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날이 소중하다 - 한 뉴요커의 일기
대니 그레고리 지음, 서동수 옮김 / 세미콜론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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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쁜 광고쟁이인 그레고리와 스타일리스트인 패티, 그들의 아이 잭, 첫번째 아이 프랭키
어느 날 패티는 전철을 기다리는 도중, 플랫폼에 떨어졌고 그때 역으로 들어오던 9번열차는 패티의 몸 위로 지나가면서 척추뼈를 부서뜨렸고 그녀는 허리아래가 마비되어 버렸다. 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들을 덮친 비극. 비극은 현실.이었고, 어떻게든 살기 위해 빠져나가야할 것이었다.
그리고 그가 택한 것은 '그림'이었다. 거창한거 아니고, 때로는 '낚서' ,그저 끄적인다. 고 말해도 좋은 그림. 긍정적으로 삶을 보기란 분명 말처럼 쉽지 않을 것이다. 내것이 아니라고 근거없이 믿어왔던 비극이 삶을 덮쳤을때 벗어나는건 생각보다 아주 많이 어려울 것이다.

장애인 친구가 들려준 이야기.
멋진 여름휴가로 '이탈리아' 에 가기로 했었는데,
막상 비행기에 내렸을때 엉뚱한 곳에 도착했음을 깨달았어.
부부는 경악하고, 정말 화가나서 참을 수가 없었지.
하지만, 어떻게 빠져나갈 방법이 없었던거지.  그 '네덜란드' 에 꼼짝없이 묶여버린거야.
참 재수도 없지.
근데, 점점 네덜란드가 좋아지더래.
모든 것이 느리고 부드럽고, 사람들한테선 내면의 차분함이 느껴졌어.
렘브란트, 알크마르, 허츠팟요리, 오래된 커피숍,  새로운 세계를 발견했고
결국 멋있는 휴가를 보내게 되었어.
기대했던것과는 달랐지만, 이것도 훌륭했어.

"네덜란드가" 친구가 말했지. " 패티와 네가 떨어진 곳이야. 장애인의 세계 말이야. 네가 원했던건 아니겠지만, 그리고 네가 살아온것처럼 빠르고 신나지는 않겠지만, 그 삶은 깊고 진한 것이야. 너는 그 삶을 사는 법을 배우게 될 것이며 그것을 사랑하게 된거야."

작가는 그런저런 이야기들을 담담하게 끄적인다.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그렇고 그런 끄적임들이다.
가끔은 프랭키와 잭이 나오고,
가끔은 여행가서 그 곳을 관찰하고 그림으로 담아낸 이야기가 나오고,
또 가끔은 그동안 휙휙 지나쳤던 뉴욕의 일상이 나온다.

천천히, 열심히, 애정을 가지고 관찰한 '사물' , '사람', '장소', '동물', '식물', 그리고 '나' 등을 읽는 것은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일이다.
하지만 나는 충분히 즐겁게, 천천히, 그 시간을 누린다.
한페이지, 한페이지 꼭꼭 씹어서, 음미하며 읽는다.

돋보기 안경이라도 쓴냥,
새삼 선명하게 보이는 내 주위의 모든 작은 것들을
사랑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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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g 2006-03-10 2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인가 보군요~

Kitty 2006-03-11 17: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뭐..말이 필요없이 땡투하고 갑니다 ^^
 

개와 고양이

내 딸 종팔이는 어찌된 일인지 사람보다 동물을 더 좋아한다. (놀이동산보다 동물원 더 좋아하는 아홉 살 본 적 있나?) 장래 희망이 동물보호운동가일 정도다. 그녀의 방은 온갖 동물 인형들로-'동물 人形' 은 이상한 말이지만 달리 어떻게 써야 좋을지 모르겠다- 발 디딜 틈이 없다. 난 세상에 봉제 뱀 인형, 박쥐 인형이 있다는 사실을 이 아이 키우면서 알았다. 그림을 그려도 동물만 그리는데, 도감 같은 거 안 보고도 별의별 동물을 다 그릴 줄 안다. 예를 들어 아르마딜로, 개미핥기, 나무늘보, 인도별사슴, 위에서 내려다본 토끼의 모습, 다리를 꼬고 의자에 앉아 있는 원숭이, 뭐 그런 거.

