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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인 모를 내면의 어떤 결핍으로 이유 없이 방황하던 스무 살 시절. 그날도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술이 그 결핍을 채워줄 수 있을까 싶어 다른 학교에 다니던 고등학교 동창의 자취방에 찾아가 밤새 술을 마시며 우울한 시대를 향한 무의미한 일갈을 하다 취해 잠이 들었다.

 

쓰린 속을 부여잡고 마른 목을 축이러 일어나려 할 때 방에서 나뒹굴고 있는 그의 잡지 <아웃사이더>를 처음 만났다. 새빨간 책 표지 만큼 책의 내용은 강렬했으며 시골에서 상경한 스무 살 청년인 나에겐 그 무엇보다도 불온했다. 
 

그렇게 난 김규항을 만났고, 그 후 그의 급진적인 글들은 나에게 세상을 보는 새로운 시각을 길러준 동시에 내 안의 결핍의 원인이 무엇인지도 일깨워 주었다. 이제는 삼십 대가 된 내가 자본주의체제의 최전선에서 활동하면서도 여전히 이 체제에 최적화되지 못하며 방황하는 건 일면 그의 영향이 크다. 그의 사상은 나를 지배했으며, 20대의 핵심 키워드를 꼽자면 단연 김규항이다.




 

 

 

 

 

 

 

 

 

그가 이번에 인터뷰어 지승호와 함께 인터뷰집을 냈다. 잡지 <아웃사이더>를 통해 접한 인터뷰어 김규항은 낯설지 않으나 인터뷰이 김규항은 흥미롭다. 무엇보다도 알마의 인터뷰집 시리즈로 그의 책이 나왔다는 것 또한 기뻐할 일이다. 그 만큼 김규항이 대중적이 되었다는 반증 아닐까?

매체에 소개되었던 대부분의 그의 칼럼과 글을 봐 왔던 나지만 김규항의 주요 사상과 단상들을 효과적으로 집약하여 표현할 수 있는 것은 인터뷰집이라 생각해왔었는데 반갑게도 이번 책이 그 형식을 취했다. 
 

이번 책에서도 그렇지만 요즘 그가 자신의 블로그와 여러 칼럼을 통해 목에 핏대를 세우며(?) 주장하는 것이 바로 <내 안의 이명박>에 대한 경계이다. 최근 보수정권이 들어선 이후 대다수의 개혁세력들은 이명박만 아니면 우리 삶이 윤택해지리라 주장하지만, 그들이 (현재) 추앙해 마지 않는 노무현, 김대중 정권 때에도 우리는 지금과 전혀 다를 바 없이 자본주의 망령에 철저히 갇혀 돈이란 신앙을 위해 복무했으며, 남을 짓밟고 성공해야 한다는 유일한 가치관을 우리의 아이들에게 주입시켰다. 오히려 그 시기에 신자유주의 체제가 더 강화되었던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명박과 우리는 신자유주의 체제에 함께 복무하는 동지일 뿐이다.

" 사회 변화에는 두 가지가 있다. 진정한 변화와 변화를 막기 위한 변화. 후자를 개혁이라고 부른다. 우리가 개혁을 경계하는 건 개혁이 갖는 현실적인 의미를 무시하려는 게 아니라 그 의미에 집착할수록 어느새 진정한 변화를 포기하게 되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이야말로 개혁의 숨겨진 목표다." - page 141 -

 

이는 곧 이명박 정권의 비판만으로는 진정한 변화를 이룰 수 없으며, 체제 안의 비판은 우리 삶을 변화시키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그는 보수세력보단 개혁세력을 진정한 변화를 위한 막는 더 큰 걸림돌이라 주장한다.  

<내 안의 이명박>과 같은 주장을 통해 기존에는 없던 새로운 시선으로 사회 현상을 꿰 뚫어보는 그는 보수, 진보를 가리지 않고 날선 비판을 서슴치 않는다. 이러한 비평과 주장 때문에 언뜻 그는 비관론자이자 금욕주의자처럼 비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오해를 풀고자 그는 자신의 블로그에 다음과 같은 글을 쓰기도 했다.  


