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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밍이네 어린 정원
고현경.이재호 지음 / 티나 / 2023년 3월
평점 :
'단밍이네 어린 정원'은 제목부터 예쁘다. 단밍이, 어린, 정원. 하나하나 예쁜 단어들이고 이들이 모여 더 예쁜 '이름'을 만들고 있다. 그런데 제목만큼이나 내용도 예쁘다.
책 표지에는 파스텔 톤의 여러 꽃들이 가득 피어 있다. 꽃집에서 보는 깔끔하게 정리된 꽃도 아니고, 놀이동산에 가면 볼 수 있는 탐스러운 꽃도 아니다. 제각기 방향도 다르고 모양도 다르고 색도 다르지만 한데 어우러져 자연스러운 조화를 보여주고 있다. 이런 '정원'을 본 적이 있었던가 하며 아무리 기억을 곱씹어 봐도 기억에 없다. 그러고 보니 우리가 보는 꽃들이 생각보다 한정적이다. 어린 시절 길에서 봤던 민들레, 코스모스, 맨드라미조차 보기 귀해졌으니까.
마음을 사로잡는 예쁜 표지를 넘겨보니 단밍이네 네 식구 소개와 함께 '동화같이 아름다운 나만의 셀프 정원 만들기'를 함께 시작한다. 그렇게 한 페이지씩 넘기다 보면 어느덧 책의 첫 표지의 꽃들이 만개하는 모습까지 마주할 수 있다.
이 책은 때로는 백과사전 같기도 하고, 때로는 예쁜 에세이 집 같기도 하다. 식물을 키우는 방법을 설명할 때는 전문가 다운 면모가 보이지만, 식물을 키운 경험을 이야기할 때는 넉넉한 농부를 보는 것 같다.
<단밍이네 어린 정원>을 읽다 보니 자연주의 삶을 실천했던 헨렌 니어링과 스코트 니어링 부부의 저서들이 떠오른다. 그중 <조화로운 삶>, <조화로운 사람의 지속>은 손수 집을 만들고, 농사를 짓고, 추운 겨울을 나는 과정에 대해 상세히 알려줄 뿐 아니라 이들 부부의 삶의 철학을 들을 수 있었는데, 마치 청량한 산속 공기를 함께 마시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 모든 것을 부부가 직접 모든 것을 하는 모습에서 힘들겠다기 보다 나도 한 번쯤 동참해 보면 좋겠다 싶었다.
그런 생각을 한 이유는 아마도 자연에 대한 로망이 있어서 일 것이다. 아주 어릴 때 '이다음에 할머니 되면 시골에서 살아야지'라는 생각을 했으니까. 지금까지 시골의 '시'도 잘 모르고 살아왔으나 나무, 풀, 꽃을 보면 유독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보면 어린 시절의 로망이라기 보다 나의 태생은 식물과 동물을 좋아했나 보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인상적인 내용을 꼽아보라고 하면, '흙'이다.
'동화같이 아름다운 나만의 셀프 정원 만들기'니까 꽃의 종류, 특징, 가꾸는 법에 대한 설명이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이 책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내용은 식물이 자랄 수 있는 환경, 즉 흙에 대한 이야기였다.
정원의 토양은 '도화지'와 같아서 도화지가 하얗고 깨끗할수록 원하는 그림을 그릴 수가 있다. 그래서 단밍이네 가족이 가장 공을 들이는 것이 토양, 흙인 것 같다. 이렇게 정성이 가득하도록 흙을 일구어 화단을 만드니 그 위에 자라게 될 꽃들이 눈부시게 피어날 것은 당연하다.
어릴 때 우리 집에는 화분이 많았다. 부모님이 물만 주는 것 같은데 죽거나 상하는 일 없이 식물들이 잘도 자랐다. 그때 선인장도 꽤 많았고 난도 있었던 것 같다. 예쁘지도 않고 가시만 잔뜩 난 선인장은 왜 키우며, 키우기 까다롭다는 난은 왜 키우는지 영 이해가 가지 않아서 아빠에게 여쭈어보았더니 선인장 꽃이 세상에서 제일 예쁘며, 난의 향기가 세상에서 그리 그윽할 수 없다고 하셨다.
