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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왜 사느냐 묻는다면
미나미 지키사이 지음, 백운숙 옮김 / 서사원 / 2023년 6월
평점 :
마치 꽃과 나비를 속삭이는 시가 담긴 작고 예쁜 시집처럼 생긴 책이 도착했다.
<그럼에도 왜 사느냐 묻는다면> 제목과 어울리는 표지 그림이 무척 어울린다.
최근 들어 책을 받게 되면 표지의 그림이나 사진, 문구 등을 보고 책 분위기를 미리 예상해 보곤 하는데 마치 아이가 선물상자 열어보는 듯한 묘한 기대감이 있다. 표지 한 장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아야 하다 보니, 책을 내시는 많은 분들의 많은 고심이 이곳에 집중되어 있어서, 책을 읽기 전에는 그 분위기를 미리 짐작할 수 있고, 다 읽고 나서 다시 표지를 보면 그림과 글이 주는 상징적 의미를 더욱 이해할 수 있어서다.
편안하고 잔잔한 그림에서 내용도 그리 물 흐르듯 자연스레 흘러가겠구나 싶었고, '오늘을 살아가리라 다짐하는 그 순간, 생의 반짝임이 있다.'라는 문구가 벌써 오늘의 고단함을 위로해 줄 것 같은 느낌이다.
재미있는 건, 이 책의 저자는 주지 스님인데 이해인 수녀의 강력 추천이라고 적혀있다.
종교를 진심으로 대하는 분들께는 죄송한 일이지만, 말로는 기독교라고 하나 교회를 다니지 않으며 말씀보다 실천이지라는 변명을 하곤 했다.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던 건, 기독교 재단의 중학교를 다니면서 학교에서 교회를 다닐 것을 강요해서였다. 학교 커리큘럼에도 성경 수업 시간이 주 1시간 있었다. 당시 성경 수업을 해 주셨던 선생님은 기독교의 교리를 설명해 주신 게 아니라 성경 책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들과 사건에 대해 재미있는 이야기처럼 해 주셨는데, 마치 그리스 로마 신화를 보는 듯 얼마나 재미있었는지 모른다. 그 김에 내 종교도 기독교가 되었다.
직장 생활을 시작하며 정신없이 일하다 보니 교회와 멀어지기는 했으나 그래도 내 종교가 기독교임에는 변함이 없다. 물론 가족들도 '그랬어?'라며 놀라기는 하지만. 그래도 가끔 책에서 종교에 대해 언급하시는 분들의 글을 읽으면 뜨끔할 때가 있다. 이어령 선생님의 <지성에서 영성까지>도 그런 책 중 하나이다.
언제부터인가 성경 말씀이나, 다른 종교에서 지향하는 바, 그리고 좋은 책들에 적힌 글들이 하나로 보이기 시작했다. 똑같은 사과를 보고 다른 화풍으로 그림을 그려놓고 '우리는 서로 다른 사과요'라고 말하고 있으나 내 눈에는 그 본질이 '사과'임은 변함이 없어 보였다. 그래서인가 여타 종교, 여러 상반된 내용의 책에 대해서도 그리 거부감을 가지지 않고 일단 보고 듣는 편이다.
최근에는 법륜스님의 말씀이 좋아서 산책을 할 때 종종 듣는다. 구수한 사투리 억양으로 대중이 알아듣기 유머러스 하면서도 편하고 쉽게 풀어서 설명을 해 주시는데, 역시나 듣고 있자니 성경 말씀과 다를 바가 없다. 좋은 말씀이 가리키는 방향은 모두 다 같은가 보다.
내가 본 동영상은 사람들이 고민을 털어놓고 법륜스님이 조언을 해 주는 시리즈인데, 사람들의 고민과 질문을 듣고 있자니 남의 허물과 어리석음이 정말 잘 보인다. 그런데 그 허물과 어리석음이 나라고 없는 게 아니라 '다 똑같구나' 하는 생각이 점점 든다. 똑똑한 척, 사리분별 있는 척 사는 것일 뿐이지 알고 보면 매 순간 욕심이 앞서고 사소한 것에 목숨 걸고 있다.
이해인 수녀님의 추천, 법륜스님의 강연 덕에 일본의 유명한 고승의 책도 기대감 가득하게 읽었다.
