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고 싶지만 철학은 하고 싶어 (feat. 비트겐슈타인, 마틴 셀리그만)
'긍정 심리학'의 마틴 셀리그만은 행복한 삶의 첫번째 조건은 '즐거움', 두번째는 '몰입', 세번째는 '삶의 의미'라고 했다. 20세기 오스트리아 위대한 철학자 비트센슈타인은 비극적 삶을 산 사람 같지만 죽음을 앞두고 '멋진 사람'을 살았다고 했다. 죽음을 앞둔 사람들은 인생을 좀더 즐기지 못했다는 점을 후회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한다"라는 말을 하지 못했음을 아쉬워한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즐거움이나 행복이 아니다. 즐거움 그 자체는 삶의 목표가 아니라 감정의 상태일 뿐이다.
저자는 수단이 목표가 될 수 없으므로 즐거움은 부수적으로, 일시적으로 따라오는 감정일 뿐이니 '즐거움'은 우리 인생에서 '후순위'로 두고 '몰입'과 '의미'에 집중해 보는 것도 괜찮다고 말한다. 우리가 자신이 좋아하는 일, 잘하는 일에 몰입하고 또 거기에서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있다면, 우리도 죽음을 앞두고 비트겐슈타인처럼 "내 삶은 멋졌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의 말에 공감한다. 재미없고 하기 싫어 죽겠는데 '몰입'하는 경우는 없다고 본다. 즐거움과 몰입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가까이 붙어 있다. 그리고 몰입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사실상 의미를 어느 정도 찾았다고 보여진다. 아무 가치없는 일에 몰입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나는 반항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feat. 페스팅거, 카뮈, <이방인>)
우리가 원하는 대로, 믿는 대로 세상이 흘러가지 않을 때, 우리는 자신을 기만한다. 내가 진짜로 믿었던 것을 그것이 아니라며.
이전에는 나도 종종 자기합리화를 했다. 이런 자기합리화가 내 마음의 안정을 주기도 하지만, 때때로 나 자신에 대한 객관화를 하지 못하게 만들기도 해서 '자기합리화' 중이구나에 솔직하려는 연습을 하곤한다.
목숨을 건 인정투쟁 (feat. 헤겔, 호네트, <스타트렉>, <신세기 에반게리온>, <더 레슬러>)
헤겔의 정신현상학에서 자기의식의 핵심 개념은 목숨을 건 인정투쟁이다. 독일의 철학자 학셀 호네트는 이를 더 발전시켜서 우리가 어떤 특정한 타자에게 인정받으려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일반적인 다수의 타자들로 부터 인정받으려 한다고 했다. 그래서 죽어라 공부하고, 승진을 위해 애를 쓰고, 먹을 때마다 SNS에 올리는 행동을 하게 된다.
과도한 인정욕구는 불행을 부르므로 어떤 이들은 타인으로부터 미움받을 용기를 가지라고 하는데 사실 불가능한 이야기다. 우리는 모두에게 인정받을 필요가 없고 '누군가'에게만 인정을 받으면 된다. 또한 동시대 사람일 필요도 없다. 이것이 바로 '삶의 기술'이다.
사람들의 관심과 인정을 바라는 건 누구나 마찬가지이지만, '무엇'에 대한 인정인지 생각해 보면 좋겠다. 가장 쉬운 예로 인터넷 의 '숫자'이다. 블로그를 예를 들어보자면, 이웃이 늘고 '좋아요' 숫자가 늘고 댓글이 있으면 당연히 기분이 좋다. 그런데, 이 숫자 중 허수가 많다.
정성스래 글을 쓰고, 그 글에 공감을 해서 증가한 숫자는 단순한 '1'이 아니다. 그 속에는 '교감'이 분명히 있다. 내가 소중히 여기는 가치에 대해 충분히 노력을 하고 거기서 얻는 '인정'이야 말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낯설고도 낯익은 내 안의 또 다른 나 (feat. 프로이트, 라캉, <지킬박사와 하이드>)
카프카의 책을 읽었을 때, 낯설기도 했고 당황스럽기도 했다. 말도 안되는 상황이 벌어지는 데 등장인물들은 당연한 듯 이야기를 풀어낸다. 이 책에서 카프카의 변신에 대한 해석을 해 주어서 반가웠다.
주인공 그레고르가 벌레가 되고 가족들이 떠나게 되는 기묘한 이야기에 대해 카뮈와 사르트르는 실존주의적 소설로 해석하고, 어떤 이들은 자본주의 사회의 인간 소외를 보여주는 작품으로 해석한다.
도기숙 교수는 카프카라 '하이퍼그라피아' 였을 수 있다고도 말한다. 하이퍼그라피아란 글쓰기에 집착하는 일종의 정신질환으로 조증, 우울증, 과대망상을 동반하기도 하고, 자페적 성향이 강하므로 내면의 생각의 흐름을 글로 쓴다. 따라서 상징적으로 함호같아서 해독이 어려운데, 이런 설명을 듣고 보니 카프카 책이 왜 그리도 난해한지 알겟다.
'카프카스러운'은 '수수께끼 같고, 섬뜩하고, 위협적'이라는 뜻으로 사용되고, 프로이트의 '언캐니'는 친숙한과 낯선 두가지 뜻을 다 가지고 있다. 카프카 소설은 두 상반된 분위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카프가 스러운 것이다.
카프카 소설은 분명히 이해가 어려운데 희한하게도 뇌리에 남아 있다. 이 책을 읽고 보니, 내가 느낀 것도 실존주의, 인간 소외여서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얼마전 프라하에 여행을 갔다가 카프카의 흔적을 쫓은 적이 있다. 두개의 카프카 동상과 프라하성에 있는 황금 소로에 갔었는데 확실히 장소가 주는 힘이 있다. 하이퍼그라피아 성향이 그의 글에 녹아 있을 수 있지만 성장배경과 그의 정체성도 크게 한몫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