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석학이란 무엇인가 - 현대 해석학의 경향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해석학 입문
리차드 E.팔머 지음, 이한우 옮김 / 문예출판사 / 199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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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어 '헤르메이오스(hermeios)'는 델피 신탁의 사제를 말하는 것이었다. 이 단어와, 또 이보다 더욱 자주 사용되는 동사 '헤르메네웨인'과 명사 '헤르메네이아'는 날개 달린 使者神 헤르메스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앞의 세 단어는 헤르메스로부터 파생되어 나온 것이다. (혹은 그 반대일 수도 있을 것이다.) 어쨌든 중요한 사실은 헤르메스가 인간의 이해능력을 초월해 있는 것을 인간의 지성이 파악할 수 있도록 전환시켜 주는 기능과 관련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 단어의 여러 다양한 형태들은 어떠한 사물이나 상황이 이해불가능한 것에서 이해가능한 것으로 옮겨지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스인들은 인간의 이해능력이 의미를 파악하고 이를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사용하는 도구인 언어가 헤르메스의 덕택이라고 믿었다. 철학 자체를 '해석'이라고 보는 마르틴 하이데거는 해석학으로서의 철학을 명시적으로 헤르메스와 연관지었다. (중략)
이처럼 헤르메스와 관련된 '이해에 이르는' 과정의 매개적 성격과 메시지-전달적 성격은 고대적인 용법의 '헤르메네웨인'과 '헤르메네이아'가 지닌 의미의 세 가지 기본적인 방향들 모두에 함축되어 있다.(계속)-34-36쪽

(위에서 계속)이들 세 가지 방향이란, 예를 들기 위하여 동사형만 사용해 말해보면, (1) 마로 크게 '표현하다', 즉 '말하다(to say)', (2) 하나의 상황을 설명할 때와 같이 '설명하다(to explain)', 그리고 (3)외국어를 번역할 경우에서처럼 '번역하다(to translate)'이다. 이 세 가지 의미는 영어의 동사 '해석하다(to interpret)'로 표현될 수 있겠지만, 이들 세 가지 의미 각각은 나름대로 해석의 독립적이고 중요한 의미를 구성하고 있다. 그러므로 해석은 세 가지 서로 다른 문제들과 관련될 수 있다. 하나는 입으로 소리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합리적인 설명을 하는 것이며, 나머ㅣ 하나는 다른 언어로부터 번역해 내는 것이다. -34-36쪽

문학을 가르치는 교사들은 '분석'보다는 '번역'의 전문가가 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그들의 과제는 의미상으로 어색하고 이상하며 불분명한 것을 의미있는 것으로 바꾸어서 '우리의 언어로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59쪽

해석학의 분야는 (대략 연대순에 따르면) 다음과 같이 6가지로 나뉠 수 있다. 1)성서 주석의 이론, 2)일반적인 문헌학적 방법론, 3)모든 언어 이해에 관한 학문, 4)'정신과학'의 방법론적 기초, 5)실존과 실존론적 이해의 현상학, 6)신화나 상징의 배후에 있는 의미에 도달하기 위하여 사용되는 회상적이고 우상파괴적인 해석의 체계들-63쪽

지금까지 논의한 해석학에 대한 상호관련적이고 종종 중복되기까지 하는 6개의 정의는 시대적으로 1654년부터 현재에까지 걸친 것이다. 이 여섯 가지의 해석학은 지금까지도 현대의 해석학적 사고의 스펙트럼에서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현재에도 뚜렷한 양극화 현상은 존재한다. 하나는 쉴라이에르마허와 딜타이를 따르는 전통으로서 이 전통에 따르면 해석학이란 해석의 근저에 놓여 있는 방법론적 원리를 일반적으로 모아놓은 결집체이다. 또 하나는 하이데거적인 전통인데 그는 해석학을 모든 이해의 성격과 필수적인 조건들에 대한 철학적인 해명이라고 간주한다.
오늘날 이 두 개의 기본적인 입장을 대표하는 가장 탁월한 인물은 해석의 이론을 저술한 에밀리오 베티와 앞으로 이 책에서 간략히 언급될 <진리와 방법>의 저자 한스 게오르그 가다머이다. 딜타이의 전통에 서 있는 베티는 인간 경험의 '대상화'가 어떻게 해석될 수 있는가에 관한 일반이론을 정립하고자 한다. 그래서 그는 해석 대상의 자율성 및 타당한 해석을 함에 있어서 역사적 '객관성'의 가능성을 강력히 주장한다.(아래에 계속) -80-81쪽

