끈기보다 끊기 - 성장보다 성숙이 필요한 당신에게
유영만 지음 / 문예춘추사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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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놈 참 잘 생겼다.'

할머니가 길에서 만난 어떤 아이를 보고, 그 아이의 됨됨이나 미래를 짐작하여 이런 말을 하는 경우가 상상이 된다. 또는 시장에서 먹음직하고 잘 익은 늙은 호박, 낡았지만 깨끗한 집을 지키는 우직한 개, 무거워 보여도 주인의 사랑을 받고 묵묵히 짐수레를 끌고 가는 망아지가 연상되기도 한다.

'끈기보다 끊기'도 참 잘 생긴 제목이다. 제목부터 어떤 내용인지 연상이 되면서도, 어떤 내용일지 무척이나 궁금해진다. 이 책의 저자는 유영만 교수님이다. 불현듯 떠오른 질문에서 색다른 깨우침을 얻는 배움을 사랑하는 '지식생태학자'로 알려진 분이다. 저자의 책은 <부자의 1원칙, 몸에 투자하라>를 먼저 읽은 바 있다. 당시 리뷰에 다름과 같이 글을 남긴 바 있다.

"... 그런데 특이한 점이라면 '비유'가 엄청나다. 한편으로는 '글쓰기' 책 같기도 하다. 운동에 대한 내용 자체는 새로울 것이 없으나, 이를 써 내려가는 방식이 상당히 눈길을 끈다. 어휘 선택이나 문장력이 개성 넘치고 탁월하고, 창의력이 넘친다. "

이번 <끈기보다 끊기>도 마찬가지이다. 몇 페이지 넘기지 않아서 책의 흡입력에 빠져들게 되고, 저자의 독창적인 문장에 감탄하게 된다.


<끈기보다 끊기>의 배경은 경제 빙하기이다. '얼어붙은 경제'가 연상되는 경제 빙하기는 봄이나 여름을 짧고, 겨울이 생각보다 길다. 한여름에도 추위를 느끼는 건 마음의 온기가 살아져서이며, 특정 사람들을 제외하고 일반 서민이라면 특히 이 겨울이 길다고 느끼고 있다. 지금까지 생각, 지식, 경험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시기이므로 버리고 '무작정 버티기'보다는 '버리고 내려가서 다시 시작'하는 것이 필요하다.

산의 정상에서 내려다보면 '모든 것이 다 보이고 세상을 다 아는 것' 같다. 마치 한 폭의 풍경화 같고 마치 고정되어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내려갈수록 세상은 역동적으로 변하여 뛰어노는 아이들, 풀을 뜯는 소들, 부지런히 일하는 어른들이 보인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 본 '관망'과 가까이에서 할 수 있는 '관찰'은 차이가 크며, 관망이 관찰을 이길 수는 없다. 내려가 봐야 보이는 것이 있는 것이다. 내려가 보지 않고 정상에서 모든 것을 다 안다고 말하는 건 자만일 수도 있다.

재작년 제주도 올레길을 완주한 적이 있다. 차로 다니면서 휙휙 스쳐 지나갔던 곳을 한걸음 한걸음 걷다 보니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많은 것이 보였다. 들풀의 생명력도 볼 수 있고, 바람과 그림자의 차이도 느낄 수 있었다. 나무 잎사귀의 푸르름도 차에서 보던 것과는 달랐다. 차로 관광지에 도착해서 경치를 구경하던 것과는 사뭇 다른 감동이고 아름다움이었다. 속도를 늦추고 가까이에서 보니 매 발자국마다 새로운 세상이다. 쉼 없이 앞만 보고 달리는 인생이 아니라, 주변을 둘러보고 순간의 아름다움을 느끼며 사는 인생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를 깨달았다.

내려가는 것은 스스로 결정하기 보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생겨서 일 수도 있다. 그러나 내려가는 것은 실패나 멈춤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도약을 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우리는 인생을 성공한 사람을 추앙한다. 그중에서도 '빠르게' 성공한 이들에게 더 큰 찬사를 보낸다.

