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술문화와 문자문화
월터 J. 옹 지음, 이기우 외 옮김 / 문예출판사 / 1995년 2월
절판


'인민의 적'이라든가 '전쟁상인의 자본주의자들'가 같은, 기술 수준이 낮은 발전 도상에 있는 많은 문화에서 정치 고발에 쓰이는 진부한 상투구는 고도로 문자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야비한 인상을 주겠지만, 이것들은 구술문화의 특징적인 사고 과정에서 생겨난 정형구화된 본질적 요소의 잔존이다. 소련 문화에서 비록 그러한 것은 줄어들고 있다 하더라도 지금도 여전히 많은 구술문화가 잔존해 있다. 이것을 보여 주는 많은 증후의 하나는 소련에는 언제나 '10월 26일의 영광스런 혁명'과 같은 말씨를 고집스럽게 쓰고 있다는 점이다. (나는 적어도 수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그러한 경우를 보았었다.) 이 형용구적인 정형구는 의무적으로 고정화되어 있다. 이것은 '현명한 네스토르'라든가 '지모가 풍부한 오디세우스'와 같은 호머의 형용구적인 정형구가 역시 일반적으로 고정화되어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이다. 혹은 또 20세기 초엽 미국에서조차도 아직 구술문화의 영향을 지니고 있었던 일부 고립지대에서 '영광스런 7월 4일'이라는 말투가 역시 일반적으로 고정화되었었다는 것과도 마찬가지이다. -63-64쪽

속담이나 수수께끼는 지식을 쌓기 위해서 사용하는 게 아니고 언어로 상대방과 지적인 대결을 하기 위해서이다. 즉 속담이나 수수께끼 하나를 말하는 것은 상대에게 그 이상으로 더욱 딱 들어맞거나 혹은 그것과 정반대되는 다른 속담이나 수수께끼를 내 놓으라고 하는 도전인 것이다.(Abrahams 1968:1972).-71쪽

지식의 사용 방식에서 뿐만 아니라 물리적인 행위에 대한 상찬에서도 구술문화는 논쟁적으로 만들어져 있음을 스스로 노정한다. 물리적인 폭력에 대한 열광적인 서술이 종종 구전설화의 특징이 된다. 예컨대, <일리아스>의 제8서와 제10서는 그 뚜렷한 폭력의 측면에서 적어도 오늘날 가장 센세이셔널한 TV나 영화 프로에 필적될 만하며, 그리고 피비린내 나는 장면의 세세한 묘사에 이르러서는 훨씬 그것들을 능가할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장면은 말로 구술될 때가 시각적으로 제시될 때보다 혐오를 덜 느끼게 한다.-72쪽

두번째 예는 구술 이야기를 축어적인 방식으로 고정하기 위한 제약으로서 음악이 어떠한 방식으로 작용하는가를 보여 준다. Eric Rutledge 는 일본에서 행한 집중적인 현장조사를 토대로, 아직은 현존하고 있으나 이미 과거의 유물이 되어 버린 일본의 전통적인 구술 이야기인 <헤이케 모노가타리(The Tale of the Heike)>에 관해서 보고하였다. (Rutledge 1981). 그 이야기는 음악에 맞춰서 노래로 불리워지나, 그 중에서는 적지만 악기의 반주가 없는 '흰 소리(white voice)'로 된 부분이나 악기 연주만으로 이루어진 간주곡도 있다. 그 애야기와 음악반주는 도제들에 의해서 기억된다. 도제들은 어렸을 때부터 구두로 가르쳐 주는 스승과 함께 곡을 읊기 시작한다. 스승들(이미 많이 남아 있지는 않다)은 도제를 훈련시키는데, 수년에 걸쳐서 엄격한 수업을 통해서 도제들이 노래를 축어적으로 암송할 수 있도록 힘쓴다. 그리고 그것이 용케도 성공한다. 하기야 스승 자신이 스스로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가운데 암송의 방식을 바꿔 버리는 수도 있다. 이야기 중에는 잘못을 일으키기 쉬운 부분이 있다. (아래에 계속)-101쪽

