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리피트 - Wheel of Fortune
이누이 구루미 지음, 서수지 옮김 / 북스피어 / 2009년 9월
평점 :
이렇게 짜임새 있는 작품이 회자되지 않았다는 것이, 약간 북스피어의 운명같기도...
책 만드는데 신경써, 표지 신경써, 작품 재밌어, 근데 안 팔려.
<리피트>는 저주받은 '걸작' 까지는 아니라도, 수작은 되는 타임트래블 이야기이다.
이런 상상 누구나 한 번쯤 해보지 않나? '지금의 내 기억을 모두 가지고, 과거의 나로 들어간다' 는 상상
실제 작품 속에서도 언급되는 켄 그림우드의 <리플레이> ( 이 작품과 비슷한 시기에 한국에 소개되었다.) 도 있고, 비슷한 에피소드들도 영화나 소설의 단골주제이긴 하다.
어느날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전화를 받는다.
지진이 일어나는 정확한 시간과 장소와 진도까지 예언하고, 다시 걸겠다고 한다.
설마설마 하며, 그 시간을 기다린다. 약한 진동이 일어나고, 티비에는 속보가 뜬다.
무슨일인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동원하지만, 결국, 다시 걸려온 그의 전화에
몇날 몇시에 어느 중국집에서 전화를 받은 열명은 모이게 된다.
이야기인 즉슨,
열달전 몇시 몇분 몇초로 돌아갈 수 있다.
과거의 자신으로 돌아간다. 지금의 기억을 가지고. 라는 이야기이다.
어정쩡한 시간인 열달.
준비금까지 척 백만엔씩 내놓게 되고, 사람들은 반신반의한다.
과거로의 여행을 '리피트'로 부르고, 그들을 모은 가자마는 그들을 '게스트'라 부른다.
작품의 화자격인 모리, 대학교 4학년생으로 졸업논문을 준비하고 있다.
그가 연락책이 되어 각기 다른 성격과 직업과 나이와 성별의 R10을 준비하는 게스트들, 혹은 리피터들은
믿지도 안믿지도 못한 상태에서, 그들은 각기 열달 전의 과거로 돌아갈 준비를 하게 된다.
경마 스코어를 외운다거나.. 신문을 외운다거나 하면서
그렇게 리피트에 참여하게 된 그들, 리피트 순간 블랙아웃을 겪으며, 자신의 열달전 몸 속으로 들어가는 경험을 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한 명이 사고로 죽게 된다. 리피트10의 세계에서 서로의 연락처를 확보하게 된다.
리피터들이 한 명씩 죽어가게 되자, 그들은 각자 추리를 하며, 대책을 의논하는데,
이 과정에서 눈에 띄는 것은 물론 주인공인 모리, 그리고, 덴도라는 시나리오 작가이다. 추리력이 뛰어나고, 결단력도 뛰어나며, 덩치도 좋고, 똑똑한 사람. 모리는 덴도는 홈즈, 자신은 왓슨.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이야기 속의 인물들은 이것을 '게임', '인생게임'이라고 여기기 시작한다.
누구와 동업을 맺을 것인가, 누구를 믿을 것인가.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리피터로의 혜택을 어떻게 이용할 것인가 등등
짧지 않은 작품이지만, 마지막까지 짜임새 있는 재미난 서스펜스이다.
이야기를 읽으며 떠올렸던 책은 역시 <타임 패트롤> 시리즈, 그 쪽이 무겁고, 철학적이라면, 이 쪽 <리피트>는 일본소설다운 그런 재미를 가지고 있다. 역사란 것은 고무줄 같아서, 과거로 돌아가 무언가 변화시킬 수 있으나, 그 변화가 커질수록 역사는 다시 그 줄기로 돌아오려는 관성을 가지고 있어서, 변화를 준 요인은 튕겨나가고 원래의 경로로 돌아오게 된다거나. 하는 이야기. 아주 작고 미세한 의식하지 못하는 변화도 그 행위의 결과는 카오스로 귀결된다는 것. 뭐 그런 이야기.
내가 앞으로 두 달 후에 열달전의 나로 돌아갈 수 있다면? 내가 과거 어느 시점의 나로 지금의 기억을 가지고 돌아갈 수 있다면?