리치 칼가아드의 <레이트 블루머>에서는 이런 생각을 여지없이 깨준다. 성공을 이루는 데 너무 늦은 때란 없으며 어느 나이 든, 어느 때든 삶의 가능성이 촉발되는 지점을 찾는다면 최고의 나 자신에게 도달할 수 있고, 이를 '레이트 블루머'라고 부른다.

https://blog.naver.com/jykang73/223026427992


<끈기보다 끊기>는 성공학 책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정상에 오르지도 못하고 내려가야 하는 사람들, 정상에 올랐어도 내려갈 때가 된 사람들에게 '가던 길을 잠시 멈추고 내려가도 된다'라는 용기와 위로를 주는 책이다.

높이 올랐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높이 올라갔기 때문에 내려가는 길도 가파를 수 있음을 시사한다.

엘리트들은 오르는 데만 능한 사람들이다. 어린 시절부터 남들보다 몇 배나 많은 시간을 오르는 연습을 해 왔고 내려가는 데는 문외한이며 내려갈 마음의 준비를 해 본 적이 없다. 언제나 떠받들 여 준 데다, 내리막이 있을 것이 나는 상상을 해 본 적도 없다. 성장기가 끝나면 이어지는 정체기에 대한 면역이 없는 것이다.

<레이트 블루머>에서는 이를 '얼리 블루머'라고 부르며 우리는 몇 안 되는 얼리 블루머에 찬사를 보내기보다는 우리 주변에서 조용히 자신의 길을 일구어서 결국 인생에서 만족감을 평생 즐기는 레이트 블루머에 주목해 보라고 말한다.

저자는 지금은 내려간 것 같지만 그곳에서 충분히 행복할 있으며, 다시 숨 고르기를 해서 올라갈 수 있다는 격려도 해 준다.

길을 가다가 돌이 나타나면 '걸림돌'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강자는 이를 '디딤돌'이라고 말한다. 같은 돌을 두고도 걸려 자빠지는 것을 보는 사람이 있고, 극적으로 이용하여 더 높이 뛰는 것을 상상하는 사람이 있다. 한계와 제약, 역경과 고난은 도전 의지를 불태우는 연료이며 우리가 그토록 부러워하는 '비범함'은 이를 이겨내는 과정에서 빚어진다. 내려가면서 만나는 돌은 걸림돌이 될 수도 디딤돌이 될 수도 있다. 디딤돌로 삼는다면 걸음을 아낄 수 있다.

나는 갈수록 '버티기'의 힘이 얼마나 큰지를 깨닫는다. 그러나 이때 전제조건은 있다.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면서 바람을 있는 대로 다 맞으라는 것이 아니라, 고비가 있긴 했어도 '즐거움'을 느끼며 하루하루를 살아온 행복한 버티기를 말한다.

이 과정에서 '끈기' 보다 몇 번의 '끊기'가 있었을지 모른다. 일이 풀리지 않을 때 잠시 멈춰보기도 하고 걷기도 하면서 재정비하는 시간도 분명 있었다. 그러나 긴 인생을 되돌아볼 때, 이 길이 내 길이 내 길이라는 판단이 들 때 포기만 하지 않으면, '끊기'와 '오르기'가 엎치락뒤치락 이어지면서 긴 '끈기'로 이어지는 것 같다.

https://blog.naver.com/jykang73/222962318700


'즐거움'을 특별히 강조하는 이유는 방향을 잘 못 잡았을 때가 있기 때문이다. 이때는 '버티는 끈기'가 아니라 정확한 판단으로 '버리는 끊기'도 필요하다. 하지만 이 판단의 기준은 상당히 모호하다. 지금의 시련을 극복하면 금빛 찬란한 미래가 올 수 있다는 희망 이전에 지금까지 걸어온 시간이 아까운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나의 기준을 말하라면 그 길이 즐거웠냐는 것이다.

방향 자체를 잘 못 잡았을 때는 '조금 지나면 좋아질 것'이라는 생각은 헛된 기대가 된다.

"다 때려치우고 장사나 하자, 여기저기 커피점이 많은 데도 또 생기는 거 보니 먹고 살만하니 그렇겠지, 나도 카페나 열자. 요즘 OO이 핫하던데 나도 빨리 칙고 빠지자." 이런 생각으로 시작하는 일은 열심히 한다고 좋은 결과로 이어지기 어렵고 과정도 그리 행복하지 못하다.

