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헌책 - 책에 남은 흔적들의 우주 아무튼 시리즈 65
오경철 지음 / 제철소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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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사는데 온갖 이유를 갖다 붙이곤 하지만 이번에도 역시나 이유가 생겨버렸다. 소소하게 모으는 아무튼 시리즈였고, 무려 헌책에 대한 이야기라니 신간 코너의 등장에서부터 참을 수 없게 만들어서 장바구니에서 결제로 행동을 옮기는데 주저하지 않게 만들었던 것 같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고개를 끄덕일만한 이야기들이 무척이나 많았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일단 수집이란 행위는 애호하는 누군가와 도란도란 나누는 순수한 한담이자 정담이나 매한가지라는 이야기가 가슴을 치고 갔다. 나 역시도 이래저래 모으는 것이 참 많은데 일단 책이 바로 그중 하나였기 때문에 작가님의 책 수집에 무한 공감하며 읽어나갔던 것 같다.

나만 해도 왜 쓸모도 없는걸 그렇게 모으냐는 소리, 폐지 모으는 걸 벌써부터 하냐는 소리를 많이 들었었는데 수집에서 발견하는 환희와 내가 찾지 못하는 물건과 만나지 못할 때의 좌절감, 그리고 채워지지 않는 욕구에 대한 마음에 대한 설명이 마치 그려지듯 설명돼 있었다.

 

좋은 책을 발견하려면 좋은 눈을 가져야 한다는 말이나, 안목이 높은 주인이 운영하는 헌 책방에 가면 그런 질서와 체계를 눈으로 볼 수 있다는 말은 작가님과 같은 고서 수집가는 아니지만 나만의 헌책 수준을 높이고 싶다는 욕심과 배우고 싶다는 욕구를 불러일으키게 했다. 


고서들의 기준과 진귀한 고서들을 알아보는 눈에 대한 이야기, 현대의 고서들은 박물관이나 도서관의 수장고, 귀중본 보관실 개인 소장가의 서재들에 들어가 있다는 말도 굉장히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던 부분들이었다.


헌책방에 대한 작가님의 코멘트들도 인덱스를 덕지덕지 붙여가며 읽었던 부분인데, 헌책방은 시간이 떠난 서점이라는 부분이 뭔가 헌책방의 장소를 연상하게 했던 것 같았다. 시간을 잊게 만드는 마법의 장소, 현재라는 시간을 무심하게 하는 책들의 공간에서 특별하게 나와 눈 마주침 당할 책을 만날 순간을 고대하는 모습이 떠올라 두근거림이 상상됐고 그런 따뜻함이 있는 순간을 간접적으로 느껴볼 수 있었다.


책 수집가가 왜 산 책을 또 사게 된 건지, 책을 사는 기준은 어떤 것인지, 그 집 책꽂이 상태는 어느 정도인지, 정리해도 계속 뱉어내는 책들과, 읽으려고 샀는데 읽은 책보다 쌓여가는 책이 많을 때 느끼는 감정들과 아직도 사야 할 리스트가 많을 때 느끼는 양가감정, 책 덕후들이 소개하는 비밀스러운 귀한 책 리스트들이 궁금한 사람이라면 이번 아무튼 시리즈 역시 단숨에 읽어갈 수 있을 거라고 강력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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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십육일 - 세월호 참사 10주기 기억 에세이
4·16재단 엮음, 임진아 그림 / 사계절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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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이 기억하는 진심은 어떻게든 돌아오게 되어있다. 
-p15

어둠을 씻어내니 더 큰 어둠이 도사리고 있었다. 그러나 불편한 빛으로 비추는 곳엔 아직 꺼뜨리지 않은 많은 빛들이 모여 있었고, 그곳에 있으니 어둠은 더 이상 두렵지 않았다. 우리의 기억력으로, 우리가 느끼는 슬픔으로 진실 없는 어둠의 칭얼거림을 달래 볼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P17

누군가는 쉽게 말한다.
"언제까지 이야기할 거예요?"
-P155

어쩌다 우연히 살아남은 우리가 목소리를 보태고 손을 잡아야만 한다. 우리가 잊지 않고 기억해야만 또 다른 4.16을 막을 수 있다. 
-P246

세월호 10년은 내 인생의 10년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나는 원하든 원치 않든 그 실시간 생중계의 증인이기 때문이다. 기울어진 배를 속절없이 바라보면서 화면 안으로 손을 뻗어 한 명이라도 구해내고 싶었던 그 수많은 시청자들 중 하나였다.
-P262

