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각사
미시마 유키오 지음, 허호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2년 12월
구판절판


5월의 어느 날, 중학교 선배인, 마이즈루 해군 사관 학교의 생도 하나가 휴가를 받아서 모교에 놀러 왔다. 그는 햇볕에 잘 탄 피부에, 깊게 눌러쓴 제모의 차양 밑으로 멋진 콧날을 드러낸 모습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그야말로 젊은 영웅이었다. 그는 후배들 앞에서 고된 규율투성이 생활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그러면서도 그러한 비참한 생활을 마치 호화롭고 사치스러운 생활을 이야기하는 듯한 어투로 말하는 것이었다. 일거수 일투족이 긍지에 넘쳤고, 젊었음에도 겸손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다. (중략)
"뭐야, 말더듬이야? 자네도 해기(해군기관학교)에 들어오지 않겠나? 말더듬이 따윈, 하루에 두들겨 고쳐 줄 테니."
나는 어쩐 일인지, 얼떨결에 명료한 대답을 했다. 말은 줄줄 흐르듯이,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순식간에 나왔다.
"안 들어가겠습니다. 저는 중이 될 겁니다."
모두들 조용해졌다. 젊은 영웅은 고개를 숙이고는, 그 옆의 풀을 뜯어 입에 물었다.
"그래? 그렇다면 몇 년 후에는 나도 자네의 신세를 지게 되겠군."
그해에는 이미 태평양 전쟁이 시작되고 있었다.-10-11쪽

아버지의 얼굴은 초여름의 꽃들에 묻혀 있었다.꽃들은 여전히 기분 나쁠 정도로 생생하게 살아 있었다. 꽃들은 우물 속을 들여다보고 있는 듯했다. 왜냐 하면, 죽은 사람의 얼굴은 살아 있는 사람의 얼굴이 지니고 있던 존재의 표면으로부터 무한히 함몰되어, 우리들을 향하고 있던 탈의 테두리 같은 것만을 남기고, 두 번 다시 끌어올릴 수 없을 정도로 깊은 곳에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물질이 얼마나 우리들로부터 멀리 존재하며, 그 존재 방법이 얼마나 우리들로부터 소원한가 하는 점을, 죽은 사람의 얼굴처럼 여실히 설명해 주는 것은 없었다. 정신이 죽음에 의하여 이토록 물질로 변모함으로써, 비로소 나는 그러한 국면에 접하게 되었으나, 지금 나에게 서서히, 5월의 꽃들이라든지, 태양, 책상, 학교 건물, 연필.... 그러한 물질들이 어째서 그토록 나에게 서먹서먹하고, 나로부터 먼 거리에 존재하는가,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36쪽

그 해 여름의 금각은, 잇달아 비보가 날아드는 전쟁의 어두운 상황을 재물로, 한결 생생히 빛을 발하는 것처럼 보였다. 6월에는 이미 미군이 사이판에 상륙하였고, 연합군은 노르망디의 벌판을 질주하고 있었다. 관람객의 숫자도 눈에 띄게 줄어들어, 금각은 이 고독, 이 정적을 즐기고 있는 듯이 보였다.
전란과 불안, 수많은 시체와 엄청난 피가, 금각의 미를 풍족하게 만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원래 금각은 불안이 세운 건축, 한 사람의 장군을 중심으로 수많은 어두운 마음의 소유자들에 세운 건축이었던 것이다. 미술사가가 양식의 절충밖에 발견하지 못한 3층의 부조화한 설계는, 불안을 결정화할 양식을 추구하여, 자연히 그렇게 만들어진 것임에 틀림없었다. 만약 금각이 하나의 양식으로 세워진 건축이었더라면, 그 불안을 포섭하지 못하고 일찌감치 붕괴되어 버렸으리라.-40쪽

금각에 대한 나의 기묘한 집념을 털어놓은 상대는 오로지 쓰루카와 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듣고 있는 쓰루카와의 표정에는, 나의 더듬거리는 말을 알아들으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초조감이 있을 뿐이었다. 나는 이러한 얼굴에 직면한다. 중요한 비밀을 고백핳ㄹ 때에도, 미에 대한 격렬한 감동을 호소할 때에도, 자신의 내장을 꺼내어 보여주는 듯한 경우에도, 내가 직면하는 것은 이러한 얼굴이다. 인간은 평소에 인간을 향하여 이러한 얼굴을 보이면 안 된다. 그 얼굴은 더할 나위 없이 충실히, 나의 우스꽝스러운 초조감을 그대로 흉내내어, 마치 나의 무시무시한 거울처럼 변하여 있었다. 아무리 잘생긴 얼굴이라도, 그럴 때에는, 나와 똑같이 추한 얼굴로 변모한다. 그것을 본 순간, 내가 표현하려고 생각했던 중요한 것들은, 기왓장이나 다를 바 없는 무가치한 존재로 전락하고 만다......-47쪽

