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스의 산 2
다카무라 가오루 지음, 정다유 옮김 / 손안의책 / 2010년 3월
품절


러시아워라기에는 아직 조금 이른 오전 7시, 도쿄 역 야마노테 선 플랫폼에는 부쩍 낮아진 가을 햇빛이 비쳤다. 한손에는 서류 가방, 한손에는 조간신문을 든 가노 유스케가 막 문을 연 가판대 옆에 서 있었다. 얼핏 보면 평범한 회사원의 모습이다. 가노는 고무 밑창의 스니커를 신은 발이 옆으로 다가오자 조간신문을 향하고 있던 눈길을 한 번 들어 올린 뒤 다시 신문으로 떨어뜨리며 말했다.
"좋은 아침."
"좋은 아침."
고다도 답하자 바로 가노가 말을 받았다.
(아래에 계속)-6-7쪽

(위에서 계속)
"이상한데. 왜 이런 식인 걸까?"
고다는 그건 이쪽이 할 말이라고 생각하며 "아아"라고만 답했다. 둘 다 제대로 잠도 못 자고 먹지도 못 하며 어쩔 수 없이 이런저런 공사 현안을 함께 곰곰이 생각한 끝에 이렇게 공공장소에서 얼굴을 맞댄 뒤 하는 첫마디가 ‘좋은 아침’이라니, 그리고 그 말에 이어진 것은 당면한 일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생각해보면 이 남자와는 옛날부터 추상적인 논의는 산더미처럼 했으면서도 일상 대화는 대체로 빈약하고 어색했다. 그것을 기요코는 항상 비웃었다. 게다가 길지 않은 결혼 생활의 끝이 보일 무렵에는 말없는 남자 둘이 모였으니 입 다물고 산이라도 탈 수밖에 없겠네 하고 냉랭하게 조소했다.-6-7쪽

다마카와를 포함한 각 서에서의 보고가 끊기자 고다는 한두 시간 선잠을 잘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동안 계속 뭔가가 가슴에 걸린 듯이 숨이 박혔다. 꿈속의 얕은 안개는 헤쳐도 헤쳐도 그대로였다. 어떤 순간에는 조사 중인 인간을 죽게 한 특수부 검사의 새파랗게 질린 얼굴을 보고 있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오전 4시 무렵, 다마카와 서의 정찰에서 돌아온 마타사부로가 문밖에서 날아든 냉기와 함께 코앞을 지나가고, 이어서 누군가와 이야기하기 시작한 그 목소리가 고다의 귀와 잠을 한동안 침식한 탓이었다.
아무래도 사에키는 자살로 결정난 것 같아, 하고 마타사부로의 목소리는 말했다. "어젯밤은 감시하고 잇던 오지 사람들에게 지검의 강제 진입 지시가 있었던 것 같아. 경찰이 발이 닳도록 사에키를 찾고 있는 동안 지검 놈들은 계산기를 두들기면서 사에키가 자살할 위험을 잘 알고 있었다는 거야.
(아래에 계속)-138-140쪽

(위에서 계속)
그놈들은 오지에게 진입 이유도 말하지 않았던 모양이야. 실컷 경찰 수사를 방해해 놓고 사망자가 나오면 난 모른다는 얼굴은 놈들의 전형이지. 사에키건설은 몇 달 전부터 지검의 조사 대상이었다고 하는데 어차피 우리 쪽 사건에 자살 책임을 뒤집어씌우고 도망칠 작정이겠지. 어쩌면 아직 수사 착수 전이었던 사안이니까 검찰은 관여하지 않았다는 식으로 말하겠지. ....아, 주임님. 일어났어요? 주임님이 아는 사람 얘기가 아니에요. 혹시 몰라 하는 얘기지만."
고다는 깨어 있지는 않았다. 정확하게는 신경은 깨어 있었지만, 신체는 반쯤 잠든 채 꿈의 입구인가 출구에서 이 녀석을 때려눕혀 버릴까, 두 번 다시 입을 열지 못하도록 해줄까 하고 외치는 자신의 목소리를 들었다.
(아래에 계속)-138-140쪽

