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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정원 - 하
황석영 지음 / 창비 / 2000년 5월
평점 :
이 책을 읽기 얼마 전에 신영복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읽었다. 20년의 고통조차도 꺾지 못한 지성, 고통을 겪으며 오히려 향기로워진 인격이 감동적이었다. 그 때 받았던 좋은 인상 덕분에 감옥에서 풀려나는 중년 남자 오현우와의 첫만남은 부드럽고 우호적인 것이었다. 학생 시절 운동권이라면 덮어놓고 싫어했던 나에게도 이제는 마음의 여유가 생긴 것이다.
소설은 오현우의 행적을 따라 감옥에서 서울로, 다시 전라도 시골의 갈뫼 마을로 이동한다. 그 곳에서 오현우는 사랑했던 여자 한윤희의 흔적을 만나고, 오현우의 기억과 한윤희의 기억이 교차하는 속에서 80년대의 꿈과 사랑, 아픔과 절망이 숨가쁘게 그려진다. <삼포 가는 길>과 <아우를 위하여>로 겨우 맛만 보았던 이 작가는 예상대로 대단한 이야기꾼이어서,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두 권을 후딱 읽어 치웠다.
박종철 씨가 살해당하고 전국이 최루탄 냄새에 찌들었던 무렵 어머니는 우리 형제들에게 말조심할 것을 거듭 강조했다.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한테 물고문 과정을 생생히 묘사해준 것은 조금 오버가 아니었나 싶지만, 그 위협 덕분에 나는 데모 한 번 나가보지 않고 대학을 졸업했다. 내가 운동권들이 하는 이야기에 조금씩 관심을 가지게 된 건 20대 중반을 넘긴 이후였다. 나에게는 없었던, 아니 가지는 것조차도 두려워 외면해 버렸던 열정과 자존심을 가지고 불의에 항거하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 없이 가 버린 사람들.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의 뒤에 그들의 희생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믿게 되었다.
이 소설은 그런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다소 통속적인 부분도 있고, 진부한 부분도 있지만, 이런 이야기가 교육청 추천 도서 목록에 올라 중고생들에게 읽혀진다는 것은 분명 희망적인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