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작년에 집에서 찍은 것.
한 이주정도 '울' 상태였다. 나도 그렇고 주위 사람도, 축 쳐져서 불길한 분위기를 내뿜는 나 때문에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어제 오후는 쉬었는데 야구나 보러 갈까 하고 예매했다가 후배가 오후에 비온대서(비 안 왔잖아! 바보!!! -_-++++) 취소하고 더욱 우울해진 기분으로 (좀비모드-_-;) 집에 갔다. 잠이나 잘까 하고 누웠지만 잠이 올 턱이 없어서 벌떡 일어나 밖으로 일단 뛰쳐나왔다. 미용실이 눈에 띄어서 머리를 자르고 몇 신가 휴대폰을 봤더니 헉. 뭐지. 액정이 깜깜이다. 둘째 조카가 몇 번 집어던진 후로 -_- 화면이 깨져서 보이는 경우가 종종 있었지만 그냥 썼다. 귀찮아서. 그런데 이젠 완전히 맛이 갔나보다. 어쩔 수 없이 집앞에 있는 대리점엘 갔다. 얼마전 엄마것도 바꿔드렸는데 나도 같은 걸로 바꿀까 했더니 번호 안 바꾸면 쓸 수 있는 기종도 정말 몇 개 없고 오히려 더 비싸다는 거 -_- 생각해보니, 내가 이 번호에 집착하는 것도 사실 이해 안 가고 웃긴 일이란 맘이 들었다. 사실, 요즘 내가 하는 모든 것이 하찮고 웃기게 생각되는 자기비하에 사로잡혀있었다. 이것도 우울증의 증세겠지만. ㅠ_ㅠ 해서, 번호도 바꾸고 필요없다 생각했던 스마트폰으로 바꾸게 되었다는. 알람 맞추는 거 찾느라 힘들었다. -_-;
여기까지 하니까 다섯시쯤. 평소보다 말을 너무 많이 해서 머리도 띵하고 기운도 빠져있었는데 집으로 들어가는 길에 있는 카페가 눈에 띄었다. 앞에 보니깐 입간판이 서 있는데 하이네켄생맥주 들어왔다는!!! 나도 모르게 발길이 -_-
주문은 셀프였는데 가게에서 혼자 술 마시려니 나답지 않게 좀 부끄럽더라는. ㅠ_ㅠ 비틀비틀 걸어가서 사장님(예쁜 여자분+_+)께 쪼맨한 소리로 하이네켄 생맥주 주세요. 했더니 나에게 맞추어 역시 쪼맨한 목소리로 몇cc짜리 드릴까요? 속삭이신다. 차마 피처는 못 시키고 -_- 오백cc요. 했더니 나초랑 견과류 해서 서비스안주 한접시랑 맥주 한 잔을 가져다 주신다. "아주 시원할 거에요. " 라며 다정한 말씀도 잊지 않으신다.
송글송글 이슬이 맺힌 황금색 맥주 한 잔. 보는 순간 왠지 뭉클. 한 모금 마시니 시원하게 목을 넘어간다. 그리고 책을 읽었다. 예전에 사둔 김선주씨의 <이별에도 예의가 필요하다>. 첫 페이지를 넘기면서 내가 단순히 제목만 보고 고른 책이구나. 라는 걸 느꼈지만 -_-; 책은 좋았다. 아주.
한때 빛나던 사람들이다. 그 빛나던 순간까지도 추레한 것으로 만드는 것을 보면서 세월에 대한 겸손함이나 염치와 예의를 차리지 않는 아집을 본다. 봄이 지나 여름이 왔는데도 지난 봄을 붙잡고 봄은 어떠해야 한다고 말한다. 봄은 다시 오지만 다시 오는 봄은 과거의 그 봄은 아니고 새로운 봄이라는 것을 왜 모를까.
우리는 처음 사랑을 시작할 때 서먹서먹하지만 설레는 마음으로 상대에게 주춤주춤 다가간다. 그 아름다웠던 순간들, 인생에서 많지 않았던 그 뜨거운 사랑의 순간들을 잿빛으로 만들지 않으면서 우리는 이별을 맞아야 하고 고통도 받아들여야 한다. 그것이 모든 사랑했던 순간들에 대한 예의고 또한 이별의 예의다. (194P)
그리고 노트를 꺼냈다. 하고 싶은 말들. 말로 할 수 없었던 말들. 내 맘속에 꼬깃꼬깃 뭉쳐져 이젠 펴보기도 힘들었던 말들을 썼다. 나 역시 예의를 몰랐던 인간이었다는 걸 새삼, 새삼, 느꼈다. 몇 페이지를 쓰고 맥주 한 잔이 다 비워졌을 때쯤 참 신기하게도 불길한 검은 구름이 걷혀지는 것이 느껴졌다. 정말 신기했다. 그 느낌은.
노트를 덮고 맥주 한 잔을 더 청해서 책을 계속 읽었다. 내 '울' 기간이 끝났구나. 라는 걸 알았다. 특히 이번주에는 잠도 못 자고 먹지도 못해서 체중이 4킬로쯤 줄었다. 어제는 열시부터 오늘아침까지 푹 잤다. 아침에 밥도 먹고 일찍 출근하면서 커피숍에 들러 아이스커피도 테이크아웃 해 왔다. 내 우울증에는 하이네켄이 특효약이구나. 내가 다 마셔주겠어!!! -0-;;;;
이제는 '조' 기간이다.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