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 the PERFUME - 나만의 새롭고, 특별한 향기를 위한 가이드북
사라 매카트니.사만다 스크리븐 지음, 양희진 옮김 / 시그마북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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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향수를 뿌리지 않는다. 후각이 그리 예민한 편이 아니어서 그런지 향수를 즐기지 않는 편이다. 그래도 20대였을 때 향수에 관심을 가진 적은 있다. 우연히 향수 미니어처가 생겼는데 귀여워서 해외를 나갈 때마다 향수 미니어처를 샀었다.

당시 내가 좋아했던 향은 산뜻한 플로럴이었고 장미향처럼 달콤한 향이나 무거운 향은 부담스러워했었다. 향수보다 더 좋은 향은 샤워하고 나서 은은하게 남은 샴푸 냄새였었다. 그래서인지 혹시나 누가 진한 향을 풍기면 진한 화장을 했거나 과한 옷을 입은 것처럼 보이곤 했다.

어느 날 이사를 하면서 짐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그동안 모았던 향수 미니어처를 버리면서 향수에 대한 관심도 함께 사라지게 되었다. 그러다 최근 향수뿐 아니라 향기 나는 초, 아로마 오일 등이 대중화되면서 삶의 질이 향상되었다고 즐거워하는 사람들이 늘다 보니, 다시 향수를 기웃기웃하게 되었다.

어떻게 보면 나에게 향수는 와인과 비슷하다. 후각이 예민하지 못한 것처럼 술에 약한 편이다. 향수와 와인, 둘 다 예쁘고 매력적인데 그 종류가 워낙 많다 보니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나에게 어떤 것이 잘 맞을지 잘 몰라서 아예 발을 담그지 않게 되어서다.

그러던 중, <향수>라고 하는 책을 접하게 되니 마치 '향수의 세계'에 대한 지도를 받은 기분이다. 두꺼운 책 하나 가득 향수에 대한 소개가 있어서 향수 백과사전을 선물받은 것만 같다. 향수 마니아라면 이 책을 보면 밤잠 설렐 듯하다.

이 책의 머리말은 향수의 역사, 재료 등 대한 몇 가지 지식을 알려주고 있다.

향수는 몇 천년 동안 질병을 예방하고 몸을 치장하는 데 쓰였다. 곪거나 썩은 상처에서 풍기는 악취가 지독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좋은 냄새가 질병을 물리친다고 믿었다. 실제로 에센셜 오일은 항바이러스, 항균, 항진균 작용을 한다. 뛰어난 향수는 건강한 삶으로 이끌었고 좋은 냄새는 건강의 척도였다.

클레오파트라 여왕은 유혹의 기술로 향수를 사용했다. 수 세기 동안 좋은 향기를 맡기 위해 향수를 사용하던 것은 부자들만 가능했다.

19세기가 되어서 합성원료를 사용하면서 향수의 가격은 낮추고 생산량을 늘리게 되었다. 이로 인해 부자뿐 아니라 일반 사람들도 향수를 쉽게 살 수 있게 되었고, 향기로운 비누와 '화장수'로 사람들의 몸과 옷에서 좋은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계속 유행이 바뀌고 새로운 원료가 등장하고 있으나 지금의 향수는 1880년대 말, 합성원료를 발견했을 때와 비슷한 방식으로 제조되고 있다.

지금까지 향수는 노란색 계열이었으나, 지금은 모든 색조를 입할 수 있다. 현대 향수 색소는 공기와 접촉하면 산화되어 무색이 되기 때문에 옷을 더럽히지 않는다.

내가 후각이 그리 예민하지 못하다고 했는데, 이런 생각을 해 본 적도 있다. 후각이 둔한 사람은 향수를 과하게 뿌려도 잘 모르지 않을까 하는. 진한 향수를 뿌리는 사람은 둔한 후각을 가진 사람이 아닐까 하며 상상해 본 적도 있다.

그 해답은 아니더라도 내가 뿌린 향수를 다른 사람은 맡을 수 있는데 나는 잘 맡지 못하는 것에는 이유가 있다.