2014년 4월 16일 그날은 내가 나이트 근무였다. 병동 휴게실에서 긴급 뉴스가 보도되고 있었고 뉴스 자막으로 전원 구조라는 문구를 보고 안도하며 돌아섰던 게 몇 분 되지도 않아 오보라며 정정된 문구에 '어떻게 어떻게..'만 되뇌이던 그 밤이 잊혀지지가 않는다. 

언제나 돌아가면 그 기억이 떠오르고 실시간 상황들과  구체적인 이야기들에 상상을 더해갔지만 점점 낡아 가는 기억들이 슬픔에 슬픔이 더해지는 기분이었다.

스스로 4.16을 잊지 않으려고 카톡 프로필에도 노랑 리본을 떼지 않고 계속 달아놓고, 매년 4.16쯤엔 세월호 관련 기사를 찾아봐도 일 년 중에 며칠은 또 잊게 되는데 그때마다 참 미안하고 또 미안한 생각이 들곤 했다. 

이번 해에도 역시 그렇게 비슷한 일상을 보내다 며칠 전 세월호 10주기 소식을 듣고 4.16재단에서 책이 나왔단 소식에 이번에도 빠르게 책을 구입하고 읽어보게 되었다. 

이 책에는 시인, 소설가, 에세이스트, 가수, 배우, 기자 등 49인의 목소리를 담은 기억 에세이로 각기 다른 개인적 방법으로 세월호를 추모하고 있었다. 

각자마다 그날의 기억을 담아내기도 했고, 다하지 못한  개인의 반성, 앞으로의 계획을 밝히며 10년 동안 혹은 앞으로 세월호를 기억하고 계속 이야기할지  담담히 털어놓는 이야기들이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고의적인 혼란의 기억을 자들을 막아서는 방어선을 견고하게 해야 하고 누구도 함부로 훼손하지 않는 오염시킬 수 없는 기억의 울타리가 돼줄 시민들이 많아져야 한다는 정세랑 작가님의 이야기가 그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다. 많은 사람들이 기억해야 하고 우리가 모두 떠나도 변질되지 않을 기억으로 남아야 할 고유의 커다란 슬픔이 바로 세월호라고 생각한다. 아직도 그 얘기냐고 이야기하는 사람에게 지금도 부족한 이야기라고 맞받아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지게 한 많은 용기를 주는 이 책을 나처럼 용기가 필요하거나 4.16을 계속 기억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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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나잇 레드카펫 네오픽션 ON시리즈 20
김청귤 지음 / 네오픽션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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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의 유혈 사태

하필이면 오늘 생리가 터졌고, 마침 생리대가 없었으며, 없으려면 한꺼번에 없다고 생리통을 진정시킬 약도 초콜릿도, 과일주스도 한꺼번에 떨어졌다. 그래서 다급하게 얼마 전에 아르바이트를 잘린 편의점에 가게 되었다고 했다. 그곳에서 자신의 친구를 스토킹 한 범죄자가 후임으로 알바를 하는걸 보게 되었고, 우연히 그 알바놈과 어깨빵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정말 살짝 쳤는데 그 파동에 진열대가 휘청거리더니 술병이 아르바이트생 머리 위로 깨졌고 술병에 다쳤는지 줄줄 흘러내리는 피에 놀라서 도움을 청하려다 다리에 힘이 풀리면서 밖에 노상방뇨하다 들어온 아저씨랑 한번 더 부딪히면서 아저씨와 편의점 유리문에 부딪히면서 어쩌다보니 남자 두 명이 한꺼번에 사고사 하게 된 사건이 발생하게 된다. 