종팔이는 특히 개를 좋아한다. 영국이 낳은 위대한 그림책 작가 존 버닝햄의 불후의 걸작 [내 친구 커트니]의 영향도 크다. 그러나 그것은 불행하게도 짝사랑이다. 아빠가 심각한 개털 알레르기 환자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집에서 개를 기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언젠가 한번은, 아빠가 집을 나가 살면 안되냐고 엄마한테 심각하게 질문했다가 심각하게 혼난 적도 있다. 그때 그 얘기를 듣고 화가 난 나머지, "아빠도 너 못지않게 개를 좋아하지만 알레르기 때문에 기를 수가 없어서 하는 수 없이 대신 너를 낳았다" 고 대꾸했던 아빠도 역시 엄마한테 혼났다.

우리가 엄청난 불편을 각오하고 멀리 시외로 이사하기로 결정한 건 순전히 개를 기르기 위해서였다. 한집에서 개도 살고 나도 살자면 천생 마당이 필요했고, 마당 있는 집에 살자면 서울을 벗어나는 수밖에 없어서다. 요즘 종팔이는 내년 8월로 예정된 이삿날만 기다리며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슨 개 사전 비슷한 책을 펴놓고 날이면 날마다 어떤 종을 사야 할지 고민하며 세월을 보낸다. 그런데, 그런 데나오는 개들은 하나같이 비싸다. 그래서 나는 버닝햄의 커트니 예를 들면서, "아무도 가지려고 하지 않는 족보 없는 개를 데려가는 어린이야말로 진정으로 개를 사랑하는 어린이지"라고 말한다. 그러면 아이는 이렇게 화답한다. "아빠.... 그럼, 아무도 가지려고 하지 않는 족보 없는 잉글리시 바세트하운드 사줘." 그러던 어느 날....

내 조감독이 자기 집 개가 새끼 여덟 마리를 낳았다며 한 마리 가지겠느냐고 물어왔던 것이다. 본래 그 집 진돗개 한 쌍, 즉 수놈 '참'이와 암놈 '이슬'이 부부는 혈통 좋고 용모 수려하기로 유명하다. 참이는 참새를 잘 잡고 이슬이는 쥐를 잘 잡는다고도 했다. 내가 거절할 이유가 없다. 일단 돈이 얼만데. 그리고 그 소식을 당장 종팔이에게 전했다. 그녀는 내 얘기를 듣자마자 그 자리에서 바로 엎어지더니 기나긴 통곡을 시작했다. 제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기쁜 일이 생길 때마다 하는 짓이다. 아, 그때는 나도 감격했다!

그러나 꼭 좋은 일만은 아니었다. 울음을 그치자 종팔이는 아빠의 알레르기 따위는 까맣게 잊어버리고 그 애를 당장 데려와야 한다고 떼를 쓰기 시작했다. 그녀가 그토록 믿고 따르는 무슨 개 사전 비슷한 책에 의하면, 진돗개는 첫 주인만을 따르기 때문에 더 크고 나서 데려오면 '전혀 말을 안 들을 뿐 아니라 아예 옛 주인을 찾아 가출해버리는 수도 있다'는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조감독에게 물어보니 사실 그게 그렇단다. 어쩌나.

그래도 젖은 떼야 하지 않겠느냐며 가까스로 두 달을 벌어놓는 데 성공하긴 했지만 그래도 내년 8월까지는 반년 이상 남는다. 일단 이번에 태어난 애들은 포기하고, 내년 여름에 새로 태어날 강아지를 받아오자고 아무리 달래도 전혀 안 통한다. 지금 이틀째 종팔이는, 아장아장 걷는 생후 보름된 백구 흉내를 내며 하루를 보내고 있다. 진돗개는 워낙 용맹스러워서 하룻강아지도 범한테 으르렁거릴 줄 안다며 종일 어딘가를 향해 으르렁거리고 있다. 그리고 그 옆에서 아빠는 괜히 조감독을 원망하며 처절한 고민에 빠져 있다.

나 아는 여배우 하나는 고양이를 정말 좋아한다. 그런데 그녀는 나 못지않은 알레르기 환자다. 그래도 그녀는 고양이 여덟 마리를 기른다. 보통은 발작이 심해질 때만 먹는 항히스타민제 알약을 매일 먹어 가면서.

