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읽은 소설 중에 기형도의 <입 속의 검은 잎>을 꽤 길게 다룬 글이 있었는데, 작가도 제목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생각나는 건 '열사의 장례식' 어쩌고 하는 문구 뿐. 그 소설을 읽고 기형도란 시인이 궁금해서 친구 방에서 시집을 빌린 게 대학교 3학년 때던가? 그 때는 무슨 시들이 이렇게 어려워 하는 생각밖에 안 들었는데, 오늘 찾아 읽은 <입 속의 검은 잎>은, 왠걸, 너무 좋다.
이 시에 나오는 '열사'의 이름이 이한열이라는 얘기를 어디서 들은 것 같아 어떤 사람인지 인터넷으로 찾아 보았다. 6월 항쟁 기념 사이트를 뒤적뒤적 읽고 있는 동안 잊고 있었던 옛 기억이 하나씩 떠오르기 시작했다. 도로를 꽉꽉 메운 교통 체증과 최루탄의 매운 냄새...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는 대학 캠퍼스 안에 있어서 데모가 있는 날은 오전 수업만 했다. 절대 다른 데 기웃거리지 말고 곧바로 집에 가라는 선생님의 당부를 뒤로 하고 교문을 나서며, 나는 "공부는 안 하고 데모만 하는" 대학생들을 소리 높혀 욕했다. 그 때는 그래야 하는 것으로 알았다. 엄마는 박종철의 고문 과정을 생생하게 묘사해 주며 "네가 쓸 데 없는 소릴 하고 다니면 엄마 아빠가 잡혀 가서 그렇게 고문을 당하게 된다"는 말로 어린 나를 겁에 질리게 했다. 그 위협의 효과는 꽤 오래 가서, 대학 시절에도 나는 정치 운동 비슷한 냄새만 나면 바짝 얼어서 도망 다녔다.
권력의 야만 앞에 피 흘리며 쓰러졌을 때, 박종철과 이한열은 대학교 2학년이었다. 영원한 스무 살로 남아 있는 그들의 얼굴은 아무래도 아이 같기만 해서 가만히 들여다 보고 있노라면 가슴이 아파 온다. 미안하다. 그 때는 몰라서 미안하다. 오늘에 이르기까지 알려고도 하지 않아서 미안하다. 그 때도 겁쟁이였고 지금도 겁쟁이인 나 자신이 너희의 아름다운 젊은 얼굴 앞에서 그저 부끄러울 뿐이다.

입 속의 검은 잎
-기형도
택시 운전사는 어두운 창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이따금 고함을 친다, 그때마다 새들이 날아간다
이곳은 처음 지나는 벌판과 황혼,
나는 한번도 만난 적 없는 그를 생각한다
그 일이 터졌을 때 나는 먼 지방에 있었다
먼지의 방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문을 열면 벌판에는 안개가 자욱했다
그 해 여름 땅바닥은 책과 검은 잎들을 질질 끌고 다녔다
접힌 옷가지를 펼칠 때마다 흰 연기가 튀어나왔다
침묵은 하인에게 어울린다고 그는 썼다
나는 그의 얼굴을 한 번 본 적이 있다
신문에서였는데 고개를 조금 숙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일이 터졌다, 얼마 후 그가 죽었다
그의 장례식은 거센 비바람으로 온통 번들거렸다
죽은 그를 실은 차는 참을 수 없이 느릿느릿 나아갔다
사람들은 장례식 행렬에 악착같이 매달렸고
백색의 차량 가득 검은 잎들은 나부꼈다
나의 혀는 천천히 굳어갔다, 그의 어린 아들은
잎들의 포위를 견디다 못해 울음을 터뜨렸다
그 해 여름 많은 사람들이 무더기로 없어졌고
놀란 자의 침묵 앞에 불쑥불쑥 나타났다
망자의 혀가 거리에 흘러 넘쳤다
택시운전사는 이따금 뒤를 돌아다본다
나는 저 운전사를 믿지 못한다, 공포에 질려
나는 더듬거린다, 그는 죽은 사람이다
그 때문에 얼마나 많은 장례식들이 숨죽여야 했던가
그렇다면 그는 누구인가, 내가 가는 곳은 어디인가
나는 더 이상 대답하지 않으면 안 된다, 어디서
그 일이 터질지 아무도 모른다, 어디든지
가까운 지방으로 나는 가야 하는 것이다
이곳은 처음 지나는 벌판과 황혼,
내 입 속에 악착같이 매달린 검은 잎이 나는 두렵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