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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만치 앞, 손에 잡힐듯한 좌파 문화운동의 전망
[맑스꼬뮤날레](주관단체) - 문화과학 편집위원회
맑스코뮤날레취재팀 / 2005년05월30일 22시13분
29일 오후 2시부터 117호에서는 '문화과학' 편집위원회가 주관하는 발표회가 열렸다. '우리 시대 좌파 문화운동은 가능한가 : 새로운 전망'을 제목으로 한 '문화과학' 발표회는 원용진 서강대 교수의 사회로 약 세 시간에 걸쳐 진행되었다.
발제는 모두 네 개로 제1발제로 '한국 문화권의 사회적 실천과 문화운동의 미래'를 이동연 한국종합예술학교 교수가, 제2발제로 '좌파의 바깥, 부안항쟁의 경계'를 고길섶 문화과학 편집위원이 발표했고, 오병일 진보네트워크센터 사무국장과 김철규 고려대 교수가 각각 토론을 붙였다.
이동연, "다양한 소수 문화 영역의 출현이 문화정세의 중요성 높여"
이동연 교수는 문화권을 정의하는 방식으로 '차이로서의 문화권'과 '접근과 참여로서의 문화권'을 든다. "문화권은 보편적인 시민으로 단일화할 수 없는 서로 많은 차이를 가진 '다중'의 문화를 의미한다"고 말한다.
나아가 문화정세, 즉 문화권이 중요한 정세가 된 배경으로 △문화적 종다양성의 위기 △대량소비의 확산으로 문화적 지불이 늘어난 점 △노동시간 단축에 따른 노동시간의 감소, 자율성, 여가시간이 늘어남 △다양한 소수 문화 영역의 출현 등을 들었다.
이동연 교수는 "2000년 이후 담론 재구성을 보면 문화적 권리 확보를 위한 것이었다는 점에서 표현의 자유 문제라든지 창작자의 권리 뿐만 아니라 볼 권리, 수용자 권리로 확대되었고, 소수자의 권리 표현 여성 욕망 표현, 문화적 공공성도 활발해졌다"고 말하고 "청계천, 도시공간, 문화적 시설, 숙박 등도 그런 투쟁이고 문화운동이 생태환경운동과 결합되면서 문화환경운동으로 확대되었다"며 문화운동의 전개과정을 요약했다.
이동연 교수는 발제 말미에 △다양한 문화적 권리 투쟁의 사회적 의미에 대한 담론화 △문화적 권리의 자율적 표현 수단과 공적 생산수단의 이중적 확보를 위한 투쟁△서로 다른 문화적 권리 투쟁들 간의 연대와 네트워크 △급진적 표현수단과 사건의 조직화를 사회운동의 장으로서 문화운동의 토픽이 되어야 한다고 정리했다.
고길섶, "부안항쟁 속에서 발견된 새로운 사회적 주체성"
고길섶 편집위원은 부안항쟁을 자세하게 돌아보고, 이 속에서 문화투쟁과 새로운 사회적 주체성이 출현했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발표문 6절 '주민투쟁과 좌파적 접속'에서는 주민투쟁과 좌파운동의 접속이 좌파문화운동으로 확장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오늘날 빈번하게 발생하는 주민투쟁들이 "자본운동이 수행하는 계급투쟁의 핵심고리로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그것과는 비대칭적인 사태, 즉 '계급투쟁 없는 계급투쟁'의 성격을 띠고 있어 보인다"고 바라보고 그런 점에서 "주민투쟁과 접속하는 가장 큰 약한고리는 문화적 실천 즉 문화정치"라고 말한다.
나아가 "주민운동에의 좌파운동적 접속은 좌파문화운동으로 활력화해야 한다"는 주장을 이어간다. 고길섶 편집위원은 이러한 실천적 의미를 최근 '참세상'에 쓴 자신의 칼럼 내용을 인용하는 것으로 발제를 마무리한다.
이동연 교수의 발제에 대해 오병일 사무국장은 최근 저작권을 둘러싼 논란을 소개하고, 과거 정보기본권으로 고민했던 추상적 권리를 정보인권으로 구체화하게 된 사례를 소개했다. 오병일 사무국장은 문화권을 적용하는 문제와 관련, "저작권자, 권리자의 주된 수혜자는 실제 독점자본이다. 수용자 뿐 아니라 창작자조차 문화 관련 제도에 의해 소외 위축되고 있다"고 말하고 "수용자와 창작자 권리를 포괄하는 개념이어야 하고, 문화자본에 대한 전선 형성의 개념으로서 살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철규 고려대 교수는 고길섶 편집위원의 발제에 대해 큰 맥락에서 동의하는 가운데 "두 가지 결론, 공부나 운동이나 재미있어야 한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민중, 대중, 풀뿌리 주체들이 갖고 있는 창발적 역능성, 힘이 드러나야 한다는 것인데 부안항쟁을 통해 드러났다"고 말하고 "결과로서가 아니라 운동 과정이 중요했고, 운동의 성격 변화 즉 기획, 개입. 환경과의 교류, 진화의 과정이 결과 자체보다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짚었다. .