***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사는 했고 진돗개는 못 데려왔다. 대신 고양이와 함께 산다. '나 아는 여배우' 배유정 씨처럼 많지는 않고 그냥 두 마리다. 원래 살던 아파트에서 동거를 시작했다가 알레르기성 천식 환자가 되었다. 자다가 호흡곤란을 일으켜 응급실에 실려갈 지경이었다. 의사 하는 말이, "고양이를 그냥 두시면 아마 선생보다 걔네가 더 오래 살겁니다." 바로 20년 피우던 담배 끊었다. 바로 이사했다. 지금은 널찍하고 볕 잘 드는 지하실에 놈들을 격리했으므로 괜찮다. 항히스타민제 알략 매일 안 먹는다. 참이와 이슬이도 큰 변화를 겪었다. 내 조감독의 집 좁은 마당에서 사는 게 너무 힘들어서 가출을 했다. 돌아온 이후 시고르이 농장으로 보내졌다. 너른 들을 실컷 뛰어다니며 마냥 행복해 한다고 한다. 끝으로, 조감독은 감독이 되어 <야수와 미녀>를 만들었다.

'박찬욱의 몽타주'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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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브라운 2006-03-09 09: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박민규의 소설의 일부라고 해도 믿겠네요 재미있어요 ^^

하이드 2006-03-09 1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딸래미( 종팔이 : 가명이라고 합니다) 가 압권입니다.

mong 2006-03-09 1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종팔이가 압권이죠 ㅎㅎ

클리오 2006-03-09 15: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읽다가 한참 웃었어요.. ㅎㅎ
 
 전출처 : sharper > 이 책의 몇몇 번역 오류들
레벌루션 No.3 더 좀비스 시리즈
가네시로 카즈키 지음, 김난주 옮김 / 북폴리오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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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플라이, 대디, 플라이]를 너무나도 재미있게 읽었기에 기대를 하고 이 책을 펼쳤습니다. 원래 읽는 순서는 이 책이 먼저이지만 [플라이~]쪽이 더 끌렸기 때문에.  그런데 내용 이해에 지장을 주는 것은 아니지만 몇몇 번역 오류들이 좀 거슬려서 글을 써봅니다.


13페이지부터 아연해졌는데 [플라이~]에서 '가야노'라고 나온 인물의 이름이 '가노야'로 표기되어 있더군요. 분명 같은 인물일텐데 어느 쪽이 맞는 건지 헷갈려서 원판보고 확인해야하나 하고 생각하며 다음으로 넘겼습니다.


16페이지. 오가사하라. 
'오가사와라'겠지라고 생각하며 계속 진행.


24페이지. '닥터 몰로'.
Dr. Moreau를 어떻게 읽으면 닥터 '몰로'가 되는거죠?  이거 일어 표기래야 'モロ-'일 것같은데 왜 쓸데없이 리을을 하나 더 붙인 겁니까?  이거 확인하는 건 일도 아닙니다.  검색엔진에서 '닥터 모로'라고 쳐보면 영화제목이 우수수 쏟아져 나오니까요.


32페이지. 2째줄의 '쿄진'
巨人의 일본식 독음이며, 일본 야구팀 요미우리 자이언츠를 뜻합니다.  그냥 '쿄진'이라고 쓰면 일본어와 일본문화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은 이해할 수 있을까요?  아마 역자분도 모르셨던 모양이지만.


123페이지. '가네다 이치 소년'
金田一을 가네다이치라고 읽다니...(3초간 기절) 일본문학 번역가로 활동한다는 분이 유명한 만화 [긴다이치소년의 사건부](소년탐정 김전일)도 모르시는 겁니까?  베스트 셀러인데다 영화, 드라마로까지 만들어졌었는데.(국내 투니버스에서 방영했음)


아직 123페이지까지 밖에 안 읽어서 여기까지 씁니다.  전반적으로 번역자분이 일본어는 잘 하시는 것같지만 일본 문화에 대한 지식이랄까 이해는 좀 부족하신 것같습니다.  하여튼 번역은 '언어'만 잘해서는 안되는 것이라는 걸 다시금 깨닫게 되는군요.  이거 읽고나서 같은 작가의 [GO]도 사보려했었으나 번역자가 같은 김난주씨라서 망설이게 됩니다.

