매우 유려하고, 애달프기 때문에 모라이티스의 음성이 오히려 더욱 감각적으로 들린다. 모음곡 '삭제'도 두 곡의 연주곡과 다섯 곡의 노래로 구성됐고, 마찬가지로 곡마다 아름다운 멜로디를 지니고 있으며 서정적인 감각이 특히 돋보이는 작품들이다. 빼어난 선율로 현대 그리스 음악의 진수를 보여준 테오도라키스와 하지다키스의 공통점은 그리스의 전통음악을 자신들의 작품 속에 적극적으로 반영했다는 점이다. 특히 이들에게 가장 영향을 끼친 것은 레베티코라고 불리는 그리스 민속 음악이다.
레베티코는 포르투갈의 파두나 라틴 아메리카의 누에바 칸시온처럼 대중들에게 널리 퍼진 대중음악이다. 또 블루스나 재즈처럼 사람의 마음을 잡아끄는 흡인력이 강한 음악이다. 영원한 자유인 조르바가 춤을 추며 부르는 노래와 같이 레베티코에는 권위에 대한 저항이 내포되어 있다. 또 좌절된 사랑이나 죽음과 같은 절망적인 주제도 자주 다룬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