인간의 후각 시스템은 생존과 직결되는 정보에만 집중한다. 그래서 좋아하는 향수를 주기적으로 뿌릴 경우, 뇌는 그 향에 대한 후각 정보는 무시하게 된다. 이를 '후각적 습관'이라고 한다. 뇌는 좋아하는 것에 익숙해지기 때문에 향기를 맡는 기쁨을 느끼고 싶다면 여러 향수를 돌려쓰는 방법을 택하라고 한다. 향수계 영업 마케팅에서 좋아할 만한 뇌과학이다.

하긴, 후각뿐 아니라 시각과 미각, 인간의 모든 감각이 다 마찬가지 같다. 좋아하는 것을 매일 접할 때는 뇌가 그 정보를 skip 하는 것 같다. 계절마다 커튼이나 이불 커버 등은 갈아주는 부지런한 주부들이 있다. 모두 좋아하는 것들이지만 주기적으로 환경을 바꿔줌으로써 기분을 전환하는데 현명해 보인다.

오래된 향수병을 볼 때 '이걸 뿌려도 되나, 유통기한이 있을 텐데'라고 생각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뚜껑을 열지 않았다면 향수 수명은 수십 년이라고 한다. 하지만 일단 개봉을 하고 나면 산소와 반응을 하기 때문에 향이 바뀌기 시작한다. 향수가 3/1 정도 남았다면 아낌없이 뿌려야 한다. 또한 빛에 닿으면 성분이 변하기 때문에 아끼는 향수는 박스에 넣어 어둡고 서늘한 곳에 보관하는 것이 좋다. 매일 뿌리는 향수는 금세 사용할 것이기 때문에 눈에 띄는 곳에 두어도 상관없다.

향수를 뿌리는 곳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샤넬은 키스를 받고 싶은 모든 곳에 향수를 뿌려야 한다는 로맨틱한 표현을 했으나, 이 책은 맛도 없고 혀가 따가울 수 있으니 그러지 말라고 말한다. (이런 유머를 쿨하게 툭 던지다니.)

스스로 향수를 선택했듯, 향기를 맡고 싶은 곳에 뿌리는 것이 정답이다. 손목을 함께 문지르면 마찰로 향기가 약간 따뜻해지면서 빨리 증발할 수 있으나 향기 자체를 손상시키지 않는다.

책의 본문은 아주 예쁜 페이지로 가득 채워져 있다. 한 페이지에 2개 정도의 향수를 예쁜 그림과 함께 소개한다. 내가 이 책에서 가장 마음에 들어 하는 것은 향기에 대한 설명과 향수병의 그림이다. 진짜 향수병의 용기를 일러스트로 예쁘게 옮겨 그려두어 눈이 행복했다. 혹시나 지구 어딘가에 향수 박물관이 따로 있지 않는 이상, 이렇게 많은 향수를 구경해 볼 수 없을 듯하다. 게다가 이 많은 향수에 대한 설명을 반 페이지씩 하고 있는데 설명을 딱딱하게 하지 않고 문학적인 표현이 가미되어 있어다. 모든 설명이 서로 다 다른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가장 먼저 등장하는 '4711 오리지널 오 드 콜로뉴'에 대한 설명을 빌어 보자면,

'4711 오리지널 오 드 콜로뉴의 향기가 유럽 문화 속 깊이 스며들었다. 우리 할머니는 차 한 잔으로 잠이 안 깰 때 피로회복용으로 이 향수를 사용했다. 스파클링 한 시트러스의 사랑스러움을 느껴보자. 먼저 상쾌한 오렌지, 레몬 향이 확 끼쳐오고, 오렌지 꽃과 잎이 그 아래에서 풍부함을 더한다. - 후략-'

향기를 잘 모르는 나도, 책에 그려진 예쁜 향수병을 보며 이런 설명을 읽으면 어떤 향기일지 상상이 된다. 결국 이 두꺼운 책에서 약 500개의 향수 소개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전 페이지를 끝까지 넘기게 만들었다.

모든 향수는 동일한 표현법을 넣고 있다. 향수 이름, 제조사, 향수의 의미, 조향사, 가격대

조향사 이름이 들어 있는 이유는 아마도 이들에 대한 존경의 의미를 담고 있어서 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우리가 아무리 좋아하는 향수라고 해도, 제조사 이름이나 브랜드를 알고 있지, 조향사 이름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조향사 이름들을 보자니 향수계 유명 셰프들이 등장한 것 같기도 하다.

향수의 의미도 좋았다.