나를 태워 죽일 불이 금각도 태워 없애 버리리라는 생각은, 나를 거의 도취시켰다. 똑같은 재앙, 똑같은 불의 불길한 운명 아래에서, 금각과 내가 사는 세계는 동일한 차원에 속하게 되었다. 나의 연약하고 보기 흉한 육체와 마찬가지로, 금각은 단단하면서도 불타기 쉬운 탄소의 육체를 지니고 있었다. (중략)
쇼와 19년(1944) 11월, B29의 도쿄 폭격이 있던 당시는, 교토 역시 내일이라도 공습을 당할 듯이 여겨졌다. 교토 시 전체가 불에 휩싸이는 것이, 나의 은근한 꿈이 되었다. (중략)
내일이야말로 금각이 불타리라.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는 그 형태가 사라지리라...... 그 순간 꼭대기의 봉황은 불사조처럼 되살아 날아가리라. 그리고 형태에 속박되어 있던 금각은, 가벼운 몸놀림으로 닻에서 벗어나 도처에 모습을 나타내어, 호수 위에도, 어두운 바다의 조수 위에도, 희미한 빛을 흩뿌리며 자유로이 떠돌아다니겠지......-50-52쪽

종전 선언을 듣고, 도쿄라면 황궁 앞으로 가겠지만, 교토에서는 아무도 없는 어소(御所) 앞에 눈물을 흘리러 간 사람들이 많았다. 교토에는 이러한 때에 눈물을 흘리러 갈 만한 신사나 불당이 많다. 어느 곳이나 그날은 붐볐음에 틀림없다. 하지만 역시 금각사에 오는 사람은 없었다.
뜨거운 돌맹이 위에는, 그리하여 내 그림자만이 있었다. 금각이 저쪽에 있고, 나는 이쪽에 있다고 하는 편이 옳으리라. 이날의 금각을 첫눈에 본 순간부터, 나는 '우리들'의 관계가 이미 변하였다고 느꼈다.
패전의 충격, 민족적 비애 따위에는 금각은 초연하였다. 혹은 초연을 가장하고 있었다. 어제까지의 금각은 이렇지 않았다. 결국 공습으로 불타지 않았다는 사실, 오늘 이후로는 이미 그러한 걱정이 없다는 사실, 이러한 사실들이 금각으로 하여금 다시금 '옛날부터 나는 여기에 있었고, 미래에도 영원히 여기에 있으리라.'는 표정을 되찾게 하였음에 틀림없다.-68쪽

나는 산노미야에 있는 선사(禪寺)의 자식으로, 날 때부터 안짱다리였어. (중략) 나는 자신의 존재 조건에 대해서 부끄럽게 생각했지. 그 조건과 화해해서, 사이좋게 지내는 건 패배라고 생각했어. 원망하자면 끝이 없지. 부모님은 내가 어렸을 때, 교정 수술을 해 주어야 했어. 이제는 이미 늦었지. 하지만 나는 부모님에 대해서 무관심했고, 더구나 원망한다는 건 마음이 내키지 않았지.
나는 절대로 여자들한테서 사랑받지 못하리라고 믿었어. 이건 남들이 상상하는 것보다, 안락하고 평화로운 확신이라는 건, 아마 너도 알고 있는 바와 같아. 자신의 존재 조건과 화해하지 않겠다는 결심은 이 확신과 반드시 모순되지는 않아. 왜냐 하면, 만약 내가 이대로의 상태에서 여자에게 사랑받을 수 있다고 믿는다면, 그만큼, 나는 자신의 존재 조건과 화해하는 게 되기 때문이지. 나는 현실을 정확히 판단하는 용기와, 그 판단과 싸울 수 있는 용기는, 쉽사리 가까워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지. 가만있으면서도 나는 싸우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던 거야.
이러한 내가, 친구들처럼 몸파는 여자를 상대로 동정을 버리려고 하지 않았던 것은 당연하다고 해야 하겠지.
(아래 계속)-100-102쪽

