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나귀님 > "만화의 힘"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걸작!!!
페르세폴리스 1 - 나의 어린 시절 이야기
마르잔 사트라피 지음, 김대중 옮김 / 새만화책 / 2005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만화는 힘을 지니고 있다. 그것은 은유와 상징의 힘이고, 생략과 단순화의 힘이다. 단순히 말이나 글을 통한 묘사로는 제대로 전달할 수 없는 사실이나 감정을 만화는 훨씬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 바로 "만화의 힘" 때문이다. 한 가지 문제는 그런 "만화의 힘"을 제대로 표현하고 있는 걸작이 흔치는 않다는 것이다. 내가 감히 이렇게 말해도 될까? 지금 나오는 만화의 90퍼센트는 하나같이 "쓰레기"에 불과하다고 말이다. (물론 이 말은 시오도어 스터전의 다음과 같은 일리 있는 주장에서 따온 것이다. "SF의 90퍼센트는 정말 쓰레기다. 하지만 세상 어떤 것이나 그중 90퍼센트는 쓰레기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그 나머지 10퍼센트는 무엇일까? 일단 쓰레기는 아니므로, 나름대로의 존재 의의를 획득한 작품들일 수 있지만, 그중에서도 "진정한 걸작"은 분명 훨씬 더 적을 것이다. 물론 어떤 작품을 "걸작"과 "졸작," 혹은 "쓰레기"로 판정하는 기준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내 경우에는 어떨까? 특별히 기준으로 삼는 것은 없다. 다만 "마음에 드는 작품"과 "마음에 들지 않는 작품"이 있으며, 전자의 경우에서도 "특별히 마음에 드는 작품"은 굳이 소장하게 되고, 거듭해서 읽어보며 그 진가를 발견할 뿐이다. 물론 만화를 읽긴 하지만 굳이 도서대여점이나 만화방을 들락이진 않은 나로선 이 세상에 읽은 만화보다 읽지 않은 만화가 더 많으므로, 내 기준이 항상 어디에나 통용될 것이라 자신하진 않는다. 다만 때로는 정말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만화가 있다. 그림이 멋져서일 수도 있고, 스토리가 흥미진진해서일 수도 있고, 등장인물의 매력이 강렬해서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어떤 만화보다도 더 오래 내 기억에 남고, 또 그렇기 때문에 내가 굳이 소장하고 또 가끔 들춰보는 만화는 한결같이 어떤 "강렬함"을 지니고 있었다. 그것을 나는 감히 "만화의 힘"이라고 주장하고 싶다. 왜냐하면 결코 많은 작품을 읽은 것도 아니고, 자칭 "만화에서 철학을 본다"던 어느 교수마냥 깊이 읽은 것도 아닌 나로선 과연 내가 어떤 만화를 읽음으로써 느끼게 되는 감동과 흥분과 매력을 딱히 무엇이라 정의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냥 뭉뚱그려서 "만화의 힘"을 느꼈다고 하자. 내가 느낀 "만화의 힘"이란 오토모 가츠히로의 <아키라>처럼 정교한 그림과 탄탄한 스토리이며, 다카하시 루미코의 "인어 연작"처럼 인간의 삶과 죽음에 대한 충격적이면서도 의미심장한 고찰이기도 하다. 내가 느낀 "만화의 힘"이란 장 자크 상페의 삽화집에 나온 것처럼 일상적인 것 속에 존재하는 파격이며, 레제르의 <붉은 귀>에서 비뚤거리는 선이 빚어낸 파격 속에 존재하는 익숙함이다. 내가 느낀 "만화의 힘"이란 밀로 마나라의 <걸리베라>에서 아름다운 여성의 몸을 통해 드러나는 에로틱한 아름다움이며, 박수동의 <고인돌>이 노골적으로 암시하는 성의 환희와 역설이다. 내가 느낀 "만화의 힘"이란 조 사코가 방문하고 기억하는 팔레스타인과 보스니아의 총소리와 신음소리이며, E. O. 플라우엔의 아버지와 아들이 한 마디의 대사도 없이 판토마임으로 그려내는 인생의 희노애락이다. 내가 느낀 "만화의 힘"이란 아트 슈피겔만이 고양이와 쥐의 이야기로 의인화한 20세기의 비극이며, 데츠카 오사무가 신성을 배제하고 철저히 인간과 인간다움에 대한 이야기로 변형시킨 붓다의 일대기이다. 내가 느낀 "만화의 힘"이란 박재동의 시사만평 한 컷 안에서 번뜩이는 촌철살인의 기지이며, 이희재의 단편 속에 고스란히 담겨진 냄새나는 현실의 쓰라림이다. 내가 느낀 "만화의 힘"이란 <이나중 탁구부>가 그려내는 인간의 치졸함과 유치함이며, 스콧 맥클루드가 정색을 하고 하나하나 따져보는 만화라는 장르 그 자체의 놀라움이다. 이런 갖가지, 그야말로 말도 안 될 만큼 제각각인 감동과 흥분과 매력을 과연 무엇이라고 정의해야 하겠는가? 나는 그냥 "만화의 힘"이라고만 하련다.

