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스 코드: 더 비기닝
빌 게이츠 지음, 안진환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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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소스 코드 : 더 비기닝'이다.

왜 회고록 제목을 '소스코드'로 지었을까? 소스 코드란, 컴파일을 하기 전, 코딩을 한 프로그램을 말한다. 컴퓨터가 알아들을 수 있는 명령어들의 집합이다. 그가 IT업계의 살아있는 신화라서 이리 지었을까? 나의 상상력을 동원해 보자.


빌 게이츠는 그의 어린 시절부터 대학시절의 마이크로소프트 창립 시기 직전까지를 다루는 이번 회고록을 시작으로 앞으로 두 권의 회고록을 더 낼 것이라고 한다. 두 번째는 마이크로소프트를 운영하던 시절을 다루고 세 번째는 게이츠 재단과 현재의 활동을 조명할 것이라고 했다. 빌 게이츠에 대해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그의 이 세 가지 기간이 주는 의미와 각 구간에서의 그의 행보가 다르다는 것을 알 것이다.


프로그램의 주기를 소스 프로그램을 짜서 디버깅을 마치고 마침내 컴파일을 해서 실행파일로 만들어 릴리즈하기까지로 볼 때, 첫 시작은 역시나 소스 코드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그의 회고록 1편을 소스 코드로 짓지 않았을까 추측했다. 아울러 그의 두 번째, 세 번째 회고록의 제목도 궁금해진다.

빌 게이츠의 생애는 워낙 유명하지만, 잠시 정리해 보자.

어린 시절 수학에 크게 재능이 있었고, 13살에 컴퓨터 프로그래을 접했고 BASIC으로 코딩을 시작했다. 하버드에 입학했으나 소프트웨어 개발에 집중하기 위해 중퇴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1975년 폴 앨런과 함께 마이크로소프트를 설립하고, IBM과 계약을 맺은 후 MS DOS 운영체제를 개발한다.

1985년에는 윈도우 1.0을 출시하고, 이후 윈도우 95,98,XP 등을 차례로 성공하여 세계 최대 소프트웨어 기업으로 성장시킨다. 90년대 중반 드디어 세계 최연소 억만장자가 되고 이후 세계 부자 순위에 늘 이름을 올렸다. 그러다 아내와 함께 빌 & 멀린다 게이츠 재단을 설립한다. 이후 빌 게이츠의 이름은 질병 퇴치, 교육, 기후 변화 등 여러 분야에 이름이 등장한다. 2008년 마이크로소프트에서 공식적으로 물러난 후 자선 사업에 더욱 집중한다. 코로나 때는 백신 개발에 지원하는 것으로 소식을 알리기도 했다.


이 책은 거의 500페이지에 육박한다. 빌 게이츠의 회고록 중 20대 초반까지를 다루는 만큼 그 내용도 상당히 세세하다. 어렵지는 않지만 IT 용어도 상당히 많이 나오기 때문에 IT를 하나도 모르는 사람이 읽을 때 용어에서 오는 거리감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전체 큰 흐름을 잡기에는 독서력이 부족하다고 느낄 수도 있다. (크게 개의치 말고 읽기를)

하지만 읽어나가다 보면, 보통의 집의 여느 꼬맹이와 다를 바 없는 모습에 미소를 짓게 되는 부분도 많다.


그의 어린 시절이 아닌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하므로, 그의 집안에 대한 뿌리와 가정 분위기를 제대로 알 수 있다. 어떻게 이렇게 어린 시절을 다 기억하는지 궁금했는데, 책의 맨 뒤 '감사의 말'을 보니 이해가 갔다. 여러 사람들을 만나며 그들의 말과 기록을 통해 자신의 과거를 추적했던 것 같다.

재미있는 점은 시중에 빌 게이츠를 중심으로 한 책들이 많다 보니, 그런 책도 찾아본 듯했다. 자신을 다룬 책을 통해 다시 자신의 과거를 회고하기도 했고, 어떤 문장에서는 그런 책들의 해석을 수용한 부분도 있어서 흥미로웠다.


변호사 아버지, 기업이사이자 자선가 어머니 아래 자란 것은 유명하다. 빌 게이츠가 기억하는 부모님은 그리 극성스럽지 않은 다정하신 분들이다. 이분들이 가지고 있는 사회 기여/봉사 정신을 빌 게이츠도 자연스레 물려받지 않았나 한다.


한편으로는, 참 키우기 힘든 아이였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주로 수학영재로 분류되는 아이들은 학업적 성취는 뛰어나지만 예민한 구석도 많고 사회성도 뒤늦게 발달되는 경우도 많다. 생각하는 방식도 남다른 편이고. 빌 게이츠도 그런 아이였던 것으로 암시되는 부분이 많은데 부모님이 나름 현명하게 키워주신 것으로 보인다.

좋은 교육 환경에서 자랐고 컴퓨터에 관심이 높다 보니 자연스레 그의 영재성으로 인한 장점을 키우고 부작용은 최소화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빌 게이츠가 스스로에 대해 "부유한 미국에서, 백인 남성에게 유리한 사회에서 백인 남성으로 태어났다는 것은 일종의 출생 복권에 당첨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라고 말하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너무도 이해가 간다.