약 10분간 휴식을 가진 후 제3발제 '문화 공공성 투쟁으로서의 점거예술운동'을 이원재 문화연대 사무처장이, 제4발제 '소수자(성), 매체문화운동 좌변화의 일단'을 전규찬 한국종합예술학교 교수가 발표했다. 이동연 사회자는 앞의 두 발제자의 스타일이 느린 반면 뒤의 두 발제자의 스타일은 빠른 편이라며 남은 시간 경쾌한 진행을 유도했다.
이원재, "점거예술운동은 대안적이고 급진적인 문화공동체의 실험장"
이원재 사무처장은 오아시스프로젝트의 점거예술운동을 "남한 사회 맑스주의 문예운동의 한계와 모순을 드러냄과 동시에 맑스주의 예술운동의 새로운 가능성을 내재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로운 사건"으로 정의한다.
스쾃의 점거예술운동을 자세히 설명한 이원재 사무처장은 문화 공공성, 예술의 사회적 공공성과 점거예술운동을 정리하고, 자율적 문화공동체로서의 의미 즉 "예술가의 창작권을 표출할 공간의 확보를 넘어 점거 공간을 매개로 이루어지는 대안적이고 급진적인 문화민주주의, 문화공동체의 실험장"의 기능을 갖는다고 주장한다. 이원재 사무처장은 2004년 2월말 결성된 후 현재 범국민대책위 활동까지 벌이고 있는 오아시스프로젝트팀의 목동 예술인회관 점거예술운동을 이러한 맥락에서 살핀다.
전규찬, "반란하는 것만이 정의다"
제4발제를 맡은 전규찬 교수는 발제문의 제목 '소수자(성), 매체문화운동 좌변화의 일단'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을 덧붙였다. 제목에서 "'(성)'에 괄호가 있는 것은 인쇄가 잘못된 것으로 '자'에 괄호가 있어야 한다"고 정정하고 '좌변화'란 '좌경화'를 의미한다고 부러지게 말했다.
전규찬 교수는 "며칠 전 미국 미사일방어 계획에서 텅스텐 우리늄 금속봉을 우주 공간에서 시속 1만1천 킬로미터로 보내는 무기가 발표되었는데 그 이름이 '신의 회초리'였다"고 알리고, 이걸 보고 처음에 우스웠는데 웃다가 울다가 울게 되더라고 말했다.
부시가 우주로부터 내리꽂는 매체를 '신의 회초리'라고 하는데 '신의 회초리' 자체가 매체고 메시지라는 이야기다. "핵폭탄을 매체로 살생을 '신의 메시지'로 표현하는데 우리가 이를 일상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이어서 "좌익, 레프트는 절대 유일의 옳다는 고집은 옳지 않다. 롱(wrong)이 라이트(right)에 맞을 수 있다는 정치가 필요하다"고 말하고 "버려지는 것, 찌꺼기, 쓰레기 같은 것이 레프트이다. 국민적 룰, 반국민적 주체성. 주변인, 소수자, 소수성이 구체적으로 다가온다. 왜 '자'에 괄호를 쳤냐면 반드시 소수자 사람, 집단에 제한될 필요가 없다고 보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전규찬 교수는 발제문을 펼치고 "대마, 문신을 언론으로 봐야 한다. 문신은 언론이다. 표현의 자유라는 3자적 자세가 아니라 문신, 대마 자체를 언론으로 해석해서 고발하는 정치를 해야 한다"는 이야기부터 시작했다. 나아가 "국민이라는 추상적 이념적 주체를 깨고 인민이라고 하는 보통 사람을 부르는 일"이 정당하다는 주장을 펼쳤다.
매체문화운동의 소수(자) 되기를 강조한 전규찬 교수는 발제문의 뒷부분에서 "소수(자)적 분열과 자율, 연대가 대중매체 뿐 아니라 언론운동 진화의 열쇠다. 경직된 이념과 표준적 가치, 일원적 언어의 체계를 파열시킬 차이와 행복, 상상력의 백터들이 지유롭게 폭발해야 한다. 반란하는 것만이 정의다"라는 주장을 펼치고, 이것이 커뮤니케이션 체제의 진화 및 매체문화운동의 민주적 구성을 위한 실천 강령이자 탈영토화, 재급진화 프로젝트의 전략이며 목표라고 강조한다.
발표에 나선 서동진 연세대 강사는 "재미가 없네요"라고 인사말을 던지고, 이원재 사무처장의 발제에 대해 "오아시스 프로젝트가 과연 멋있는가. 과연 반자본운동이고 진보적 문예운동을 대신하는 획기적인 대안인가"라고 반박했다.
아울러 "진보적 문예운동의 성과들을 청산적으로 취하지 말아야 한다. 80년대 문화는 오리혀 비옥했다. 그다음이 90년대이고... 문화가 우리가 갖고 있는 사회근본적 문제에 육박할 때, 문화가 정치화 될 때 가장 풍요로웠다"고 주장했다.
서동진 연구자는 "공공성을 넘어 반자본으로, 좌파정치와 함께 사유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오늘날 공공성이 남용되고 있지만 사람들이 일상의 공공성을 접하는 곳이 다름 아닌 쇼핑몰이라고 거리낌없이 이야기한다. 과거 공공의 장이 싸롱이나 광장이었다면 지금은 쇼핑몰이 그 기능을 대신하는데 쇼핑몰에서는 구걸이나 유인물 배포와 같은 공공적 행위가 불가능하다고 사실을 환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