“ 내 모든 글과 이야기들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더 즐겁게 살자는 것인데.. 흠.. 그런 오해 역시 내 숙제다. ”


그럼 즐겁게 살기를 꿈꾸는 그가 생각하는 행복이란 무엇일까?

 

" 결국 두 가지 였어요. 하나는 관계죠. 사람과의 관계, 나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있을 때, 어떤 경우에도 나를 믿어주는 사람이 있을 때, 어떤 어려움에 빠져도 그 사람만 생각하면 든든할 때, 그럴때 사람이 행복하죠.
또 하나는 역시 하고 싶은 일을 하는거죠. 돈을 얼마나 버는가를 떠나서, 하면 즐겁고 남보다 잘할 수 있는 일. 그런 일을 하고 살 때 사람은 행복합니다. 남들이 다 부러워하는 직업을 가졌지만 정작 본인은 그 일이 즐겁지 않다면 그렇게 불쌍한 사람도 없는거죠. 남들의 부러움에 위롭다면 지옥에서 살아가는 겁니다. 매일같이 그일을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만 그러지 못해요. 수입이 줄어서 초라해질 자신을 떠올리면 그럴 수 없죠. 더 이상 남들이 부러워하지 않는 생활을 생각하면 두려워서 그만두지도 못해요. 그렇게 인생을 보내는거죠. 정리하자면, 행복은 행복의 조건에서 오는 게 아니라 내 안에서 오는 겁니다. 그리고 미래에서 오는 게 아니라 지금 여기, 오늘에서 온다. 그렇게 말할 수 있겠습니다. " - page 309 -

 

그가 말하는 행복에 대한 지론은 내가 생각하는 행복의 조건과 큰 차이가 없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사상을 실천하는 삶은 살고 있지만, 나는 수입이 줄어서 초라해질 내 자신을 떠올리며 즐겁지 않는 삶을 지속하고 있다는 차이가 있다. 앞날에 대한 고민때문에 혼란스러워하는 현재의 나에게, 우리에게 행복의 조건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 주는 대목이다. 

 
그의 말대로 행복은 미래에 있지 않고 <바로> <지금>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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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 시절 읽었던 <다시 쓰는 한국 현대사>의 미국판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다시 쓰는 한국 현대사>와 이번에 읽은 하워드 진 교수의 <살아있는 미국 역사>의 주인공은 그 동안 주류 역사서에서 한번도 주연 아니 심지어 조연의 자리도 차지하지 못해봤던 민중이다.   

 

 

 

 

 

 

 

<살아 있는 미국 역사>란 언제나 다수였지만 소수자 취급받던 흑인, 여성, 노동자의 투쟁기의 다른 말이다. 기존의 미국 역사서의 주인공이 아메리카의 선구자인 크러스토퍼 콜럼버스였다면, 이책의 주인공은 바하마제도에서 콜럼버스를 환대한 아라와크족이다. 아라와크족에게 콜럼버스는 우리가 그동안 배워왔던(혹은 인지하고 있던) 영웅이 아닌 외부 침입자였으며, 자신들의 고유 문화를 파괴하고 자신의 종족을 몰살한 살인자에 불과했다. 

저자는 지배권력 중심의 역사서에 길들여진 독자에게 새로운 시각으로 미국의 역사를 논한다. 하워드 진 교수는 노예 해방은 링컨이 이루어 낸 업적이 아니라 수 많은 흑인 노예들이 수 십년 간 피로 이루어 낸 결과물이라고 말하며, 우리가 그렇게 추앙해 마지하지 않는 독립선언서가 실은 자신들의 강력한 중앙정부를 구성하기 위한 목적을 위해 55명의 특권층 백인 남성이 작성했다는 사실을 설파한다. 

