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인 교사 윌리엄 길모어, 서울을 걷다 1894 - 14개의 주제로 보는 1894년의 조선 그들이 본 우리 12
윌리엄 길모어 지음, 이복기 옮김 / 살림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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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2

한국이 세계에 문을 열었을 때, 많은 사람들은 이곳 사람들의 행동이 야만적이고 거칠며 험악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한 사람들은 한국인들이 예상과 다르고, 일본과 인도를 포함한 동양의 어느 나라에서도 외국인들이 이 나라에서처럼 진심과 친절함으로 환영받고, 매우 훌륭한 대우를 받지는 못하리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분명히 깜짝 놀랄 것이다! 어느 방문객이 수도의 북적이는 거리를 걷게 된다고 해도, 우리나라 도시의 대로에서처럼 전력을 다해 사람들을 밀치며 걷거나 가장자리로 걸을 필요가 없다. 또 거의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외국인들이 다가오는 모습을 보면 비켜서서 길을 양보하는데, 그는 이런 모습을 보고 놀랄 것이다. 이런 행동은 공포나 경멸 때문이 아니다. 이런 행동은 한국 사람들에게는 예의의 표시이다. 한국 사람들은 외국인을 자기 나라에 온 손님으로 생각하고 손님을 마땅히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왕이 공시적인 행차를 할 때면, 그것을 구경하려고 군중이 모여들어 여섯이나 여덟 겹의 줄이 늘어선다. 그럴 때에도 "외국인이 있다!" 라는 소리가 들리면 그 운 좋은 사람을 위해 통로가 생기고, 그 사람은 아무런 불평 소리를 듣지 않고 군중을 통과해 맨 앞자리까지 걸어 나가게 된다.

15-16
발랄한 상상력을 소유한 사람이나 한국이 강도짓이나 사업을 통해 재산을 모으고자 하는 사람들이 방문할 만한 나라라고 생각할 것이다. 한국에 가는 사람은 자원이 전혀 없는 나라를 보게 되리라고 예상해야 한다. 이곳 사람들은 게으르고 열정이 없어 보인다. 도시와 마을들은 비위생적이고 가정은 우호적이지 않아 보인다. 여행자보다는 길게 체류하는 사람이, 매력적인 모습이 겉으로 드러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일본을 지나칠 때마다 감각을 매혹하는 것들을 보게 된다. 그곳에는 흥미로운 얼굴, 아름다운 복장, 깔끔한 집, 정성스럽게 짓는 농업, 희한한 나무, 활기, 기지와 우아함이 넘쳐 난다. 또한 일본 사람들의 천성적인 상냥함이 이 모든 것들에 또 하나의 매력을 추가한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사람들의 얼굴이 멍해 보이고, 복장은 단조로우며, 집은 가난하고 장식이 없고, 농업은 등한시되고 있으며, 조경은 귀족들의 무덤에 조악하게 시도된 경우를 제외하면 아예 신경 쓸 대상도 아닌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사람들은 멍청해 보이고, 재미가 없으며, 입을 헤버린 채로 낯선 광경을 바라보고, 때때로 타고난 생각마저도 없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 명백하게 여행자를 위한 나라가 아니다.

