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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이 필요한 순간 - 경제학은 어떻게 사람을 살리는가
김현철 지음 / 김영사 / 2023년 9월
평점 :
현대 경제학의 트렌드를 알 수 있어서 유익했다. 실험과 데이터를 중시하는, 자연 과학 스타일의 경제학 연구 성과들을 알기 쉽게 소개해 준다.
<덧붙임>
저자의 강연을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독서,예술, 스포츠를 포함한 다양한 학교 활동을 강조하고, 수능에 대해서는 굉장히 적대적으로 말하더라. 본인처럼 예술, 체육 성적을 포함한 내신 성적 전교1등을 간단하게 하는 게 불가능한, 재능이 부족한 사람들에게, 수능이 얼마나 소중한 기회인지 전혀 이해를 못 하는 것 같았다. 본문 내용 중에 육아 비용이 너무 비싸다면서, 50대-60대 저학력 여성인 육아 도우미가 30대 대졸 여성 평균보다 더 많은 임금을 받는 것을 비판하는 부분도 그렇고, 인간의 개인적인 경험들이 만들어내는 무지와 편견은 극복하기가 무척 어렵다는 것을 실감했다.
경제학은 2000년대 들어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했습니다. 양질의 데이터와 연구 방법론의 발전은 실증 경제학 연구의 신뢰성을 크게 발전시켰죠. 이를 소위 경제학의 ‘신뢰성 혁명 Credibility Revolution’이라 부릅니다. 신뢰성 혁명은 우선 양질의 데이터가 확보될 수 있기에 가능했습니다. 선진국뿐 아니라 개발도상국에서도 우수한 데이터가 급격히 증가했습니다. 또 ‘자연 실험 Natural Experiment’이나 ‘사회 실험 Field Experiment’과 같은 기법을 이용하여, 정책 혹은 프로그램의 인과성을 입증하는 연구가 발전을 거듭했습니다. 이에 하버드대학교의 저명한 경제학자인 라즈 체티 Raj Chetty는 "경제학은 과학이다"라는 글을 ‘뉴욕타임스’에 기고했습니다. 가용한 데이터가 늘어남에 따라, 경제학은 더욱 실증적이고 과학적인 분야가 되어가고 있다고 이야기했죠. - P17
우리나라 정부가 시행하는 수많은 프로그램 중 어떤 것이 작동하고, 어떤 것이 작동하지 않는지에 대한 근거는 대부분 부족합니다. 당위와 직관이 아닌 데이터와 근거에 기반한 정책을 만들어야 합니다. 마치 의사가 환자의 상태를 면밀히 조사해 진단한 후, 의학적 근거에 기반해 치료하듯이 말입니다. 암세포만을 떼어내는 외과 의사의 날카로운 칼과 같은, 사람을 살리는 정책을 만드는 일에 이 책이 기여했으면 좋겠습니다. - P21
제 책을 읽으시는 분들은 아마도 크고 작은 성취를 이룬 분들일 것입니다. 어렵게 살고 계신 분들은 한가하게 독서할 시간조차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겠죠. 아이에게 이렇게 이야기해주셔도 좋겠습니다. "인생 성공의 8할이 운이래. 우리 가족의 성취도 사실 대부분 운이야. 우리의 힘으로만 이룬 게 아니니까 겸손하게 살아야 해. 그리고 실패했다고 생각해도 좌절하지 말자. 운이 좀 나빴던 것뿐이야. 또 운이 나빴던 사람들을 적극적으로 도우며 살자꾸나. 혹시 스스로 성취한 것처럼 자랑하는 사람이 있으면 부러워하지 말고 불쌍히 여기렴. 착각 속에 사는 사람이니까." - P30
자녀가 잘못했을 때, 어떤 부모는 "우리 애가 원래는 착한데 친구를 잘못 만나서 이렇게 됐어"라고 안타까워하기도 합니다. 물론 나쁜 친구의 영향도 있겠지만, 서로 친해져서 사고를 치는 아이들은 애초에 유유상종인 경우도 많은 게 사실입니다. 또 교육열 높은 부모는 자식이 공부 잘하는 친구를 만나길 원하기도 합니다. 공부를 잘하는 학생의 친구는 공부를 잘할 확률이 높으니까요 (연관성). 그런데 공부 잘하는 친구의 영향을 받아 성적이 오른 것인지 (친구 효과), 두 사람이 공유한 특성 때문에 서로 친구가 될 것인지 (유유상종) 쉽게 구분이 되질 않습니다. 만일 유유상종의 힘이 친구 효과를 아보한다면 이러한 부모의 바람은 별 소용없는 일일 것입니다. 인과성, 그러니까 ‘친구 효과’를 밝혀낸 최초의 실마리는 대학 룸메이트 연구에서 시작되었습니다. - P90
