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 2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7
토마스 만 지음, 홍성광 옮김 / 민음사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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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6-355

하루는 이곳 정자의 누런 갈대로 만든 흔들 의자에 앉아 꼬박 네 시간이나 어떤 책을 읽으면서 점점 더 고조되는 감동에 사로잡혔다. 그가 그 책을 구하려고 하기도 했지만 그것이 그의 수중에 들어온 경위에는 다분히 우연도 개재되어 있었다. 아침 간식을 든 후 흡연실에서 담배를 입에 물고 있다가 그 책을 발견했다. 그것은 책장 외진 구석의 으리으리한 장정 뒤에 감춰져 있었다. 그가 몇 년 전 에 책방에서 저렴한 가격으로 아무 생각 없이 구입한 사실이 생각났다. 누르스름한 얇은 종이로 만들어진 꽤 두툼한 그 저서는 인쇄나 제본이 조잡했다. 그것은 어느 유명한 형이상학 체계의 제2부였다. 그 책을 가지고 정원에 온 그는 이제 완전히 거기에 몰두해서 책갈피를 한 장 한 장 넘겨갔다.

그는 무어라고 표현할 수 없는 커다란 만족감에 사로잡혔다. 그는 훨씬 우월한 위치에 있는 정신이 생, 그토록 강력하고 잔혹하며 조소적인 그 생을 제압하고 지배해서 유죄 판결을 내리는 것을 보고 비할 데 없는 만족감을 느꼈다 그것은 생의 한기와 가혹함에 직면하고 늘 치욕에 휩싸여 양심의 가책을 받으며 자기의 고민을 은폐해 오다가, 경사스럽게도 갑자기 위대한 현자의 도움으로 고뇌하는 것에 대한 원칙적인 정당성을 획득한 자의 만족감이었다. 생각할 수 있는 온갖 세계들 중에서 최상의 세계라는 이 세계를 가리켜, 주인 되는 유희 정신은 조소적으로 그것이 생각할 수 있는 최악의 세계임을 입증했다는 것이다.

그는 모든 것을 이해할 수는 없었다. 그에게는 원칙과 전제가 불분명했다. 그러한 독서에 익숙지 않은 그의 정신은 어떤 사고의 경로는 따라갈 수 없었다. 하지만 바로 광명과 암흑이 교대로 나타나고 둔감한 몰이해, 막연한 예감 및 돌연한 형안이 교대로 나타남으로써 그는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그래서 그는 책에서 눈을 떼거나 의자에 앉은 위치를 바꾸지도 않고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책에 빠져들었다.

그는 처음에는 어떤 페이지는 읽지도 않고 성급히 앞으로 나아가면서 무의식적으로 요점, 본질적으로 중요한 지점만을 찾아서 읽었다. 즉, 중요한 절(節)이나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절만을 우선적으로 펼쳐들었다. 그러고 나서야 분량이 많은 장(章)에 들어가 처음부터 끝까지 철자 하나 빼놓지 않고 통독했다. 입술을 꼭 다물고 눈썹을 치켜올린 채 생의 어떠한 자극에도 꿈쩍하지 않을 정도로 죽은 사람처럼 완벽하게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이 장의 제목은 ‘죽음과 우리 존재 자체의 불멸성과 그것의 관계에 대하여’였다.

네시 정각에 하녀가 정원으로 와서 식사하라고 알렸을 때는 몇 줄 남기지 않고 거의 다 읽은 상태였다. 그는 머리를 끄덕이고 남은 문장을 다 읽고는 책을 덮으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는 자신의 존재 전체가 엄청나게 확대된 느낌과 심원하고 묵직하게 취한 상태에 충만되어 있는 느낌을 받았다. 그와 동시에 그의 감각은 몽롱해져, 무언가 말할 수 없이 신기하고 매혹적인 것과 축복을 가져다주는 것에 완전히 도취되어 있음을 느꼈다. 그것은 희망에 들뜬 첫사랑에의 동경을 상기시켜 주는 것과 같은 감정이었다. 하지만 그가 떨리는 차가운 손으로 그 책을 정원에 있는 책상 서랍에 보관했을 때 이상한 압박감과 불안한 긴장감에 사로잡힌 그의 뜨끈뜨끈한 머리는 마치 그 속에서 무언가가 터져버리기라도 할 듯이 논리적인 사고를 할 능력을 상실하고 있었다.

