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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인 이야기 1~15권 양장본 세트 ㅣ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
시오노 나나미 지음, 김석희 옮김 / 한길사 / 2007년 2월
평점 :
품절
역사를 읽는 것은 무척 즐거운 경험이다. 과거의 모습에서 현재를 보는 것, 타인의 모습에서 나를 보는 것. 자기 중심적 인간인 나에게는 참을 수 없는 유혹이다. 유명한 <로마인 이야기>를 이제야 읽기 시작한 것은 방대한 분량에 겁을 먹었기 때문이지만, '일단 제일 재미있을 것 같은 시기로 딱 다섯 권만 읽자."하는 생각으로 골라온 2~6권은 생각보다 부담 없이 빨리빨리 읽혔다. 이 작가는 성실하고 친절할 뿐 아니라 이야기를 재미있게 하는 재능이 있다. 명불허전. 기대를 배반하지 않는 재미있는 책이었다.
읽기 전에 기대하지 못했던 즐거움은, 이 2천 년 전의 대제국의 모습에 자꾸만 현재의 아메리카 제국이 겹쳐 보인다는 것이다. 역사 시대 대부분을 중화 제국의 변방에서 보낸 자들의 후손으로, 현재 아메리카 제국의 변방에 살고 있는 나로서는 제국을 논하는 자리에서 미국을 무시하기는 어렵다. 이런 사실은 저자인 시오노 씨에게도 해당되는 일이고, 그것은 이 책이 가진 특별한 매력으로 연결된다.
"특히 나의 흥미를 끄는 것은 여기에는 승자와 패자의 구분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정의와 비정의의 구분은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전쟁이 범죄라고는 말하지 않는다. 만약 전쟁 범죄자에 대한 재판이라도 열렸다면, 한니발이 전범 제1호가 되었을 것이다. (중략) 로마가 카르타고와 맺은 강화는 엄격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보복이 아니었고, 하물며 정의가 비정의에 내리는 징벌은 전혀 아니었다. 인류가 결코 초탈하지 못하는 전쟁이라는 악업을 승자와 패자가 아니라 정의와 비정의로 구분하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일까. 그렇게 구분했다고 해서 전쟁이 소멸한 것도 아닌데."
포에니 전쟁에 대한 이러한 평가에서 아메리카 제국의 도쿄 재판에 대한 은근한 야유를 읽어내는 사람은 나뿐일까? 포에니 전쟁 이후 자영농이 몰락하고 부와 권력이 소수에게 독점되며 군사 대국화가 가속되는 로마는 1,2 차대전 이후의 미국을 연상시킨다. "부와 권력에 대한 탐욕"으로 끊임없이 침략 전쟁과 내정 간섭을 시도한다는, 폰투스 왕 미트라다테스의 비판은 오늘의 대제국 미국에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고, 율리우스 카이사르에게 끈질기게 저항하는서유럽 '야만인들'은 2천 년 전의 베트콩과 알 카에다처럼 보인다. 그리고, "아시아인들은 로마의 패권 체제 유지에 협력해야 한다, 그것은 평화를 위한 비용이다."라는 키케로의 주장은 그대로 한국과 일본에 군대의 주둔 비용을 요구하는 미국의 주장과 겹쳐지지 않는가?
시오노 씨에 대한 제국주의자라는 단정은 그가 이런 류의 주장을 반박하지 않기 때문이겠지만, 혼란 속의 자유냐 제국 지배하의 질서와 풍요로움이냐의 문제는 2천 년 전의 로마 속주에서나 21세기의 한국에서나 쉽지 않은 문제인만큼, 좀 가혹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율리우스 카이사르에 대한 저자의 심하다 싶은 찬양, 특히 카이사르를 암살한 공화주의자들에 대한 몰이해에 대해서만은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일본이 전쟁에 패해 아메리카 제국의 모범 속주가 된 것은 시오노 씨가 8세 때, 군대조차 인정하지 않는 평화로운 나라에서 고생 모르고 자란 양가집 아가씨에게 '군사 독재'에 대한 증오란 이해 불가능한 개념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