19-20
민중은 관리의 선택에 아무런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정부의 조치에 직접적인 방식으로 대응할 수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주민 대중이 원하지 않는 조치가 내려지면 백성들은 대중 저항이라고 부를 만한 행동을 취하기도 한다. 그것은 처음에는 눈에 띄지 않는 소란의 형태로 나타난다. 그러나 그 정도가 강해지면 백성들이 생업을 제쳐두고 대중 집회를 열게 되고, 그 소요는 원성이 왕실에 닿을 때까지 지속된다. 내가 한국에 체류하는 동안 이런 현상이 몇 번 일어났다. 내가 알게 된 바로는 이런 대중 저항은 정당한 경우에 정책의 변화를 이끌어 낼 정도로 효과적이다.
만일 소요가 거짓 소문으로 야기되었거나 선동자들이 거짓 정보를 유포하여 오해가 확대되었을 경우, 보통은 수도의 커다란 광장에 포고문을 붙여서 오해를 바로잡고 백성들이 생업으로 복귀하도록 권면하는 절차를 밟는다. 하지만 종종 벌어지는 것처럼, 이것마저 효과가 없을 경우에는 다른 어조로 작성된 두 번째 포고문이 붙는다. 첫 번째는 온화하고 아버지 같은 어조다. 두 번째는 더 엄격하며 심각한 인상을 전달한다. 대개는 이 조치가 효과를 내도록 하루이틀 여유를 둔다. 하지만 소요가 잦아들지 않은 경우에는 군대가 출동하여 거리를 순찰하고 안정을 훼방하는 사람들을 붙잡아 처벌한다. 이런 방식으로 문제는 해결된다. 이처럼 백성들은 자신들의 바람을 알리고 자신들의 힘을 조정의 심장부에서도 느끼도록 하는 방법을 가지고 있다.

21-23
내가 이 나라에 있을 때 우리 집 요리사는 꽤 부자가 되었다. 그 요리사는 집 두 채를 구입했고 약간의 현금도 갖고 있었다. 그는 나에게 계속해서 외국인들 밑에서 일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유를 묻자, 만일 외국인에게 고용되지 않았다면 관료들이 바로 현금 3만이나 4만 냥을 빌리려고 찾아왔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 돈은 약 5파운드다. 돈은 당연히 돌려받지 못하는데, 그의 재산에 매긴 세금 명목이기 때문이다. 외국인들에게 고용되어 있는 한, 그는 조약 규정에 따라 외국 영사 외에는 구속을 집행할 수 없는 대상이 되기 때문에, 하급 관리의 강제 징수에 안전했다. 이런 식의 강제 징수가 다반사라는 것을 나는 확실히 알게 되었다. 누군가 현금을 꽤 모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관리에게 대출 요구를 받게 된다. 만일 이 요구를 거부하면, 그 사람은 날조된 죄목으로 감옥에 갇힌다. 이런 방식으로 만들어진 죄인은 결국 요구를 들어주거나, 고집스럽게 거절하여 관리들이 자신들의 안전을 염려하는 상황이 되거나, 친척이 그 요구를 대신 들어주거나, 절충이 이루어질 때까지 매일 아침 매를 맞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관리들이 돈을 벌어들이는 유일한 방법은 아니다. 개인은 자신의 빚에 대한 책임만 있는 것이 아니라 친척의 빚까지 책임져야 한다. 좀도둑 같은 관리들은 종종 이런 상황을 이용하여 돈 가진 가족의 일원을 잡아들일 수 없는 경우에 사촌이나 형제를 구속하여 돈을 요구한다. 그 불쌍한 사람이 자신은 돈이 없어서 지불하지 못한다고 호소하면, 관리들은 냉담하게 대꾸한다. "우리도 알지. 하지만 자네 사촌은 돈을 넉넉히 갖고 있잖아. 사촌에게 벌금을 내 달라고 하지 그래." 가족 관계가 아주 긴밀하기 때문에 이 방법은 대체로 효과를 발휘한다.
여행자가 한국인이 가난하고 무례하다고 말하는 경우가 있는데, 한국인들의 성품이 본래 그렇다고 당연하게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백성들이 노동을 하고 싶게 만드는 유인책이 없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한국인들의 게으름은 본성 때문이 아니다. 자신들의 노고의 열매를 생존에 필요한 최소치만을 빼놓고는 만족을 모르는 부패한 관리들에게 빼앗기게 될 것이고, 자신들은 그들에게 대항하지 못할 정도로 무기력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상위 권력에 호소하는 것은 아주 어렵다. 이미 말한 것처럼 관리들은 자신의 동료에 대한 불평을 듣기 싫어하기 때문이다. 왕이 자신의 신하들이 행한 부정에 대해서 듣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이 외에도, 관리들 사이에는 왕이 유쾌하지 못한 소식을 듣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는 관습이 존재한다. 그래서 가능하면 그런 소식이 왕에게 도달하지 못하도록 막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다른 국적을 가진 사람에게 잘못이 행해졌다면, 그 행위는 대사관이나 영사관과 같은 통로를 통해 왕의 귀에 전달되고, 처벌 또한 신속하고 확실하다.
위에서 제시된 방식 외에도 관리들이 자신들의 권력을 남용하는 방식이 있다. 관직에 연고자를 등용하는 예가 아주 많은 것이다. 고위 관리의 아들들은 예외 없이 성인이 되기 전에 높은 관직에 도달한다.
정부 운영에 참여할 학자를 선발하는 시험이 시행되지만, 이런 학자들은 대개 관리의 자녀들 중에서 나온다. 뇌물을 받은 시험관들은 뇌물 공여자의 답안지를 쉽게 찾아서 자랑스럽게 왕에게 보임으로써 높은 점수를 받게 만든다.

