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박민규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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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그림인 벨라스케스의 [라스 메니나스]가 이 책의 표지다.
[라스 메니나스]에 등장하는 이 깜찍한 공주는 스페인의 펠리프 4세의 딸인 마르가리타이다.
이 그림 속에는 벨라시케스 본인도 등장하지만 그림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이 있는 곳에 펠리프 4세 부부도 함께 있어서 그림 저 뒷편 거울에 그들의 모습이 비춰진다.
왕족의 혈통을 유지하기 위해 근친간 결혼으로 인해 후손이 부족한 탓에 마르가리타 공주는 세상 어디에도 견줄 수 없는 사랑과 관심 속에서 자랐을 것이다.
빛의 중심에 위치하는 마르가리타 공주 주변에는 4명 정도의 시녀가 더 있다.
그 중 그림의 오른쪽에 있는 시녀는 우리가 소위 말하는 "난쟁이"이다.
당시 왕가에서는 신체적 결함이 있는 사람을 이렇게 애완 동물 다루듯 데려다 놓았다.
그림 속 "그녀"도 멋진 드레스에 머리장식을 했지만 당시 사람들이 그러했듯 이런 저런 스트레스에 시달려 오래 살지는 못했을 것이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는 프랑스 작곡가 모리스 라벨이 루브르 미술관에서 본 벨라스케스의 그림, [라스 메니나스]에서 "왕녀 마르가리타"의 영감을 받아 작곡한 피아노 연주곡이라고 한다.
소설 속에서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와 [라스 메니나스]는 스쳐지나가 듯 언급될 뿐이다.
하지만 이 책은 [라스 메니나스]에서의 마르가리타 공주를 주목하지 않는다.
표지처럼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는 건 깜찍한 마르가리타 공주 옆에 서 있는 "못생긴 그녀"다.
마르가리타 공주의 존재를 부각시켜 주는 듯한 "그녀"..
절대 주인공이 될 수 없는 "그녀"를 저자는 소설 속에서 또 다른 "그녀"로 등장시켜 절름발이 청춘들이 서로 상처를 어루 만져주게 한다.
"못생겨서", "학벌이 낮아서", "돈이 없어서" 이 시대의 불구자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그녀의 마지막 말은 새로운 위로가 된다.
나이가 들어 가니, 예쁜 사람도 나이의 흔적이 묻어난 탓에 자신이 이전만큼 못생기게 느껴지지 않는 다는 말 말이다.
그러다 할머니가 되면 모든 사람이 다 비슷비슷 해질것 같다는 그녀의 말에 나도 왠지 공감이 간다.
하긴 비단, 외모만 그러할 까. 세월의 흔적에 가장 민감한 영향을 끼치는 것이 "외모"이기도 하지만, 현실에 대한 감각도 그렇지 않을 까?
더 이상 미에 대한 추구도, 돈에 대한 욕망, 자식에 대한 욕심도 둔해지는 "감각"말이다.

이 책은 여러가지 이야기가 공존하는 독특한 구성의 책이다.
사실 도입부는 약간 어리둥절했다. 그들이 오랫만에 다시 만난 연인인가? 다시 헤어지는 건가?
중반부는 과거의 회상처럼 이야기가 이어지는데 "그"와 "요한"의 만남, "그"와 "그녀"의 만남..
그리고 "그녀"와의 헤어짐과 그리움이 주된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속삭이는 듯한 그녀의 목소리"처럼 소설 대부분의 이야기들이 속삭이 듯 전개 해 나가서 "그 아이"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때로는 읽는데 인내심도 필요했다.
"그 아이"는 최소한 세 명의 인물과는 달리 현실적이고 공감이 가는 인물이라 그런가 보다.
사실, 이 책의 진가는 후반부에 있다.
내가 지금껏 읽은 내용이 모두 "요한"의 소설이었다는 점.
(현실과 요한의 소설이 이어진다고 볼 수도 있으나 도입부의 "그"와 "그녀"의 만남은 현실이 아니므로 모두 소설이라고 여겨도 좋을 듯 하다.)
그리고 요한의 소설에서는 "그"와 "그녀"는 현실과는 틀리게 두 번의 만남으로 표현하고 있다.
사고가 안 생겼을 때, 그리고 사고가 생긴 후.
다시 현실로 돌아와서 요한과 "그녀"가 "우연히"도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가져 키우고 있다는 사실은 놀랍기도 하지만, 또 그럴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도 있었다.
그와 그녀를 아는 요한은 그 둘의 만남에 대해 적어도 헤어지라는 충고는 하지 않았으니까.
요한과 그녀를 이어 주는 존재는 지금껏 아이가 아니라 "그"였나 보다.
그동안 서로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에 대한 기억을 공유하는 것 자체가 그들의 결혼 생활을 지속해 주는 끈이지 않았나 싶다.
그 끈이 요한의 소설로 인해 요한과 그녀의 딸로 슬며시 이동한다.
어린 딸의 웃음 소리를 듣는 사람은 이미 끝나 버린 요한의 소설 속 "그"다.
어디서인가 들려 오는 어린 아이의 웃음소리를 "그"는 아주 행복하게 바라본다.
그리고 소설 속 그들은 그 행복한 웃음 소리를 뒤로 하고 또 다른 그들만의 행복 속으로 사라진다.

책의 마지막 페이지 까지 읽어야 제대로 된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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