추후 발행되는 2쇄, 3쇄부터는 오류가 수정되었으면 하지만... 국내 출판사에서 이런 걸 반영하는 경우가 드물어서 기대하긴 힘들겠지요.  책 내용 자체는 참 재미있어서 더욱 아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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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tty 2006-03-08 2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난주씨 번역에 대한 실망스러운 얘기는 들은 적이 있지만
전 한번도 읽어보질 않아서 몰랐는데
가네다이치 ^^;;; 정말 모르셨던 걸까요;;;

하이드 2006-03-09 0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거인, 쿄진, 자이언츠도 왠만하면 모르기 힘들것 같은데 말이죠.

Apple 2006-03-09 0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네다이치라뇨...헉.....-_-;

딸기 2006-03-09 14: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난주씨는 일본문학 번역가 중에서는 가장 유명하고 돈도 많이 받는 사람인데,
우리말을 아름답게 쓰긴 하는데 간간이 그런 오류가 있더라고요

하이드 2006-03-09 15: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워낙에 맨처음 일본소설 읽기 시작할때부터 김난주씨 번역책 읽었었지요, 그분이 저도 아는걸 정말,정말 모르셨을까 싶었는데, 간혹 그런 오류를 내시기도 하시는가보군요;; 이름이 틀리는 건 좀 이해하기 힘든 실수이긴 해요.

페일레스 2006-03-10 0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거없는 억측일지도 모르겠지만, 저는 '번역의 분담'을 의심해 보기도 합니다. 김난주씨 정도 되는 사람이 요미우리 자이언츠를 모른다는 건 미국문학 번역가라는 사람이 뉴욕 양키즈를 모른다는 것과 마찬가지인 걸요.

딸기 2006-03-11 2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페일레스님 그런 추측도 가능하군요. 요미우리 자이언츠를 모른다는 것이 좀 이상하긴 하네요. 나도 아는걸... ㅋㅋ
 
 전출처 : 나귀님 > "만화의 힘"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걸작!!!
페르세폴리스 1 - 나의 어린 시절 이야기
마르잔 사트라피 지음, 김대중 옮김 / 새만화책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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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만화는 힘을 지니고 있다. 그것은 은유와 상징의 힘이고, 생략과 단순화의 힘이다. 단순히 말이나 글을 통한 묘사로는 제대로 전달할 수 없는 사실이나 감정을 만화는 훨씬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 바로 "만화의 힘" 때문이다. 한 가지 문제는 그런 "만화의 힘"을 제대로 표현하고 있는 걸작이 흔치는 않다는 것이다. 내가 감히 이렇게 말해도 될까? 지금 나오는 만화의 90퍼센트는 하나같이 "쓰레기"에 불과하다고 말이다. (물론 이 말은 시오도어 스터전의 다음과 같은 일리 있는 주장에서 따온 것이다. "SF의 90퍼센트는 정말 쓰레기다. 하지만 세상 어떤 것이나 그중 90퍼센트는 쓰레기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그 나머지 10퍼센트는 무엇일까? 일단 쓰레기는 아니므로, 나름대로의 존재 의의를 획득한 작품들일 수 있지만, 그중에서도 "진정한 걸작"은 분명 훨씬 더 적을 것이다. 물론 어떤 작품을 "걸작"과 "졸작," 혹은 "쓰레기"로 판정하는 기준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내 경우에는 어떨까? 특별히 기준으로 삼는 것은 없다. 다만 "마음에 드는 작품"과 "마음에 들지 않는 작품"이 있으며, 전자의 경우에서도 "특별히 마음에 드는 작품"은 굳이 소장하게 되고, 거듭해서 읽어보며 그 진가를 발견할 뿐이다. 물론 만화를 읽긴 하지만 굳이 도서대여점이나 만화방을 들락이진 않은 나로선 이 세상에 읽은 만화보다 읽지 않은 만화가 더 많으므로, 내 기준이 항상 어디에나 통용될 것이라 자신하진 않는다. 다만 때로는 정말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만화가 있다. 그림이 멋져서일 수도 있고, 스토리가 흥미진진해서일 수도 있고, 등장인물의 매력이 강렬해서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어떤 만화보다도 더 오래 내 기억에 남고, 또 그렇기 때문에 내가 굳이 소장하고 또 가끔 들춰보는 만화는 한결같이 어떤 "강렬함"을 지니고 있었다. 그것을 나는 감히 "만화의 힘"이라고 주장하고 싶다. 왜냐하면 결코 많은 작품을 읽은 것도 아니고, 자칭 "만화에서 철학을 본다"던 어느 교수마냥 깊이 읽은 것도 아닌 나로선 과연 내가 어떤 만화를 읽음으로써 느끼게 되는 감동과 흥분과 매력을 딱히 무엇이라 정의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냥 뭉뚱그려서 "만화의 힘"을 느꼈다고 하자. 내가 느낀 "만화의 힘"이란 오토모 가츠히로의 <아키라>처럼 정교한 그림과 탄탄한 스토리이며, 다카하시 루미코의 "인어 연작"처럼 인간의 삶과 죽음에 대한 충격적이면서도 의미심장한 고찰이기도 하다. 내가 느낀 "만화의 힘"이란 장 자크 상페의 삽화집에 나온 것처럼 일상적인 것 속에 존재하는 파격이며, 레제르의 <붉은 귀>에서 비뚤거리는 선이 빚어낸 파격 속에 존재하는 익숙함이다. 내가 느낀 "만화의 힘"이란 밀로 마나라의 <걸리베라>에서 아름다운 여성의 몸을 통해 드러나는 에로틱한 아름다움이며, 박수동의 <고인돌>이 노골적으로 암시하는 성의 환희와 역설이다. 내가 느낀 "만화의 힘"이란 조 사코가 방문하고 기억하는 팔레스타인과 보스니아의 총소리와 신음소리이며, E. O. 플라우엔의 아버지와 아들이 한 마디의 대사도 없이 판토마임으로 그려내는 인생의 희노애락이다. 내가 느낀 "만화의 힘"이란 아트 슈피겔만이 고양이와 쥐의 이야기로 의인화한 20세기의 비극이며, 데츠카 오사무가 신성을 배제하고 철저히 인간과 인간다움에 대한 이야기로 변형시킨 붓다의 일대기이다. 내가 느낀 "만화의 힘"이란 박재동의 시사만평 한 컷 안에서 번뜩이는 촌철살인의 기지이며, 이희재의 단편 속에 고스란히 담겨진 냄새나는 현실의 쓰라림이다. 내가 느낀 "만화의 힘"이란 <이나중 탁구부>가 그려내는 인간의 치졸함과 유치함이며, 스콧 맥클루드가 정색을 하고 하나하나 따져보는 만화라는 장르 그 자체의 놀라움이다. 이런 갖가지, 그야말로 말도 안 될 만큼 제각각인 감동과 흥분과 매력을 과연 무엇이라고 정의해야 하겠는가? 나는 그냥 "만화의 힘"이라고만 하련다.

