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며칠 비가 정말 무섭게 왔었는데, 알라딘 서재분들은 피해 없으신가 걱정됩니다. 제가 사는 고장은 비가 그다지 오지 않았는데 좀 전부터 뜬금없이 마구 퍼붓기 시작하는군요. 천둥도 치고 무, 무서워요. -_-;
저, 오늘 퇴원했어요. ^^;
십년쯤 전, 그러니깐 2002년 월드컵 즈음 해서 수술받은 적이 있었답니다. 양성종양 제거술이었는데 그게 재발을 원체 잘 한다네요. 작년에 재발한 걸 발견하고 쭉 지켜보고 있었는데 (사실 담당교수님께서는 하루라도 빨리 수술하라고 하셨는데 혼자 고집피웠다는 -_-;) 최근에 갑자기 많이 커져서 어쩔 수 없이 급히 수술약속을 잡게 되었어요.
직장에는 휴가 간다고 하고(장소는 터키 -_-;) 원래 일주일인 여름휴가에서 삼일 더 쓰려고 남들 주 오일 근무할 때 육일 근무하고 막 그랬어요. 흑. (갑자기 북받치는 설움 ㅠ_ㅠ) 원래 거짓말하는 거 싫어하는데-정직한 성격이라서가 아니라 거짓말하려면 머리도 좋아야 하고 신경써야 할 일이 많기 때문에 귀찮아서- 남들 괜히 신경쓰는 거 싫어서 터키 간다고 그랬더니 어느 도시를 가느냐 언제 가서 언제 오느냐 시차가 얼마냐 환율은 어떻게 되느냐 등등 어떻게나 귀찮게들 물어대는지 히, 힘들었어요. -_ㅠ;
월요일 입원하고 화요일 수술했는데, 막상 수술한다 생각하니깐 진작 할 걸 그동안 뭣때문에 괜히 차일피일 미뤄왔나 싶더라구요. 이놈의 게으름. ^^;
예전에 첨 수술했을 때는 수술 후에 회복이 더뎌서 일주일예정으로 입원했다가 이주 가까이 병원에 머물러야 했었는데요. 그땐 집안 사정상 간병해 줄 사람이 없어서 수술당일만 엄마가 계시고 내내 혼자 있었어요. 일주일 예정하고 가져온 책이 똑 떨어진 이후에는 완전 공황상태 -_-; 병원에 책 가져다줄 사람이 없어서 할 수 없이 병원 도서관을 물어 찾아가 봤더니 정말 정말 옛날책들, 세로쓰기 되어있는 책들이 잔뜩 있더군요. 미우라 아야코의 '빙점'을 발견하고 혼자 감격하기도. ^^; (어렸을 때 친구에게 빌려서 몰래-_- 읽었었는데 그 당시에는 무척이나 충격적이라고 생각했던 장면들에 덤덤해하는 자신을 발견;)
이번에 수술할 땐 교수님께서 딱 4일만 입원하자. 라고 설득^^;해 주시더니, 정말 어제밤에 내일 퇴원하라는 통보가 내려오더군요. 어찌나 기쁘던지. 저도 모르게 아싸!!! 하고 외쳤답니다. 아직 수술부위가 많이 부어있어서 움직이는 게 불편하지만 역시 집이 천국이에요. ㅠ_ㅠ
아직 조직검사 결과가 남았지만 옛날과 같은 양성종양이라고 거의 확신하고 있으니, 사실 마음의 부담은 별로 없는데도 수술하기 전에는 직장이랑 집 물건도 좀 정리하고, 유서도 새로 써보고 통장이랑 인감도장 같은 거 한데 챙겨서 엄마가 잘 찾으실 수 있도록 하는 등의 이상한 행동-_-을 하게 되더라구요. 가끔은 이런 계기로라도 자신을 돌아보게 되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자주 돌아보기는 싫어요. ㅠ_ㅠ)
수술 잘 해 주시고 잘 돌보아주신 의사선생님들과 간호사분들 참 감사합니다. (^^)(__)
입원한 동안 읽었던 책들입니다. 어쨌든 하루종일 라디오 틀어놓고 책 읽을 수 있었던 건 좋았어요. ^^
1. 물의 잠 재의 꿈 - 기리노 나쓰오
무라노 미로의 아버지 무라노 젠조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1963년 9월. 로 시작하는 소설인데요.