이것은 무엇이었던가? 그는 집으로 들어가 주계단을 오르고 식당의 가족 옆에 앉으며 자문했다.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내가 무슨 소리를 들었는가? 도시의 시의원이자 요한 부덴브로크 곡물 회사 대표인 나, 토마스 부덴브로크한테 무슨 말이 들려왔던가? 그것이 나에게 온 메시지였던가? 내가 그걸 감내할 수 있을까? 난 그것이 무엇이었는지 모르겠어. 내가 아는 사실이란 다만 나같이 빈약한 두뇌의 소유자한테는 그것이 너무 과하다는 점뿐이야.

하루 종일 그는 이렇게 취한 듯 묵직하고 멍하게 압도된 상태로 보냈다. 그리고 밤이 왔다. 묵직한 머리를 더 오래 어깨 위에 지탱하고 잇을 수 없어서 그는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그는 세 시간 동안 깊은 잠을 잤다. 지금까지 그 어느 때보다도 더 깊이 잠을 잤다. 그런 다음 그는 가슴에 사랑이 움트는 사람이 혼자 깰 때 그러듯이 화들짝 놀라면서 돌연 잠에서 깨어났다.

그는 자신이 커다란 침실에 혼자 있다는 것을 알았다. 왜냐하면 게르다는 이제 이다 융만의 방에서 잠을 자기 때문이었다. 이다는 최근에 어린 요한과 좀더 가까이 있고 싶어서 세 개의 발코니 방들 중 하나로 옮겨갔다. 두 개의 높은 창의 커튼이 꼭 닫혀 있었기 때문에 주위는 칠흑 같은 어둠이 지배하고 있었다. 깊은 정적과 부드럽게 내리누르는 무더위 속에서 그는 등을 바닥에 대고 누워 어둠 속을 쳐다보았다.

그런데 갑자기 암흑이 그의 면전에서 찢기고 한밤의 부드러운 바람이 딱 갈라지며 자신이 측량할 수 없을 정도로 깊고 멀리 바라볼 수 있는 천리안을 지닌 것처럼 생각되었다. "나느 살 것이다!" 토마스 부덴브로크는 큰 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그럴 때 자신의 가슴이 내적인 흐느낌으로 부들부들 떨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이것은 내가 살 것이라는 징표다! 그것이 살아 있을 거니까. 그리고 그것이 내가 아니라는 것은 다만 기만일 뿐이다. 죽음이 정정해 주게 될 오류일 따름이다. 그것이야, 그것이야! 무엇 때문에? 그리고 이런 질문을 하는 가운데 밤은 그의 눈앞에서 문을 탕 닫아버렸다. 그는 다시는 그 이상의 것을 조금도 보거나 알거나 이해하지 못했다. 그는 자신을 더 깊숙이 베개 속에 파묻었다. 그에게 방금 모습을 드러낸 그 한줌의 진리로 인해 그는 완전히 정신이 어질어질해지고 몸이 녹초가 되었다.

그리고 그는 조용히 누워 또 한번 마음의 눈이 떠지는 순간이 오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싶은 유혹을 느끼면서 열렬히 기다렸다. 다시 그런 순간이 왔다. 두 손을 맞잡고 감히 꼼짝할 엄두도 내지 못한 채 가만히 누워 들여다보았다. (중략)

"난 살 것이다!" 그는 머리를 베개에 파묻고 나지막하게 속삭이며 울었다. 다음 순간에는 무엇 때문에 우는지 더 이상 알 수 없었다. 그의 머리는 활동을 중지하고 있었고 그의 비전은 사그라들었다. 갑자기 그의 내부에는 다시 침묵 속의 암흑만 존재할 뿐이었다. 하지만 다시 그 순간이 되돌아올 것이다! 라고 그는 스스로에게 확약했다. 내가 그것을 소유하지 못했던가? 마치 마취된 듯 잠에 곯아떨어지고 있다고 느끼면서 그는 이 모든 것을 낳은 그 세계관 전부를 철두철미하게 영구히 자신의 것으로 할 때까지 이 엄청난 행복을 결코 놓치지 않고 온 힘을 모아 배우고 읽고 공부해야겠다고 맹세했다.

하지만 그겋게 될 수 없었다. 다음날 아침에 깨어나는 순간, 이미 그는 어제의 극단적인 정신 상태에 대해 다소 부끄러운 감정을 느꼈고 이런 아름다운 계획이 실행될 수 없을 것 같다는 예감을 느꼈다.

