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부메의 여름 백귀야행(교고쿠도) 시리즈
쿄고쿠 나츠히코 지음 / 손안의책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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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김소연 씨가 번역한 <손 안의 책>의 문고판 시리즈 중에는 나와 "코드가 맞는" 글들이 많다. 유메마쿠라 바쿠의 <음양사> 시리즈를 사 모으다가 <우부메의 여름>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하루 만에 다 읽었는데, 후속작 <망량의 상자>도 읽어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전반적으로 만족스럽다.  일단 캐릭터 중에 사회부적응의 괴짜들이 많아서 좋고, 1950년대 도쿄라는 배경도 빈티가 나서 좋다. 어둡고 괴기스러운 분위기도 좋고, 추리소설 답게 상상을 뛰어넘는 결말도 좋고, 교고쿠도가 잘난척 늘어놓는 장광설도 좋다. 이 남자가 어려운 이야기로 세키구치를 당황하게 만드는 장면은 <음양사>의 아베노 세이메이와 미나모토노 히로마사의 대화를 연상시키는데, 중간에 그가 세이메이의 후손이라는 얘기가 나와서 무릎을 치며 웃었다. 이런 점 역시 "코드가 맞다."고 하는 거겠지.

일본에는 신도 많고 귀신과 요괴도 참 많은 것 같다. 한국에도 예전에는 많이 있지 않았을까? 공자님 모시고 하나님 모시느라 이런 미신들을 다 내다 버린 건지도 모른다. 한국 요괴들 가지고도 소설, 만화, 영화, 애니메이션 많이 만들 수 있었을 텐데 아까운 일이다. 요괴 이야기는 대체로 재미있는데 말이다. 이 소설, <우부메의 여름>에도 요괴 이야기가 잔뜩 나와서 정말 재미있었다. 더 재미있는 것은 이 요괴들에 대한 상당한 분량의 주석. 역자 쪽에서 공부를 많이 한 것 같다. 작품을 고르는 센스와 자연스러운 문장 감각도 좋지만, 구석구석까지 미치는 이런 꼼꼼한 배려가 너무 좋아서, 앞으로도 나는 이 출판사와 김소연이라는 번역가를 눈여겨 볼 계획이다.

별을 한 개 뺀 것은 가격 때문이다. 양장본이라는 게 보기는 좋지만,  가볍고 저렴한 문고본 쪽이 추리소설과는 더 어울리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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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식
히라노 게이치로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199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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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내 책꽂이에 꽂혀 있는 이 책에는 1999년이라는 서점 스탬프가 찍혀 있다. 이 책으로 작가가 아쿠타가와 상 받고 한창 떴을 때.  나는 대학교 4학년이었다. 무슨 생각을 하면서 읽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 걸 보면 그다지 감동받지는 못했나 보다. "우와, 이 작가 되게 똑똑해 보이는군. 멋있다!" 정도 생각했으려나.

그런데, 그로부터 6년 후, 알라딘에서 히라노의 새 책에 대한 글을 읽고, 별 생각 없이 다시 꺼내 든 이 책에 나는 흥분했다. 손에서 놓을 수가 없다거나 책장이 넘어가는 게 아쉽다거나 하는 것과는 조금 다르지만,  가슴이 두근두근했다. 쾌감으로 등줄기가 떨렸다.  마음 깊이에서부터 공감할 수가 있었다.

"나는 예술 지상주의자이다. 문학을 통해 성스러움을 실현하고자 한다."는 말이 단지 젊은 치기나 겉멋이 아님을 알았다. 소설 속의 화자인 니콜라 수사 또한 성스러움을 찾아 헤매는 인물이다. 성스러움, 다른 말로는 아름다움, 다른 말로는 지혜, 신, 또는 진리. 그것을 찾아 파리 대학을 떠나 피렌체로 향하던 열아홉의 열정적인 젊은이가 어느 피폐한 농촌 마을에서 만난 환상 또는 기적이 소설의 내용이다. 경건함과 열정, 비밀과 타락, 증오와 광신이 15세기 말의 기괴한 어둠 속에 소용돌이친다.

특히 마음이 끌리는 인물은 마을의 주임 사제 유스티노와 이단 심문관 자크이다. 일견 상반되어 보이지만 이 둘은 닮았다. 진리에 도달할 수 없다는 사실에 좌절한 인간, 일생을 바쳐 추구할 만한 것을 찾지 못하고 헤매는 인간. 자포자기하여 육체적 쾌락에 탐닉하는 것으로 영혼을 학대하거나, 아니면 맹목적인 증오로 영혼을 파괴하는 인간.

