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기 때문에
기욤 뮈소 지음, 전미연 옮김 / 밝은세상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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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오랫동안 소설보다 인문학, 과학, 철학, 예술 등 관심사를 옮겨가며 책을 읽었다. 아주 간간이 소설을 읽기는 했으나 스스로 찾아서 읽은 것은 아니고 누군가 책을 보내주면 읽은 정도다. 소설은 스토리만으로도 재미있지만, 다 읽고 나면 나도 모르게 인간 내면을 이해하게 된다.

인간을 구성하는 물리적 요소를 이해하는 데는 생물학 그중에서도 유전학, 뇌과학 분야가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재미있는 점은 분명 물리적 요소이지만 인간의 무형의 요소를 해석하는데도 큰 도움이 되고 있다. 그래서 진화를 포함한 유전자에 대한 이해와 뇌의 작동 원리가 심리학과 결합하여 인간의 행동, 아울러 깊은 내면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그래도 아직은 소설만큼 우리를 잘 설명해 주지 못한다. 인간의 모든 행동을 생체 내 화학적 결합이나 진화 때문이라고만 말하는 데는 문제가 있다.

<사랑하기 때문에>는 미스터리 소설이다. 책을 펼치면 사연이 가득해 보이는 노숙자 마크, 거리에서 방황하고 있으나 당찬 소녀 에비, 부유한 상속녀지이지만 어딘가 모르게 허무해 보이는 엘리슨, 이 세 명의 이야기가 하나씩 시작된다. 이들이 서로 어떤 관계인지 알 수 없으나 왠지 책에 점점 몰입하게 되는 이유는 기욤 뮈소의 탁월한 글솜씨 때문일 것이다. 도대체 다음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지 짐작조차 할 수 없지만 흡입력이 대단해서 빨리 다음 페이지를 넘기게 만든다.

마크는 알고 보니 저명한 의사였고 사랑하는 아내 니콜과 딸 라일라가 있었다. 이 딸은 그의 친 자식이 아니었고 결혼했을 때 이미 임신한 아내가 낳은 딸임에도 불구하고 친자식 이상 끔찍하게 아꼈다. 그런 딸이 어느 날 사라진다. 다섯 살 밖에 되지 않은 데다 뉴욕의 쇼핑몰에서 사라지다 보니 유괴의 가능성이 컸으나 딸은 돌아오지 않았고 유괴범의 협박도 없었다. 그 후 마크는 인생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노숙자가 되어 술에 찌든 채 5년의 시간을 보낸다.

이런 마크에게 딸을 찾았다는 연락이 오게 되고, 딸과 해후한 마크는 함께 비행기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려는 참이다. 이 비행기에는 에비와 엘리슨도 함께 타고 있었다.

이들은 한 비행기에서 만나서 자연스레 서로의 과거를 이야기하게 된다.

에비는 아픈 어머니를 둔 일종의 소녀 가장이었다. 악바리 근성이 많은 꿈 많고 똘똘한 그런 소녀였는데, 어머니의 간이식 수술을 위해 애를 쓰던 중 드디어 어머니의 차례가 돌아온 순간, 누군가가 에비 엄마의 차례를 가로채고 어머니는 죽고 만다. 그 후 에비는 간을 가로챈 사람에게 복수를 하고자 했다. 그 과정에서 길에서 우연히 의사 커너의 도움을 받게 된다.

엘리슨 역시 아픈 과거가 있다. 재력가의 상속녀지만 온갖 사건사고를 일으켜서 방송에 자주 나온 트러블 메이커인 엘리슨은 알고 보니 운전을 하다가 실수로 한 아이를 치게 되고, 아버지는 그 시체를 수습한다. 아버지는 이후 방황하는 엘리슨이 저지르는 크고 작은 실수를 수습해 주다가 커너 의사를 만나 볼 것을 권한다. 불치병에 걸린 후 자실을 하게 되는데, 엘리슨의 가슴속 응어리는 더욱 크게 자리 잡는다.

모든 캐릭터의 스토리에 스쳐가듯 등장하는 의사 커너는 마크의 과거 회상 장면에서 크게 등장한다.

마크와 커너는 어린 시절부터 함께한 친구였고 고난도 함께 겪어내고 의사로서 성공도 함께 해 냈다. 커너의 과거만으로도 소설책 한 권이 나올 정도로 고난이 많을 정도였으나 이 둘은 정신과 의사로 성공했을 뿐 아니라 최면을 통한 심리치료의 선구자로도 유명해진다.

커너와 어떤 형태로든 접점이 있는 데는 분명 이유가 있을 거라는 추측을 할 수 있으며, 바로 그것이 이 들 세명이 한 비행기에 타고 있는 이유다.

이 책이 미스터리 물이지만 이렇게 마음을 끄는 이유는, 사랑과 용서를 근간으로 하고 있어서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소설이 주는 묘미이다. 서두에 말했듯, 과학이나 심리학 등과 같은 학문에서 아무리 우리의 행동을 자세히 해석해서 설명해 주어도 소설에 미치지 못한다. 마치 우리의 거울 세상처럼 우리와 닮은 모습을 한 소설 속 캐릭터들은 울고 웃으며 우리 내면을 대신 보여준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으나 딸을 누구보다 사랑한 마크, 철부지 엄마보다 더 엄마 같은 딸 에비, 누구보다 딸을 걱정했을 엘리슨의 아버지와 세상 모든 것을 다 가졌으나 자신의 과오로 괴로워하는 엘리슨은 우리의 몇 가지 단면과 닮았다.

그런데 여기서 기욤 뮈소는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이들의 과거에는 분명 가해자와 피해자가 있다. 때로는 우리에게 가해자로써 제대로 된 사과를 하고 죗값을 받을 용기가 있는지 물어보고, 때로는 피해자로써 가해자를 용서할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한다.

"나라면..."

책을 읽는 내내 등장인물의 다양한 상황 속에서 "나라면"이라는 질문을 해 보았다.

현실과 과거, 현실과 꿈을 넘나드는 마술과 같은 구성 속에서 크라이막스로 갈수록 혼란스럽지만 책에 몰입하게 만드는 매력 넘치는 소설이다. 미스터리지만 무섭지 않고, 심리를 다루지만 인간 내면의 어두운 면 보다 밝고 희망찬 부분을 강조해 주어서 더욱 마음에 들었다.

기윰 뮈소의 책은 처음 읽었는데 다른 책도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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