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엄마에게 - 엄마에 대해 더 알고 싶은 이들을 위한 엄마 탐구 일지
리니 지음 / 터닝페이지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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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받아보고 당황했다. 엄마에 대한 에세이인 줄 알았더니 예쁜 빈 노트가 왔다.

프롤로그를 읽고 나서야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이 책은 내가 채우는 '엄마를 위한 책' 이었다.

저자는 어떤 인스타그램에서 '셀프 탐구 일지'를 보고 자신에게 질문을 하고 답을 해 보았다. 그런데 셀프 질문 & 답변을 할수록 엄마가 보고 싶어져서 이번에는 '엄마 탐구 일지'를 적어보기로 했다. 술술 써 내려갈 줄 알았는데 웬걸, 아무것도 쓸 수 없었다. 엄마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그래서 질문에 대해 엄마와 통화를 하면서 엄마에 대해 알아갔다.

엄마가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들에게도 그런 시간을 가졌으면 하는 마음에 이 책을 내게 되었다고 한다.

나도 책 한 장, 한 장 넘기며 질문에 대해 답을 해 보았다.

처음은 '우리 엄마를 소개합니다.'이다.

엄마의 이름, 엄마의 나이, 엄마가 태어난 곳, 엄마의 형제자매.. 키, 혈액형, 직업, 특징, 취미, 습관.. 언뜻 보면 쉽게 답할 수 있겠으나 이 질문들 아래 추가 질문들이 있다. 엄마의 이름에서는 그 뜻을 알아보고, 엄마가 태어난 곳뿐 아니라 고향 풍경도 물어본다. 그래도 제법 뿌듯했다. 엄마에 대해 아주 모르는 게 아니어서다.

'어쩌면 너무 익숙해서' 챕터로 넘어가 봤다.

엄마는 혼자 있을 때 무엇을 하며 지낼까요? 엄마의 스마트폰에 내 연락처는 뭐라고 저장되어 있을까요?

그러고 보니, 엄마 폰에 나는 뭐라고 저장되어 있을지 궁금했다. 아니 엄마에 대해 궁금해졌다.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니까' 챕터에서는 나를 임신하고 낳고 키웠던 순간들에 대한 질문이 있다. 저자가 말해주어서 깨달았다. 엄마가 우리 삼 남매 낳았을 때가 20대였다는 사실을. 지금 20대를 보면 어리디 어려 보이는데, 엄마는 20대에 이미 아이 셋의 엄마로 살고 계셨다. 나는 서른에 엄마가 되었다. 지금 나이가 들어서인지, 나의 30대 사진을 보면 '저 어설픈 청춘이 아이를 키웠구나'싶은데 엄마는 나보다 훨씬 먼저 엄마의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엄마 탐구 일지는 엄마에 대한 질문을 계속하며 '엄마에 대해 내가 얼마나 무지'한지를 알려준다. 엄마 자신에 대한 질문, 엄마로서의 질문, 엄마도 외할머니, 외할아버지의 귀한 딸이었음을 알려주는 질문, 그리고 마지막은 엄마에 대한 내 생각까지 질문한다. 엄마의 과거부터 현재까지, 한 여자의 인생의 발자취를 쫓아가보게 한다.

책을 넘기면서 부모님에 대한 생각이 점점 깊어졌다.

우리 집은 상당히 화목했다. 그 중심에는 아빠가 있었다. 당시 보기 드물게 가정적이고 다정다감한 아빠였다. 내 나이에 어린 시절 가족들이 둘러앉아 부루마블 게임을 한 사람이 몇 있겠는가. 저녁이면 아빠 손잡고 동네 산책도 자주 다니고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그때는 전화가 오면 부모님이 받아서 수화기를 바꾸어 주었던 때다. 내 친구에게 전화가 오면 매번 그냥 넘기지 않고 다정한 농담과 인사 몇 마디씩 꼭 하고 나를 부르곤 하셨다. 기억이 나지는 않아도 무슨 일이 있으면 아빠에게 먼저 이야기했었다.