(위에서 계속) 어느 점에서는 음악은 텍스트를 완벽하게 고정해 주는 것이지만, 다른 점에서는 음악은 필사본을 베낄 때 일어나는 잘못과 마찬가지의 잘못을 일으키기도 한다. 이를테면 '유사 결말'에 의한 잘못이다. 즉 구술하는 공연자는, 같은 구절이 문말에 몇 번이고 사용되고 있을 때, 앞의 구절에서 뒤의 구절로 뛰어 버리고 그 사이의 부분을 완전히 넘어가버리는 그런 일이 생긴다. 어떻든 간에 여기서도 역시 일종의 세련된 축어적인 재현을, 즉 완전하게 불변하는 재현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하더라도 주목할 만한 재현을 볼 수 있다.-101쪽

구술문화의 특유한 기억형성에 관해서는 특히 의례적인 상황과 관련하여 한층 면밀하게 연구할 필요가 있다. (중략) 의례의 언어는 '일상어에는 없는 영속성을 갖는다'라는 점에서 일상어에 비해서 쓰기에 가깝다고, 체이프는 특히 Semeca의 언어를 논하면서 제시하였다. (Chafe 1982). 또 그는 '구술로 행하는 동일한 의례는 몇 번이고 되풀이되는데, 확실히 축어적으로 똑같이 행해지는 것은 아니지만 언제 행해지더라도 일정한 내용, 문체, 정형구적인 구조에는 변함이 없다'고 언급하였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ㅓ의 의심할 여지 없이 구술문화에 있어 구술적인 암송의 압도적인 다수가, 상기의 연속성이 지니는 융통성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이 점은 의례적인 암송에 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쓰기를 이미 알고 그것에 의지하고 있지만 아직 소박하게 구술성과도 생생한 접촉을 유지하고 있는 문화, 즉 아직 구술문화의 영향이 강하게 남아 있는 문화에서도, 의례상의 발화가 전형적으로 축어적이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다. (아래에 계속)-102-103쪽

(위에서 계속) "나를 기념하기 위해 이를 행하라"고 예수는 최후의 만찬에서 말했다.(루가복음 22:19) 기독교도가 성체예배를 예배식의 중심적 행위로 행하는 것은 이 예수의 지시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독교도가 이 지시에 충실하기 위해 예수의 말씀대로 되풀이하는 이 긴요한 말(즉 '이것은 나의 몸이다... 이것은 나의 계약의 피이다'라는 말)은, 신약성서에 들어 있는 어느 대목과 비교하더라도 엄밀히 같지는 않다. 초기 기독교회는 이미 텍스트화된 의식에서조차 텍스트 이전의 구술적 형태로 기억하였던 것이다. 교회가 전심전력을 자해서 기억하도록 엄명하였던 바로 그 점에 있어서조차도 구술적 형태로 기억했던 것이다.-102-103쪽

일차적인 구술문화의 성격구조는, 문자에 익숙한 사람들 사이에 보통으로 보이는 성격구조에 비하면, 어느 정도 한층 더 공유적이고 외면적이며 덜 내성적이다. 구술적인 커뮤니케이션은 사람들을 집단으로 연결시킨다. 읽고 쓰는 것은 마음(psyche)을 자신에게 되던지는 고독한 활동이다. 교사가 학급 전체에게 말을 걸 때에는 학급을 하나의 통합된 단체로서 느끼며, 학급 학생 전체도 자기네들을 그렇게 느낀다. 그러나 교과서를 꺼내서 그 일부를 읽도록 교사가 명하면, 학생 개개인은 자기만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게 되어 학급의 통일은 사라지고 만다.-109쪽

고대 셈인에 의해서 발명되고 고대 희랍인에 의해 완성된 표음 알파벳(phonetic alphabet)은 소리를 시각적인 모습으로 환원한다는 점에서 모든 쓰기체계 중에서 월등히 뛰어난 융통성을 가지고 있다. 아마도 알파벳이 모둔 주요한 쓰기체계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아니리라. 아름답게 도안할 수 있다 하더라도 한자만큼 정교하게 할 수는 없다. 알파벳은 민주주의적인 스크립트로 누구나가 간단히 배울 수 있다. 한자 쓰기는 그 밖의 많은 쓰기체계와 마찬가지로 엘리트주의적이다. 즉 그것을 완전히 터득하기 위해서는 오랜 동안의 여유로움을 필요로 한다. 알파벳의 민주주의적인 성격은 한국에서 제시되었다. 한국의 책이나 신문에는 알파벳[한글 자모:옮긴이]으로 철자화된 단어와 몇 백 개의 갖가지 한자가 혼합되어 쓰인다. 그러나 모든 공공적인 표기는 알파벳으로만 씌어지고, 알파벳은 국민학교 저학년에서 완전히 습득되므로 거의 모든 사람이 그러한 표기를 읽을 수 있다. 다만 한국의 대부분의 문헌을 읽기 위해서는 알파벳 이외에 1800개의 '한자'가 최소한 필요하며 그것들을 전부 터득하는 데는 중학교 수료를 기다리지 않으면 안 된다.-142-143쪽