옮긴이의 말처럼 하워드 진 교수가 이 책에서 독자들에게 강조하고 싶은 것은 바로 <주체 의식>이다. 민중이 주체의식을 가지지 못한 사회는 더 이상 민주주의 사회가 아닌 것이다. 지배는 소수인 그들이 아니고 우리가 하는 것이다.     

콜럼버스부터 조지 부시까지 사건 위주로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어 읽기가 수월했지만 책의 전체적인 흐름이 단편적이었다는 건 부인할 수 없다. <미국 민중사 1,2>의 요약본으로 출판된 태생적 한계라고 생각된다. 조만간 <미국 민중사 1,2>도 구매해서 읽어봐야겠다. 내 안에서 잠 들어 있는 사자를 깨우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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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독립 다큐멘터리의 산파를 역할을 해온 <인디다큐 페스티벌>이 올해 10회를 맞는다.  개인적으로는 3회 때 접한 김동원 감독님의 <송환>을 보고 한 동안 다큐멘터리에 대한 열병을 앓았으며, 이 때문에 잠시나마 다큐멘터리 감독의 꿈을 꾸기도 했던, 이로 인해 그 어떤 영화제보다 애정이 깊은 영화제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이다 뭐다 바쁘다는 핑계로 영화제에 발길을 끊은 지가 서너 해가 넘었다. 올해도 하마터면 그냥 지나칠 뻔 했으나, 신문기사를 통해 개막 소식을 알 수 있었다.   

10회째를 맞는 영화제의 개막작은 <상계동 올림픽>이다. 맞다. 1986년에 만들어진 한국의 독립 다큐멘터리의 본좌 그 <상계동 올림픽>이다. 뜬금없이 보이지만 프로그래머의 개막작 초이스는 탁월하며 시의적절하다. 영화가 만들어진지 25년이 흘렀지만 서울에는 여전히 철거민이 있으며, 단지 삶의 보금자리를 지킨다는 이유로 국가권력에 대항하다 시커멓게 타 들어간 서민이 있다. 따라서 <상계동 올림픽> 개막작 초이스는 무자비한 국가 권력에 대한  경각심 그 이상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개인적으로는 좋은 작품을 접할 수 있어 반가운 귀환이라 반기고 싶지만 서글픈 마음은 어쩔 수 없다. 

이명박 정부 들어 언론, 문화, 종교계와 더불어 영화계 또한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특히 미디액트, 인디스페이스의 이해할 수 없는 사업자 선정 등으로 한국의 독립 영화계는 더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독립 영화계는 이런 어이없는 역풍에도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독립 영화를 사랑하는 수많은 지지자들과 독립영화를 지켜려는 독립영화인들의 굳건한 의지가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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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을 1년 앞둔 2005년이 김영하의 작품들을 읽고 소설의 흥미 정도만 느꼈던 시기였다면, 졸업을 한 후 2006년은 소설에 대한 흥미를 넘어 경이로움을 느꼈던 시기였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 경이로움을 느끼게 해주었던 소설이 바로 천명관의 <고래>였다. 저자 소개란에 저자의  빛나는 스킨헤드만큼 강렬한 인상을 주었던 소설이었다.   

                                                                              

  

 

 

 

 

 

그 후 <유쾌한 하녀 마리사>라는 단편 모음집을 끝으로 신작이 나오지 않아 내심 궁금했는데 최근 <고령화 가족>이라는 신작을 발표해 반가워하던 찰나 아래의 기사를 보게 되었다. 영화 연출가의 꿈을 위해 노력하는 소설가. 그의 끝 없는 도전 멋지다 정말.  

얼른 그의 문학적인 영화와 영화적인 문학 둘다 만나보고 싶다.  



