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베일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37
서머셋 모옴 지음, 황소연 옮김 / 민음사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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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가 술술 넘어가는 읽기 편한 책. 어리석고 경박하다고 자신을 비난하는 것은 공평하지 않다는 키티의 항변은 어리석고 경박한 사람의 말 치고는 너무 지혜로워 보여서 좀 어색했다. 인간이란 게 원래 이렇게 일관성이 없는 존재인 걸까? 다른 등장인물들에 비해서 키티라는 인물이 유독 일관성이 없이 튀는 느낌이어서, 작가 자신이 여성 인물을 잘 이해 못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찰스 타운센트나 월터 페인을 해부대에 펼쳐놓듯이 보여주는 데 비해서, 키티는 뭔가 알듯말듯하다. 

"내가 어리석고 경박하고 천박하다고 해서 날 비난하는 건 공평하지 않아요. 난 그렇게 자랐어요. 내가 아는 모든 여자들은 다 그래요. ....교향곡 연주회가 지루하다는 사람에게 음악에 대한 기호가 없다고 힐책하는 것과 같아요. 내가 갖지 못한 품성을 내 탓으로 돌리고 나를 비난하는 게 공평한가요? 난 내가 아닌 존재인 척하면서 당신을 속이려고 한 적 없어요. 난 그냥 예쁘고 명랑해요. 장터 노점에서 진주 목걸이나 담비 외투를 찾지 마요. 주석 트럼펫이나 장난감 풍선을 찾으라고요." - P182

키티는 매일 워딩턴을 만났다. 워딩턴이 하루 일과를 끝내고 언덕을 어슬렁거리며 올라와 페인 부부의 방갈로를 찾았던 것이다. 그렇게 일주일이 흐르자 다른 상황에서라면 1년은 족히 걸려 생겼을 친밀감이 그들 사이에 싹텄다. 한번은 키티가 그가 없으면 어떻게 지내야 할지 막막할 거라고 말하자 그가 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현실의 땅 위에 조용하고도 평화롭게 걸어다니는 사람은 부인과 내가 유일합니다. 수녀들은 하늘 위를 걷고 당신의 남편은.... 암흑 속을 걷죠." - P145

그(인용자주-워딩턴)는 (중국학을 날뛰는 산토끼처럼 미친 학문이라고 욕하며) 자신이 중국어 학자가 아니라고 부인했지만 중국말을 자유자재로 구사했다. 그는 글은 거의 읽지 못했지만 일상 대화 속에서 말을 배웠다. 그래서 가끔 키티에게 중국 소설이나 중국 역사 속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는데, 다소 우쭐대는 농담조로 말하긴 했어도 그것들은 꽤나 재미있고 애정이 담겨 있었다. 아마도 그는 유럽 인들이 야만적이고 그들의 삶은 어리석다고 여기는 중국인의 시각을 무의식적으로 차용한 듯했다. 현명한 사람이라면 그 어리석음 속에서 진실을 구분해 낼 수 있다는, 중국에서나 통할 법한 생각이었다. 한번 눈여겨볼 가치가 있는 생각이었다. 키티는 중국인들에 대해서라면 퇴폐적이고 더럽고 입에 담기도 싫은 족속이라는 말 빼고는 들은 적이 없었다. 그녀는 마치 커튼의 한쪽 끝이 들어 올려진 틈새고 꿈에서도 본 적 없는 다채롭고 장대한 세상을 언뜻 본 것만 같았다. - P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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