(위에서 계속)
지검에는 지검만의, 밖에서는 알지 못하는 내부 분쟁이 있다. 사에키의 가정부 여성이 사에키에게 ‘근간 수사 당국의 사정청취가 있을 거니까’ 라는 말을 들었다면, 그것은 특수부 내에서 가노 쪽 팀의 조사를 뭉개는 힘이 움직여 사에키를 궁지에 밀어 넣기 위한 정보가 고의로 유출되었다는 것이리라. 신경을 짓누르는 긴장과 압력을 받아가면서 특수부 검사는 계산기를 두들기고, 형사는 발이 닳도록 돌아다닌다. 어느 쪽이든 짓눌릴 때는 짓눌리고, 외부를 향해서 침묵하며 각자 자신의 흉중에 담아두는 것도 똑같다. 도망치는 것은 상층부고 현장 요원들이 대신 골탕을 먹는 것은 똑같은 것이다.
"어이, 마타사부로. 내가 아는 사람이 어쨌다고?"
"듣고 계셨습니까. 지검 놈들이 너무 열 받게 해서요."
"한번 소개시켜 줄게. 이름은 가노다. 느긋하고 반듯한 괜찮은 남자야."
"그거 고맙군요."
마타사부로는 현장에 있던 10계의 데라시마 주임에게 받았다는 메모 한 장을 눈앞에 내려놓고 그대로 나가버렸다.-138-140쪽

형식적인 1과 과장의 지령이 끝난 후, 예상대로 충신 다케우치가 "그리고, 고다 경부보는 나중에 서장실로"라고 한마디 덧붙였다. 고다는 올 게 왔다고 생각했지만,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는 그때 아즈마의 손이 재빨리 팩스 용지 한 장을 내밀어 왔다. 방금 전 히몬야로 들어왔다는 것이다.
용지에 자동적으로 기록되는 발신원에 아카사카의 편의점 이름이 있는 팩스에는 대외비의 표시와 함께 ‘다이칸야마에 대해서’하고 손으로 쓴 짧은 제목이 있었다. 발신자는 도쿄변호사협회이고 수신자는 도쿄 지검 형사부장. 일자는 헤이세이 원년 7월 29일.

다이카야마 건, 지난 28일 경시청 시부야 서에서 송치된 피의자 미즈사와 히로유키에 대해서 귀청 담당자의 수사 방법이 부적절하고, 경미한 절도사건 및 초범임에도 불구하고 강도죄로 기소가 검토되고 있는 점에 대해 피해자 아사노 츠요시 씨의 인권침해라는 제기가 있었기에 본 협회는 즉각 선처하도록 요청드립니다.

(아래에 계속)-185-187쪽

(위에서 계속)
고다는 신중하게 쓰인 내용을 읽었다.
"즉, 피해자인 아사노 츠요시가 미즈사와의 기소를 부당하다고 신청했다는 겁니까, 이건....."
"그런 모양이야. 어쨌든 헤이세이 원년 다이칸야마의 사건에서도 위에서는 이런저런 압력이 작용하고 있었다는 거야. 그 아사노 츠요시도 교세이 대학 OB지? 다섯 번째 인물이 등장한 걸지도."
아즈마가 조용히 말했다.
아카사카의 편의점에서 팩스가 전송된 시각은 오후 2시 52분이라고 기록되어 있었다. 고다는 경찰 내부에서 퍼진 신발 자국의 일치라는 소식이 그 단순한 사실 이상의 어떤 비밀과 이어져 순식간에 하지만 은밀히 가스미가세키로 흘러든 상황을 상상했다. 그리고 그 내용을 들은 가노 유스케가 가지고 있던 정보를 이렇게 팩스로 흘린 상황을.
(아래에 계속)-185-187쪽

(위에서 계속)
"어쨌건 그것과 똑같은 팩스는 사쿠라다몬에도 도착했을 테니까."
아즈마는 전에 없이 의욕적인 어조로 그렇게만 말하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편 아즈마에게 자초지종을 들은 것 같은 하야시지만 슬쪽 눈길을 건넸을 뿐 마찬가지로 먼저 나갔다. 과거에 체포했던 적이 있는 인간의 허실을 형사로서 꿰뚫어보지 못하고, 결과적으로 중대한 범행을 용인했다는 사실에는 보신을 위한 변명은 통용되지 않는다. 또한 그런 변명을 허락할 만한 아즈마나 가노도 아니었지만, 그래도 좀처럼 없는 동정이나 援護의 손길이 슬며시 자신에게 뻗어 있는 것을 느끼자 고다는 새삼 부끄러운 기분이 들었다. 또한 그 이상으로, 예전의 자신에게는 보이지 않던 자신이 몸담고 있는 경찰 조직의 현실에 대한 불쾌감이 겹쳐졌다.-185-187쪽

