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바닥에서 - 간호사가 들여다본 것들
김수련 지음 / 글항아리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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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간 간호사로서 겪어온 이야기, 91년생 김수련 간호사의 이야기다.

1부는 간호사로 일한 이후 개인적 경험과 2부에서는 임상에서 마주친 상황에 대한 이야기, 3부는 사회적인 내용을 담아냈다고 했다.

책을 시작하는 글에 '병원은 자기주장 강한 간호사를 원하지 않는다.' 이 말에 공감하게 되었다.

간호사는 말없이 묵묵히 일하는 존재여야 했다. 그걸 처음 배운건 학생때였는데,
노조에 가입하지 않는 것을 대놓고 원하는 것, 노조에 가입한 선배가 있는 학교의 학생은 뽑지 않는다는것, 선배가 노조에 있는 병원에 면접을가면 질문에 노조 관련 질문이 생긴다는것을 알게 했다. 그때부터 병원이 우리에게 원하는 바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던 부분이었다.

이외에도 신규 시절부터 우리는 병원이 원하는 대로 생산된 부품 같은 존재라는 생각이 들게 했는데, 병원에서는 늘 간호사란 자리에 맞는 정량화된 사람이 근무하길 원하는 것을 목도 했던것 같다. 자리에 맞는 사람이 존재하는지도 모를 만큼 굴리고 또 굴려져야 그들이 맞는다고 생각하는 모양새가 다듬어지는데 그것은 기본 3년-10년이었다. 개인의 역량에 따라 그것도 부족하다고 여길 수도 있는 시간이 흘러야 하지만, 그것을 트레이닝이라는 명목하에 2개월도 안되는 시기에 던져버리는 원하는 병원의 상식이 이해되지 않는 건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만약 자리에 맞지 않는 불량품인 경우 병원이라는 환경에 맞지 않는 사람으로 간주되어 교체되거나 철저히 맞게 개조되어 쓰이는 사람들이 간호사라는걸 간호사로써 공감하게 하던 책이었다.

그 내용이 1부에 담겨 있었다.

간호사에게 자기 몫의 전쟁은 언제나 치러야 할 과제였다. 남이 깨지고 부서지는 모습을 보고 있어도, 우리는 살아남기 위해 타인의 아픔을 보지 못한 것처럼 여겨야 할 때가 많았다.

6시까지 출근을 위해 새벽 3시에 일어나는 일은 일상이었다. 3교대의 불규칙한 출근 시간 덕에 늪에 빠지는 것 같은 몸뚱이를 이끌고 하루하루 연명하듯 살아가는 신규 시절의 이야기가 굉장히 처절하게 공감되었다. 지금도 굉장히 비효율적이라고 느껴지는 물품 카운트, 시간부터 입력 속도와 비례하지 않는 인계 속도를 적응하는 일, 인계가 끝나자마자 기계적으로 해야 하는 일은 산더미같이 쌓여버리고 해결해도 해결되지 않는 일의 연속과, 내가 잘못하지 않아도 매일 잘못했다고 사과해야 하는 일상이 사실적으로 그려졌다.

사실 병원 일은 학교에서 배우지 않는다. 병원마다, 파트마다 직무마다 다르기 때문에 실무적인 것은 모두 그냥 부딪혀서 익혀야 한다. 근데 그 선택이 사람 목숨을 좌우하는 일이라면 등 뒤에 식은땀은 기본적으로 달고 살아야 하는 일이라는 게 칼 같은 현실이었다.

동시에 여러 개를 하지 못하는 사람도 무조건 해내야 하고, 그렇게 발바닥에 땀나도록 뛰어다녀도 빠지는 일이 생기면 다시 미안해하고 사과해야 한다. 3교대가 있는 이유가 일의 로스를 줄이기 위해서라고 여기지만 막상 일하다 보면 모든 처리는 내 근무 때 해야 하는 도리라는 것을 금방 익히게 된다.

