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시 2 - 석양에 빛나는 감
다카무라 가오루 지음, 장세연 옮김 / 손안의책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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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추리소설을 읽을 때 범죄의 트릭보다도 인간의 문제가 더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범죄에 희생되는 인간, 범죄를 저지르는 인간, 그리고 범죄자를 쫓는 인간.

다카무라 카오루의 <조시(照柿)>는 그러한 인간의 문제를 전면에 내세운 작품이다. 네 개의 죽음(자신의 집에서 목이 졸려 살해된 호스티스의 죽음, 전차 선로에 뛰어들어 자살한 중국인 노동자의 죽음, 그리고 후반부에 추가되는 두 건의 매우 극적인 죽음들)의 수수께끼를 푸는 내용이 주된 흐름으로 존재하기는 하지만, 범죄의 트릭을 파헤치는 과정 이상으로 그 과정을 밟는 인간의 심리가 독자를 사로잡는다.

 

 

전작 <마크스의 산>에서 ‘경찰관 직무집행법이 옷을 입고 걸어다니는 것 같’다고 묘사되었던 고다(合田雄一郞) 형사는 <조시>에서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며 초조와 번민 속에서 타락해간다. 미궁에 빠진 살인사건의 진상을 파헤치기 위해 폭력단 관계자와 어울리고, 심증은 있으나 물증은 없는 피의자를 폭언으로 위협하고, 심지어는 개인정보 부정조회와 협박이라는 범죄에까지 다가간다. 그런 그를 걱정하며 머리를 좀 식히라는 손위처남 가노(加納祐介) 검사에게 고다가 하는 “머리를 식히고 있다간, 하나 잃고 또 하나 잃고, 결국 내가 설 장소도 없어져. 하나를 잃을 때마다 확실히 뭔가가 줄어드는 게 느껴져. 조금 억지스럽든 위법이든, 범인을 검거해야만 겨우 어딘가에 서 있을 수 있어.(1권 419쪽)” 라는 말은 냉혹하고 불합리한 조직사회에서 하루하루의 실적에 쫓기며 정신적, 육체적으로 황폐해져가는 한 고독한 인간의 맨얼굴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그런 고다와 대칭적인 위치에서 동시에 파멸의 길로 굴러 떨어지는 인간은 작품의 또 다른 주인공인 노다(野田達夫)이다. 고등학교 졸업 후 취업한 공장의 생산라인에서 17년, 자신 안에 타오르던 예술가의 기질과 그것에 동반하는 격렬한 감정과 충동을 억누르고 저비용 고효율을 외치는 공장 시스템의 일개 부품으로 쉴 사이 없이 일하며 살아온 중년 남자의 인생이 돌연 엉망진창으로 망가져가는 숨가쁜 과정은 처절하고 극적이며 또한 매우 흥미진진하기도 하다.

 

 

두 주인공의 심리 이상으로 흥미를 더하는 것은 작품의 대칭적 구조가 작가 특유의 ‘관계에 대한 천착’과 절묘하게 얽혀드는 양상이다. 전작에서부터 미묘한 긴장감을 자아내던 가노-고다의 형제 관계는 노다-고다라는 좀더 근원적인 형제 관계와 대칭을 이루면서 일보 전진한다. 고다와 전처 기요코(加納貴代子)와의 관계 또한 미호코(佐野美保子)라는 여성의 등장으로 인해 새롭게 반추되고 재해석된다. 여기에 호스티스 살해 사건의 두 사람의 용의자를 향한 두 개의 수사 노선의 대칭성이라든지 노면전차와 열처리공장의 노(爐)와의 대칭성이라든지 노다가 관계하는 두 여자 사이의 대칭성이라든지에서 유사한 구조들을 발견하는 것은 이 소설을 읽는 또다른 즐거움이다.

 

 

복잡한 인물들과 관계들, 사건들을 아우르는 것은 하나의 이미지인데, 그것은 8월의 염천 아래서 눈꺼풀 안쪽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 타오르는 붉은색으로 표현된다. 석양에 반사된 감의 빛깔이라는 “테리가키(照)". 노다와 고다 두 사람의 기억 깊숙한 곳에, 한편으로는 유년의 느릿한 시간과, 한편으로는 전차 선로에서 자살한 여자의 육체의 파편과 얽혀 침잠해 있다가 삶이 한계에 부딪쳤다는 인식과 함께 다시 부상한 이 특별한 붉은색은 책을 덮은 후에도 독자의 뇌리에 오래 남아 살아가는 것의 막막함과 부서지는 것의 처절함을 떠올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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