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배 행성 환상문학전집 6
어슐러 K. 르귄 지음, 이수현 옮김 / 황금가지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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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소설을 단순한 로맨스로만 볼 수는 없을테지만, 로미오와 줄리엣이 그랬듯이, 서로를 '외계인'이라 부르는 두 종족 사이에 한 종족의 지도자와 다른 종족의 족장의 딸이 사랑에 빠진다.
 수가 적고, 나중에 온 종족은 '로캐넌'의 후예들이다. <로캐넌의 세계>에서 천년쯤 지난 후의 후손들.
수가 많은 종족들은 그 행성에 오래도록 살고 있던 종족으로 나중에 온 종족인 인간은 그들을 '힐브'라고 부른다.
 이들 세계에서는 한 계절이 60년이다. 가을의 추수기에서 시작하여 혹한의 겨울을 맞이하는 두 부족은 공동의 적인 가알족을 맞이하여 협력을 하기로 한다. 170여페이지 정도의 짧은 분량이지만, 이야기는 거대하고, 강렬하다.

텔레파시는 <로캐넌의 세계>에 이어 <유배 행성>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랬죠. 그리고 당신도 내게 마음으로 말했지요. 한 번, 우리 집에서. 두 사람 사이에서 가끔 일어나는 일이에요. 서로에 대한 방어막도, 장애물도 없는 두 사람."
그는 차를 마시고 생각에 잠긴 눈을 긴 벽을 따라 보이는, 태양과 반짝이며 회전하는 세계들의 문양을 쳐다보았다.
"두 사람이 서로를 사랑해야 가능한 일이죠. 반드시... 나는 가알에게 나의 두려움이나 증오를 보낼 수 없어요. 그들은 듣지 않을 거예요. 하지만 당신에게는 보낼 수 있고, 당신을 죽일 수도 있죠. 당신도 마찬가지고요. 롤레리..."

<로캐넌의 세계>가 고립의 이야기였다면, <유배행성>은 고립, 유배, 적응과 융화에 대한 이야기이다. 3부작중 마지막인 <환영의 도시>에는 이 모든 이야기들이 나와 삼부작은 일종의 변증법을 구성한다고 볼 수 있다고 한다. <유배행성>이 적응과 융화에 관한 이야기라면, 그 중심에 놓여 있는 롤레리와 아가트는 두 부족을 합하게 하는 구심점이다. 서로 다른 둘이 융합된다는 것. '서로를 사랑해야 가능한 일' , 서로에 대한 방어막도 장애물도 내려야 가능한 일. 그것은 개인과 개인의 일이기도 하고, 부족과 부족의 일이기도 하다.

묵직한 주제를 담고 있는 이야기지만, 그 이야기를 구성하는 말들과 사람들은 여전히 아름답다.
롤레리의 부족, 늙은 족장 월드. 급진적인 우막수만, 유배된 인간족의 우월한 인간들,
북쪽에서 몰려오는 야만족과 사나운 동물 눈가울에 이르기까지 예사롭지가 않다.

아주 나이가 많은 힐브족을 제외하곤 처음 맞이하는 겨울(한 계절이 60년이니) , 그리고 행성에 머무른지 이제 5년이 지난 인간들(행성에서의 1년은 그들 세계의 100년이다.) 난생 처음 보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눈. 거친 바다, 그 가운데 검은탑과 밀려오는 파도(밀물).. 가울족을 맞아 힘을 합해 싸우며, 성을 수성하는 두 부족. 단순한 이야기에 곰곰히 생각해볼만한 주제와 강렬한 에피소드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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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사고 싶은데, 국내에 파는 곳이 없다.
딱 한군데 있는데, 그곳이 리브로이니.. 어찌나 믿음직한지. (그냥 막,2주 기다리고 배송일 직전에 '죄송합니다. 주문하신 도서는 품절되었으니, 환불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라는 메세지가 눈에 선하다. )

참 멋진 글을 쓰는 작가였네.
바닷속 깊은 곳에서 끌어 올리는 것 같은 말들.

아, 어떻게 구해볼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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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16 08: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12-16 09: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캐넌의 세계 환상문학전집 5
어슐러 K. 르귄 지음, 이수현 옮김 / 황금가지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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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셈 레이의 '목걸이' 라는 단편이 <로캐넌의 세계>의 프롤로그격이다. 셈 레이는 왕국 하나만큼의 가치가 있는 자신의 동족의 것이었던 목걸이를 찾아 남편에게 혼수로 가져가고자 한다. 바람말을 타고, 땅굴족을 찾아 시간과 공간을 넘어 로캐넌을 만나 목걸이를 돌려 받는다. 그녀의 시간여행은 그녀를 시간에 잡아 놓았고, 그녀가 돌아왔을때 그녀가 사랑하는 존재들은 이미 늙거나 죽고 없었다.
 민족지 조사팀의 로캐넌, 팀에서 혼자 살아남은 로캐넌은 예전에 그가 목걸이를 돌려 주었던 셈 레이의 증손자인 용맹한 영주 모지언과 전설 속에나 나오는 남쪽 나라로 길고 힘든 여행을 떠난다.

