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도 마찬가지다.
가사일을 도와 주는 제품이 개발될 때마다 여성입장에서는 노동에서 좀 더 편리해졌고 여성을 바라보는 사회적인 인식도 바뀌었다. 그런데 마냥 쉽게 핑크빛으로 바뀐 것은 아니었다. 사회적인 인식은 '남성중심' 이었기 때문에 가사일을 도와주는 기계들, 제품이 생길 때마다 이를 바라보는 시선 역시 '남성'기준이었다. 고무장갑의 대한 기사만 해도 손 시림과 살이 트는 고통을 덜기 위해서라기 보다, '고운 손'을 가꾸는 것에 도움이 된다는 내용이었다. 여성에게 유독 '아름다움'을 강요하면서도 아름다움을 추구하면 '사치와 허영'이라고 비난하는 이중 잣대는 현대에도 이어지고 있다. 지금도 이런 시선은 은밀히 남아 있는데 과거에는 더 했기 때문에 고무장갑을 쉬이 살 수 없었다고 했다.
세탁기, 전기밥솥, 냉장고, 다리미기와 같은 제품들은 확실히 가사일을 편리하게 도와 주었다. 하지만 '바깥일'하는 남자들로 하여금 '집안일'은 도깨비 방망이가 뚝딱 하면 되는 '아무것도 아닌 일'로 생각하게 만들었다.
빨래는 세탁기가 하고, 밥은 전기밥솥이 하고, 청소는 청소기가 알아서 하는 것이지, 빨래가 되고 나면 탈탈 털어 빨랫줄에 널고 마르면 차곡차곡 게고, 몇 옷은 다림질을 해야 하는 손길이 필요하다는 것은 직접 해 보지 않으면 모른다.
생리대와 브레지어의 변천도 많은 생각거리를 안겨주었다.
다른 제품의 눈부신 발전과 마찬가지로 생리대도 엄청난 발전을 거듭했다. 돌이켜 보면 생리대 품질 향상만큼 변한것은 생리에 대한 인식의 변화같다. 어릴 때 엄마 심부름으로 생리대를 사러 가면 검은 비닐봉지에 담아줬던 기억이 있다. 생리대는 숨겨야 했던 물건이었다. 그러다 언제부터인가 TV에 광고를 시작하고, 마트에서 다른 물건과 함께 내어놓고 계산을 하고, 회사에서 생리휴가를 쓸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브레지어는 아직 모르겠다. 제품 자체야 눈부신 발전을 했다. 와이어가 옥죄던 제품에서 무봉제에 인체공학적인 디자인으로 바뀌었다. 그래도 무더운 여름날 남자들은 이제 넥타이를 하지 않아도 되는 분위기로 많이 바뀐 반면, 여성들의 브레지어 착용은 여전히 의무이자 책임이다. 여름날 에어콘이 신통찮을 때 남자들이 넥타이 때문에 덥다고 말할 때 여자들은 속으로 '우리도 브레지어 때문에 더워 죽겠어요.' 삼킨다.
스스로 생을 버린 한 어리고 고운 여배우가 살아생전 브레지어를 하지 않은 사진을 SNS에 올렸다가 악플에 시달렸던 사실은 여전히 가슴 한 켯을 답답하게 짓누른다. 평생 착용한 것이기 때문에 하지 않으면 더 허전한 것이 브레지어다. 평생 목줄을 차고 있는 개처럼 풀어놔도 도망갈 줄 모른다.
오래전, 명절 날 고향으로 가는 기차 안에서 우는 아이를 달래다가 젖을 물리는 젊은 엄마를 보고 기차에서도 수유공간이 필요하다는 기사에 달린 여성비하 댓글에 분노했던 적도 있었다.
이 책에 스마트폰이나 헤드셋, 인바디를 잴 수 있는 체중계, 전자담배 같은 제품을 함께 언급했다면 '편리함'에 비중을 두고 읽었을 것 같다. 하지만 저자가 뽑은 물건들은 여가나 취미를 위해서가 아니라, '생존을 위해' 집에서 '맨 손'으로 했던 일을 도와주는 것들이고 우리 어머니의 살림살이 이야기다보니 단순히 '편리함'만 보이는 것이 아니라 어머니와 나, 그리도 나의 다름 세대로 연결되는 여성의 지위가 더 눈에 들어왔다.
점차 집안일에 대한 가치가 존중되고, 집안일을 남녀가리지 않게 하고, 남성에게서 지나친 남성상을, 여성에게서 지나친 여성상을 바라지 않는 시대가 되어가고 있다.
훗날 저자의 자녀가 저자에게 이야기를 듣고 <엄마와 물건2>를 쓰게 된다면, 그때는 여성의 가사노동과 지위 변화를 논할 의미가 없는 그런 세상이 되어 있기를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