이 모든 게 우연이 계속 겹친 사고였을 뿐이라고 강력히 주장하는 주인공,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은 스토킹하는 여자 집을 쫓아가다가 주인공 친구를 죽게 한 스토커가 벌인 짓과 하등 다를 바가 없다는 주장이 계속 되었다. 그리고 생리 때문에 심신미약이라는 근거 있는 이유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글 자체가 날것 자체라 조금 많이 과격하지만 생리 기간이라면 충분히 공감이 되는 글이었는데 미러링이라고 볼 수 있을만큼 모든 범죄 사건에 심신 미약을 주장하는 남성들의 패턴이 생각나게 했다. 성범죄 사건들에 분노에 마지않던 사람이라면 우연한 사고에 대처하는 우리의 주장도 마땅히 받아들여져야 하는 부분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게 하는 작가님의 마성의 글발이 고개를 절로 끄덕여지게 하는 부분이 있는 속시원한 이야기였다.


마법 소녀 투쟁

어느 날 지구에 괴물이 나타났다. 그리고 마법 소녀도 나타났다. 툭 치면 부러질 것 같은 팔다리로 유치한 장식이 달린 마법 봉을 휘두르는 모습에 반했다. 사람들의 선망의 대상이던 마법 소녀는 결국 정부의 관리 대상이 되었고 어느 누가 마법 소녀가 될지 모르기 때문에 예비 마법 소녀라는 이름 아래 모든 여자아이들은 각종 체력 단련을 비롯해 유연성 민첩성 등 무술을 어릴 때부터 배웠고 국어 영어 수학은 배우지 못했다. 하고 싶은 직업을 선택할 수 없었고 마법 소녀가 된다 해도 23살이 되면 은퇴해야 하며 은퇴 후에는 또 다른 마법 소녀를 잉태하기 위해 꼭 결혼해야 했다.

마법 소녀의 복장은 언제나 화려했고 노출이 있었으며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괴물을 물리치는 행위는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았으며 이런 마법 소녀의 행동을 불순한 의도로 찍어서 파는 사람들도 존재했다. 수민 역시 그런 카메라의 집요한 렌즈 때문에 움직임이 소극적이고 있었다. 괴물은 그런 소극적인 움직임을 단번에 파악했고 그날 역시 집요한 찍사의 플래시 때문에 수민은 최후를 맞이했고 이 사건으로 유리는 마법 소녀로서의 활동에 회의를 느끼게 된다. 유리는 조금 있으면 은퇴를 하게 되었고 평범한 주부가 되어 엄마처럼 살고 싶지 않았다. 하고 싶은 일이 있었고, 인간답게 살고 싶었다. 지금부터 마법 소녀로만 살지 않고 사람으로 살고 싶다는 투쟁을 시작하기 위해 1인 시위를 시작하기로 하며 이야기가 다시 시작된다.


미세먼지 청정구역 서대전 네거리 역

미세먼지가 뿌옇게 자리한 세계,
갑자기 미세먼지 인간이 나타났다.
전기가 들지 않는 성능 좋은 인간 공기청정기였다.
존재 자체가 환경을 위하는 것이었다.
워낙 성능이 좋고 만인에게 도움이 되다 보니 죄가 있어도 미세먼지 인간이 되면 죄를 없애주고, 웬만한 공무원보다 좋은 직업으로 추대했으며 돈도 명예도 한꺼번에 가질 수 있었다.
현실을 도피하고 싶은 마음에 미세먼지 인간이 되고 싶은 주인공은 현재 카페 아르바이트 중이었다.
평화로운 일상 속에서 대학 복학을 앞둔 같은 과 선배 윤기혁이 자꾸 선을 넘으려고 하고 있었고, 오늘도 퇴근길에 마음대로 기다렸다 강제로 끌고 가려는 걸 낯선 사람이 도와주는 일까지 겪게 되는데 그 사건 이후 윤기혁은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잘리게 되었지만, 운 좋게(?) 미세먼지 인간으로 변이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평소 평판도 좋지 않고 행실도 좋지 않던 사람이었지만 미세먼지 인간이 되었다는 이유로 점점 좋은 사람으로 보여지는 모습을 보며 주인공은 조건을 보고 윤기혁을 선택했어야 했나 고민을 하지만 마음속으론 미세먼지 인간이 되어 자신을 찾아올 윤기혁을 없앨 휴대용 공기청정기를 구입할 계획까지 하게 된다.