(위에서 계속)
(중략) 사지가 멀쩡한 사내와 내가, 같은 자격으로 받아들여진다는 사실이 참을 수 없었어. 그건 나에게 있어서 엄청난 자기 모독으로 여겨졌거든. 내가 안짱다리라는 조건이 간과되고 무시된다면 나의 존재는 사라지고 만다는, 네가 지금 지니고 있는 것과 같은 공포에 나도 사로잡혀 있었던 거야. (중략)
우리들과 세계를 대립 상태로 만드는 무서운 불안은, 세계이건 우리들이건 어느 쪽인가가 변하면 해소되겠지만, 변화를 꿈꾸는 몽상을 나는 증오해. 하지만, 세계가 변하면 나는 존재하지 않고 내가 변하면 세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논리적으로 밝혀낸 확신은 오히려 일종의 화해, 일종의 융화와도 비슷하지. 있는 그대로의 내가 사랑받지 못한다는 생각은 세상과 공존할 수 있기 때문이야. 그리고 불구자가 결국에 빠져드는 함정은, 대립 상태의 해소가 아니라, 대립 상태의 전적인 시인이라는 형태로 나타나지. 그러니까 불구는 불치가 되는 거야......-100-102쪽

너는 육체의 자각이라면, 일정한 질량을 지닌 불투명하고 확고한 '물체'에 관한 자각을 상상하겠지. 나는 그렇지 않았어. 내가 일개의 육체, 일개의 욕망으로서 완성된다는 사실, 그것은 내가 투명한 것, 보이지 않는 것, 즉 바람이 되는 일이었거든. 하지만 안짱다리가 곧바로 나를 저지하러 오지. 이것만은 절대로 투명해지는 일이 없다구. 그건 다리라기보다는 하나의 완고한 정신이었거든. 그건 육체보다도 훨씬 확고한 '물체'로서 그곳에 존재하고 있었지. 거울을 보지 않으면 자신이 보이지 않는다고 사람들을 생각하겠지만, 불구라는 사실은 언제나 눈앞에 놓여 있는 거울이야. 그 거울에 종일, 내 전신이 비치고 있지. 망각은 불가능해. 그러니까 나에게는 세상에서 말하는 불안 따위는 어린애 장난처럼 보일 뿐이지. 불안은 없어. 내가 이렇게 존재하고 있는 건 태양이나 지구나 아름다운 새나 보기 흉한 악어가 존재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확실한 거지. 세계는 비석처럼 움직이지 않아.-105쪽

가시와기를 깊이 알게 되면서 느낀 사실이지만, 그는 오랫동안 지속되는 미를 싫어하였다. 곧바로 사라지는 음악이라든지, 수일 후에 시드는 꽃꽂이라든지, 그의 취향은 그러한 것들에 한정되어 건축이나 문학을 싫어하였다. 그가 금각에 온 것도 달이 비치는 동안의 금각을 찾아서 온 것임에 틀림없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음악의 미는 얼마나 불가사의한 것인가! 취주자가 성취하는 그 일순간의 미는 일정한 시간을 순수한 지속으로 바꾸어 확실히 반복되는 것이 아니라 하루살이와 같은 단명의 생물처럼 생명 그 자체의 완전한 추상이며 창조였다. 음악만큼 생명과 유사한 것은 없었고, 똑같은 미라 하더라도, 금각만큼 생명으로부터 멀리 떨어져서 생을 모욕하고 있는 듯이 보이는 미는 없었다. (중략)
(아래에 계속)-147-148쪽

(위에서 계속)
가시와기가 미로부터 요구하는 것은 분명히 위로는 아니었다! 은연중에 나는 그것을 알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의 입술로 퉁소의 취구에 불어넣은 숨결이 잠시 동안 공중에서 미를 성취시킨 뒤에, 자신의 안짱다리와 어두운 인식이 이전보다도 더욱 선명하게 남게 되는 것을 사랑하였던 것이다. 미의 미익함, 미가 자신의 체내를 관통하여 흔적도 남지 않는다는 것, 그것이 절대로 아무것도 변화시키지 못한다는 것....... 가시와기가 사랑한 것은 그것이었다. 미가 나에게 있어서도 그러한 것이었다면, 내 인생은 얼마나 홀가분하였을까?-147-148쪽

노사가 선택한 공안(公案)은 무문관 제14칙의 남천참묘(南泉斬猫)였다.(중략)
당나라 시절, 지주의 남천산에 보원선사라는 명승이 있었다. 산 이름을 따서 남천 스님이라 불렸다. 절간 승려들이 모두 나와서 풀베기를 하고 있을 때, 이 한적한 산 속 절간에 한 마리의 새끼 고양이가 나타났다. 신기한 느낌에 모두가 달려들어 이것을 사로잡았으나, 그만 동서 양당의 다툼이 벌어졌다. 양당은 서로가 이 새끼 고양이를 자기네가 키우겠다고 다툰 것이다. 그것을 보고 있던 남천 스님은 당장에 새끼 고양이의 목덜미를 잡고 풀 베는 낫을 들이대며 이렇게 말하였다.
"너희들이 올바른 해결책을 구하면 살려 줄 것이고, 구하지 못하면 즉각 베어 버리겠다."
중들은 대답이 없었다. 남천 스님은 새끼 고양이를 베어 버렸다. 날이 저물어, 수제자인 조주가 돌아왔다. 남천 스님은 사건의 전말을 설명하고는 조주의 의견을 물었다. 조주는 곧바로 신고 있던 신발을 벗어서 머리 위에 올린 채 나가 버렸다. 남천 스님은 탄식하며 말했다.
"아아, 오늘 네가 있었더라면 고양이 새끼도 목숨을 건졌을 텐데."-70-71쪽