(위에서 계속) 이와 달리 하이데거를 따르는 가다머는 이해 자체가 무엇인가라는 보다 철학적인 문제에 관심을 쏟는다. 그래서 그는 이해는 하나의 역사적 행위이며 그렇기 때문에 항상 현재와 관련을 맺게 된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그의 주장에 의할 것 같으면 '객관적으로 타당한 해석' 운운하는 것은 아주 소박한 태도이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역사 밖의 어떤 입장으로부터 무언가를 이해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전제해야 하기 때문이다.
탈신화화에 몰두하는 신학자들 -루돌프 불트만 및 신해석학의 두 지도자인 게르하르트 에벨링과 에른스트 푹스- 은 기본적으로 하이데거적이며 현상학적인 접근방법을 취하는 가다머와 같은 입장으로 분류될 수 있을 것이다. -80-81쪽

이해가 해석으로서 즉 언어로서 명료화되면 초주관적인 요인들이 작용하게 된다. 왜냐하면 "언어는 이미 자기 내부에 형성된 개념성, 다시 말해서 이미 형성된 주시방식(way of seeing)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이해와 유의미성은 둘 다 언어와 해석을 위한 기초이다. 후기의 저작들에서 존재와 언어의 관련성은 더욱 강조되어 존재가 곧 언어적이라는 주장에까지 이르게 된다. 예를 들어 하이데거는 <형이상학 입문>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말과 언어는 쓰고 말하는 사람들의 교섭을 위해 사물들을 포장하는 포장지가 아니다. 오히려 사물들을 존재케 하고 또 그 사물들이 사물로서 존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로 말과 언어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하이데거가 말한 유명한 구절인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의 의미를 제대로 해석할 수 있다.-199쪽

해석학 이론에 기여한 하이데거의 공적은 실로 다양하다. <존재와 시간>에서는 이해(Verstehen) 자체를 근본적으로 새로운 맥락에서 재정립하였으며 그 이후의 해석이론의 기본적인 성격을 바꾸어 놓았다. 그리고 하이데거는 '해석학'을 현상학과 통일시하고 또한 이해를 가능하게 하는 언어의 근본적인 기능과도 동리시함으로써 해석학이란 말 자체를 새로이 정의내렸다. 후기의 저작들에서는 텍스트에 대한 주석을 자신의 전형적인 철학하는 방법으로 체택함으로써, 자신은 보다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해석학적인' 철학자란 점을 시사하였다. 하지만 하이데거에 있어서 해석학이란 단어의 보다 깊은 의미는 존재가 스스로를 드러내어 현존케 되는 탈은폐의 신비적 과정이다. 하이데거는 이처럼 본질적으로 해석학적인 절차에 의해 언어, 예술작품, 철학, 그리고 실존론적 이해 자체에 접근하였다.
그는 외견상으로는 광범위해 보이는 딜타이의 해석학 개념 -즉 정신과학의 방법론적 토대로서의 해석학- 을 결정적으로 넘어섰다. (아래에 계속)-236-237쪽

(위에서 계속) 왜냐하면 하이데거에 있어서의 해석학은 자연과학적 방법과 대비되어 우위를 지니는 (딜타이적인) 역사적 해석의 제방법이 아니라 이해의 사건 자체를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전생애에 걸쳐 딜타이가 헌신했던 정신과학-자연과학의 이분법은 이제 배후로 물러서게 되고, 모든 이해는 실존론적 이해의 역사성에 근거를 두고 있다는 사실이 전면에 나오게 된다. 그리고 이는 가다머의 '철학적' 해석학이 성립될 수 있는 확고한 기반을 제공해 주는 역할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236-247쪽

가다머의 해석학과 여가의식에 대한 그의 비판이 함축하는 바는 과거란 의식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사실들이 집적과 같은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 속에 활동하고 참여하는 모든 이해작용의 흐름이라는 사실이다. 따라서 전통이란 우리와 독립되어 대립해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바로 그 속에 있으면서 동시에 그것을 통해 존재하는 바로 그런 것이다. 대체적으로 전통은 너무나 투명한 매개체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제대로 볼 수 없다. 이것은 물고기가 물을 볼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의 이치이다.-258-259쪽

이성의 요구와 전통의 요구간에는 어떤 본질적 대립 관계도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성은 항상 전통의 내부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전통은 이성이 작용할 수 있는 기반이 되는 현실과 역사의 측면을 제공해 준다. 궁극적으로 가다머가 주장하고자 하는 바는 무전제적인 이해란 결코 있을 수 없다는 원칙을 알게 되면, 우리는 이성에 대한 계몽주의적 해석을 거부하게 되고 또한 권위와 전통은 계몽주의 시대 이후로 누리지 못했던 지위를 되찾게 된다는 사실이다. -268쪽

"시간적 거리는 주제의 본성에 속해 있는 일정한 선입견들이 사라지도록 할 뿐만 아니라 진정한 이해로 이끌 수 있는 선입견들이 두드러지도록 해 준다."
(가다머, <진리와 방법> 중 - 인용자주)-270쪽