아아... ㅠ_ㅠ 재미있습니다. ㅠ_ㅠ;;;;;;;;;;;;;;;;;;;
<얼굴에 흩날리는 비>를 읽고 <다크>를 읽었는데요. 멋지다고 생각했던 캐릭터들이 완전 비호감, 지지리궁상, 비겁자로 변하는 걸 보고 좌절했었어요.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우와, 그런데 이 책에서는 다시 회복이 됩니다. 기리노 나쓰오씨가 저를 손바닥위에서 갖고 놀았어요. 일관적이지 못한 캐릭터라고 생각될 수도 있지만, 나 역시도 젊은 날의 순수하고 풋풋(쓰면서도 부끄럽군요;)한 날이 있었던 반면 지금의 진상 술꾼녀-_-의 모습 역시 저이니깐요. (비유가 뭐 이래 ㅠ_ㅠ)
험험;; 어쨌든 젊은 날의 멋지고 멋진 무라젠과 데이가 나옵니다. 정말 정말 재미있어요. >.<
2. 행복한 세계 술맛 기행 - 니시카와 오사무 글. 사진
입원하면서 이 책을 가져가는 저는 도대체 어떻게 된 사람일까요. -_-a 그렇지만, 그렇지만, 너무 너무 재미있어요. ㅠ_ㅠ 그리고 부러워 죽어요. 온 세계를 돌아다니며 진지하게 술을 탐구하는 사진가라니!!! 프롤로그 제목이 <수줍은 남자의 40년 술사랑>이에요. 너무 귀엽지 않습니까? 수줍은 남자라니. >.< 술과는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너무나 멀리멀리 떨어져 있는 입원기간 동안 침을 꼴깍 꼴깍 삼켰답니다. 마시고 싶은 술이 너무 많아요. 아콰비트, 포르토 와인, 그라파, 그리고 물론 각종 맥주들!!! (지금도 침넘어가요. 도대체 언제쯤 맥주 한 잔 할 수 있는 걸까요. 우엉. ㅠ_ㅠ)
훌쩍(눈물을 닦고;) 한국에서 소주랑 막걸리 마신 이야기도 나온답니다. 재미있고 읽으면서 괜히 흐뭇하게 웃게 돼요. ^^
3. 셰익스피어 배케이션 - 김 경
이 책은 한참 전에 재미있을 것 같아서 사놨다가 이제야 읽었어요. 이 책도 역시나 부러워 죽습니다. -_- 빅토리아 여왕이 공직자들에게 삼년에 한달꼴로 유급독서휴가를 주었다네요. 그걸 셰익스피어 배케이션이라고 한다면서. 저자는 직장을 관둘 각오를 했지만 너그러운 상사의 배려로 1년의 무급휴가를 받았대요. 부, 부럽다. -_-;;;;;;
여기도 술마시는 얘기가 많이 나와서 아주 괴로왔지만; 멋진 책이에요. 저도 몰타에 가보고 싶어지더군요. ^^
4. 마의 산 (상) - 토마스 만
이 책은 198p까지 읽었어요. 다시 병원에 입원하는 일이 있으면 꼭 <마의 산>을 읽겠다고 생각했었어요. 일종의 로망이었는데. 해서 이번에 <마의 산 >만 상, 하 이렇게 두 권 들고 갈까 생각했었는데 말이죠. 큰일 날 뻔 했습니다. -_-; 이 책을 완독하려면 아주 장기입원이 필요하겠다고 생각하면서 ㅠ_ㅠ 그렇다고 재미가 없는 건 아니에요. 생각외로 빨리 넘어가기도 하는데, 이 책만 주구장창 들고 있는 건, 생각만 해도 울상 ;;
5. 범죄의 해부학 - 마이클 스톤
제가 이런 류의 책을 굉장히 좋아하는데요. 이 책은 왠지 안 읽히더라는. ;; 이 책도 111p까지 읽고 접어둔 상태예요. 조금씩 읽어야겠어요. 읽기 시작한 건 아마도 작년 -_-;
6. 웃는 이에몬 - 교고쿠 나쓰히코
이 책도 반정도 읽었어요. 어제밤 11시경, 내일 퇴원해도 된다는 간호사의 통보를 받고 너무 기뻐서 읽고 있던 범죄의 해부학을 저멀리 던져버리고 손에 들었어요. 너무 재미있어요. 교고쿠 나쓰히코는 참 흥미로운 작가예요. +_+;
이제 저는 웃는 이에몬 다시 읽으러 갑니다. 그동안 서재에 못 들어와서 많이 궁금했었어요. 입원하기 전 주말에는 집 컴퓨터가 먹통이 되는 바람에 인터넷을 못했구요. 서재분들 모두 비피해 없으셨길 바래요. 그리고, 무엇보다 건강하셔야지 돼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