그는 늦게 일어났다. 그는 즉시 시의회의 토론에 참석해야 했다. 중소 무역 도시의 박공 집에 늘어선 좁은 거리에서 사업 활동을 하고 공적 시민적 생활을 하느라 그의 정신과 힘은 또 한번 소모되었다. 늘 그런 불가사의한 독서를 다시 하리라 마음먹고서 그날 밤의 체험이 정말 지속적으로 유효할지의 여부를 자문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가 죽음의 길에 들어선다 하더라도 그 체험이 실제적으로 뜻을 궆히지 않을지에 대해 자문하기 시작했다. 그의 시민적 본능은 그에 반기를 들고 일어났다. 그의 허영심도 들고 일어섰다. 그것은 불가사의하고 우스꽝스러운 역할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그는 진실로 이러한 것들을 보았던가? 그것들이 요한 부덴브로크 상사의 대표인 토마스 부덴브로크 시의원 자신에게 어울리는 것이었는가?

그는 수많은 보물을 숨기고 있었던 그 이상한 책에 다시 시선을 던지지 못했다. 하물며 그 위대한 저서의 이 권이나 삼 권을 구입할 생각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갈수록 더 꼼꼼하고 신경질적으로 외모를 관리하는 데 하루 일과의 대부분을 허비했다. 오만 가지의 하찮고 일상적인 자질구레한 일에 시달리느라 의지가 너무 쇠약해져 시간을 합리적이고도 효과 있게 배분하지 못했다. 그는 그런 잡사를 정리하고 처리하느라 골머리를 앓았던 것이다 그리고 기억할 만한 가치가 있는 그날 오후의 사건이 있고 나서 대략 이주일 이 지난 후 그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하녀더러 정원 책상의 서랍에 무질서하게 나뒹굴고 있는 어떤 책을 당장 위로 갖고 올라가서 책장에 갖다놓으라고 지시하게 되었다. 높고 궁극적인 진리를 갈망하여 손을 뻗었던 토마스 부덴브로크는 결국 자신이 어린 시절에 믿고 사용한 개념들이나 비유들로 힘없이 되돌아왔다.

485-486



"하노, 어린 하노."

페르마네더 부인은 계속 말을 이었다. 솜털이 나고 생기를 잃은 그녀의 뺨에 눈물이 흘러내렸다.

"톰, 아버지, 할아버지 그리고 다른 모든 사람들! 그들은 어디 있단 말인가? 다시는 그들을 만날 수 없어. 아, 이다지도 가슴 아프고 슬프다니!"

"다시 만날 날이 있겠지."

프리데리케 부덴브로크가 말했다. 그러면서 그녀는 두 손을 무릎에 포개고 눈을 내리깔며 코는 허공을 향했다.

"그래, 그렇게들 말하지. 아, 어떻게 해도 위로가 안 되는 순간이 있어, 프리데리케. 하느님이 나를 벌하실지도 몰라! 그런데 한번 의심하기 시작하면 정의며 자비며 모든 것을 의심하게 돼. 인생은 우리 속에 있는 많은 것을 깨뜨리고 많은 믿음들을 파괴했어. 재회...... 그렇게 되기만 한다면......."

그때 세세미 바이히브로트가 탁자 옆에서 일어섰다. 그녀가 할 수 있는 한 최고로 키를 높였다. 그녀는 발끝을 들고 목을 쭉 뻗으며 탁자를 두드렸다. 그러자 그녀 머리 위의 두건이 마구떨렸다.

"그렇게 된다니까!"

그녀는 있는 힘을 다해 큰소리로 말하며 모두를 도전적으로 훑어보았다.

그녀는 거기에 서 있었다. 그녀는 평생 동안 이성의 공격에 맞서 싸운 투쟁에서 멋진 승리를 거두었다. 등이 굽고 작은 그녀는 확신에 차서 부르르 떨었다. 그녀는 영감을 받고 벌하는 조그만 예언자였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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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덴브로크 일가가 당면한 경제적 실패는 몰락의 이유가 아니라 몰락의 결과이다. 몰락의 원인은 여러 세대가 지나는 가운데 성찰적 경향, 즉 비시민적 경향이 점증한 때문이라 할 수 있다.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은 자신에 대해 더 많이 알면 알수록 그들은 그만큼 더 병약해진다. 즉, 네 세대가 흘러가는 가운데 헤겔의 역사 철학 체계인 예술, 종교, 철학 순서로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순진성, 종교, 철학, 예술이라는 쇼펜하우어의 체계가 실현되고 있다. 이와 같은 구조적 특징은 각 인물을 통해서도 관찰될 수 있다. (홍성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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