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근대성 그 기원을 찾아서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50
고미숙 지음 / 책세상 / 2001년 10월
절판


1990년대 들어 민비는 뮤지컬 <명성황후>가 세계 무대에서 각광을 받더니 최근에는 사극 <명성황후>의 인기에 힘입어 화려하게 무덤 속에서 부활하고 있다. 외세로부터 나라를 지키기 위해 장렬하게 순교한 조선의 마지막 국모, 명성황후 - 아마 이런 것들이 지금 유포되고 있는 민비에 대한 표상들일 것이다. 그런데 한번 따져보자. 이런 식의 표상의 근저에 민비가 일본 낭인들에게 살해당했다는 사실 말고 달리 무엇이 있는지. 다시 말해, 민비가 최고 통치자로서 열강의 각축 속에서 시대를 헤쳐나가기 위해 무엇을 수행했는지는 누구도 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 시대를 가장 냉철하게 증언하고 있는 황현의 <매천야록>이나 <오하기문> 등을 통해 볼 때, 민비는 한 번도 개혁의 주체가 된 적이 없다. 그가 대원군과의 권력 투쟁을 위해 대거 기용한 민씨 척족들은 탐관오리와 부패하고 무능한 매판관리의 전형들이었다. 근대 계몽기의 대표적인 민족주의 매체 <대한매일신보>에는 민시들의 부패상이 하루가 멀다 하고 고발되고 있다. (민씨 중에 '영'자 돌림의 탐관오리 여덟 명을 풍자하는 <민씨팔영>이 별도로 부렸으 정도이다. (아래에 계속)-21-23쪽

(위에서 계속) 또 당시 각축하던 열강들과의 관계를 보더라도 조선의 개혁을 위해 그들을 적절히 활용한 예는 도무지 찾아볼 수 없다. 단지 자신의 정치적 기반이 흔들릴 때마다 외세를 끌어들이기에 바빴을 따름이다.
물론 추종자들은 이렇게 반박할 것이다. 일본의 암살 목표가 되어사실 자체가 바로 민비가 조선을 지키기 위해 싸운 증거가 아니겠는냐고. 하지만 이건 정말 옹색하기 짝이 없는 의견이다. 우선 한 사람의 최고 권력자가 자신이 능동적으로 수행한 어떤 치적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직 적에 의해서만 규정된다는 사실 자체가 일단 심각한 결락이 아닐 수 없을뿐더러, 그녀가 일본 낭인에게 살해당한 맥락도 잘 따져볼 필요가 있다. 청일전쟁의 결과로 조선에서 청의 지배는 종결되었지만, 일본은 승전국임에도 불구하고 조선에서 우위를 차지하지 못했다. 러시아가 프랑스, 독일과 함께 '삼국간섭'을 시도함으로써 승리의 대가를 가로채버렸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자 민비를 포함은 조선의 지배층들은 잽싸게 러시아 세력과 결탁하여 자신들의 기반을 유지하고자 했다. 잘 알다시피 러시아는 조선의 근대화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는 '황혼의 제국'이었다.(계속)-21-23쪽

(위에서 계속)
어찌 보면 청일전쟁에서 러일전쟁 사이, 곧 1894년에서 1905년 까지 약 10년 동안은 열강들의 힘의 공백기라고 볼 수 있는데, 이 때 외세의 역학관계를 적절히 이용했더라면 조선은 위로부터의 혁명에 성공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조선의 지배층은 러시아와 일본 사이의 적대적 긴장을 활용하기보다 러시아에 완전 밀착함으로써 개혁의 기회를 상실했을 뿐 아니라, 일본을 자극하는 결과만 낳고 만 셈이다. 민비는 이런 맥락에서 시해되었다. 일본과 맞서 조선을 위해 싸우다가 희생되었다는 통념과 이런 정치적 정세 사이의 거리는 얼마나 먼지.
문제는 이 구체적인 힘의 배치를 읽으려 하지 않고, 오직 일본에 의해 희생되었다는 사실만으로 모든 사건의 의미를 규정하려는 데 있다. 즉, 민비가 명성황후라는 새로운 기호로 부각되는 현상의 근저에는 반일=국수=지선(至善)이라는 관념이 있다. 일본에 반하는 것은 무조건 애국적인 것이라는 이 지독한 강박증!-21-23쪽

최근 출간된 <이완용 평전>은 이완용이 독립협회의 주도층이었고, <독립신문.에 애국적인 관리로 집중 조명될 만큼 유능한 관리였다는 사실에서 출발한다. 말하자면 그 역시 날 때부터 매국노는 아니었던 것이다. 그 또한 다른 계몽기 지식인들과 마찬가지로 애국적 열정 속에서 출발했으며, 다만 격동의 시기를 거치면서 계속 정치적 변전을 거듭했을 뿐이다. 이완용은 물론 매국노다. 그런데 그가 매국노의 상징이 된 것은 1907년 정미칠조약으로 고종이 폐위되는 순간부터 총리대신이 되어 다른 라이벌들을 몰아내고 합방조인서에 도장을 찍은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당시의 신문 매체를 살펴보노라면 정말 '매국노들의 경연대회'를 목도하지 않을 수 없다. 박제순, 송병준, 이준용, 이지용 등. 이들이 저지른 행위는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나 이완용의 행적을 훨씬 능가한다. 그런데 어떻게 이들은 모두 면책되었는가? 나는 그것이야말로 우리 식민지 역사가 만들어낸 단순하기 짝이 없는 이분법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이완용이라는 상징적 존재를 내세워 모든 매국의 악덕을 몰아넣은 다음 스스로 면제부를 받는 식의.-25-26쪽