찌찌 레이저

여자라면 누구나 성인이 되는 해에 원활한 모유 수유를 위해 가슴 수술을 받아야 한다. 유교의 망령들은 아기를 생산할 수 없는 것들은 모조리 막았는데 동성 결혼과 생활 동반자 법도 막았다. 아이를 낳을 수 없는 관계를 모두 차단한 것이다. 여자로 태어났으면 무조건 아기를 키우는 행복을 누려야 한다. 순수 혈통인 아기를 품고 낳을 귀한 몸가짐을 단정히 해야 한다 등 인공장기로 모든 걸 교체할 수 있는 시대인데도 불구하고 순수 혈통의 아이를 낳아야 한다는 이유하에 여자는 아파도 신체의 고통에 상관 없이 병원 치료만을 받아야 했다.

내 신체 내 몸을 내 맘대로 쓸 수 없다는 것에 불만을 가진 주인공 친구 세희는 도망가다 붙잡혀 스무 살이 될 때까지 감시를 받다 스무 살이 되는 해 1월 1일 0시에 가장 먼저 인공 가슴이식 수술을 받았고 주인공의 가장 친한 친구라는 이유로 생일이 되는 오늘 아침 8시 수술을 받게 된다.

수술을 하고 너무너무 아팠고 고통조차 약물 의존하면 아이를 낳을 때 힘들다며 버티라는 국가 때문에 삼일을 기절할 듯 누워있다 샤워를 하고 가슴을 닦는데 가슴에서 레이저가 나왔다. 집에 여성들을 감시하려 설치한 컴퓨터까지 레이저로 박살을 내고 도망을 가다 요원들을 처치하게 되고 레이저로 각성을 하게 되며 찌찌 레이저의 활용도를 파악하게 된다.


첫 작품부터 박장대소는 아니지만 피식피식 웃을 수 있었다.
특히 한밤의 유혈사태를 읽으면서 그날을 겪어본 여자들이라면 날것의 단어들에 공감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감정 표현함에 거침없는 작가님의 평소 다른 작품을 즐겨본지라 상상이 안되었지만 이것도 작가님 모습이라니 신선했고 후련했다.

우린 생리를 마법이라고 칭하지 않았다. 왜 빨간색을 누구 좋으라고 티브이에서 파란색으로 보여주고 그들 머릿속에 그렇게 상상하게 했을까? 코피 흘리고 손가락에 조금만 피가 나도 걱정하면서 하물며 생식기에 피가 줄줄 흐르는데 우리는 일상생활을 아무렇지 않게 해내기 때문에 심신미약이 참작되지 못하는 것인가 생각하게 했다.

마법 소녀 투쟁은 아이돌 문화가 생각나기도 했고
여성에 대한 우리의 시선에 대해 다시 한번 반성해 봐야겠다고 생각할 수 있게했다.

마르고 예뻐야 하는 아이돌, 그리고 그것을 소비하는 소비자들의 인식 변화가 있어야 그들이 외적인 부분에 갇혀 살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과 여자이자 엄마로서 미래가 정해진 역할을 해야 한다는 여성성에 대한 인식에 대한 변화가 있어야 우리 사회가 발전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드는 부분이기도 했다.

분명 작가님이 하는 이야기는 다른 부분이겠지만 여러 부분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이야기라서 마법 소녀 이야기도 굉장히 좋았다.

여성의 신체적 정신적, 그리고 사회적인 이야기를 이야기로 다양한 소재로 풀어내는 작가님의 소설 스타일이 개인적으로 너무 취향 저격이다.

있을법하지만 현실에 없는 이야기들로 현실 속 고민들을 이야기하고 우리가 고민할 만한 이야기들을 공감할 수 있게 한 번 더 풀어서 설명하는 게 참 속 시원하다고 느껴졌다.

