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초의 왕오천축국전 - 문명기행 1
혜초 지음, 정수일 역주 / 학고재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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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읽고 싶었다. 신라의 고승 혜초가 여행하던 길을 가늠해보니 정말 아득하기만 했다. 과연 그는 무엇을 보고 느꼈으며 어떻게 글로 남겼을까? 궁금하기만 했다. "여기서 다시 북쪽으로 보름을 가서..." "서북쪽으로 산을 넘어 한 달을 가면..." 등의 문구로 시작하는 그의 여행기에는 그곳에서 본 간단한 감회들이 적혀 있다. "이곳에서 북쪽으로 가면 악업을 일삼는 자들이 많으며 시장과 가게에서는 도살하는 일이 너무나 흔하다." "외출할 때 왕과 수령들은 코끼리를 타고, 낮은 벼슬아치들은 말을 타지만, 백성들은 모두 걸어다닌다." 여행기에는 위 구절처럼 지극히 간소하게 그곳의 풍물이 나오며 그곳의 사람들이 어떻게 불법을 수행하는지로 글을 끝맺는다. "나라 안에는 절도 많고 승려도 많으며 대승과 소승이 함께 행해지고 있다."

그러나 그가 가는 곳은 이미 불법의 성지가 아니었다. 부처가 태어난 곳도 히말라야 근방도 현재의 아프가니스탄의 지역도 이미 불교보다는 다른 종교가 성행하고 있었다. 그는 이런 지역을 돌아다니며 그저 사람들이 불교를 믿고 있는지, 어떻게 불법을 수행하는지를 적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것을 보며 혜초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낯선 문명을 접하며 어떤 생각을 펼치는지가 궁금했었는데, 이 글에는 그런 게 거의 적혀 있지 않았다. 그 때문에 <왕오천축국전>이 축약본이라는 점과 소실된 부분이 없지 않다는 역주자 정수일 선생의 주장이 어쩌면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즉 <왕오천축국전>은 요즘 볼 수 있는 기행문과는 현저히 차이가 나는 글이다. 자신의 감회보다는 그저 있는 그대로 묘사한 글이 주를 이룬다. 이 간격을 정수일 선생의 역주가 메우고 있다. 그의 해박한 지식, 철저한 자료조사 등이 혜초의 글을 살아 숨쉬게 하고, 이 책의 의미를 더욱 돋보이게 해준다. 독자들은 여기에서 당대의 역사와 문화, 각 문명들의 차이 등 많은 지식들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 각 글이 따로 쪼개져 있고, 역주 역시 번호만 있기 때문에 앞으로 자꾸 넘겨봐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전체가 통일되어 보이지 않는 단점이 있다. 그리고 <왕오천축국전>에 대한 설명을 자세히 해주긴 했지만, 본격적으로 들어가기 전에 이 시대의 역사와 지리에 대한 개괄적인 해설이 있었으면 한다.  이 새대에 대한 기본 지식이 없는 독자라면 이 책이 무척 어렵게 느껴지고, 또 매우 산만하다는 느낌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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