기독교는 국경이나 민족을 넘어 인류 전체를 포용하는 종교이고, 마르크스주의 또한 세계 혁명을 지상과제로 삼는 이념이다. 그런데 이 거대한 담론들이 한국에서는 민족이라는 절대적 기호의 기반을 조금도 돌파하지 못한 것이다. '민족은 상상의 공동체'라는 충격적인 테제를 정립한 베네딕트 앤더슨은 한 학자의 입을 빌려 "민족주의 이론은 맑스주의의 역사적 대실패를 대표한다"고 단언한 바 있다. 조선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보여준 그 지독한 민족지상주의(그 정점이 주체사상일 터이다)는 말할 것도 없고, 온갖 정파로 난립한 1980년대의 좌파들이 최후까지 견지하고 있었던 것 역시 민족이라는 주술이다.-26-27쪽

우리는 흔히 민족의식은 단군 시절 이래 면면히 계승되어온 것이라는 강한 신념을 지니고 있다. 반만년 역사, 단군의 후예, 한민족의 은근과 끈기 등의 익숙한 언표가 대변하듯이. 그래서 통일신라가 당과 결탁하여 고규려를 멸망시킨 것을 아직도 굴욕적 사대주의로 수치스러워하고, 그에 대한 심리적 보상으로 거의 사료가 남아 있지 않은 발해를 한국사의 지평에 자리매김하기 위하여 통일신라 시대보다는 남북국 시대라는 명칭을 더 즐겨 사용한다.
이것은 일단 역사를 하나의 레일 위를 달려오는 '단수화된 서사'로 상정하는 태도의 산물이다. 즉, 20세기 이후 형성된 민족에 대한 관념을 저 아득한 시간대로 소급하여 태고에서부터 비롯되었다고 상상하고 싶은 것이다. 기원이 멀면 멀수록 그 정통성은 더 한층 확고해진다는 듯이.
(아래에 계속)-35-40쪽

(위에서 계속)
20세기 한국 인문학읙 ㅏ장 강력한 담론체계인 실학파 담론이야말로 그러한 내적 연속성론이 가장 두드러지게 작동하는 방법론적 거처이다. 그것은 조선 후기 지식인 그룹을 '실학파'라는 유형으로 절단함과 동시에 그들의 텍스트 속에서 민족의식의 맹아들을 다양하게 채취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펼쳐왔다. 실학파라는 명명이 가능한가도 회의적이지만, 조선 후기의 맥락에서 민족적, 민중적이라는 척도가 얼마나 텍스트의 잠재력을 드러낼 것인지도 의심스럽기 짝이 없다. 거듭 말하지만, 하나의 담론 체계에서 진정 의미 있는 것은 개별 낱말들의 조각들이 아니라 개념들이 움직이는 배치이다. 이 작동의 메카니즘을 간과한 채, 오직 낱말의 의미를 우선 규정해놓고 일의적 해석을 가하는 것은 일종의 동일성의 폭력이다. 역설적인 것은 병자호란 이후 지배 이데올로기로 기능한 '소중화론'이 실학과는 대척적인 위치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최근에 이르러서는 이것이 자주성의 진보로 간주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런 전도된 양상이야말로 민족이라는 동일성론이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증거이다.
(아래에 계속)-35-40쪽

(위에서 계속)
연속성에 대한 집착을 벗어나서 조선 후기 사상사를 재검토해보면, 거기에는 근대적 민족주의와는 아주 다른 진경이 펼쳐져 있다. 당시의 지배적 담론인 소중화론은 중화 문명의 초월성을 그대로 수락한 채, 대상만을 중국에서 조선으로 이동함으로써 중화(中華), 이적(夷狄)의 구별을 더더욱 완강하게 견지한 것이었다. 따라서 18세기에 형성된 새로운 담론들은 바로 그 소중화론이 기대고 있는 초월적 전범성을 부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될 수밖에 없었다. 소중화론의 입장에 서면 청나라는 금수와 같은 오랑캐들의 국가일 뿐이다. 얼마나 단순명료하고 도식적인가. 그러면 소중화론을 깨기 위해서 새로운 지식인들은 무엇을 했던가? 연암 박지원은 소중화론을 정면으로 부인하기모다 그와 유사한 지평에서 출발하되, 계속 경계를 모호하게 함으로써 균열을 일으키는 방식을 시도한다. (중략) 이옥이 주장하는 바의 요점은 어떤 하나의 심급으로 환원될 수 없는 무수한 개체들의 차이이다. 동이럿응로 포획되지 않는 이질적인 것들에의 강렬한 환기!(중략) 이것은 다방면에서 소수성 minority'을 긍정하는 논리로 얼마든지 원용될 수 있는 것이다. (계속) -35-40쪽