<이웃집 남자> 시나리오 쓴 소설가 천명관


영화 <이웃집 남자>의 각본가 천명관은 장편 <고래>, 단편집 <유쾌한 하녀 마리사>, 최근에는 장편 <고령화 가족>까지 써낸 능수능란한 이야기꾼이다. 그런데 그는 오랫동안 소설보다 영화를 더 연모해왔다. 소설가로 주목받은 다음에도 나는 소설보다 영화를 더 사랑하노라 말해서 문단의 일부를 당황시킨 장본인이다. 오랫동안 영화연출을 꿈꿔왔으나 소설가로 훨씬 더 빛을 발하게 된 그가, 하여 이제는 소설에만 전념하겠다는 생각을 먹었던 그가 다시 각본가로 펜을 잡게 된 건 <이웃집 남자>가 “나를 영화라는 첫사랑으로 이끌어준 친구의 11년 만의 연출 재기작”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자본의 세상에서 밀려나지 않으려고 악독하게 발버둥치다가 끝내 몰락해가는 어느 386세대이자 부동산 중개인의 이야기가 나왔다. 인터뷰를 한 날은 천명관 작가가 새 장편소설을 쓰기 위해 백담사 밑자락으로 들어가는 날이었다. 그는 그렇게 다시 신명나는 소설가로 돌아올 것이다. 하지만 말을 나눠보니 분명 첫사랑을 잊지 못한 것 같다.



-연출을 맡은 장동흥 감독과는 원래 아는 사이였나.
=그 친구 때문에 <이웃집 남자>의 작업을 하게 된 거다. 오래전에도 같이 시나리오 작업을 한 적이 있다. 명필름 시절 내가 쓰고 장 감독이 준비하다가 엎어진 것도 있다. 장 감독이 아니라면 <이웃집 남자>는 안 썼겠지. 시나리오도 한 10번을 고쳤다. 예산에 맞춰서 써놓은 걸 많이 버리기도 했고. 어쨌든 나야 써서 넘겨주면 끝이지만, 감독이 좋은 평을 받아 다음 작품을 만들 기회를 잡을 수 있으면 좋겠다. 나를 영화와 만나게 해준 사람이 바로 장동흥 감독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시작된 인연인가.
=우리는 훈련소 동기였다. 제대하고 한 7년을 못 봤다. 제대하고 30대 초반의 나는 보험모집인을 하고 있었다. 단체보험이라고 해서 회사 상대로 하는 그런 일이 있다. 마포에 있는 한 출판사에 갔다가 거기 꽂혀 있는 잡지를 우연히 봤는데 <파업전야>를 만든 장 감독의 인터뷰가 실려 있더라. 심심하기도 하고, 보고 싶기도 하고, 내가 먼저 수소문해서 연락했다. 그때 이 친구는 막 충무로로 나오려던 시점이었고.

-그렇게 해서 충무로 사람들을 차차 많이 알게 된 모양이다.
=옆에서 보니까 영화 일이 재미있어 보이더라. 그래서 내가 할 일이 없겠나 싶었고, 장 감독에게 전태일을 소재로 한 영화를 만들어보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그랬더니 이미 준비 중이라고 하지 않나. 11고까지 나왔다고. 그러면 내가 그 시나리오 작업에 참여해보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더니 한번 써보라고 하더라. 써서 갖다줬다. 그랬더니 “야, 이건 영화 다섯편 분량이야”라고 하더라. (웃음) 그게 내가 최초로 쓴 시나리오이자 최초로 쓴 글이 아닌가 싶다. 그 영화는 결국 여러 가지 사연으로 다른 곳에서 만들게 됐다.

-영화사 직원으로 일한 적도 있다.
=기획시대에 다녔다. 공식적으로는 그렇고, 비공식적으로는 <미스터 맘마> 때 그 영화 프로듀서였던 차승재씨를 만났다. 승재 형과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됐다. 얼마 뒤 승재 형이 영화세상 창립작품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의 프로듀서였을 때, 시나리오 작업을 한번 해보지 않겠느냐고 나를 불렀다. 그게 공식적으로 나의 충무로 첫 번째 시나리오 작업이었다. 그래서 내가 승재 형에게 매일 그런다. 시나리오작가로 데뷔를 시켜줬으면 감독으로도 데뷔를 시켜줘야 하는 거 아니냐고!

