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색일대남
이하라 사이카쿠 지음, 손정섭 옮김 / 현실과미래 / 1998년 8월
평점 :
품절


별 다섯 개를 준 이유는 이 책이 무지무지하게 재미있어서도 특별히 감동적이어서도 아니다. 이 책에 사실적으로 묘사된 인물들과 상황이 너무나 특이해서인데, 그런 점에서 일본 문화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읽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도쿠가와 문학의 최고봉'이라느니 '일본인이라면 학창시절 반드시 접하는'이라느니 하는 뒷 표지의 광고문구들은 사실 여부가 조금 의심스럽다.그렇지만 내가 이 책의 제목을 알게 된 것도 역사책에서였으니 풍속을 어지럽힌 죄로 감옥살이도 했다는 이 작가가 한 시대를 떠들썩하게 했던 문제의 인물인 것만은 사실인 것 같다. 서문을 쓴 작가의 친구는 이웃 농사꾼 아주머니가 이 책 이야기를 듣고 며느리 욕하는 것보다 훨씬 재미있다며 배꼽을 잡고 웃었다고 전하는데, 확실히 밝고 유머러스하긴 하지만 21세기의 한국인에게 그 정도로 재미있을 것 같지는 않다.

주인공 요노스케는 일곱 살 때부터 예순 살 때까지 초지일관 호색한이었으며 일생 3724명의 여자, 725명의 남자와 자고는 마침내 배를 만들어 야한 물건들을 잔뜩 싣고 전설에 나오는 여자들의 섬을 찾아 일본을 떠난다. 이 54년 간의 엄청난 호색행각이 매년 그 해를 대표하는 짤막한 꽁트 한 편씩으로 묘사되는데, 희대의 플레이보이 요노스케가 꼭 승승장구하는 것만은 아니어서 재미있다. 집에서 쫓겨나 거지꼴로 방랑하기도 하고 갑자기 자기 행동을 반성해 절에 들어가기도 하고(결국은 금방 파계하고 다시 호색의 길로 들어서지만) 유부녀를 유혹하다 남편에게 얻어맞기도 하고 유곽 여인에게 망신을 당하기도 하는 등 실패의 에피소드가 더 많다. 그럼에도 꿋꿋하게 새로운 여자 뒤를 쫓아다니는 주인공이 어떨 때는 대견하게 여겨질 정도이다.

유곽의 여인들에 대해서 섣불리 경멸하거나 비하하지 않고 따뜻한 시선을 보내고 있는 것도 이 책의 장점이다. 초일류 호스티스인 타유에 대해 언급할 때는 존경심마저 느껴진다. 사회의 온갖 도덕과 근엄한 모든 것들을 조소하는 듯 보이는 작가도 한편으로는 나름의 가치 기준을 가지고 있는데, 그가 유곽의 여인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손님에 대한 성실한 자세이다. 역시 '직업의식 투철한 일본인'이라는 걸까? 짤막한 글들이 모여 있어서 읽기에 부담스럽지 않고 각 장마다 작가가 직접 그렸다는 익살스러운 그림이 붙어 있는 것이 특히 마음에 든다. 어른을 위한 유쾌한 농담 정도로 가볍게 생각하고 읽으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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