"'남천참묘'라."하고 가시와기는, 속새풀의 길이를 재어, 수반에 대어 보며 대답하였다. "그 공안은 말이야, 그건 사람의 일생에, 갖가지 형태로 모양을 바꾸어 몇 번이고 나타나는 거지. 그건 기분 나쁜 공안이야. 인생의 전환점에서 마주칠 때마다, 똑같은 공안이 모습도 의미도 바뀌어 있거든. 남천 스님이 베어 버린 그 고양이가 예사롭지 않지. 그 고양이는 아름다웠단 말이야. 알아? 이를 데 없이 아름다웠지. 눈은 금빛에 털에는 윤기가 흘렀고 그 작고 부드러운 몸에 이 세상의 모든 향락과 미가 용수철처럼 구부려진 채 간직되어 있었지. 고양이가 미의 결정체였다는 사실을 대부분의 해석자들이 간과하고 있지. 바로 나를 제외하고 말이야. 그런데 그 고양이는 느닷없이 숲 속에서 뛰쳐나와 마치 고의적인 듯이 상냥하고 교활한 눈빛을 반짝이다가 붙잡혔지. 왜냐 하면 미는 아무에게나 몸을 맡기지만 그 누구의 것도 아니니까. 미라는 것은 마치, 뭐라고 할까, 충치와도 같은 거야. 그건 혀에 닿아 신경 쓰이고 아프게 하면서 자신의 존재를 주장하지. 더 이상 아픔을 견딜 수 없게 되면 치과 의사에게 뽑아 달라고 하지. (아래에 계속)-152-153쪽

(위에서 계속) 피투성이의 자그마한 갈색의 더러운 이빨을 자신의 손바닥에 올려놓고 보며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겠지. '이건가? 고작 이런 거였나? 나에게 통증을 주고 나를 끊임없이 그 존재 때문에 고민하게 만들며 또한 나의 내부에 단단한 뿌리를 내리고 있던 것이 지금은 죽어 버린 물질에 불과하군. 하지만 그것과 이것이 정말로 같은 것일까? 만약 이것이 원래 나의 외부 존재였다면 어째서 무슨 인연으로 나의 내부와 연결되어 내 통증의 근원이 될 수 있었을까? 이놈이 존재하는 근거는 뭘까? 그 근거는 나의 내부에 있을까? 아니면 그 자체에 있었을까? 하여튼 나에게서 뽑혀 나와 내 손바닥 위에 놓인 이놈은, 이건 분명 별개의 것이지. 결코 그것이 아니야.' (아래에 계속)-152-153쪽

(위에서 계속)
알겠나? 미란 그런 거야. 그러니까 고양이를 벤 것은 마치 아픈 충치를 빼내서 미를 척결한 것처럼 보이지만, 정말로 그것이 최후의 해결책이었는지는 알 수 없어. 미의 뿌리는 근절되지 않았고, 설령 고양이는 죽었어도 고양이의 아름다움은 죽지 않았을지도 모르니까. 그러니까 이토록 해결이 안이했던 것을 풍자해서 조주는 그 머리에 신발을 올려 놓았지. 그는 말하자면 충치의 아픔을 참는 이외에는 해결책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거야."
이것은 그야말로 가시와기 특유의 해석이었지만, 그것은 아마도 나에게 빗대어, 나의 내심을 꿰뚫어보고는 해결책이 없음을 풍자하고 있는 듯이 여겨졌다. 나는 처음으로 가시와기에게서 진정한 두려움을 느꼈다. 잠자코 있기가 두려웠기에 다시 되물었다.
"너는 그러면 어느 쪽이냐? 남천 스님이냐, 아니면 조주냐?"
"글쎄, 어느 쪽일까. 지금으로서는 내가 남천이고 네가 조주지만, 언젠가는 네가 남천이 되고 내가 조주가 될지도 몰라. 이 공안은 그야말로 '고양이 눈처럼' 변하니까."-152-15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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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zuaki 2008-02-22 14: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대문 방화 사건을 계기로 96에서 97년으로 넘어가는 겨울에 읽은 금각사를 다시 읽기 시작. 미시마 대단하구나~ 천재구나~ 감탄하면서 즐겁게 읽었다. 우익을 자처하려면 미시마 정도는 돼야지. 2MB와 조중동과 기타 사이비들은 반성할지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