-직접 쓴 장편소설 <고래>가 영화화될 거라는 풍문은 오래전부터 충무로에서 나돌았었다.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많았다. 실은 드라마로 먼저 만들려고 했다. 송병준씨가 판권을 사갔는데 당시에 방송사에서 편성하기는 어려웠던 모양이다. 나도 그 대본 작업에 한 1년 매달린 적이 있다. 그런데 판권을 사간 회사에서 송병준씨가 퇴사했고 아직 판권은 그 회사에 있다. 송병준씨는 형편만 되면 판권을 다시 가져와 꼭 만들겠다고 하는데, 잘 모르겠다.

-시나리오 작업으로 치면 <이웃집 남자>가 얼마 만인가.
=시나리오 작업은 알게 모르게 굉장히 많이 했다. 하지만 영화화된 게 얼마 없다. 내가 그동안 거의 연출쪽에만 관심이 있었으니까. 연출할 마음으로 써둔 시나리오만 한 10편쯤 된다. <총잡이> <북경반점> 같은 걸 썼다. 하지만 그런 건 계약이 다 되어 있던 상태에서 내가 쓰기만 하면 되는 거였다. 그런데 이상하게 내가 써서 들고 다니는 건 영화화가 안 되더라. (웃음) 지금은 영화에 대해 아무 생각을 안 하려고 한다.

-연출할 마음을 접은 건가.
=딱 잘라 말하기는 어렵지만 굳이 하려고 애쓰지도 않는다. 이미 여러 번 노력해봤고 그리고 안됐다. 지금은 안되는 일에 매달리지 말고 소설을 열심히 쓰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다. 그동안에는 스스로 소설가라는 정체성을 못 가졌던 것 같다. 처음에 그게 내 꿈도 아니었으니까. 소설가… 그게 뭔지 잘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소설가라는 정체성을 갖고 살려고 한다. 물론 여전히 속으로 나는 소설보다 영화를 더 잘 만드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재미있는 건 소설을 쓰면 영화적이라고 하는데 시나리오를 쓰면 문학적이라고 한다는 거다. (웃음)

-그런 면이 오히려 장점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재미있게 관전하는 사람들은 재미있어 한다. 하지만 주류 문단에서는 그런 걸 결격 사유로 본다. 거기서 보면 이건 이상한 거다. 문단에서 보면 내가 약간 아웃사이더다. 소설을 쓰기는 하는데 문단에는 속해 있지 않은 것으로 보인달까.

-시나리오와 소설 쓰기가 많이 다르다고 보나.
=시나리오와 소설 중 뭐가 더 쓰기 어려운가를 묻는 사람들이 종종 있는데 항상 시나리오 쓰기가 더 어렵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내가 보기에 시나리오는 기술이기 때문이다. 충무로 시스템 안에서 시나리오작가가 주는 건 기술력이다. 그건 철학이 아니다. 그리고 시나리오는 많은 사람들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 일이다. 감독, 배우, 투자자, 제작자가 동의를 해야 할 문제다. 작가는 그걸 조율해줘야 할 사람이다. 소설은 그렇지 않다. 오해가 없었으면 싶은데 소설을 쓸 때 창작의 고통이 없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소설은 창작의 고통이 있지만 그게 해로운 스트레스는 아니다. 시나리오가 훨씬 더 스트레스다. 그런 차원에서 말했던 건데, 일부는 문단을 무시한다고, 문단을 찌질하게 생각한다고 오해하는 것 같다. 저 화류계 녀석이 뭔가 한다는 걸 불쾌하게 여기는 사람도 있는 것 같다. 다 그렇다는 건 아닌데 그런 사람들이 있긴 하다.