(위에서 계속)
더욱이 이덕무나 이용휴, 박제가 등 당시 새롭게 부상한 문제적 작가들이 공통적으로 시도했던 것도 바로 하나의 최종심급에 포획되지 않는 이질적인 것들의 분자적 흐름에 대한 환기였다. 조선적인 것에 대한 옹호는 그러한 인식론적 배치의 일부를 구성하는 것이었을 뿐이다.
그에 반해 근대 계몽기의 민족 담론은 그와는 아주 다른 방식으로 구성된다. 일단 서구, 일본, 조선의 삼각관계를 기본으로 삼음으로써, 중화를 향했던 시선이 이제는 서구 문명을 향하게 된다. 중화와 서구 문명은 서로 대척점에 있는 듯하지만, 담론적 배치의 측면에서 볼 때 초월적 전범이라는 점에서는 같은 위상을 차지한다. 앞서 등장한 <매일신문>이 잘 보여주듯 민족국가는 서구 문명의 위력에 의지해, 그들의 시선에 의거해 비로소 탄생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동일성에 대한 열렬한 희구의 형태를 취한다. 그래서 민족적 자각이 강렬할수록 사실 근대 문명화론의 궤도를 충실히 따라가야만 하는 역설이 생겨난다. (아래에 계속)-35-40쪽

(위에서 계속) 이것은 민족주의가 제국주의의 태내에서 제국주의를 그대로 모사함으로써 성취된다는 것, 나아가 주체를 강조할수록 그것은 제국이라는 거대한 타자와 포개져야 하는 운명임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일단 이 길에 들어서면 '근대성의 외부'로 달아날 가능성이 전면 봉쇄되는 운명에 처한다.
그렇게 본다면, 조선 후기 실학판 담론과 근대 계몽기 민족 담론 사이에는 연속성보다는 차라리 불연속적 간극이 두드러진 셈이다. -35-40쪽

누구나 알고 있듯이 근대적 국민이 탄생하기 위해서는 봉건적 신분제라는 대지에서 탈영토화해야 한다. 신분의 굴레에서 벗어나 만인의 평등, 개체로서의 자유 등 새로운 근대적 주체가 되기 위한 몇 가지 통과제의를 거쳐 한다. 근대적 체제의 확립에 긴 시간이 걸린 유럽의 경우는 말할 것도 없고, 압축적 형태로 근대를 겪은 일본도 짧기는 하지만 이른바 민권주의 시대를 통과했다. 그러나 조선은 일본보다 더 압축적인 방식으로 근대적 궤도에 들어서는 바람에 민권이나 개인의 자유를 사고할 여유를 확보하지 못했다. 유일한 민권주의 시대인 독립협회 활동에서도 개인, 개체의 문제는 계몽의 지평에 떠오르지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러일전쟁 이후 계몽의 수면 위로 급부상한 민족 담론에는 민족을 구성하는 개별 구성원들의 자유나 해방의 문제는 일체 배제되어 있다. (중략( 1909년 11월 21일자 <대한매일신보> 논설 '자기 일신을 위하여 살기를 구하지 말지어다'라는 글이다. 여기서 보듯, 개인주의는 오직 일신을 위해 민족을 망치는 근성으로만 규정되어 있다.-41-42쪽

이 시기에는(20세기초 애국계몽기-인용자 주) 민족과 인종이 그다지 큰 변별성을 지니지 않은 채 혼용되어 쓰였는데, 그 이유는 무엇보다 민족의 핵심적 지표가 인종적 순수함에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뒷날 2차 세계대전의 악몽을 겪으면서, 인종, 인종주의가 파시즘적 악마성과 직접 포개어지기 전까지 이 두 용어는 자연스럽게 넘나들고 있었다. (증략)
위의 글(신채호의 '꿈하늘'-인용자주)의 경우, 매국노, 탐관오리 등과 '적국놈에게 시집가는 년'과 '적국의 년에게 장가가는 놈'들이 유사한 위상으로 취급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거의 폭력에 가까운 등가화인 셈인데, 달리 생각해보면, 이러한 동일서으이 논리에는 인종적 순수함에 대한 높은 가치부여가 전제되어 있다. 그것은 다음 장에서 언급하겠지만, 성 윤리에 대한 태도와도 긴밀히 연관되어 있다.
다른 인종이 섞여서는 절대 안된다는 이런 식의 집착은 우리 민족은 순수한 단일 혈통을 면면히 이어왔다는 역사 관념과 함께 작동한다.-51-5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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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zuaki 2008-12-01 15: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특별히 새로운 이야기는 없었지만, 평소 생각하고 있던 것들이 쉽고도 간결하고 분명한 언어로 정리되어 있는 것을 대하니 기뻤다. 저자가 추천한 책들을 더 읽어봐야겠다. 라이히의 <파시즘의 대중심리>랑 카라타니의 <일본 근대문학의 기원>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