내가 보기에 <페르세폴리스>는 지금껏 내가 읽은 어떤 다른 작품보다도 그런 "만화의 힘"을 강력하게 발휘하고 있는 "걸작"이다. 그림이 정교하거나 현란하기 때문은 아니다. 흑과 백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두 색깔이 극단적으로 대조되는 것이야말로 이 만화의 대단한 매력이지만, 인물이나 묘사는 무척이나 단순화되고 상징적으로 처리되어 있다. 스토리가 기발하거나 대단한 반전이 있기 때문도 아니다. 오히려 저자의 회고는 몇 가지 주요 사건을 중심으로 조각조각 파편화된 에피소드 형식을 지니고 있다. 심오한 주제나 철학이나 메시지를 담고 있어서도 아니다. 물론 저자의 체험인 "진실"에 바탕하고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경험을 섣불리 일반화시킴으로써 억지로 독자의 감동을 쥐어짜려 한 흔적은 없다. 오히려 이 작품의 가장 큰 미덕은 "절제"다. 저자가 보고 듣고 겪은 체험의 강도는 아트 슈피겔만의 <쥐>나 조 사코의 <팔레스타인>가 묘사하는 생존자들의 이야기에 못지 않은 비극과 혼란과 공포이지만, 결코 그것이 작품 전체에 노골적으로 표출되지는 않는다. 저자는 끊임없이 순진한 어린아이였던 자신의 과거 시점과, 뒤늦게야 그런 과거를 돌이켜보며 좀 더 넓은 시각에서 사건을 바라볼 수 있는 자신의 현재 시점을 오간다. 폭군에 의해 감옥에 수감되었던 사람들이 증언하는 끔찍한 고문에 대한 회고 뒤에는, 어떻게 간수들이 "가전제품"인 다리미를 가지고 죄수들을 고문할 수 있었을지 몰라 어리둥절해 하는 어린아이의 얼굴 표정이 이어진다. 이런 절제의 흔적이야말로 저자가 자신의 감정을 최대한 "승화"시켰다는 증거는 아닐까 하고 나는 생각해 본다. 그런 까닭에 이 작품이 비로소 "예술"이 될 수 있었던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감동"도 배가된 것은 아닐까? 이것이야말로 한때 베스트셀러가 되었던 <만화 박정희>라는 야심찬 국내 작품에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던 "만화의 힘"이었다. 이전에 리뷰에서도 지적한 바와 같이, 그 만화는 "박정희'라는 우상을 최대한 "흠집내기"를 지상과제로 삼은 프로퍼갠더인지 몰라도, 정작 만화로서는 "빵점짜리"라 할 만했다. 물론 박정희를 두둔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박정희를 예찬하는 만화가 되었건, 비판하는 만화가 되었건 간에, 노골적인 프로퍼갠더에만 기울어진 까닭에 정작 "만화의 힘"을 보여주지 못한 작품이라면, 솔직히 무슨 선거철마다 뻑하면 등장하는 각 정당의 총선 및 대선후보 "홍보만화"와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이다. 즉 정치적 목적을 지닌 "유인물"인지는 몰라도, 결코 "예술"은 아닌 것이다. 아마 <만화 박정희>를 읽고 나서 <페르세폴리스>를 읽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앞의 작품이 어째서 "프로퍼갠더"이긴 할 망정 결코 "만화"라고 할 수는 없는지를, 그리고 뒤의 작품이 어째서 같은 "만화"임에도 불구하고 그보다 한 수 위의 "걸작"인지를 말이다.