'도대체 선인장 꽃이 얼마나 예쁘길래' 싶어서 선인장에게서 꽃이 필 때까지 기다렸더니 어느 날 동그란 선인장만한 꽃줄기가 위로 쭉 뻗더니 화려하고 커다란 꽃이 활짝 핀다. 생긴 건 마치 백합인데 붉은색에 길죽한 검은 점들이 어찌나선명하던지. 내 눈에는 도저히 '아름답다'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마치 시선을 확 끄려는 빨간 캉캉 드레스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난에서 꽃을 구경하기란 더 어려웠다. 어느 해 드디어 꽃대가 나오고 귀하게 꽃을 피웠나 싶더니 그윽하다는 향을 제대로 즐기기 전에 빨리도 져버렸다. 까탈스럽기도 해라.
결혼하고 내 집을 꾸미면서 나도 집에 식물을 키워보기로 했다. 마음 같아서는 예쁜 꽃이 피는 화분을 두고 싶었으나 일 때문에 물을 제대로 안 줘서 죽일 것 같아서 물을 덜 줘도 되는 식물들인 다육이, 선인장, 공기정화식물들을 키워보기로 했다.
한 달에 물을 한 번 정도만 줘도 되는 아이부터 빛을 받지 않아도 잘 자란다는 아이들인데 어쩌면 이렇게 시간이 갈수록 힘이 없어지는지 알 도리가 없었다. 그냥 둬도 잘 자란다서 해서 데리고 왔는데 점점 비실거렸다.
어릴 때 분명히 부모님이 크게 신경 쓰는 법 없이 물만 준 것 같았는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나중에야 알았다. 물만 줘서는 안되고 식물들에게도 '관심'을 줘야 한다는 것을. 이삼일에 한 번 물을 주면 된다는 지침이 그저 기계적으로 그때마다 물을 주라는 것이 아니라 그날의 습도와 밝기, 그리고 흙과 식물의 상태에 따라 잘 관찰해가며 물을 줘야 했던 것이었다. 그제야 식물들에게 미안했다. 비명을 지를 줄 몰라서 그렇지 많이 아팠을 것이다. 그 이후로는 식물을 함부로 사지 않았다.
지금은 길가, 정원이나 공원에 핀 여린 꽃들이 여간 기특한 것이 아니었으며 이 아이들을 키우고 관리하시는 분들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이 책을 읽으면서 표지의 그 예쁜 꽃들이 그냥 씨를 뿌리고 물을 준다고 해서 얻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흙부터 가꿔서 깨끗한 도화지를 만든 다음, 꽃들의 키, 색, 발화 시기 등 모든 것이 서로 어울리도록 고심하고 고심해서 그렇게 아름다운 장면을 만들어 낸 것이다.
그래서 그동안 '단밍이네 정원'과 같은 꽃밭을 보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런 정성을 과연 누가 쏟을 수 있을까. 꽃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고서야 그렇게 즐거운 마음으로 한 해, 두 해를 인내하며 정성을 쏟기란 어렵다.
비록 꽃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자주 보는 꽃 이외에 이름을 잘 모른다. 우연히 예쁜 꽃을 만나면 눈길을 주고 미소를 짓지, 이름이 궁금하지는 않았다. 이 책 6장에는 단밍이네 정원의 꽃들 소개가 나온다. 한 페이지씩 예쁜 꽃들을 보며 비로소 이름을 알게 된 아이들도 있고, 처음 보는 꽃들도 많았다. 이 사랑스러운 꽃들이 단밍이네 정원에서는 매 계절마다 앞다투어 고개를 빼꼼히 내민다니 부럽기도 하다.
앞으로도 단밍이네 정원이 앞으로도 행복한 정원이 되었으면 한다.
ps. 미니 정원을 만들고자 하는 사람들은 도움이 많이 될 책으로 보인다. 미니 정원이 아니라도 나처럼 별생각 없이 화분 몇 개 키우는 경우도 몰랐던 사실을 많이 배웠다. 아이를 키우는 것도 그렇지만, 식물이건, 반려견, 반려묘이건 무언가를 돌본다는 것은 '공부'가 필요한 것 같다. '나의 기준'이 아니라 '상대'의 입장으로 생각해야 제대로 키워낼 수 있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