다른 개인적인 부분으로는 대전인으로 대전 이야기를 읽는 게 얼마나 반가운 일인지 김청귤 작가님 글로 알게 되었던 부분이 있는데, 서대전네거리역이나 은행동 스카이로드, 대전역, 대흥동 일대 이야기 등 환상적인 이야기 속에서 익숙한 지역들을 상상하면서 읽는 재미가 쏠쏠해서 앞으로도 대전 이야기를 계속 써주셨으면 하는 개인적 바람도 살짝 남겨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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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굴 죽였을까
정해연 지음 / 북다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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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수련원 안쪽 뒤 산 쪽에 삼총사가 몰래 담배를 피우다가 인기척에 조금 전 버린 담배꽁초 위로 흙을 덮고 있을 때였다. 고개를 드니 원택의 표정이 건수를 하나 잡았다는 표정이었다. 바로 앞에는 손전등 불빛이 보였고 자세히 보니 자신들의 또래로 보이는 남학생이 올라오고 있었다. 일단 세 사람이 서있는 곳은 수련원 펜스 바깥의 숲으로, 정문이 아니라 이쪽으로 나온 것은 선생님 몰래 뭔가를 사러 나왔다는 얘기였다. 남학생을 불러 세워 잠깐 얘기 좀 하자는 필진과 원택의 말에 남학생은 직감적으로 눈치를 챈 것인지 뒤로 주춤거렸고 순식간에 뒤돌아 달려나갔다. 숲 안을 뛰어다니다 결국 세 사람에게 붙잡히게 되었고, 목적대로 남학생의 주머니를 뒤져서 지갑에서 은파 고등학교 백도진이라 적힌 학생증과 교통카드 그리고 3만 원을 찾아냈다. 3만 원에 필사적으로 도망가려는 남학생이 어이없었지만 이상하게도 이 남학생은 필사적으로 돈과 지갑을 빼앗기지 않으려 하고 있었다. 그러다 비키라는 소리와 동시에 퍽 하는 소리가 났고 우직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남학생이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지며 남학생의 몸이 그대로 뒤집혀버렸다. 순식간에 남학생의 머리에서 피가 흘러내려 쏟아지고 있었고 남학생의 몸은 선혁의 손에 이끌려 흔들거렸다. 그렇게 그 남학생은 죽어버렸다.

첫 장면부터 살인사건으로 시작되었지만 범행을 주도한 삼총사는 일상을 살아가고 있었고 고등학교 시절이 지나 27살이 되어있었다. 한 몸같이 붙어 다니던 세 사람이었지만 이제는 부고 소식에 한자리에 모이게 되었다.

소식의 주인공은 원택이었다.

건강에 문제가 있었던 것 같지도 않고 사고인 것 같지도 않았는데 왜 죽었을까? 고민하는 선혁에게 형사가 다가왔고 원택이 죽었을 때 입에 물고 있었던 종이를 보여주게 된다.

'9년 전 너희 삼 인방이 한 짓을 이제야 갚을 때가 왔어'

고등학교 때 사건을 마무리 짓지 못한 사건이 떠오른 선혁은 원택의 사건을 시작으로 다음 피해자가 될까 두려운 마음과 경찰보다 먼저 사건을 해결하고자 하는 마음의 양가감정으로 스스로를 괴롭히게 된다.

사건은 계속 진행되고 제목처럼 누가 죽였을지 그리고 그들이 죽인 고등학생은 어떻게 된 것인지 궁금할만한 사실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독자들을 계속 추리하게 하는데 정해연 작가님 스타일의 이야기 풀이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홍학의 자리' 뒤를 이어 꽤 만족할 만한 작품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추리소설은 자극적일 수밖에 없지만 자극적인 소재 속에서도 끊임없이 상상하게 하는 작가님만의 특기가 잘 보이는 소재였다. 이번에도 마지막까지 주인공의 심리를 잘 다루고 있어 쫄깃한 긴장감을 읽을 수 있었고, 마무리도 깔끔하게 처리(?) 되어서 개인적으로 완벽했다고 생각이 들었다. 다만 피해자 가족에게는 여전히 안타까운 부분이 있긴 했지만 그건 추리소설 피해자로써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 조금 현실적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던 부분이었다.

정해연 작가님의 새로운 소설이 그리워진 팬이라면 만족스러울 신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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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필 책이 좋아서 - 책을 지나치게 사랑해 직업으로 삼은 자들의 문득 마음이 반짝하는 이야기
김동신.신연선.정세랑 지음 / 북노마드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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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를 다룬 책이 왜 그렇게 끌리는 건지.. 

일단 나는 병렬 독서를 즐기는 편이다. 평소 이 책 저 책 끊임없이 읽어대고, 한 권 손에 들고 읽는 순간에도 하이에나처럼 이 책 저 책 다시 또 찍먹하는게 취미다 보니 이번에도 역시 책이 나오자마자 제목에 홀려 샀고, 읽은 건 순식간이었는데 게을러서 리뷰는 좀 늦어져 버렸다.