내가 보기에 <페르세폴리스>는 지금껏 내가 읽은 어떤 다른 작품보다도 그런 "만화의 힘"을 강력하게 발휘하고 있는 "걸작"이다. 그림이 정교하거나 현란하기 때문은 아니다. 흑과 백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두 색깔이 극단적으로 대조되는 것이야말로 이 만화의 대단한 매력이지만, 인물이나 묘사는 무척이나 단순화되고 상징적으로 처리되어 있다. 스토리가 기발하거나 대단한 반전이 있기 때문도 아니다. 오히려 저자의 회고는 몇 가지 주요 사건을 중심으로 조각조각 파편화된 에피소드 형식을 지니고 있다. 심오한 주제나 철학이나 메시지를 담고 있어서도 아니다. 물론 저자의 체험인 "진실"에 바탕하고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경험을 섣불리 일반화시킴으로써 억지로 독자의 감동을 쥐어짜려 한 흔적은 없다. 오히려 이 작품의 가장 큰 미덕은 "절제"다. 저자가 보고 듣고 겪은 체험의 강도는 아트 슈피겔만의 <쥐>나 조 사코의 <팔레스타인>가 묘사하는 생존자들의 이야기에 못지 않은 비극과 혼란과 공포이지만, 결코 그것이 작품 전체에 노골적으로 표출되지는 않는다. 저자는 끊임없이 순진한 어린아이였던 자신의 과거 시점과, 뒤늦게야 그런 과거를 돌이켜보며 좀 더 넓은 시각에서 사건을 바라볼 수 있는 자신의 현재 시점을 오간다. 폭군에 의해 감옥에 수감되었던 사람들이 증언하는 끔찍한 고문에 대한 회고 뒤에는, 어떻게 간수들이 "가전제품"인 다리미를 가지고 죄수들을 고문할 수 있었을지 몰라 어리둥절해 하는 어린아이의 얼굴 표정이 이어진다. 이런 절제의 흔적이야말로 저자가 자신의 감정을 최대한 "승화"시켰다는 증거는 아닐까 하고 나는 생각해 본다. 그런 까닭에 이 작품이 비로소 "예술"이 될 수 있었던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감동"도 배가된 것은 아닐까? 이것이야말로 한때 베스트셀러가 되었던 <만화 박정희>라는 야심찬 국내 작품에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던 "만화의 힘"이었다. 이전에 리뷰에서도 지적한 바와 같이, 그 만화는 "박정희'라는 우상을 최대한 "흠집내기"를 지상과제로 삼은 프로퍼갠더인지 몰라도, 정작 만화로서는 "빵점짜리"라 할 만했다. 물론 박정희를 두둔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박정희를 예찬하는 만화가 되었건, 비판하는 만화가 되었건 간에, 노골적인 프로퍼갠더에만 기울어진 까닭에 정작 "만화의 힘"을 보여주지 못한 작품이라면, 솔직히 무슨 선거철마다 뻑하면 등장하는 각 정당의 총선 및 대선후보 "홍보만화"와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이다. 즉 정치적 목적을 지닌 "유인물"인지는 몰라도, 결코 "예술"은 아닌 것이다. 아마 <만화 박정희>를 읽고 나서 <페르세폴리스>를 읽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앞의 작품이 어째서 "프로퍼갠더"이긴 할 망정 결코 "만화"라고 할 수는 없는지를, 그리고 뒤의 작품이 어째서 같은 "만화"임에도 불구하고 그보다 한 수 위의 "걸작"인지를 말이다.

혹시나 우리나라에서도 훗날 일제치하라든지, 한국전쟁이라든지, 독재정권이라든지, 광주민주화항쟁 등의 중요한 사건을 가지고 "만화"를 시도하는 작가가 있다면 제발 "고발"(<만화 박정희>)이나 "설명"(<먼나라 이웃나라>나 <십자군 이야기>처럼)에만 너무 연연하지는 말고, "절제"와 예술적 "승화"라는 미덕을 성취하기를 바란다. 물론 단순히 "외국엔 이런 만화가 있는데, 왜 우리는 못하느냐?"고 단순비교에서 우러난 타박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아트 슈피겔만의 <쥐>가 마르잔 사트라피에게 <페르세폴리스>를 낳게 한 방아쇠가 되었던 것처럼, 이제 마르잔 사트라피의 <페르세폴리스>를 읽고 그 감동을 바탕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예술"로 승화시킬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추정을 해볼 뿐이다. 이런 식의 "예술"에 도전하는 작가가 감히 없다는 현실은, 한국만화가 아무리 "성장"하고 "발전"했다 하더라도 정작 아직까지는 충분히 "성숙"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음을 반증하고 있는 게 아닐까?

 

사실 나는 이 만화가 출간되기 훨씬 전에 미국 Pantheon Books 에서 출간된 영역본을 통해 읽고 큰 감명을 받았다.(특히 마르지가 신앙을 잃어버리는 장면과, 뒷부분에서 마르지의 엄마가 딸을 부여잡고 "어떤 놈이든지 널 건드리기만 하면 내가 가서 죽여버릴 테야!" 하고 절규하는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우리나라의 어느 출판사를 통해 한국어판 출간을 제의하기도 했지만, 애석하게도 이미 다른 출판사에 판권이 넘어간 뒤였다. 이후에도 소식이 없기에 그야말로 "걸작" 하나가 공중분해되고 마는 것이 아닌가 발을 동동 구르던 차에 반갑게도 1권이 출간되었다.(개인적으로는 아깝지만, 출판사의 탁월한 선택에 박수를 보내는 바이다.) 저자는 프랑스에서 계속 이 시리즈를 펴내고 있으며, 미국에서는 2권까지 출간되어서 나중에 또 읽어보았다. 그림은 점차 세련미가 더해가는 것 같지만, 그래도 내겐 1권이 훨씬 더 감동적이고 또 충격적이었기 때문에, 앞으로도 <페르세폴리스>라고 하면 으레 1권의 새빨간 표지를 떠올리게 될 것 같다.(내 기억에 2권은 표지가 파란색인가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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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dai2000 2006-03-08 0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관심가네요. 읽어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