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학 2 - 아리스토텔레스
아리스토텔레스 지음, 이종오 옮김 / 리잼 / 2007년 8월
절판


(2장 분노에 관하여 中)
분노는 충동적이고 고통스러운 욕망이다. 그것은 누군가 우리의 인격 혹은 우리와 가까운 사람들의 인격을 근거 없이 경멸했을 때 가지게 되는 복수의 욕망이다.
바로 이러한 사실에 분노가 근거하고 있다면, 무엇보다도 우리는 특정한 한 개인 -예를 들어 크레온과 같은 사람- 에 대해 분노를 가지게 되는 것이지, 사람들 전체에 대해 분노의 감정을 갖게 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우리 자신이나 우리와 가까운 사람들에게 행해진 특정한 한 행위에 대해 반대하거나 맞서고자 하는 것이다. 세 번째로 모든 분노의 감정에는 복수하고자 하는 희망이 주는 즐거움이 따르게 된다.-16쪽

(12장 성격들에 관하여-세대:청년기 中)
청년들은 성격상 욕망에 이끌리기 마련이며, 자신들이 욕망하는 것을 실행하고자 한다. 육체적인 욕망들 중에서도 그들은 특히 사랑의 욕망에 포로가 되며, 그 욕망을 제어하는 데에는 무기력하다. 그들은 변덕스럽고, 욕망에 대해 쉽게 싫증을 느낀다. 따라서 그들의 욕망이 격렬할수록 실제로 그 욕망이 지속되는 시간은 매우 짧다. 왜냐하면 마치 환자들이 느끼는 갈증과 배고픔처럼 그들의 의지는 불타지만 그 영향력은 미약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격렬하고 쉽게 흥분하며 충동을 따르는 경향이 있다. 그들은 바로 이 격렬함에 지배당한다. 그들의 야망은 그들로 하여금 조금의 경멸도 견뎌내지 못하게 하며, 부당한 일을 당했다고 여길 경우 쉽게 분개한다. 그들은 명예를 좋아하지만, 그보다 승리를 더 좋아한다. 청년들은 대개 우월함을 욕망하는데, 승리란 곧 우월함의 표싱기 때문이다. 이들은 돈에 대한 욕망보다는 오히려 이러한 두 가지 야망을 더욱 많이 가지고 있다. 암피아라우스에게 보내는 피타쿠스의 격언과 같이 그들은 아직 필요성을 못 느끼기 때문에 돈에 대해서는 그만큼 집착하지 않는다. (아래에 계속)-96-99쪽

(위에서 계속)
청년들은 좋은 성격을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아직 타락의 상황을 많이 경험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신뢰할 만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아직 속임수로 당해본 적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포도주를 한 잔 걸친 사람처럼 그들은 본성적으로 따뜻함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그들이 많은 실패를 겪어보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들의 인생 대부분은 희망으로 가득 차 있다. 기억이 과거에 대한 것인 반면에, 희망은 미래를 감싸 안는 것이다. 청년들에게 있어서 미래는 길고 과거는 짧다.
인생을 출발하는 청년들에게 있어서는 기억해야 할 것보다는 희망해야 할 것이 훨씬 많다. 때문에 그들은 쉽게 속아넘어가기도 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너무 쉽게 희망하기 때문이다. 청년들은 누구보다도 용감하다. 그들은 쉽게 흥분하며, 쉽게 희망을 가지기 때문이다. 격분이 그들의 두려움을 앗아간다. 희망은 그들에게 확신을 불어넣어 준다. 분노하는 자는 두려움에 떨지 않는 법이다. 또한 무엇인가에 대한 희망은 확신을 고양시킨다.
(아래에 계속)-96-99쪽

(위에서 계속)
그들은 수줍음이 많다. 기껏해야 사회적 규약에 대한 교육밖에는 받지 못했기 때문에 또 다른 아름다움이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관대하다. 아직 ㅇㄴ생의 쓴맛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어쩔 수 없는 필연성을 경험하지 못했다. 자신이 위대한 것에 합당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 이것이 곧 관대함이다. 그런데 관대함은 희망에 가득 찬 사람의 성격에 속하기도 한다.
행동에 있어서 그들은 이익보다는 아름다움을 추구한다. 그들의 삶은 계산보다는 기개에 의해 움직여진다. 계산이 이익과 관련된 영역이라면 미덕은 아름다움과 관련된 영역이다. 다른 누구보다도 청년들은 친구들과 동료들을 사랑한다. 이는 사교계의 삶을 즐기는 성격에 기인하는 것이다. 또한 그들은 자신들의 이익에 따라 무엇인가를 판단하지 않으며, 친구에 대해서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아래에 계속)-96-99쪽