부정성과 환멸은 경험에 있어서 본질적이다. 왜냐하면 인간의 역사적 실존의 본성에는 부정성의 계기가 들어 있는데 이 계기는 경험의 본성 속에 드러나기 때문이다. "모든 경험은 만일 그것이 경험이라는 이름값을 하려면 豫期와 맞부딪혀야 한다".
이러한 사실들을 고려해 볼 때 가다머가 그리스 비극과 아이스퀼로스의 공식인 'pathei mathos'에 대해 '고통스러운 배움'이라고 언급하는 것은 전혀 놀랄 일이 아니다. 이 공식은 우리가 과학적인 지식을 획득한다는 뜻도 아니고 심지어는 거의 비슷한 상황에서 우리로 하여금 '미래보다 더 잘 알 수 있도록' 해줄 지식을 획득한다는 뜻은 더 더욱 아니다. 우리는 고통을 통하여 인간적 실존 자체의 한계들을 배운다. 우리는 인간의 유한성을 이해하게 된다. 경험이란 유한성에 대한 경험이다. 진정한 내적 의미에서의 경험은 우리에게 인간이 시간을 넘어서 있지 않음을 가르쳐 준다. '경험을 많이 한' 사람만이 모든 기대의 한계와 인간이 세우는 모든 계획의 불확실성을 깨닫는다. 그러나 이것은 그를 폐쇄적이고 독단적으로 만들기보다는 새로운 경험에 대해 개방적이게 해준다.-286쪽

(14장에서 필자가 제시한 "해석에 관한 서른 개의 명제"를 인용자가 요약함)

1. 해석학적 경험은 역사적이다.
2. 해석학적 경험은 언어적이다.
3. 해석학적 경험은 변증법적이다.
4. 해석학적 경험은 존재론적이다.
5. 해석학적 경험은 하나의 사건-즉 '언어사건'-이다.
6. 해석학적 경험은 객관적(과학적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객관적)이다.
7. 해석학적 경험은 텍스트에 의해 인도되어야 한다.
8. 해석학적 경험은 말해진 바를 현재의 빛에 비추어 이해한다.
9. 해석학적 경험은 진리의 탈은폐이다.
10. 미학은 해석학에 포함되어야 한다.
11. 현재 미국 문학은 주관-객관 도식을 극복해야 한다.
12. 예술작품의 자율성에 관한 한 '신비평'의 입장은 본질적으로 옳다.
13. 방법이란 해석자의 측면에서 측정하고 제어하려는 노력이다. 그래서 방법은 현상의 반대편에 놓여있고, 경험의 개방성에 대립된다.
14. 문학에 있어서 주관을 중시하는 태도는 텍스트를 대상으로 간주하게 한다. 텍스트에 대한 경화된 분석은 문학의 즐거움을 방해한다.
15. 형식은 절대 문학 해석의 출발점이어서는 안된다.
(아래에 계속)-348-363쪽

(위에서 계속)
16. 문학 해석의 출발점은 작품 자체를 경험할 때 일어나는 언어적 사건 -즉 작품이 '말하고' 있는 바- 이어야 한다.
17. 문학에 대한 사랑은 문학의 말하는 힘에 대한 응답이다.
18. 해석자가 텍스트의 의미를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텍스트의 의미가 해석자를 사로잡는다.
19. 훌륭한 예술작품과의 만남의 핵심은 기술이나 감각적 쾌락이 아니라 근원적인 의미에서의 경험이다.
20. 작품을 읽는 것은 자신의 낡은 지각 방식을 파괴해 가는 '경험'이다.
21. 문학작품의 이해는 물음과 대답을 통해 주제 자체로 접근해 나가는 소크라테스식의 변증법적 과정이다.
22. 예술을 보는 방법은 예술 작품의 존재방식 -세계를 탈은폐하는 사건- 에 근거해야 한다.
23. 텍스트를 이해하는 것은 텍스트에게 일방적으로 묻는 것이 아니라 텍스트가 독자에게 제기하는 물음을 이해하는 것이다.
24. 현재 미국의 문학 해석이 지닌 커다란 결점은 역사의식의 부족이다.
25. 문학은 본질적으로 역사적이다.
26. 해석의 과제는 역사적 거리를 메우는 일이다.
(아래에 계속)-348-363쪽

(위에서 계속)
27. 현재의 우리에게 있어서 역사적 이해와 역사의식은 과학적 세계관에 대한 현상학적 비판의 형태로 나타난다.
28. 문학작품의 이해는 동태적이고, 시간적이며, 인격적이다.
29. 과학과 개념적 인식은 서로 밀접한 연관을 갖고 있다. 이에 대응하여 경험과 역사도 마찬가지의 연관을 갖는다. 문학 해석은 경험과 역사에 속함으로써만 본래적 기능을 다하게 된다.
30. 따라서 현재의 우리에게 있어서 해석의 커다란 과제는 과학적 객관성의 이상과 과학자의 지각방식을 파괴하고 실존의 역사성을 회복하는 것이다.-348-36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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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zuaki 2009-09-11 1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다머의 <진리와 방법>은 안 읽으면 안 되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