마릴린 먼로가 '잠자리에 들 때 몸에 걸치는 유일한 옷'이라고 말해서 유명해진 샤넬 NO5를 찾아보니 '전설'이라고 적혀 있다. 역시 샤넬이구나 싶었다.

사람들이 즐겨 찾고 쉽게 살수 있는 향수들로 소개하려 애쓰다 보니, 고가의 럭셔리 향수, 단종된 향수, 특별한 한정 제품 등은 제외했다고 한다. 대신 이런 럭셔리 향수를 소개하는 블로그 정보를 제일 뒤에 알려주는 세심함을 보여준다.

이 책은 향을 종류별로 구분하고 있다.

  • 시트러스 citrus : 베르가못, 스위트, 비트, 블러드 오렌지, 레몬, 라임 등의 과일의 향이 향수의 원료가 된다.

  • 플로럴 Floral : 모든 향수에는 대부분 플로럴 적 요소가 포함되어 있다 보니, 이 챕터뿐 아니라 다른 챕터의 하위에도 플로럴 향수가 포함되기도 하다. 머스크 플로럴 향으로 볼 수고, 플로럴 머스크 향으로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 솔리플로르 Soliflores : 꽃 한 송이만 꽂는 꽃병을 뜻하며 단일 식물향이 나도록 만든 향수를 의미한다. 장미, 재스민, 아이리스, 바이올렛, 라벤더 등 제목만 봐도 어떤 향인지 짐작 가능하다.

  • 소프트 앰머 Soft amber : 바닐린과 록 로즈에서 추출한 수지인 라브다넘의 혼합물을 의미한다. 19세기 중반까지 보석처럼 비싼 화석화된 나무 수지의 결정질 호박을 향수의 고정제로 사용했기 때문에 부유한 계층만 사용했다. 합성 바닐린이 등장하면서 생산 비용이 낮아진 이후 엠버 계열 향수는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 허벌 Herbal : 식물의 잎, 씨앗이나 깍지에서 추출한다. 허브 에센셜 오일은 기운을 북돋고 금방 사라지는 휘발성이 강한 경향이 있다. 풋풋한 풀 내음, 상쾌함, 활력을 느낄 수 있다.

  • 우드 Woods : 남성용으로 인식되지만 향수는 누구나 뿌릴 수 있어야 한다. 플로럴 계열만큼 우드도 향의 범위가 넓다. 싱그럽고 꾸덕한 소나무 향, 검게 그을린 숯 향까지 다양하다.

  • 머스트 Musk : 동물성 머스크는 수천 년 동안 조향에 사용되었다가 1800년 후반에 화학자들이 합성 머스크를 발견하여 잔인함은 피하고 생산 가격은 낮추게 되었다.

  • 모시 Mossy : 시프레라고 부르기도 한다. 숲에서 넘어져 짙푸르고 축축한 이끼를 뒤집어쓴 것처럼 강렬한 향에서 나무뿌리 근처에서 희미하게 피어오르는 오크모스 향기까지 흥미로운 강도와 구조를 보여준다.

  • 가죽 Leather : 스웨이드 지갑 냄새, 1960년 형 재규어 가죽 시트 냄새, 상자에서 막 꺼낸 새 신발 냄새가 나기도 한다.

  • 오우드 Oud : 아랍어로 나무를 뜻한다. 값비싼 오우드 에센셜 오일은 인도, 극동 아시아, 중동 지역의 전통 향수에 주로 사용되었고 이후 합성원료를 만들어내 저렴한 제품을 선보일 수 있게 되었다.

  • 구르망 Gourmand : 솜사탕 향기가 나는 분자인 에틸 말톨과 앰버가 만나 달콤한 향수가 생겼다.

  • 프루티 Fruity : 과일향으로 루바브, 라즈베리, 수박 향기 등이 있다.

  • 컨셉 Concepts : 일반적인 향수의 한계를 넘긴 향기로 가장 잘 팔리는 향수는 아니지만 엉뚱하고 기묘한 컨셉의 향기는 향수 애호가들을 유혹한다. '익스트림 퍼퓨머리' 는 도전정신이 강한 사람들이다.


마지막으로 500여 개 향수 중에서 특이해서 웃음을 자아내는 향수 몇 가지 뽑아봤다.

https://blog.naver.com/jykang73/223131813481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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