방랑자이고, 신인 로캐넌. 그와 함께하는 오.. 모지언, 현명한 종족 피안, 충실한 야한, 그들의 발과 날개가 되어 주는 흉폭하나 순종적인 바람말들. 행성의 원주민 종족을 파괴하는 비행선, 헬리콥터, 무기를 지닌 사람들(?)에 맞서기 위한 여행은 힘겨웠다. 많은 것을 잃었고, 능력을 얻었고, 복수를 마쳤다. 
 
그는 남은 생애 동안 이곳에 유배되었다. 낯선 세계에 떨어진 아무 쓸모 없는 이방인.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다.
그는 한 사람에 지나지 않았다.
한 사람의 운명은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한 사람의 운명이 중요하지 않다면, 무엇이 중요합니까?"

그는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그 말을 참을 수 없었다. 

<빼앗긴 자들>을 읽을때는 느끼지 못했던 서사적이고, 운명적인 거대한 이야기이다.
아마 헤인시리즈 1기격에 속하는 <로캐넌의 세계>, <유배행성>, <환영의 도시>까지를 읽고, 다시 읽는 <빼앗긴 자들>은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올 것이다. 이 책이 쉽게 읽히지 않는 것은 어슐러 르 귄이 창조한 세계를 바로 이해하기 힘든 탓도 있지만, 그녀의 이야기가, 그녀의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용감무쌍한 인물들에 느끼는 슬픈 경외감때문일지도 모른다. 조금 더 슬프고, 조금 더 고독하고, 조금 더 완전한 존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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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08-12-15 04: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새벽에 슬퍼져 버렸어..
 



*사진은 클릭하면 커짐


나는 가끔 책장에서 내가 사고 싶었던 책을 발견하곤 놀란다. 헉;
지난주에는 헤르만 헤세의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를 책장에서 발견하고 놀랐고,
오늘은 <A Brief History of the Smile>을 책장에서 발견하고 놀랐다. 아, 놀라운 나의 책장이여.
설마 나몰래 책서방이 있어서 몰래 내 책장에 책을 가져다 놓고 가는건 아니겠지? 냐하하 ;;;

지난 주 읽었던 책들을 간단히 보면

<도착의 론도> : 재미있었다. 돌고 도는, 물리고 물리는 이야기의 흡입력이 대단. 남은 도착시리즈 두권이 근간이라고 하니, 표지톤만 비슷하게 좀 맞춰서 잘 나와주면, 시리즈 모으는 맛이 있을듯. 복잡한 이야기 구조의 단순유치한 에피소드들
<임페리움> : 진짜 재밌었다. 가슴 두근두근 하면서 읽어줌. 이것 역시 로마 3부작중 첫번째이다. 키케로가 주인공이고, 이번에 나의 로마피버는 좀 오래갈듯.
<종이의 음모> : 진짜 재밌었다. 데이빗 리스.. 그저 경배할 뿐. '하이드의 100권'에서 한권 빼고 이 책으로 업데이트 하려고 하니, 알라딘 에러. 어제부터 왜이러삼! <부패의 풍경>까지 읽고 나면, 원서 사야지..라고 해봤자, 근간까지 합해도 나온/올 책이 다섯권밖에 안됨. 원서 한권만 더 사면, 읽을 책 없음. 크아아아
<셜록홈즈의 미공개 사건집> 북스피어의 '221B' 시리즈의 첫번째 책. 의외로(?) 재밌었다. 옛 향수를 불러 일으키는 책. 약간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앗, 그러고보니, 다음주에는 셜록홈즈 읽으려고 했는데;; 다다음주로 미루작! 그나저나 '221B'시리즈의 첫권이 셜록홈즈인건 당연한데, 두번째 권은 뜬금없는 일본소설이다. 뭐 그저 이름일뿐이니 딱히 뜬금없을것 까지야..라고 생각해보아도, 글쎄.. 사람들이 이 책이 '221B' 시리즈인건 알까? 책표지에 거의 눈에 안 띄는 마크가 있을뿐. 이 표지에 대해서는 살짝 맘에 안든다. 왜 맘에 안 드는지 궁리중. 셜록홈즈 표지 페이퍼 준비중.
<흐르는 강물처럼> 작가에 대한 개인적인 이야기들이 나와서 작가를 다시봤다. (내가 좋아하는 타입은 아님을 다시 한 번 확인했을 뿐이고.) 몇가지 에피소드들은 괜찮았다. (이를테면, 내가 낚인 맨 첫 에피소드;;) 멋지고 대단한건 알겠는데, 호감은 안 가는 사람..이라고나 할까.
<카페를 사랑한 그들> 사진만은 레어한 것들이 많음. 이야기도 레어한데(이건 그닥 매력적이지 않음) 프랑스 카페를 묘사한 예술가,작가들의 인용이 글의 90%라고 하니 말 다했지 뭐. 직접인용과 간접인용의 퍼레이드. 그런 이유로 멋진 사진과 몇몇 괜찮은 글들을 건지긴 했음.
<마담X의 추락> 존 싱어 사전트의 이야기. 소설책같이 생겨서, 미술책이다. 19세기 후반의 파리 미술계를 사전트를 중심으로, 사교계를 마담X, 즉 마담 고트르를 중심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꽤 흥미로움. 리뷰와 존 싱어 사전트 페이퍼 준비중
어슐러 르귄 <유배행성> :<로캐넌의 세계>가 먼저임을 뒤늦게 깨닫고 읽다가 덮음.