-연출자로서의 욕심은 또 달랐을 것이다.
=연출은 무조건 내가 하고 싶은 걸 해야 한다는 쪽이었다. 원작을 사서 하는 것이 아니라 오리지널리티가 있는 내 시나리오로. 써놓은 것 중에는 멜로도 있고 누아르도 있다. 흡혈귀를 소재로 한 것도 있다. <박쥐>보다 정확하게 5년쯤 먼저 썼다고 해야 하나? (웃음) 흡혈귀가 살인 청부업자인 이야기다. 내가 연출을 준비했던 영화에는 컬트나 B급영화적인 요소가 많이 있다. 스코시즈도 좋아하고 아벨 페라라의 <중독> 같은 영화도 좋아한다. 이른바 유럽의 예술영화들도 좋아한다. 물론 코언도. 마니아적인 취향이 있는 것 같다.

-영화 <이웃집 남자>나 소설 <고래>만 보아도 장르적 컨벤션에 능하다는 걸 짐작하게 된다.
=그 점에서라면 마음 아픈 순간이 있다. 시나리오를 들고 연출하기 위해 한 3년 싸이더스를 드나든 적이 있다. 그런데 싸이더스에서 영화 40편이 만들어지는 동안 내 영화는 결국 없었다. 나이 40에 접어들었을 때 마지막으로 엎어진 영화가 있었다. 나이는 먹고 돈은 없고, 꼭 지금 나온 소설의 주인공 상황이었다(소설 <고령화 가족>에는 10년째 백수로 지내고 있는 영화감독이 등장한다). 그런데 승재 형이 <고래>를 읽어보더니 이러더라. “그래도 네가 내공이 좀 있네. 네 길을 찾은 것 같다. 소설 열심히 써라.” 아니, 소설을 열심히 쓰라니. 칭찬인 줄 알면서도 그 말이 어딘지 서운하더라. 나는 이 모든 걸 영화를 하려고 쌓아두었던 내공인데 말이다. (웃음)

-<이웃집 남자>의 경우는 어디에 초점을 맞추었나. 이 영화의 이야기나 장르적 면모는 90년대 초반 한국적 누아르와 일맥상통한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아벨 페라라의 <악질경찰>을 떠올리면 좋을 것 같다. 나쁜 놈인데 그를 통해 구원 같은 주제 의식이 부각되는 이야기. 이런 건 선 굵은 남성영화에 가까울 것이다. 그래서 그 남자에게 집중했다. 386의 한 자화상이라고도 보았다. 과거에 보편적인 의미에서 운동권에 속해 있던 남자가 사회에 나와서는 개처럼 살아가는 거다. 우리 세대는 70년대 영화에 영향을 많이 받았다(천명관 작가는 63년생이다). 영화가 할 수 있는 것들은 그때 다 한 것이라고 본다. 그 이후 영화들은 뒤집고 섞고 해체한 거라고 본다. 80년대에 출현한 코언과 타란티노는 70년대 이후의 변주인 거다. 그런 점에서 <이웃집 남자>는 고전적 스타일의 영화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갱스터 장르의 컨벤션으로 욕망, 불행의 씨앗, 좌절, 죄의식, 파멸 등의 라인이 있지 않나. 굉장히 고전적인 영화다.

-윤제문이 연기한 주인공 ‘상수’는 어떤 인물인가.
=특별한 남자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와이셔츠를 입고 다니며 약간 껄렁하면서 뭔가 정규직 같지도 않고 ‘사짜’ 냄새도 좀 나지만, 이웃집에 살고 있는 그런 인물이다. 이 남자는 육체성이 강조된다. 야전에서 살아가는 수컷이다. 넥타이 매고 다니는 회사원이 아니다. 그런 남자가 파멸해가는 것이다. 나도 고등학교만 졸업했다. 실은 친구 중에 엘리트가 많지는 않다. 처음에는 지식인들 세계가 더 낯설었다. 내 주변에는 <이웃집 남자>의 주인공 같은 이들이 많다. 그런 인물에는 익숙하다.