하위권 학생의 경우 같은 반에 상위권 학생이 늘어나도 성적에 큰 변화가 없습니다. 반면 상위권 학생은, 비슷하게 공부 잘하는 친구들이 늘어나면 큰 자극을 받아 성적이 오릅니다. 전교 1등은 전교 2등과 짝을 이뤘을 때 성적이 가장 많이 오릅니다. 하위권 학생들은 오히려 중위권 학생이 많아질 때 성적이 오르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 P94
특별히 해고될 염려도 거의 없고, 자리를 지키고 있는 한 임금이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연공제의 폐해가 큽니다. 젊은 세대한테 지나치게 불리한, 공정하지 못한 제도입니다. 운 나쁘게 실직한 사람들이 새로운 직장을 찾기에도 불리해 실직의 부정적 영향이 커집니다. 기업의 경쟁력에도 부정적 영향을 줄 수밖에 없지요. 다만, 동시에 실직해도 큰 걱정이 없는 세상이 되어야 합니다. 사회안전망을 크게 강화해야 합니다. 서울시에서 시범 사업 중인 ‘안심 소득’은 확실하게 소득을 보장합니다. 가령 소득이 없는 3인 가구에 월 170만 원을 지급합니다. 유연한 노동시장을 통해 기업은 능력 있는 노동자를 고용할 수 있고 경쟁력을 높이며, 국가는 충분한 소득 보장을 제공하는 방향으로 사회가 발전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 P107
그렇다면 육아가 조부모의 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어떻게 측정할 수 있을까요? 손주를 돌보는 조부모와 그렇지 않은 조부모의 건강을 비교하면 될까요? 답은 ‘아니요’입니다. 왜냐하면 건강한 노인이 손주를 돌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픈 노인은 아무래도 애초에 손주를 돌보기가 어렵겠죠. 즉, 우리는 ‘육아-건강’ 채널을 알고 싶지만, 그 반대로 ‘건강-육아’ 채널이 동시에 존재하고 있는 겁니다. 이렇게 두 집단을 비교하는 (틀린) 방법으로 분석을 해보면, 손주를 돌보는 조부모는 건강해진다고 잘못 이해하게 되죠. 건강하니까 손주를 돌볼 수 있는 것인데 말입니다. 이를 학술 용어로 ‘역인과관계 Reverse Causality’라고 합니다. - P112
부모님이 편찮으셔서 전담 간병인을 고용하고자 하면 월 평균 300-400만 원 정도 비용이 든다는 사실에 많은 분들이 깜짝 놀랍니다. 입주 육아 도우미의 비용도 비슷한 수준입니다. 반면 대한민국 30대 여성의 중위소득은 320만 원 정도입니다. 대부분 학력 수준이 상대적으로 낮은 50-60대 이상 돌봄 노동자의 임금이 평균 대졸 30대 여성의 임금보다 큽니다. 돌봄 노동자 공급 부족에서 나온 기현상입니다. - P131
정책은 설계 단계인 타당성 조사와 시범 사업에서부터 그 효과를 충분히 입증한 뒤 시행해야 합니다. 가령 정부가 성적 장학금 제도를 도입하려 한다면, 제가 했던 것과 같이 먼저 소규모 실험을 해보는 것입니다. 만일 실패한다면 다른 방법을 찾으면 됩니다. 그러나 우리 현실은 이상과 거리가 멉니다. 수많은 정책을 당위와 직관, 빈약한 증거를 토대로 도입합니다. - P159
지금까지 국민의 부담을 줄여주려는 선한 의도를 가진 보장성 확대 정책의 장단점을 생각해보았습니다. 많은 사람이 혜택을 보는, 경증 질환 치료를 저렴하게 하는 정책은 필요성이 낮지만 선거 기간 표심에 영향을 줍니다. 반면 소수의 사람이 혜택을 보고 목돈이 드는, 중증 질환 치료비를 줄여주는 정책은 꼭 필요하지만 득표에 별 도움이 되지 않죠. 그 탓에 건강보험이 가장 아픈 사람을 충분히 보호하는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한계를 넘어설 수 있도록, 정책 입안자와 국민의 분별력 있는 의지가 필요합니다. - P184