 

12월 둘째주 읽(으려고 했던) 책

12월 둘째주 읽고 남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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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맹이 2008-12-15 1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는 가끔 책장에서 내가 사고 싶었던 책을 발견하곤 놀란다. -> 저는 책이 정말 적은데도 가끔 이런다니까요. 완전공감이에요.

비연 2008-12-15 1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심지어 두번 구입한 것도 있답니다..;;;; 그나저나 요즘 독서량 엄청나심.

보석 2008-12-15 15: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그 책서방 우리 집에도 좀 보내주세요. 저도 책이 늘어나는 기쁨을 누리고 싶어요!ㅎㅎ
근사한 책장, 근사한 책. 부러울 따름입니다.^^
 
셜록 홈즈 미공개 사건집
에이드리언 코난 도일.존 딕슨 카 지음, 권일영 옮김 / 북스피어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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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겨울에 나온 신간 중에 묘한 표지와 제목의 책이 있다. <셜록 홈즈 미공개 사건집> 셜록 홈즈의 이름을 딴 책들이 나오는 것은 그닥 신기한 일은 아니지만, 저자의 면모를 살펴보면 다시 한 번 눈이 가게 된다. 바로 존 딕슨 카와 에이드리언 코난 도일이 이 책의 공동저자이다.
 존 딕슨 카의 책은 우리나라에도 꽤 많이 번역되어 있고, 그의 특징은 밀실살인사건과 기괴한 분위기이다. 영국에서 활동했던 그는 그 자신이 베스트셀러 추리작가이자 셜로키언으로 <아서 코난 도일의 생애>를 쓰기도 한만큼 셜록 홈즈에 대해서 전문가라 하겠다. 에이드리언 코난 도일은 코난 도일의 막내 아들로 유작관리자이자 '아서 코난 도일 재단'을 설립할 정도로 아버지의 작품에 전문가이다. 사실 나는 재능에 관해서만은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라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생각해 왔다. 그 믿음은 지금도 변함없고, 에이드리언 코난 도일이 비록 그의 아버지가 창조한 '셜록 홈즈'라는 역사에 남는 걸출한 탐정의 이름값에 빚지고 있기는 하지만, 충분히 재능있는 작가라고 생각한다. 열두편의 미공개 사건집을 읽고 나니 의외로 에이드리언 코난 도일의 작품들이 재미로 앞서고, 존 딕슨 카의 작품들은 조금 더 홈즈스러웠다.

 나는 자칭 미스터리 매니아다. 척박한 도서 시장에 장르문학팬으로 살아가는 것이 지금은 꽤 쉬워졌다. 읽는 것보다 번역되어 나오는 책들이 더 많으니 말이다. 미스터리 매니아와 미스터리 매니아가 아닌 사람들, 책을 읽는 사람과 책을 읽지 않는 사람들에게 '당신에게 추리소설이란' 이란 질문을 던진다면, 누구라도 셜록 홈즈를 한번쯤 떠올리지 않을까?  나는 내 자신이 대단한 셜로키언이라고 생각하지도 않고, 내가 좋아하는 추리작가의 이름을 죽 나열해본다면 아서 코난 도일은 아마 저 뒤에나 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특별하다. 셜록 홈즈는 특별하다.  

열두개의 단편들은 기존의 셜록 홈즈의 작품들에서 한두줄로 언급되고 지나갔던 이야기에 살을 붙이고 이야기로 만든 것이다. 시리즈물의 미덕은 시리즈의 주인공과 주인공을 나타내는 소소한 장치들이다. 공인된 셜로키언 둘이 쓴 책이니 홈즈와 왓슨에 대하여 셜록홈즈 팬들의 욕구를 흠잡을데 없이 채워준다. 그리고 이야기. 추리작가로 존 딕슨 카는 이미 거장이고, 에이드리언 코난 도일 역시 만만치 않음을 책을 읽고 나서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모든 사실들을 볼 때, 이 겨울의 선택은 바로 '셜록 홈즈'이다.
남은 겨울에는 셜록 홈즈나 복습해 보아야겠다.

"범죄는 어디로 갔을까, 왓슨? 불가사의한 일, 상식을 벗어난 기괴한 사건이 없다면 세상 살아가는 맛이 모래나 마른 풀 씹는 것 같지 않겠나? 사건은 영원히 사라진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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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반쪽 2008-12-16 2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고싶은 책이어요^^

하이드 2008-12-16 2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판형도 독특해서, 더 즐거우실꺼에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