혹시나 우리나라에서도 훗날 일제치하라든지, 한국전쟁이라든지, 독재정권이라든지, 광주민주화항쟁 등의 중요한 사건을 가지고 "만화"를 시도하는 작가가 있다면 제발 "고발"(<만화 박정희>)이나 "설명"(<먼나라 이웃나라>나 <십자군 이야기>처럼)에만 너무 연연하지는 말고, "절제"와 예술적 "승화"라는 미덕을 성취하기를 바란다. 물론 단순히 "외국엔 이런 만화가 있는데, 왜 우리는 못하느냐?"고 단순비교에서 우러난 타박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아트 슈피겔만의 <쥐>가 마르잔 사트라피에게 <페르세폴리스>를 낳게 한 방아쇠가 되었던 것처럼, 이제 마르잔 사트라피의 <페르세폴리스>를 읽고 그 감동을 바탕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예술"로 승화시킬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추정을 해볼 뿐이다. 이런 식의 "예술"에 도전하는 작가가 감히 없다는 현실은, 한국만화가 아무리 "성장"하고 "발전"했다 하더라도 정작 아직까지는 충분히 "성숙"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음을 반증하고 있는 게 아닐까?

 

사실 나는 이 만화가 출간되기 훨씬 전에 미국 Pantheon Books 에서 출간된 영역본을 통해 읽고 큰 감명을 받았다.(특히 마르지가 신앙을 잃어버리는 장면과, 뒷부분에서 마르지의 엄마가 딸을 부여잡고 "어떤 놈이든지 널 건드리기만 하면 내가 가서 죽여버릴 테야!" 하고 절규하는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우리나라의 어느 출판사를 통해 한국어판 출간을 제의하기도 했지만, 애석하게도 이미 다른 출판사에 판권이 넘어간 뒤였다. 이후에도 소식이 없기에 그야말로 "걸작" 하나가 공중분해되고 마는 것이 아닌가 발을 동동 구르던 차에 반갑게도 1권이 출간되었다.(개인적으로는 아깝지만, 출판사의 탁월한 선택에 박수를 보내는 바이다.) 저자는 프랑스에서 계속 이 시리즈를 펴내고 있으며, 미국에서는 2권까지 출간되어서 나중에 또 읽어보았다. 그림은 점차 세련미가 더해가는 것 같지만, 그래도 내겐 1권이 훨씬 더 감동적이고 또 충격적이었기 때문에, 앞으로도 <페르세폴리스>라고 하면 으레 1권의 새빨간 표지를 떠올리게 될 것 같다.(내 기억에 2권은 표지가 파란색인가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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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dai2000 2006-03-08 0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관심가네요. 읽어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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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주에서 3주 기다려야 한다는 말에.. 옳다구나, 캔슬하고 재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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