(위에서 계속)
킬론Chilon의 격언(불역자주-"어떤 것에 있어서도 넘치지 말라"는 격언은 여기에서 '일곱 명의 현자'중의 한 명인 스파르타의 실론(6세기 중반))의 말로 간주되고 있다. 전통에 따르면 이 격언은 델포스 신전에 세겨진 여러 격언들 중의 하나로 여겨지기도 한다.)과는 반대로 그들은 항상 너무나 과장되고 격렬하기 때문에 잘못을 저지르기도 한다. 왜냐하면 모든 것을 넘치도록 행동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넘치게 사랑하고, 넘치게 증오하며, 마찬가지로 다른 일에 대해서도 지나치게 행한다. 그들은 모든 것을 안다고 생각하며, 고집스럽게 주장한다. 이것이 곧 모든 일에 과도하게 행동하는 이유이다. 그들은 어떤 사악함 때문이 아니라, 이러한 지나침 때문에 잘못을 범하곤 한다.
(아래에 계속)-96-99쪽

(위에서 계속)
그들은 많은 동정심을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실제보다 사람들이 더 정직하고 선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가진 순수함을 다른 모든 사람들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그들은 타인이 겪는 고통이 부당하다고 여기는 것이다.
그들은 웃음을 좋아하고, 따라서 농담을 즐긴다. 사실 농담이란 좋은 교육을 통해 절제된 넘침에 다름 아니다.-96-99쪽

(13장 성격들에 관하여-세대:노년기)
이미 중년기를 지난 노인들은 대부분 앞서 언급한 청년기와 거의 반대되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오랜 세월을 살아 왔고, 속임을 당한 적도 있으며, 적어도 한 번 이상은 실수를 저지른 경험도 가지고 있다. 또한 대부분의 세월 동안 그들은 인간적인 것들이 악해지는 것을 목격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어떠한 확언도 삼가는 경향이 있으며, 실제로 해야 할 말보다 훨씬 적게 이야기하곤 한다.
그들은 항상 '내 생각에는'이라고 말하지 결코 '내가 아는 것은'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리고 의심을 품으면서 이렇게 덧붙이곤 한다. '아마도 가능할지도 모르지'. 그들은 항상 그런 식으로 말한다. 그들은 결코 확언을 하는 법은 없다. (아래에 계속)-100-104쪽

(위에서 계속)
그들은 나쁜 성격을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나쁜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곧 모든 것을 최악의 상황으로 간주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들은 의심으로 인해 어디에서나 손해의 가능성을 가늠하곤 한다. 이처럼 그들이 의심을 품는 것은 그들의 경험에서 연유한 것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그들은 결코 격렬하게 무엇인가를 좋아하거나, 증오하지 않는다. 하지만 비아스의 격언처럼 그들은 마치 증오해야만 하는 것처럼 사랑하고, 마치 사랑해야만 하는 것처럼 증오한다.
그들은 비루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 이미 인생의 쓴맛을 보앗기 때문이다. 그들은 위대한 것이나 특별한 것을 욕망하지 않는다. 다만 삶에 필요한 것들만 욕망할 뿐이다. 그들은 몹시 인색하다. 재산이란 곧 이러한 삶의 필요한 것들 중 한 가지 요소이며, 그들은 경험을 통해 재산을 얻기는 어려워도 잃기는 쉽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아래에 계속) -100-104쪽

(위에서 계속)
그들은 쉽게 두려워하고, 미리 걱정을 하곤 한다. 나이가 그들로 하여금 젊은이들과는 반대되는 경향을 갖도록 만든 것이다. 젊은이들이 뜨거운 피를 가지고 있는 반면, 그들은 냉랭하다. 따라서 노년기는 비겁함을 향한 길을 닦는 것이나 다름없다. 고통이란 곧 냉랭하게 만드는 요소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은 삶을 사랑한다. 특히나 인생의 말년에 이르러서는 더욱 그러하다. 왜냐하면 욕망은 항상 부족한 것을 대상으로 하며, 가장 부족한 것에 대해 가장 강렬한 욕망을 가지기 때문이다.
그들은 필요 이상으로 이기적이다. 바로 여기에 또 하나의 저속한 감정이 자리 잡고 있다. 그들은 아름다움이나 합리적인 것보다는 이익을 위해 산다. 이기적이기 때문이다. 아름다움이 절대적인 선인 반면에 이익은 개별적인 선에 속한다. 그들은 정숙하기보다는 파렴치하다. 아름다움에 대한 관심이 이익에 대한 것에 비해 너무나 미미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거의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지 않는다.
(아래에 계속)-100-104쪽