-오늘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영화에 대한 열정이 식은 것 같지는 않다.
=나는 31살이 되면서야 뒤늦게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같은 감독을 알았다. 그 이후 정말 소년처럼 영화를 탐닉했다. 모든 것은 다 영화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것들이었다. 좋은 영화감독이 되는 준비과정이었다. 기술적으로도 많이 공부했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들의 컷을 다 외웠고 시나리오도 분석했다. 실제로 그때 당시에는 플롯을 짜는 것에서는 내가 최고의 실력을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이 부분에서는 일종의 ‘닥터’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웃음) 그런데 그것이 영화쪽에서 발휘가 안되고 소설에서 발휘됐다. 내가 사랑한 건 저거였는데 말이다. 사람들이 이런 말을 한다. 너는 문단에서 사랑받지 않느냐, 그런데 왜 딴짓을 하느냐. 그러면 내가 곧장 적절한 예를 들어준다. 마틴 스코시즈의 <카지노>다. 영화에서 로버트 드 니로는 샤론 스톤을 진심으로 배려하고 그 여자의 허물을 덮어주며 사랑한다. 하지만 샤론 스톤에게는 첫사랑의 남자가 있다. 근데 양아치다. 샤론 스톤은 제임스 우즈가 전화를 걸면 한밤중이라도 그 양아치에게 달려간다. 사람들이 도대체 왜 그러냐고 물어보면 그녀는 나도 몰라, 라고 한다. <카지노>에서 샤론 스톤에게 제임스 우즈가 그런 것처럼 내게는 영화가 그런 것이다.

-가정이지만, 누군가가 원하는 대로 영화연출을 할 수 있게 해준다면 연출에 다시 도전해볼 마음이 있나.
=내 마음에 드는, 만족할 만한 시나리오가 나에게 있는가를 먼저 생각할 것이다. 그게 있다면 내가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할 수 있는가를 생각할 것이다. 만약 그런 상태가 되면 할 수도 있을 거다. 하지만 당분간은 하고 싶은 소설 작업이 많다. 줄리언 반스의 <플로베르의 앵무새>에 나오는 말이었던가. 사람이 정말 잘할 수 있는 건 세상에서 단 한 가지뿐이라고. 지금은 그 의미를 소설에서 찾으려고 한다.  

씨네 21. 10.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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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프랑스 작가 <르 클레지오>가 좋아하는 한국 작가 중 한명이라 손꼽은 이승우의 단편집이다. 문학적 조예가 깊지 못해 작년에서야 그의 대표작인 '생의 이면'을 뒤늦게 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생의 이면'을 읽고 나서 단박에 치밀하고 세밀한 문체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인간 내면 깊숙히 파고드는 그의 촉수와 같은 섬세한 텍스트는 윤대녕의 그것을 보는 듯 했다.

 

 

 

 

 

 

 총 8편으로 구성되어 있는 단편은 각기 다른 내러티브 지녔지만,  "과거 기억의 집요함에 사로잡힌 사람들의 이야기" 로 그 주제는 동일하다 할 수 있겠다.

<심인 광고>를 포함한 작품집 속 등장인물들은 과거 자신에게 엄청난 영향을 끼쳤던 기억에서 한치도 벗어나기 못하고 그 영향 아래 살고 있다. 주인공들은 어느 과거의 기억에 볼모로 잡혀 그 당시 기억에 소환 당해 살고 있는 것이다. 치명적인 기억을 떨쳐내려 하지만 과거는 사라지지 않고 "기억의 형태로 화석화되었다가 어느 순간 발굴"된다. 치명적인 기억(좋지 않은 기억은 특히 그렇다)이란 바이러스는 몸 속에 잠복해 있다가 시간의 흐름과 함께 선명해지고 단단해져 간다. 일상에선 사라진 듯 보이는 이 기억은 죽음을 앞 둔 순간에 비로소 그 정체를 드러내며 주인공들을 괴롭힌다. 

과연 죽기 직전에는 후회스러운 회한의 기억만 떠오를까 하는 의문이 한편으로는 들지만 그게 바로 인간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죽기 직전에도 딸에게 진실을 말하지 못하고 자기방어기제를 발휘하며 생을 마감하는 <심인광고> 속 주인공이 바로 우리 자신의 모습이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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