저자는 '좋아하지만 잘할 수 없는 일을 붙잡고 절대로 포지하지 않는 사람'을 가장 불행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행복은 속도가 아니라 각도와 밀도에서 온다."

이 말이 함축하는 바는 크다. 지금의 고비가 디딤돌인지 방향을 잘 못 잡아서 나와 맞이 않아 생기는 일인지 중간중간 멈춰서 점검을 해 보고, 그저 참고 인내하는 것이 아니라 행간을 읽고 즐거움을 느끼며 촘촘히 밀도를 높여 나아가면 그 자체가 이미 '행복'이다.

최근 의대에 진학하고자 하는 학생과 부모님의 바람이 상당히 많아진 것으로 알고 있다. 취업하는 시기도 늦어지고 있고, 설사 대기업에 취업해도 40대를 넘기면 조기 은퇴, 강제 퇴직 당하고 월급을 모아 집을 사는 시대는 이미 끝나서 안정성을 강하게 안 해서이다.

의대 진학의 열망이 어찌나 큰지 전국 의대를 다 채우고 나야 서울대 공대 순으로 이어진다고도 하고, 작년과 재작년 SKY의 중퇴 학생 수가 급증한 이유도 의대로 방향을 돌리기 위해서라고 한다. 문은 좁고 원하는 사람은 많다 보니 초등학생 4학년 때부터 의대 진학반에 가지 않으면 '이미 늦었다'라는 말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저자는 의사, 변호가 좋던 시대가 저문다고 말한다. 사람이 넘치는 곳에는 변화와 열망이 달아오르게 되어 있으므로 '안정적'이다는 말은 생활에서 완전히 사라지게 될 것이며 사전에서나 그 표현을 찾을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부연한다.

지금의 변화가 앞으로 다가올 직업세계를 어떻게 변화 시킬까.

그것은 '직(軄)'의 시대가 가고, '업(業)'의 시대가 다가오고 있음을 시사한다.

직의 시대에서는 '무엇'이 되느냐가 중요했다. 전문직이 되면 고소득과 사회적 지위를 보장받았고 회사에서 높은 자리에 오르는 것이 성공의 척도였다. '전문가와 비전문가'로 구분되는 시대이다. 그러나 이제 외국의 전문가, AI와 경쟁을 벌여야 하고 승진과 명함이 안정적인 삶을 보장해 주지 못하게 된다.

그러나 앞으로는 '업'의 시대다. 이 시기는 '프로페셔널'이 되어 '고객의 바람을 이루어준다'라는 열망이 없다면 제아무리 변호사나 의사가 되어도 간판을 유지하기 어렵다.

'자리', '명함'에 목숨을 거는 '직' 수준의 사람은 아마추어이다. '업' 수준의 프로페셔널은 '의미'에 목숨을 건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자신을 다그치는 아마추어에 비해 프로는 자신의 발전을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한다. 아마추어는 이기는 것 자체를 즐기고 경쟁상대는 언제나 바깥에 있다면, 프로는 자기를 경쟁 상태로 여기고 남보다 잘하기 보다 전보다 잘하려고 노력한다.

프로페셔널은 어느 날 하늘에서 뚝 떨어진 사람들이 아니라 지겨워 보이는 단순 반복을 거듭하면서 오랫동안 기다려온 사람들이며 기회는 기다리는 사람에게만 보이기 때문에, 기회가 오면 잡아채 그 위에 자연스레 올라탄다.

목표 달성은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면서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숙제가 아니라 나도 모르게 몰입해서 즐기는 축제가 되어야 한다.

이 책은 멈춰야 할 시기를 아는 지혜와 '천천히'의 여유가 조급함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알려준다.

체면, 남의 시선, 이미 해 온 시간이 아깝다는 이유는 던져버리고 말이다.

직선으로 가는 길은 장애물과 경쟁자가 많기 때문에 우회하는 길이 오히려 더 빨리 도착할 수 있음을 명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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