이 책은 저자가 평소 수행을 하며 느꼈던 점과 많은 사람들과 고민을 나누며 든 생각을 정리한 것으로 불교를 다루고 있지 않다. '힘들긴 해도 괜찮네'라며 살수 있고, 별 괴로움 없이 살 수 있다면 그 자리에 불교가 비집고 들어갈 자리는 없으며, 저자는 오히려 매일 행복하게 사는 사람이 늘어나 불교가 점점 잊혔으면 한다고 했다. 그렇지 못하다면 불교란 살아가기 위한 기술, 더 정확히 말하면 죽음을 향해 살아가는 기술이므로 불교라는 도구를 한 번쯤 써보면 좋다고 말한다.
그러고 보니, 고비가 올 때, 마음이 약해질 때, 미래가 불확실하여 불안할 때, 누군가를 찾게 된다. 주변인에게 고민을 말하기도 하고, 종교에 의지하기도 하고 점을 보러 가기도 한다. 모두가 행복한 사회라면 종교가 설자리가 없을 수 있겠구나 싶다.
이 책은 어떤 문제에 대한 확실한 설루션을 준다기 보다 자신의 문제를 또렷이 보게 해주고, 자신이 놓인 상황을 새로운 관점으로 볼 수 있게 도와준다. 그래서 마치 굴곡진 인생을 겪어오면서 세상의 이치를 깨달은 사람의 에세이 같기도 하고, 유순한 심리 상담책 같기도 하다.
이 책이 주는 가장 큰 메시지는 우리는 '우연히 태어났다'라는 말이다.
우연히 태어난 '나'라는 존재에 의미를 찾기 말고 세상이 빚어낸 '나'를 유연하게 받아들이고 삶의 괴로움을 기꺼이 수용하며 흘러가도록 놓아주자는 말에 꽤나 내 시선이 머물렀다.
'나'를 소중히 여겨야 하고 나의 삶은 소중하니까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한다는 착각에 사로잡혀서 내 마음 같지 않은 하루와 인간관계 발을 동동 구르고, 더 나아지려고 안간힘을 쓰려는 사람이 많다.
그런 우리에게 이름, 성별, 나이, 성격, 직업, 가족, 주소 등 나를 이루는 속성을 걷어내고 나면 남는 게 무엇이냐고 반문한다. 내 의지로 태어났다면 태어나는 시간, 장소, 부모를 원하는 대로 골랐을 것이다. 뜻하지 않게 태어나 '남들과 다른 나'로 살아가기 위해 인정받고 칭찬받으려고 애를 쓰지 말고 그저 흘러가는 대로 놓아두는 삶의 지혜를 이 책은 알려준다.
이상적인 모습으로 살고 싶어서 열심이지만 사람은 '자신의 기억력'과 '타인의 인정'이 빚어낸 존재이므로 진정한 내 모습 찾기는 애당초 이루어질 수가 없다. 우리 모두는 수동적인 존재이므로 무언가에 등 떠밀리듯 적극적으로 살려고 하면 숨이 차오르기 마련이다. 무심한 마음으로 살면 한 결 편하다고 말한다.
나처럼 잠시도 가만히 못 있는 사람에게 필요한 말이다. 열심히 살아야 하는 현대사회에서 무심한 마음이 가당키나 할까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하고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태도에 대해 높은 가치를 두는 편이다. 그런데 그 정도가 과해지면 마음의 병이 생길 수 있고, 마음의 병은 행복이라는 열매를 갉아먹는다. 그래서 행동은 열심히 살더라도 마음은 반대로 잔잔해야 한다고 본다. 그래야 실망할 일, 남을 질투하는 일도 준다.
사람에 따라서는 꿈과 희망이 인생의 걸림돌이 될 때도 있다고 한다. 이루어질 리 없는 꿈을 힘겹게 붙들고 있기 보다 속마음을 한 번쯤 유심히 살펴서 진짜 소중한 가치가 무엇인지 깨달아야 한다. 정말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면 '목표'로 바꾸어 생각하고 구체적으로 그 과정을 그려보자. 단념을 할 가능성조차도 구체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남일 보듯 냉정하게 뜯어보고 나서 낮은 곳에서 차근차근 쌓아 올려야 안이한 꿈에 빠져 허우적댈 일이 없어진다.
저자는 우연히 태어난 나에 대해 큰 의미를 찾지 말고, 꿈과 희망이 짐이 될 수도 있으며, 감정에 휘둘려도 괜찮고, 우리는 죽음을 향해 매일 나아가고 있다는 것을 하나씩 담담하게 써 내려가고 있다. 얇고 작은 책이지만 담고 있는 내용은 묵직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