소설의 결말에서  숭고한 열망은 범용한 자들의 증오에 짓밟히고  기억마저도 왜곡되어 사라져간다. 그러나,  작가는 죽은 이의 저작을 공부하며 연금로에 불을 지피는 니콜라를 통해 희망을 남겨 둔다. 비 걷힌 하늘 저편에서 무지개를 발견하는 중년의 니콜라에게서, 나는 너무나 진지해서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작가 히라노 게이치로를 겹쳐 본다. 그리고, 부끄럽지만 나 자신을 겹쳐 본다. 스물 두 살 먹은 새파란 대학생이 쓴 짧은 소설을 이 나이가 되어서야 겨우 이해한 나. 그러나, 니콜라가 피에르를 따라가듯, 나도 히라노가 가는 길을 따라가 보고 싶다. 느리게, 그러나 착실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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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랑 뻔뻔한 오사카 유람기
사석원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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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을 바라보는 평범한 아빠가 평범한 엄마랑 초등학생 아이 둘을 데리고 일주일동안 여행을 간다. 평범한 관광 코스를 돌아 보는 평범한 여행자 답게 사진을 잔뜩 찍었다. 그리고 거기에 평범한 기행문을 덧붙였다.  아이들 이야기와 아이들 사진이 유난히 많은데(호텔방에서 파자마 입고 뒹굴거리는 사진까지 있다!), 특히 아빠랑 붕어빵인 딸아이에 대한 사랑이 팍팍 느껴졌다. 그야말로 보통의 아저씨라는 느낌. 두 시간만에 다 읽었는데, 감동적이지도 지루하지도 않았다. 초등학생 애들을 데리고 오사카에 가려는 부모라면 한 번쯤 읽어보는 것이 좋겠다.

이런 평범한 얘기가 어떻게 책으로까지 나올 수 있었는지가 궁금해서 알라딘에서 '사석원'을 쳐 보니 꽤 많은 책이 뜬다. 대부분은 삽화를 그린 동화책들. 그러고 보니 이 책에도 예쁜 그림들이 많았다.  명화는 못 되더라도 다정하고 느낌이 좋다. 그림책 외에 여행기를 두 권 냈는데,  대폿집 순례기는 반응이 좋고 쿠바 여행기는 엄청난 혹평을 받고 있었다. 그럴 만하다는 생각에 웃음이 나왔다.  이 작가, 좋게 말하면 소탈하고 나쁘게 말하면 저속하다. '아저씨' 수준이되 '작가' 수준은 아니다. 쿠바 수준은 아니고 대폿집 수준이다. '수준' 운운에 저자를 모욕하려는 의도는 없다. 대폿집이 상징하는 80년대스러운 풋풋함은 이 메마른 시대에는 인간적 매력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작가'가 될 수 없다.

고상한 척 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떠오르는 말을  마구 늘어놓기 전에 생각을 좀 하라는 얘기다. 이 책에는  자신의 말에 책임을 지기 위해 공부하고 고민한 흔적이 없다. 자신의 글을 읽어 주는 사람들에게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지 않는다는 느낌. 책의 제목처럼 명랑 뻔뻔하다.

솔직한 것도 좋다. 편견과 증오심에 사로잡히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도 좋다. 그러나,  김병종의 "화첩기행"을 읽어 본 사람이라면 이 "동양화를 곁들인 여행기"에 좋은 평가를 내리기는 힘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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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키호테
미겔 데 세르반테스 지음, 박철 옮김 / 시공사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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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근대 소설"이라는 영광스러운 타이틀은 거저 주어진 것이 아니다. 돈키호테와 종자 산초 판사의 일주일 남짓한 짧은 모험을 따라가며, 독자는 두 인물의 말과 행동을 통해 근대적 정신의 태동을 느낀다. 군중 속에 매몰되기를 거부하는 개인으로서의 자아가 탄생하는 과정을 본다.

합리적 이성과는 거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돈 키호테와 산초는 근대인의 소질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종교나 국가의 가르침도 세간의 상식도 그냥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자신만의 눈으로 비판하고 재해석하여 수용하고, 이들을 통해 성장해 간다.  돈 키호테의 해석이 기괴하고 우스꽝스럽기는 하지만 이 재해석 과정은 분명 인간 정신의 능동적 움직임을 보여 준다.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하는, 그리하여 시대의 상식과 불화하는 인간의 모습을 통해 독자는 존재의 본질적 고독을 깨닫는 동시에 400년의 시간을 넘어 연대감과 위로를 또한 느낄 수 있다.

문학사 속에서 차지하는 위치만으로도 한번은 읽어 볼만한 책이다.  게다가 읽기에 부담스럽지만도 않은 것이 스페인 시골의 아름다운 풍광과 신과 국왕을 사랑하며 느긋하게 살아가는 순박한 사람들의 모습이 마음을 푸근하게 해 준다.  그리고, 삽입된 다양한 일화 속에 등장하는 적극적이고 과감하며 생기 발랄한 히로인들이 또 미소를 머금게 해 준다. 마지막으로,  진지하게 번역하고 아름답게 잘 만든 책이라는 점에서 이 시공사판 완역판은 소장 가치 또한 충분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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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루다의 우편배달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4
안토니오 스카르메타 지음, 우석균 옮김 / 민음사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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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지도 않고 어렵지도 않다. 등장인물들은 친숙하고 서술은 산뜻하고 묘사는 감각적이고 표현은 유머러스하고, 욕설조차도 걸리는 데 없이 부드럽게 넘어간다." 우와~ 정말 글 잘 쓴다!" 라는 감탄이 절로 나오는 책이다. 이 정도면 선물용으로 삼아도 욕 들을 일 없겠다.

고등학교 때 지리 선생님이 뜬금없이 "칠레로 이민가려고 했었는데 포기했다."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는데, 그게 아옌데 정권의 탄생과 피노체트 쿠데타에 의한 붕괴와 관련 있는 얘기였나 생각했다. '민중' (평소 징그럽다고 느끼던 이 말이지만, 이 소설의 바닷가 사람들이라면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의 희망과 아픔, 그들을 보는 위대한 노시인의 사랑과 좌절, 그리고 "불타는 인내"가 아름다운 메타포와 더불어 가슴을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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