이 연구는 생산성 높은 사람들이 ‘고임금, 주 5일’ 직장으로 몰리고, 생산성 낮은 사람들이 ‘저임금, 주 4일’ 직장으로 분포되는 현상을 예측하게 합니다. 생산성 낮은 사람들이 몰리는 ‘저임금, 주 4일’ 회사는 장기적으로 생산성이 더 낮아져 생존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 P221
여성 전용 주차장도 오답입니다. 정답은 어린아이와 노약자 동반 가족을 위한 주차장입니다. 남녀 모두가 혜택을 누릴 수 있기에 불필요한 젠더 갈등이 생길 여지가 없습니다. 하지만 돌봄을 주로 여성이 담당하는 현실이니 대부분의 혜택은 여성이 누릴 것입니다. - P234
팬데믹 대처 과정에서 정부 및 언론의 국민과의 의사소통도 문제였습니다. 우리는 코로나19 감염 사례와 사망 보도를 거의 매일 접하면서 살았습니다. 그 결과 코로나19의 위험을 실제보다 훨씬 크게 인식했죠. 이를 ‘노출 효과’ 혹은 ‘가용성 편향 availability bias’이라고 부릅니다. 실제로 대다수 국민이 일반 폐렴, 자살, 교통사고보다 코로나19의 위험을 크게 인식했을 겁니다. 이런 편향된 인식은 이를 대비하는 정책에도 잘못된 영향을 줍니다. 정부가 국민의 가장 중요한 위험에 대처하기보다는 사람들이 가장 큰 두려움을 해소하는 데 역량을 집중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 P238
놀랍게도 우리에게는 학생들의 학력과 관련한 체계적인 자료가 부재합니다. 사실 전국 단위 시험 결과가 있어야 하는데, 우리나라의 유일한 전국 단위 시험인 학업 성취도 평가는 중학교 3학년과 고등학교 2학년을 대상으로 하고, 그나마도 전체가 아닌 3% 샘플입니다. 더구나 초등학생은 전국 단위 시험이 없어 등교 제한이라는 전무후무한 사건이 벌어졌는데도 그것이 학생들의 학업 성취에 미친 영향을 알 길이 없습니다. 학생들에게 지나친 시험 부담을 주는 것은 문제지만,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며 저는 적어도 1-2 년에 한 번씩 학생들의 성취를 체계적으로 수집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울러 학생들의 학력뿐만 아니라 이른바 비인지 기능(가령 사회성, 끈기 등)에 대한 체계적 조사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P255
요약하면, 우리나라에서의 등교 제한은 고등학생의 ‘평균’ 학업 성취도를 낮추지 않았지만 학습 불평등은 증가시켰습니다. 잘하는 친구들은 더 잘하고, 못 하는 친구들은 더 못 하게 되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완벽하게 알 수는 없지만 다음과 같은 추론이 가능합니다. 상위권 학생들에게 공교육은 애초에 사교육 같은 대체 학습에 비해 효과적이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기에 팬데믹으로 등교하지 않는 동안 본인 수준에 맞는 공부를 해서 성적이 올랐을 수 있습니다. 또 상위권 학생의 부모는 이 기간 아이들의 학업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섰을 것입니다. 반면 하위권 학생들에게 등교는 공부할 수 있는 ‘최소한의’ 환경을 제공합니다. 학교를 가지 않으니 학업에 손을 놓아버렸을 수 있습니다. 부모가 교육에 적극적일 가능성도 낮습니다. - P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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