여기에 적절한 타이밍이라는 운이 따랐다고도 말한다. 열세 살에 프로그래밍을 시작했을 때, 대형 컴퓨터에 접속할 흔치 않은 기회를 얻었고, 수학 재능을 일찍 깨달은 것도 큰 전환점이라고 했다. 올바른 답은 항상 존재하므로 찾기만 하면 된다는 확신을 얻을 수 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오늘날이었다면 자폐 스펙트럼 진단을 받았을 것이라고도 했다.


"부모님에게는 아들이 왜 특정 프로젝트에 집착하고, 사회적 신호를 포착하지 못하며, 때로 타인에게 미치는 영향을 인식하지 못한 채 무례하거나 부적절하게 구는지, 그 이유를 파악할 수 있는 지침서나 교재가 없었다. - 중략 - 내가 아는 것은 부모님이 나에게 필요한 지원과 압박을 적절히 조화시켜, 정서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여지와 사회적 기술을 개발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었다는 사실이다. - 후략-"


확실히 '회고록'이 전해주는 빌 게이츠는 제3자의 눈으로 전하는 빌 게이츠와 많이 달랐다. 다른 책에서는 빌 게이츠의 성공을 주로 다루고, 그 성공의 원인을 분석하거나, 그가 미지는 사회적 영향을 주로 다루고 있다.

반면 이 책은 인간적인 빌 게이츠를 담담하게 서술하고 있다. 그의 우수한 두뇌, 끈질긴 노력, 엄청난 성공을 크게 과시하고 있지 않고 있다. 그래서 예상치 못한 '웃음'을 안겨주기도 했다. "뭐야, 이 옆집 컴퓨터 덕후 같잖아?" 이런 느낌이랄까?

그를 신화 속 영웅으로 만들지 않아 괜히 반가웠다. 아마도 그동안 읽은 책에 등장한 빌 게이츠와 마이크로소프트에 대한 이야기 때문에 그를 지나치게 특별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내가 어릴 때는 위인전이 많았다. 지금은 위인전에 새롭게 등장하는 '위인'은 없다. 대신 유명인들의 '회고록'이 생겨났다. 나는 회고록을 그리 좋아하는 편이 아니어서 그동안 거의 읽지 않았다. 보통의 회고록은 직접 쓰지 않고 대필 작가가 써 주는 경우도 많아서다. (김구선생의 <백범일지>도 회고록 성격이 강한데, 이 책은 예외다. )

그러나 빌 게이츠의 회고록은 솔직히 감탄을 했다. 이렇게까지 자신의 과거를 추적한 경우가 있을까 싶다. 몇 백년 정도 지나면 빌 게이츠의 회고록은 IT 역사의 기록물로 남을 수도 있겠다 싶다.

* 리뷰와 상관없는 추가 글 


빌 게이츠의 사례는 여러 책에서 서로 다른 시각으로 인용된다. 말콤 글래드웰의 <아웃라이어>에서는 1만 시간의 법칙과 좋은 운이 결부된 사례의 대표주자로 언급한다.


[책] 아웃라이어 


대니얼 마코비츠의 <엘리트 세습>을 포함한 능력주의를 다루는 책에서는 오늘날 근면한 부자들의 전형을 '빌 게이츠'로 보고 있다. 그만큼 그의 영향력은 대단하다. 어쩌면 빌 게이츠의 사회적 영향에 대한 논문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 봤다.


[책] 엘리트 세습

나에게도 마이크로소프트가 주는 의미는 크다. 가장 먼저는 90년대 초반 대학시절, 나만의 개인용 PC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대학시절에 DOS 환경에서 아래한글로 리포트를 냈는데, 취업을 하니 윈도우 환경에서 오피스를 사용하게 되었다는 점도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그 무렵 네이버나 카톡은 있지도 않았다.

IBM에 몸담고 있을 때 글로벌 기업으로 위상을 떨치고 있었으나, 점차 마이크로소프트가 공룡(IBM)을 물리쳤다는 이야기가 들렸다.

이후 급 성장하는 거대 글로벌 플랫폼들의 각축은 마치 현대판 삼국지를 거쳐 춘추전국시대를 보는 것 같았다. 그러다 읽은 <거의 모든 IT의 역사>에서는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구글의 본격 삼파전을 다루어주어 흥미로웠다.


[책] 거의 모든 IT의 역사


세월은 흘러, 이제 세게는 네 개의 거대 기업인 구글, 애플, 페이스북(이제는 메타), 아마존으로 정리가 되었다. 이들이 잠식한 세상이 워낙 거대해서 새로운 플랫폼 기업이 생겨나기란 불가능해 보였다. 과거의 거대 IT기업은 자신만의 영역에서 자리를 지키는 것으로 만족하리라 여겼고 마이크로소프트도 빌 게이츠가 떠난 후 이제 고인물이 되지 않을까 했다.


[책] 플랫폼 제국의 미래 


그런데 웬걸, 구글이 독보적인 1위라고 생각했던 검색시장에서 Open AI의 등장으로 마이크로소프트가 화려하게 다시 부활했다. 거기에 아마존에게 이미 넘어갔으리라 여겼던 클라우드 시장에서도 마이크로소프트가 만만치 않게 추적하고 있다.

과거에는 기업들이 한번 쇠락의 길을 걸으면 쉽게 왕좌의 자리를 다시 차지하지 못했으나, 미국의 거대 플랫폼 기업들은 쉽게 '망'과 '쇠'의 길을 가지 않고, 끊임없이 부활에 부활을 거듭하고 있어서 상당히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 마이크로소프트가 여전히 굳건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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