내용중에 작가님의 신규 시절 자살을 생각한 이야기가 있는데 굉장히 신경 쓰였던 부분이었다. 진짜 무서운 이야기지만 자살이 아니더라도 사고를 당하고 싶다는 생각, 사고에서 이어진 무단 퇴사를 생각한 간호사가 실제로도 상당히 많다는 설문과 경험담을 많이 들어 본 입장인지라, 실제 자신이 죽음을 생각한 순간 친구가 준 편지와 브라우니로 지금까지 버텨왔다는 글은 담담하지만 가슴 아프게 현실적으로 느껴졌던 글이었다.

3부에서 담아낸 사건들에서 신규 시절 외과 강사에게 당한 성희롱 문제와, 당한 여러 사람이 뭉치면 단체가 될 수 있지만 왜 침묵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리고 침묵한 것에 대한 분노가 클 수밖에 없는지, 병원의 책임 소재에 관한 이야기, 가해자에 대한 처벌의 현실이 어떤지 화를 내면서 읽었던 부분이었는데 읽기만해도 분노가 오르는데 그것조차 담담히 잘 담아낸 이야기여서 기억에 남는다.

아산병원 박선욱 간호사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며 프리셉터 제도에 대한 문제점을 짚어준 것도 고마웠다. 현재 대한민국 병원의 상황과 턱없이 부족한 간호인력에 대한 이야기, 여전히 보수적인 문화와 간호과의 특성에 대한 이야기는 소극적 저항을 눈여겨봐야 하는 이유가 처절하게 느껴진 부분이었다.

자신의 이야기하는 소리 내는 간호사가 많아졌으면 하는 게 내 바람이다. 우리는 자신을 죽이는 것만큼이나 목소리를 죽여왔다. 흘러가는 대로 흘러갔고, 그렇게 후배들에게도 흘러가라고 권하는 건 독약을 권하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뀔 수 있고 바뀌어야 한다는 걸 아는 사람으로서 이런 책이 더 많이 나와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간호사는 기계가 아니다, 사람이다. 그렇게 생각되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간호사가 부족하다는 말은 매번 나오는 뉴스 중 하나인데, 간호 대수를 늘려 인원을 많이 뽑는다고 해결 방법이 아니라는 걸 간호사들은 알고 있다. 간호사의 소리에 귀 기울여주고 관심을 가질 때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하며, 조금씩 노력해서 고단하고 팍팍한 현실이 조금 더 나아지는 날이 되면 더 이상은 스스로 간호를 포기하는 간호사들이 사라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이 들어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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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3-05-05 20: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간호사 직업이 정말 힘들거 같아요. 저는 병원을 거의 안가긴 하는데 아픈 환자를 계속 상대하다보면 몸도 그렇지만 마음도 힘들거 같아요 ㅜㅜ 친구들중에 간호사 일을 오래하는 애들을 못본거 같다는... 힘든 만큼 처우가 나아지면 좋겠습니다~!!

러블리땡 2023-05-12 01:49   좋아요 1 | URL
그냥 나는 평범한 회사원1이다라고 생각하고 마음 비우고 살고 있는데 간간히 번아웃 올때가 있어서 그게 좀 버겁긴해요 모든 직업은 다 힘들죠 간호사만 힘든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래도 지금보다 처우가 조금만이라도 나아지고 인식도 조금만 더 바뀌면 좋겠다는 바램은 있어요 간호법만봐도 쉽진 않겠지만요 감사합니다 ㅎㅎ 그냥 이책처럼 목소리내는 책이 있음 좋겠다 싶어요!!!:)

2023-05-09 17: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러블리땡 2023-05-12 01:50   좋아요 0 | URL
친구가 있으시군요ㅎㅎ 요즘은 갈수록 더한것 같긴해요 사회적 분위기가 그래서 그런가봐요ㅎㅎ 댓글 감사합니다 뭐든 조금은 더 좋아질거라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