5년 전, 28세의 가을 기요코가 집을 나갈 예정이었던 날도 지금은 기억이 안 나는 어떤 사건의 수사본부가 만들어져 있었다. 한밤중 본부에서 빠져 나와 근처의 공중전화 부스에 들어갔을 때였다. 기요코는 이미 집을 나갔을 테지만 혹시 하는 생각이 들어 망설이기 시작하니 수화기를 잡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부스 안에서 유리에 번지는 빛을 계속 바라만 보았을 뿐이었다. 그런가, 그날도 비가 내렸던가. 고다는 그렇게 사소한 사실을 다시 떠올렸던 것이지만 당시에는 있었을 심신의 진동은 따라오지 않아, 어쩐지 모르는 남자의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아래에 계속)-224-245쪽

(위에서 계속)
잠깐 든 옛 생각 때문인지 고다의 기분은 조금 진정되었다. 고다는 전화카드를 다시 넣고 또 한 통의 전화를 걸었다. 요가의 마사공원 옆 공무원주택에 사는 특수부 검사는 아직 귀가하지 않아 부재중 전화가 응답했다. 이번에는 말을 골라 천천히 말했다.
"오늘, 팩스 봤다. 뭐랄까..... 뭐라 표현하기 어렵지만 처음에는 좀 곰곰이 생각했어. 여러 가지로 도움을 받은 게 분하다고 할까, 뭐 그렇다. 실은 오늘 사건에 변동이 있었지만, 솔직하게 말하면 지금 조금 무섭다. 진실을 앞에 두고 똑같은 전철을 밟고 있는 내가 다른 사람 같아. 그래도 어쩌면 너는 훨씬 전부터 조직 속에서 이러한 공포를 경험해 왔던 걸까.....? 자네를 안 지도 오래 됐는데 이해가 부족했던 게 부끄럽다. ......밤중에 미안. 사람이 붐비고 있어서 오늘밤은 이만."-224-245쪽

아카바네다이 단지 38동에 도착했을 때, 1층 우편함에 흘러넘칠 터인 신문이 보이지 않아 전 처남이 또 들렀다 갔나 생각하면서 5층에 올라갔다. 아니나 다를까 평소와는 다르게 가노가 안에 있었다. 스웨터에 바지라는 평상복으로 가노 유스케는 바닥에 흩어진 산더미 같은 책을 정리하고 있었고, 부엌 테이블에는 마시다만 위스키가 있었다.
"오늘은 관사의 가을 축제라서 말이야. 시끄러워서 있을 수 없어서 왔어."
그래, 오늘은 일요일이었던가 하고 떠올리면서 한낮에 전 처암의 모습을 이렇게 보는 것은 꽤나 오랜만이라고 고다는 멍하니 생각했다. 그건 그렇다 해도 일요일에 관사를 빠져나와 발걸음을 옮기는 것이 전 매부의 아파트라는 것은, 이 남자에게도 집은 집이 아니고, 생활은 생활이 아니다.
(아래에 계속)-390-394쪽

(위에서 계속)
똑같이 서른도 넘어서 남들만큼의 인생을 여전히 가지지 못하고 있는 원인이 자신과 기요코의 이혼에 있다는 것은 싫을 정도로 알면서, 개선하려고 하지 않는 태만함은 서로 마찬가지이고,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는 곤혹스러움도 서로 마찬가지였다.
"지난 번 자네가 남긴 부재중 전화를 들었어."
가노는 말했다.
"일이 힘들면 다른 사람의 목소리가 듣고 싶어지는 거야, 아마도. 그건 이제 잊어줘. 그것보다 나는 지금부터 고후 행이야. 실은 범인이 기타다케에 들어갔을 가능성이 있어서....."
그렇게 말하면 가노는 상황의 혹독함을 즉각 판단할 수 있을 터였다. 살짝 검사로서의 얼굴을 보였지만, "시간이 있다면 잠깐 좀 씻겠어? 바로 물 데우지"라는 말만 하고 욕실로 자취를 감췄다.
(아래에 계속)-390-394쪽