30-31
성벽 안으로 들어가서도 중세적 인상이 사라지지 않는다. 방문자는 서울 안에서 넓은 도로를 겨우 3개밖에 찾아볼 수 없다. 이 길 가운데 하나가 시내를 동서로 가로질러 동대문에서 끝난다. 다른 거리들은 이 길에서 직각으로 뻗어 하나는 궁궐 대문을, 다른 하나는 남대문을 향한다. 거리들 중에서 궁궐로 향하는 길만 깨끗해서 길의 폭 전체가 항상 드러나 있다. 다른 거리는 행상과 가게들이 늘어서 있어서 소달구지가 지나갈 정도의 좁은 길만 남아 있다.
다른 길은 모두 좁고 구불구불하여 많은 경우에 도보로 걷는 사람들이 겨우 밀치고 지나갈 정도다. 자세히 조사해 본 결과, 길은 원래 그렇게 비좁게 나 있지는 않았다. 길 양편에 있는 집 주인들이 점차로 길을 잠식하여 결국 공공도로가 거의 막힐 정도가 된 것이다. 길은 비좁고 지붕의 초가와 기와들이 튀어나와 있어서, 말을 탄 사람은 말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머리를 굽히고 안장 위에서 이리저리 몸을 흔들면서 조심스럽게 지나가야 한다.

72
한 영국인이 자신이 본 가장 더러운 사람은 깨끗한 한국이라 한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한국 방문객이라면 대체로 그 말에 동의할 것이다. 한국인들을 위해 변명을 하자면, 그들이 입는 흰 여름옷은 아주 쉽게 더러워지고, 두껍게 누빈 겨울옷은 빨기가 힘들다는 말을 해야겠다.

79-81
한국인들은 유희를 좋아한다. 아직 잘 서지도 못하는 작은 어린아이부터 머리카락이 센 내무장관까지 모두 유희를 좋아하고, 유쾌하게 자기 몫을 한다. 도시의 거리나 시골길을 걷다 보면 우리 나라에서처럼 다양한 놀이를 보게 될 것이다. 각 놀이에는 알맞은 계절이 있다.
가장 대중적인 오락은 연날리기이다. (중략) 연싸움을 구경하려고 가게 점원은 종종 손님 접대를 먼추고 판매 손실을 감수하기도 하지만, 대체로 다른 사람들처럼 손님도 그 놀이를 보고 싶어한다. 이 접전에 관심이 아주 커서, 때때로 1000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모여서 숨이 멎는 흥분 속에서 지켜본다. 구경꾼들이 얼마나 열중하고 있는지는 한 경쟁자가 득점하거나 경기를 이길 때 쏟아지는 격려와 실망의 외침소리로 나타난다.
겨울과 초봄에 선호하는 오락은 줄넘기와 널뛰기이다. 동전 던지기도 젊은이들과 노인들 사이에 유행하는 놀이이다. 동전 던지기 기술의 자웅 겨루기에 참가한, 자기 동네에서는 최고인 소년들 앞에 작은 고리가 쌓여 있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소년들이 거리에서 팽이를 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가장 일상적인 한국어 단어들 중 하나가 구경이다. 사람들은 장관(壯觀)을 무척 좋아한다. 그래서 왕과 왕자가 소풍, 참배, 또는 다른 목적으로 궁궐을 나서는 날은 휴일이 된다. 이 날은 과시를 위한 기회가 되고 백성들은 그 광경을 보려고 모여든다.