(위에서 계속)
그들은 경험으로 인해 거의 희망을 가지지 않는다. 그들의 겨험상 대부분의 사건들은 유감스러운 결과로 이어지며, 종종 최악의 상황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 역시 그들의 비겁함에 기인하는 것이다. 그들은 희망보다는 추억으로 산다. 희망이 미래를 감싸안고, 추억은 과거와 관련된다고 할 때, 그들에게는 살아온 시간에 비해 살아가야 할 시간이 훨씬 짧기 때문이다. 그들은 끊임없이 지내온 과거의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렇게 과거를 추억하는 것을 낙으로 삼기 때문이다.
(아래에 계속)-100-104쪽

(위에서 계속)
그들은 격렬하게 흥분하지만 미약한 수준에 머루 뿐이다. 그들 중 어떤 이들은 욕망으로 인해 실패를 맛보았으며, 다른 이들은 힘을 잃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은 욕망에 이끌리지도,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시도를 하지오 낳는다. 단지 ㅇ익에 대한 취향만 있을 뿐이다. 따라서 노인들은 절제하는 경향을 보이곤 한다. 그들의 욕망은 이미 느슨해졌으며, 오직 이익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기개보다는 계산에 의해 살아간다. 기개가 미덕에 관련된 것이라면, 계산은 이익에 관련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부당한 일을 저지르는 경우 그것은 넘침에 의해서라기보다는 악의에 의한 것일 경우가 많다.
노인들 역시 동정심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젊은이들과는 다른 이유에서 그러하다. 젊은이들이 인류애에 의해 동정심을 가진다면, 노인들은 연약함으로 인해 그러하다. 왜냐하면 노인들은 모든 시련들이 자신들을 위협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것이 곧 연민을 자극하는 것이다. 그들은 또한 비통함에 빠지곤 한다. 그들은 농담이나 웃음을 좋아하지 않는다. 비통함에 빠지는 것은 웃기를 즐겨하는 것과 반대되는 것이다.-100-104쪽

(위에서 계속)
지금까지 청년들과 노인들의 성격에 대해 살펴보았다. 자신들의 고유한 성격에 알맞은 담론을 환영하지 않는 사람은 없으며, 자신과 닮은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따라서 자기 자신과 자신의 말에 외양을 부여하기 위해 어떠한 담론들을 사용해야 하는지를 아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100-104쪽

(14장 성격들에 관하여-세대:중년기)
중년기에 접어든 사람들은 청년기와 노년기의 중간적인 성격을 분명하게 가지고 있다. 그들은 결코 어떤 일을 대함에 있어서 넘치지 않는다. 또한 지나치게 확신하지도 않으며(이것은 경솔함에 해당되는 것이다), 지나치게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이러한 두 가지 극단으로부터 균등한 거리를 두고 중용을 지킨다. 모든 것에 대해서 절대적인 신뢰나 의심을 품지 않으며, 현실에 따라 상황을 파악할 뿐이다. 아름다움이나 이익 중 어느 한 가지에 따라서만 살지 않으며, 이 두 가지를 다 고려하여 살아간다. 결코 낭비하는 일이 없으며, 항상 적당한 선을 유지한다. 열정이나 욕망과 관련해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은 용기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절제할 줄 알며, 또는 절제된 용기를 가지고 있는 자들이다.
(아래에 계속)-105-106쪽

(위에서 계속)
젊은이들과 노인들에게 있어서는 극단적인 성격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젊은이들은 용기가 있으나 절제하지 못하며, 노인들은 절제력은 있지만 비겁하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중년기의 사람들은 청년기와 노년기의 성격 중에서 유용한 장점들을 고루 가지고 있다. 그들은 이러한 성격들을 넘치거나 부족하게 가지고 있지 않으며, 항상 적당하고 중간적인 선을 지킨다.
육체적으로는 30세에서 25세까지가 중년에 속하는 반면, 정신적으로는 49세 정도가 이에 해당된다.
청년기, 중년기, 노년기와 각각의 시기가 보여주는 성격에 대해서는 이 정도로 마무리하도록 하자.-105-10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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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zuaki 2009-09-15 16: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관찰과 일반화가 취미이셨으며 일세의 미문장이기도 하셨던 아 선생의 영감 넘치는 인간관찰기. 쓰다 보니 점점 재미있어져서 13, 14장은 전부 옮겨왔다. 중용을 사랑하셨던 아 선생은 스스로가 중년이라는 이유도 있어서 중년의 특성들을 미화하고 있는 듯 하지만, 내 생각에 한 개인의 퍼스낼리티 안에는 아직 청년인 부분 -즉, 철이 덜 든 부분- 과 벌써 노년인 부분 -이미 늙아버린 부분- 이 공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