아빠는 희한하게 하루 한 번씩 집 앞 가게에 가서 과자 한 봉지를 사 오라는 심부름을 시키셨다. 매번 과자 한 봉지 사러 나가는 일이 여간 귀찮은 게 아니어서 한 박스째 사자고 했더니, 그렇게 사면 맛이 없다고 하셨다. 투덜거리면서 한 봉지씩 사 왔다.

돌이켜 보니, 내가 워낙 움직이지 않는 스타일이니 그 정도라도 움직여보라고 심부름을 시켰던 것 같다. 잔소리 하나 없이 칭찬으로 나를 키우신 분이라 딸내미가 약하게 태어나서 비쩍 마른 데다 운동은 전혀 못하니 어떻게 해야 이 아이가 조금이라도 움직일까 고심하셨던 것 같다. 여기까지 생각하고 나니 박스째 과자를 사자는 말에 아빠가 순간 움찔하셨을 것 같아 웃음이 나왔다. 한 봉지씩 사나, 박스째 사나 과자 맛이 다 똑같지, 맛이 없어질게 뭐람.

반면 엄마는 말씀이 그리 많지 않은 성격이었다. 우리 삼 남매, 가족들, 고모, 삼촌, 할머니 챙길 사람이 많았다. 요즘 말로 육아는 아빠 담당이었던 것 같고 엄마는 살림만 해도 일이 많았다. 학창 시절 엄마는 무척이나 아름다운 분이셔서 학부모 면담 날이면 친구들이 뛰어가서 엄마를 몰래 훔쳐보고 와서 괜히 놀리는 아이들도 있었다. 여자들 키는 중학생이면 다 크는데 나는 늦자라서 고2, 고3이 되어서야 폭풍 성장을 했다. 그전에는 전교에서도 작은 쪼꼬미였는데 엄마는 늘씬하고 키도 커서 나더러 주워왔다는 거다. 그랬어도 예쁜 엄마라고 하니 괜히 기분이 좋았다.

아빠와 마찬가지로 엄마에게는 단 한 번도 무엇을 하라는 말을 들은 적이 없다. 공부를 알아서 하는 스타일이기도 했으나 그래도 아빠는 방 정리 정돈하라고는 하셨는데 엄마는 항상 그냥 내버려 두셨다. 그래서 나는 엄마가 나의 성적도 관심이 없는 줄 알았다.

고3 때였던가 잠시 공부에 지쳤을 때가 있었다. 한 며칠 잠시 책을 멀리했으나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책상에 앉아 있기는 똑같고 책을 들여다보는 대신 다른 상상을 했으니.

그런데 엄마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OO가 요즘 공부를 통 못하는 것 같네." 하셨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무언가를 하라고 한 적 없던 엄마가 딱 한 번 저 말씀 하셨는데,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 내가 안 하고 있다는 걸 알고 계셨구나. 엄마가 아닌 것 같아도 나를 보고 계셨구나.

어느 날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다가 친정집에 들렸는데 난생처음 엄마와 집 근처 언덕 산책을 갔다. 거기서 처음으로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아빠와 만난 일, 결혼하고 살림하면서 시댁 식구들 때문에 힘들었던 일. 그때 잠자고 듣기만 했다. 같은 집에 살면서 왜 이다지도 엄마에 대해 몰랐을까. 엄마는 왜 티 한 점 내지 않고 그 많은 일을 혼자 다 하셨을까. 1시간도 안되는 대화였는데 엄마는 왠지 후련해 보였다. 그때 엄마가 해 준 이야기들은 지금도 가슴에 남아 아린다.

나와 둘도 없는 죽마고우였던 아빠는 오래전 예고도 없이 떠나셨고, 엄마는 집안의 무거운 짐은 다 덜어놓으셨으나 몇 십 년을 함께한 병 때문에 자유롭게 다니시기에 몸이 따라 주지 않는다. 이래서 젊어서 놀라고 하나.

이 책의 짧은 리뷰 중에 "내용을 다 채워서 어버이날 선물 들려야겠어요." 가 있었다.

나도 엄마에 대해 더 알고 싶어진다. 이 책 페이지를 하나씩 채워 나갈 때마다 그날의 산책처럼 엄마가 기뻐하고 후련해 하실 것 같다.


* 서평용으로 받은 책으로 리뷰를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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