110-112
군사력 강화를 향해서도 많은 시도가 있었다. 한국산 화기는 현대 서양 무기와 비교할 때, 아직까지는 성능이 매우 떨어진다. 몇 개 대대는 후장총으로 무장했고, 연발총으로 무장한 대대도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왕의 행렬에서 적잖이 흥미로운 광경은 나란히 행진하는 중대 가운데 어떤 중대는 오래된 수발총이나 쏘시개로 발화시키는 화승총을 지니고 있고, 다른 중대는 후발총에 기마 총검을 지니공 ᅟᅵᆻ는 점이다.) 이 무기와 더불어 개틀링 총 몇 점도 구입하려 자주 훈련하고 있는데, 왕이 그 소리를 듣는 것을 특히 좋아하기 때문이다. 병사들의 제복은 대체로 화려하고, 다소 불편한 형태에서 서양 군대 제복을 본뜬 것으로 보이는 형태로 변했다. 그러나 재료가 염색한 무명으로서 색이 제멋대로 바랜 데다 천을 아주 특이하게 마름질해서 만들었기 때문에, 행진하는 중대의 모습은 멋지다기보다는 기묘해 보인다.
유럽식 군대를 본뜨려 한 이러한 시도는 알겠지만, 누구도 이 시도가 성공적이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1888년에 미국 장교 3명과 일본 장교 1명을 초청해서 사관생도를 교육하고 확대하여 수도에 배치된 4000여 명의 병사들을 훈련시키려고 했다. 외국 장교들이 도착하여 업무를 수행하려 하였지만, 방해와 괴롭힘 때문에 아무것도 이루지를 못했다. 더불어서 봉급이 몇 달 동안 준비되지 않았으니 이 시도는 어느 모로 보나 명백한 실패였다고 하겠다. 교육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고, 제복을 교체하는 데에 돈을 지출했으며, 이 장교들을 고용해서 얻은 실제적인 이익은 거의 없었다. 여기에 화약은 전혀 만들지 않는 화약 공장을 설립하는 데 돈을 쓰고 만 실책도 범했다.
현재 한국의 위치는 특수하게도 아주 강한 두 나라인 일본과 중국 사이에 끼어 있다. 이런 이유로 한국은 침공을 당했을 때 적어도 저항의 몸짓이라도 보일 수 있도록, 아주 강한 군대나 단순히 경찰 업무를 담당할 군대라도 필요하다. 그러나 한국이 할 수 있는 한 가장 큰 규모의 군대를 징집하더라도, 성공적으로 전쟁을 수행하지 못할 것이다. 가능한 전투력을 모두 무장시키고 무기를 지닐 수 있는 모든 남자들을 징집한다고 해도, 한국은 일본과 중국의 군사력에 성공적으로 맞서지 못할 것이다. 현재 한국 남성들은 훈련되지 않았고 자원은 미개발 상태이며 무기도 없어서, 노련한 병사들로 구성된 연대가 국토를 가로질러 앞에 놓인 모든 것을 약탈해도 군사적 대응을 할 수 없다. 수도를 향한 길목의 관문들을 강화하는 조치나 토종 화기를 현대식 총으로 교체하려는 시도를 행한 적도 없다. 정부는 아직 너무 가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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