19세기에 이르기까지 서양 문체의 대부분은 어떠한 방식으로든 학문적인 수사학에 의해서 형성되었다. 그러나 현저한 예외가 하나 있다. 그것은 여성 작가의 문체이다. 16세기 이래 단행본의 저자로서 많은 여성이 등장했으나 그러한 여성 가운데 학문적인 수사학의 훈련을 받은 사람은 거의 없었다. 중세 이래로 여자 교육은 종종 상당한 힘을 들여서 행해졌고, 그 결과로 유능한 가사 경영자를 낳았다. 가사라 하더라도 때로는 50명에서 80명의 식구를 뒷바라지하는 상당한 큰 작업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여자 교육은 라틴어로 수사학을 비롯한 그 밖의 모든 학과를 가르치고 있었던 학문적인 시설을 통해서 행해지지는 않았다. 17세기에 들어서자 소수이지만 여성도 학교를 다니기 시작했는데, 그러나 그녀들이 입학한 곳은 주요 교육기관인 라틴어 학교가 아니라 새로 생긴 일상어 학교(vernacular schools)였다. 이러한 일상어 학교는 장사나 가사에 유용한 실용적인 것을 가르쳤음에 반하여, 라틴어 교육을 기본으로 하는 종래의 학교는 성직자, 법률가, 의사, 외교관 그밖에 관리를 겨냥하는 사람들을 가르쳤다. (아래에 계속)-171쪽

(위에서 계속) 그러나 확실히 여성 작가들도 그들이 읽은 저작에서 영향을 받았음에 틀림없다. 그리고 그 저작들은 라틴어에 입각한, 그리고 학문적이고도 수사적인 전통에 젖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들 자신은 보통 다른 목소리로, 즉 연설적인 목소리에서 훨씬 떨어진 목소리로 스스로를 표현했으며, 이것이 소설의 발생에 크게 연결되었던 것이다.-171쪽

인쇄는 말의사적인 소유라는 새로운 감각을 만들어냈다. 1차적인 구술문화 속에 사는 사람들이라도 시에 대한 소유권의 감각을 어느 정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감각은 드물며, 보통은 누구나가 꺼내서 말하는 전승이나 정형구나 이야기의 주제가 공유되기 때문에, 그러한 감각은 약해지고 만다. 그러나 쓰기와 더불어 표절에 대한 분노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중략) 인쇄가 시작되자, 그 초기부터 이미 최초의 출판자 이외의 사람이 그 인쇄본을 다시 찍는 것을 금하는 '특허'가 종종 설립되게 되었다.(중략)
활동적인 인간끼리의 교제 속에서 말이 처음 가지고 있었던 소리의 세계로부터, 인쇄는 말을 떼어내어, 그것을 시각적인 평면으로 한정적으로 귀속시켰고, 지식의 관리를 위해서 시각적인 공간을 다른 방식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인쇄는, 인간으로 하여금 스스로의 내면 의식과 무의식적인 자원을 갈수록 점점 사물과 같은 것, 비인격적인 것, 종교적으로 중립적인 것으로 생각하도록 촉발했다. 인쇄는, 인간 정신으로 하여금 갈수록 그 소유물이 타성적인 심적 공간 속에 보관되어 있다는 느낌을 갖도록 촉구했다.-198-199쪽

구술문화에 입각한 사고와 표현의 특징들
1) 종속적이라기보다는 첨가적이다
2) 분석적이라기보다는 집합적이다
3) 장황하거나 '다변적'이다
4) 보수적이거나 전토적이다
5) 인간의 생활세계에 밀착된다
6) 논쟁적인 어조가 강하다
7) 객관적 거리 유지보다는 감정이입적 혹은 참여적이다
8) 항상성이 있다
9) 추상적이라기보다는 상황의존적이다-60-9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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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zuaki 2009-08-18 19: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메로스를 예로 들어 설명하는 것이 재미있었다. 인기 있는 책에는 인기의 이유가 있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