일단 내가 좋아하는 정세랑 작가님 신작 알림이 떠서 바로 장바구니에 담은 책이었고, 읽다 보니 다른 작가님들을 알게 된 책이었다. 나머지 작가님으로는 프리랜서 작가이자 온라인 서점 MD이신 신연선 작가님, 그리고 출판 돌베개 디자이너로 일하신 김동신 작가님  이렇게 세분의 작가님이 각자가 지나치게 사랑한 책을 직업으로 삼으면서 저작, 홍보, 디자인, MD, 콘텐츠 제작으로 발전시키며 다룬 에피소드들을 한 책에 담아낸 에세이였다.


책 한 권이 발간되면 보통 150권에서 300권 안 팎의 증정본이 발송된다고 한다. 이때 들어가는 생산과 물류에 드는 포장재 같은 자원을 생각하면 요즘같은 기후 위기 시대에는 하나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던 부분이었다. 서평단 지원을 즐겨 하는 나는 이 부분에서 많은 반성을 하게 되었다. 책 증정이 가장 필요한 사람들은 신인 평론가들이거나 책값이 부담스러운 신인작가들이었으면 좋겠다는 작가님의 말도 꽤 일리가 있게 느껴졌다. 


이외에도 개정판과 리커버에 대한 개인적 오해가 가장 컸었는데, 왜 책이 조금만 잘나가면 환경오염이 난리라는데 리커버를 계속할까 생각했는데 개정판과 리커버는 기존의 재고가 소진된 후 그다음 쇄부터 다른 디자인으로 들어가는 게 보편이라고 했다. 그 과정에서 버려지는 책이 없으니 안심해도 된다는 것은 이 책에서 처음 알게 되는 정보여서 평소 오해를 푸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던 부분이었다. 


작가의 외모 노출에 대해서 솔직히 당하는(?) 입장이 아니어서 크게 생각해 본 적 없었는데 확실히 디지털 시대라서 그런지 한번 미디어에 노출된 모습이 계속 따라다니는 것이 작가에겐 얼마나 스트레스가 되는지 이런 에피소드에 대해서는 들어볼 기회가 없었던지라 저자의 외모 노출에 대해서 관습적으로 우리가 너무 지나치게 허용적이지 않았나 생각해 보게 했고, 외모가 아닌 작품으로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을 가진 독자가 되어야겠다는 소심한 다짐을 하게 했다.


독서 구독 서비스와 원고료에 대한 이야기나 교통이 불편한 출판 단지 이야기,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불합리한 원고료에 대한 소리 냄과, 출판계의 안전에 관한 이야기 등 이 책이 아니라면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했던 작가님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여러 부분에서 눈이 번쩍 뜨이게 했다. 


이외에도 표지 디자인에 관한 심오한 이야기들은 솔직히 어려워서 다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축과 배치 그리고 방식들의 기술 등 한 번도 접해보지 못했던 분야에 대해 볼 수 있었던 시간이 귀했고 새로웠다. 

특히 출판사 로고와 글씨체의 자유로움과 그들이 추구하는 정체성들을 디자인으로 표현하는 것이 얼마나 심오하고 멋진 작업인지 놀라웠고, 익숙한 출판사들의 로고들과 시대마다 유행했던 패턴들이 존재한다는 것과 여러 변칙과 의도를 가진 조합의 표본이라는 것을 알게 했다.

책 이야기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분야라서 실패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을 가지고 선택한 책이었다.

물론 익숙한 이야기만 잔뜩 늘어놓는다면 지겹거나 식상하다는 후기가 달렸겠지만 이번에는 정말 새로운 이야기들이 많아서 역시나 책 덕후들의 니즈를 아는구나라고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는 이야기들이 많아서 대체적으로 만족스러웠다.

하필 책이 좋아서 나무에게 조금 미안하지만 다양한 매력으로 베스트셀러만 사랑받는 게 아니라 다양한 책 종류가 사랑받는 그런 세상, 조금 결함이 있어도 따뜻함 많은 사람들이 많은 글을 쓰는 사회가 되길 바라는 그런 책이 있는 세상을 꿈꾸는 따뜻한 마음이 전해지는 책이어서 내 마음에 쏙 들었던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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