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인 모를 내면의 어떤 결핍으로 이유 없이 방황하던 스무 살 시절. 그날도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술이 그 결핍을 채워줄 수 있을까 싶어 다른 학교에 다니던 고등학교 동창의 자취방에 찾아가 밤새 술을 마시며 우울한 시대를 향한 무의미한 일갈을 하다 취해 잠이 들었다.

 

쓰린 속을 부여잡고 마른 목을 축이러 일어나려 할 때 방에서 나뒹굴고 있는 그의 잡지 <아웃사이더>를 처음 만났다. 새빨간 책 표지 만큼 책의 내용은 강렬했으며 시골에서 상경한 스무 살 청년인 나에겐 그 무엇보다도 불온했다. 
 

그렇게 난 김규항을 만났고, 그 후 그의 급진적인 글들은 나에게 세상을 보는 새로운 시각을 길러준 동시에 내 안의 결핍의 원인이 무엇인지도 일깨워 주었다. 이제는 삼십 대가 된 내가 자본주의체제의 최전선에서 활동하면서도 여전히 이 체제에 최적화되지 못하며 방황하는 건 일면 그의 영향이 크다. 그의 사상은 나를 지배했으며, 20대의 핵심 키워드를 꼽자면 단연 김규항이다.




 

 

 

 

 

 

 

 

 

그가 이번에 인터뷰어 지승호와 함께 인터뷰집을 냈다. 잡지 <아웃사이더>를 통해 접한 인터뷰어 김규항은 낯설지 않으나 인터뷰이 김규항은 흥미롭다. 무엇보다도 알마의 인터뷰집 시리즈로 그의 책이 나왔다는 것 또한 기뻐할 일이다. 그 만큼 김규항이 대중적이 되었다는 반증 아닐까?

매체에 소개되었던 대부분의 그의 칼럼과 글을 봐 왔던 나지만 김규항의 주요 사상과 단상들을 효과적으로 집약하여 표현할 수 있는 것은 인터뷰집이라 생각해왔었는데 반갑게도 이번 책이 그 형식을 취했다. 
 

이번 책에서도 그렇지만 요즘 그가 자신의 블로그와 여러 칼럼을 통해 목에 핏대를 세우며(?) 주장하는 것이 바로 <내 안의 이명박>에 대한 경계이다. 최근 보수정권이 들어선 이후 대다수의 개혁세력들은 이명박만 아니면 우리 삶이 윤택해지리라 주장하지만, 그들이 (현재) 추앙해 마지 않는 노무현, 김대중 정권 때에도 우리는 지금과 전혀 다를 바 없이 자본주의 망령에 철저히 갇혀 돈이란 신앙을 위해 복무했으며, 남을 짓밟고 성공해야 한다는 유일한 가치관을 우리의 아이들에게 주입시켰다. 오히려 그 시기에 신자유주의 체제가 더 강화되었던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명박과 우리는 신자유주의 체제에 함께 복무하는 동지일 뿐이다.

" 사회 변화에는 두 가지가 있다. 진정한 변화와 변화를 막기 위한 변화. 후자를 개혁이라고 부른다. 우리가 개혁을 경계하는 건 개혁이 갖는 현실적인 의미를 무시하려는 게 아니라 그 의미에 집착할수록 어느새 진정한 변화를 포기하게 되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이야말로 개혁의 숨겨진 목표다." - page 141 -

 

이는 곧 이명박 정권의 비판만으로는 진정한 변화를 이룰 수 없으며, 체제 안의 비판은 우리 삶을 변화시키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그는 보수세력보단 개혁세력을 진정한 변화를 위한 막는 더 큰 걸림돌이라 주장한다.  

<내 안의 이명박>과 같은 주장을 통해 기존에는 없던 새로운 시선으로 사회 현상을 꿰 뚫어보는 그는 보수, 진보를 가리지 않고 날선 비판을 서슴치 않는다. 이러한 비평과 주장 때문에 언뜻 그는 비관론자이자 금욕주의자처럼 비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오해를 풀고자 그는 자신의 블로그에 다음과 같은 글을 쓰기도 했다.  


“ 내 모든 글과 이야기들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더 즐겁게 살자는 것인데.. 흠.. 그런 오해 역시 내 숙제다. ”


그럼 즐겁게 살기를 꿈꾸는 그가 생각하는 행복이란 무엇일까?

 

" 결국 두 가지 였어요. 하나는 관계죠. 사람과의 관계, 나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있을 때, 어떤 경우에도 나를 믿어주는 사람이 있을 때, 어떤 어려움에 빠져도 그 사람만 생각하면 든든할 때, 그럴때 사람이 행복하죠.
또 하나는 역시 하고 싶은 일을 하는거죠. 돈을 얼마나 버는가를 떠나서, 하면 즐겁고 남보다 잘할 수 있는 일. 그런 일을 하고 살 때 사람은 행복합니다. 남들이 다 부러워하는 직업을 가졌지만 정작 본인은 그 일이 즐겁지 않다면 그렇게 불쌍한 사람도 없는거죠. 남들의 부러움에 위롭다면 지옥에서 살아가는 겁니다. 매일같이 그일을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만 그러지 못해요. 수입이 줄어서 초라해질 자신을 떠올리면 그럴 수 없죠. 더 이상 남들이 부러워하지 않는 생활을 생각하면 두려워서 그만두지도 못해요. 그렇게 인생을 보내는거죠. 정리하자면, 행복은 행복의 조건에서 오는 게 아니라 내 안에서 오는 겁니다. 그리고 미래에서 오는 게 아니라 지금 여기, 오늘에서 온다. 그렇게 말할 수 있겠습니다. " - page 309 -

 

그가 말하는 행복에 대한 지론은 내가 생각하는 행복의 조건과 큰 차이가 없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사상을 실천하는 삶은 살고 있지만, 나는 수입이 줄어서 초라해질 내 자신을 떠올리며 즐겁지 않는 삶을 지속하고 있다는 차이가 있다. 앞날에 대한 고민때문에 혼란스러워하는 현재의 나에게, 우리에게 행복의 조건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 주는 대목이다. 

 
그의 말대로 행복은 미래에 있지 않고 <바로> <지금> <여기>에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