(위에서 계속)
그다지 서두르는 것도 아니었다. 서둘러봤자 어떻게 되지도 않았다. 고다는 식탁 의자에 잠깐 앉아서 품에 들어 있던 복사용지 뭉치를 테이블에 두었다. 욕실에서 돌아온 가노에게 "이거, 너도 흥미가 있을 거야. 읽어도 돼"하고 말했다.
가노는 입수 경위는 묻지 않고 노무라 히사시를 기타다케 산에 묻은 남자의 유서를 한동안 쳐다보다 읽기 시작했다. 그 사이에 고다는 벽장에 잠들어 있던 배낭이나 방한구 상하, 우비, 아이젠 등을 준비한 뒤 부엌의 가노에게는 말을 걸지 않은 채 먼저 목욕을 했다. 어느 쪽이나 유달리 키가 큰 성인 남성 두 사람이 얼굴을 맞대기에는 오래된 공단주택은 너무 좁아 지나치게 숨이 막히는 것을 오랜만에 느끼고 그게 새삼스럽게 갑자기 겸연쩍어진 탓도 있었다.
그러나 가노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아래에 계속)-390-394쪽

(위에서 계속)
(중략) 하지만 한편으로는 기회 있을 때마다 전 매부에게 넌지시 ‘이런 이야기가 있다’고 사건의 배경을 알려온 남자의 진의는 일관되게 진실을 추구하는 것에 있었다고 고다는 믿었다. 현장 형사와 비교도 되지 않는 파벌 투쟁 가운데에 몸을 두면서 직접적으로 사건과 관련이 없는 부서에서 어떻게 해서 개인의 양심이나 사회정의를 지킬까, 자신의 직업과 인생을 지킬까 가노는 가노 나름대로 고군분투했던 것이라고. 그리고 그건 그렇지만 이미 각자 학생 시절과는 다른 얼굴을 하고, 다른 지붕 아래 있으면서 이렇게 지금도 행복했던 과거의 기억을 통해서 한 남자를 보고 있는 자신은 ‘마크스’ 다섯 사람과 어디가 다른 걸가도 생각했다.
(아래에 계속)-390-394쪽

(위에서 계속)
고다가 목욕을 끝내고 나왔을 때, 가노는 부엌 마루귀틀에 앉아서 전 매부의 등산화를 닦고 있었다. 오랫동안 신지 않아서 가죽에 조금 곰팡이가 피어 있었던 놈이었다. 가노는 거기에 크림을 문질러 바르면서 등을 돌린 채, "산이란 건 뭘까...."하고 한 마디 중얼거렸다.
"그러게. 뭘까....."
고다는 똑같은 말로 답하면서 문득 자신의 가슴을 스치고 가는 게 있다는 걸 깨닫고서는, 잠깐 동안이지만 전 처남의 등을 보고 있었다. 결혼 생활이 점점 위태로워졌을 무렵, 사건의 계속으로 좀처럼 돌아갈 수 없었던 집에 가끔 돌아가면 기요코가 똑같이 마루귀틀에 앉아 남편의 신발을 닦고 있었다. 기요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고다도 기요코에게 건넬 말이 없었다. 그때, 그 한마디가 나오지 않았던 이유는 대체 무엇이었는지 한순간 생각하다 결국 서로 입에 담으면 그것이 마지막이라는 그런 어떤 덩어리였던 것만 다시 떠올리고 나서, 고다는 전 처남의 어깨를 두드리며 "어이!" 하고 말을 걸고 있었다.
(아래에 계속)-390-394쪽

(위에서 계속)
"정월까지 언제 만날 수 있을지 모르니까, 한잔 하자고."
"허어. 등산 약속 기억하고 있었나."
"잊을 리가 없잖아."
오후 3시 가노가 마시던 스카치위스키를 가볍게 한 잔씩 비웠다.
"무리만은 하지 마."
가노의 배웅을 받으며 다시 방을 나섰을 때, 고다는 이유 없이 자신의 심신이 조금 진정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390-39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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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zuaki 2013-01-28 1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렁각시 유스케 씨.... 사랑스러워라.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